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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31일 주일[(백) 주님 부활 대축일 - 낮 미사]/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31일 주일[(백) 주님 부활 대축일 - 낮 미사]/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이듯,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절정을 이룬다.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 내신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큰 기쁨이고 희망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은 하느님의 권능과 주님 부활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날이다.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이제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벅찬 기쁨을 노래합시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입당송

시편 139(138),18.5-6 참조
저는 다시 살아나, 여전히 당신 안에 있나이다. 알렐루야.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어 주셨나이다. 알렐루야. 당신 지혜는 놀라운 일 이루셨나이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대영광송>
<또는>
루카 24,34; 묵시 1,6 참조
주님이 참으로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주님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소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오늘 외아드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저희가 주님의 부활 대축제를 지내며
성령의 힘으로 새로워지고 생명의 빛을 받아 부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0,34ㄱ.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8(117),1-2.16-17.22-23(◎ 24)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5,6ㄴ-8
형제 여러분, 6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속가

<오늘은 의무이고, 팔일 축제 동안에는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환호송

1코린 5,7.8 참조
◎ 알렐루야.
○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 양으로 희생되셨으니 주님 안에서 축제를 지내세.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7
1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3 그들은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하였다.
4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
5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6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7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완전한 빛이신 주님,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교회에 성령의 빛을 비추시어, 교회가 언제나 강한 생명력과 열정으로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 경제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창조의 주님, 세계의 경제인들을 굽어살피시어, 그들이 물질적 이익에만 마음을 두지 않게 하시고, 모든 피조물에 이로운 환경을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3. 새 영세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주님,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난 주님 자녀들을 보살펴 주시어, 풍성한 은총을 주시고, 구원의 희망과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사랑으로 하나 되어 살아가는 가정 공동체에 복을 내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참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부활의 기쁨에 넘쳐 봉헌하는 이 제사로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1코린 5,7-8 참조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 양으로 희생되셨으니, 순결과 진실의 누룩 없는 빵으로 축제를 지내세. 알렐루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성경을 읽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도 깨닫지도 못한다면,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도 전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신비를 깊이 묵상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자애로 교회를 인자로이 보호하시어
저희가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져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파견

<부제 또는 사제가 백성을 향하여 말한다.>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진설명: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부활대축일-파스카성야

 

먼저 오늘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시는 세례자분들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세례는 두 가지 은총을 우리에게 줍니다. 하나는 지난날 내가 범했던 모든 잘못을 용서받는 은총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모두 형제와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세례는 정화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세례는 회개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례를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나는 성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정화와 회개의 상징이었던 세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품격이 올라갔습니다. 교황님께서 우리 성당을 방문해 주면 우리 성당의 기쁨이 더 크듯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는 죄를 용서받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 성야 미사의 독서와 복음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자식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셨고,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만을 믿고 광야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다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거센 폭풍우에서 구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와 잘못으로 고난과 고통이 다가왔지만,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니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유배지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 되십니다.

 

부활 성야 독서와 복음은 빈 무덤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천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셨던 곳, 표징을 보여 주셨던 곳 갈릴래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탄생이 아닙니다. 부활은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부활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다시금 허리띠를 동여매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는 더 이상 치욕과 굴욕의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구원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12명의 제자가 시작한 하느님 나라 운동이 2000년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는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부활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재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조직이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하는 교회는 언제나 위기를 겪었습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함께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신 분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예수부활대축일

복음: 요한 20,1-9

 

우리는 오늘 무엇에 죽고 어떻게 부활할 것입니까?

 

참으로 감사하고 은혜로운 부활 성야입니다.

영광스러운 주님 부활, 그러나 한 마리 나비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수님 부활 사건입니다.

 

저는 이번 부활 시기, 구체적인 제 삶 속에서, 공동체 생활 안에서 주님 부활의 흔적을 찾고, 느껴보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봤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넉넉한 고장 태안에 내려와 산지 벌써 만 4년이 지나갑니다.

막 도착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도착하자마자 팬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약되어 있던 피정 센터 모든 스케줄이 백 퍼센트 취소되었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집합 금지 명령까지 내려져 피정객들은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 싸이즈가 큰 관계로 한 달 전기세가 나왔는데,

입이 딱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니, 한때 관구에서는 폐업뿐만 아니라 매각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는 그게 무슨 소리냐? 수많은 청소년들이 다녀간 오라토리오요, 많은 살레시안들의 땀과 눈물이

흩뿌려진 성지 같은 내리를 어떻게 포기하냐?

절대 그럴 수는 없다며,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길을 찾았습니다.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졌지만, 용기를 내서 피정객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딱 한 분이 피정을 오셨습니다.

그러다가 두분, 세분,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네명 미만은 가능하니, 여기 네 명 저기 네 명, 저 건너편에 네 명, 또 다른 쪽에 네 명...

 

그런 노력의 결과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아무런 경제적 타격을 입지 않고,

피정 센터는 잘 돌아갔습니다.

오히려 흑자를 내서 선교 기금이나 양성 기금으로 기여를 했습니다.

 

오늘 같은 경우도 정말이지 하느님께, 또 멀리서 찾아오신 교우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는 태안읍에서도 50분이나 더 들어와야 하는, 오지입니다만, 이 외딴 곳의 시골 성당을 꽉 채워서

부활 성야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것, 너무나 큰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우리 공동체의 모습에서 주님 부활의 확실한 표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때 메말라가고 죽어가던 저희 공동체였지만, 형제들의 헌신과 희생, 많은 교우들의 기도와 협조 덕분에

다시 맥박이 뛰기 시작했고, 생기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주님 부활의 흔적은 바로 우리가 매일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 특별히 내 안에서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 지난 수도 여정을 되돌아볼 때마다 저는 언제나 깊은 감사의 정을 느낍니다.

한때 저는 살아있었지만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모두 다 빠져나가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동체에 그 어떤 기여도 할수 없었고, 제 존재 자체가 형제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속상하고, 그야말로 매일 매일이 숨만 쉬고 있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세상 나 혼자뿐이로구나, 이제 내 인생 끝이로구나, 하고 좌절하고 살아가던 그때

한 존재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셨고, 무한한 인내심과 배려로 저를 일으켜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분은 저를 죽음에서 부활시키기 위해 주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였습니다.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분께서도 한때 저와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 큰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 대담 프로그램 중에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교황님 생애 중에 가장 힘들고 어두웠던 순간, 하느님이 대체 계시긴 한건가 하는 생각이

든 때는 언제였습니까?

 

교황님께서는 즉시 이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회 부에노스 아이레스 관구장 직무를 끝내고 나서였습니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만 9년 동안 황폐한 시기가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코르도바로 유배되었던 그 순간,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주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때 깊은 패배감에 젖어 이미 제가 죽었다고 믿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다보니 기도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부단히 하느님께 나를 맡겼고, 용서를 구했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특별히 감실 앞에 드리던 기도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님 부활을 경축하고 계시는 교우분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다른 먼 곳이 아니라

우리 삶 안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노력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나를 막고 있는 죽음의 큰 돌을 굴려내는 일입니다.

 

매일 우리가 접하는 인간 관계 안에서 누군가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측면의 죽음입니다.

내가 아직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수시로 분노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아직도 내가 죽음에 머물러 있다는 표시입니다.

 

오늘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해서도 부단히 죽고 부활하고,

죽고 부활할 것을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나는 오늘 무엇에 죽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지 성찰해보는 부활성야가 되면 좋겠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대축일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알렐루야! 

부활 대축일입니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는 다 같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주간 첫날 새벽에 발생한 일을 전해줍니다.

곧 막달레나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일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곳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제일 먼저 첫 번째로 본 것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요한 20,1)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를 시사해주는 첫 번째 표상입니다. 

그렇다면 돌이 치워져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실 부활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막았던 돌이 닫혀 있든지 막혀 있든지 상관없이 드나드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부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주간 첫날 저녁에 두려워서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는 데도 들어오셨습니다(요한 20,19).

 

그러니 돌이 치워진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빈 무덤’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곧 우리가 그분의 부활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그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큰 돌’을 치워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 ‘돌’, 주님의 은총과 사랑과 용서를 나눌 수 없도록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돌’,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 ‘돌’, 우리 자신을 짓누르고 무겁게 만드는 ‘돌’, 바로 그 ‘돌’을 치워내어야 우리는 그분의 부활을 볼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그 ‘돌’을 치우는 것이 바로 부활의 삶임을 말해줍니다.

곧 우리의 생명을 짓누르고 있는 이 죽음의 ‘돌’을 치우면 우리도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의 부활을 볼 수 없도록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 돌, 우리의 생명을 가로막고 있는 이 돌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욕심과 탐욕과 이기심일 수 있고, 상처와 분노와 미움일 수 있고, 자존심과 명예심과 높아지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눈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종류의 생각과 우상들일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 각자 안에서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는 벌레들이요, 주님 사랑을 실행하게 하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장애물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을 찢으셨고, 당신의 거처인 몸의 궁전을 허무셨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바로 서로를 분리시키고 단절시키는 불통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 부활의 표시요, 부활의 삶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가 하나가 생각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19세기 말의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거인의 정원> 입니다.

"거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아이들이 거인의 정원에 들어와 놀았고, 정원에는 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지저귀고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 머물렀다. 

7년이 지난 어느 날 거인은 돌아왔고, 그는 정원이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변한 것을 보고, 어린이들이 못 들어오도록 높은 담장을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원에는 꽃도 시들고 새들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을씨년스런 세찬 바람만 불었다. 

거인은 봄을 기다렸지만 봄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봄을 기다리기만 하던 어느 날, 마침내 봄이 찾아왔다. 

그런데 정원에는 뜻밖에도 담벼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어와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들어와 놀자 꽃들이 피어나고 새들이 다시 찾아와 노래하고 싱싱한 봄바람이 머물렀다. 

그제야 거인은 정원 둘레에 친 높은 담의 벽을 헐어버리고 어린이들이 들어와 놀 수 있게 하였다."

그렇습니다.

삶의 울타리를 높이 세우고 그 삶 속에 자기를 가두는 사람은 부활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며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돌’을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부활의 첫 걸음은 우리를 가두고 있는 장벽을 허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부수는 일입니다.

마치 병아리가 껍질을 벗어나 태어날 수 있듯이, 번데기가 허물을 벗어야 나비가 될 수 있듯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안전장치인 장벽을 깨부수는 일입니다.  

우리는 씨앗이 땅에서 썩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씨앗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싹이 텄다’고 말하듯이, 부수어지는 일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며,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며, 땅속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이들이 나의 정원에 들어와 놀 수 있도록 돌벽을 허물어야 할 일입니다.

남에게 던지려고 쥐고 있는 ‘돌’을 놓아야 할 일입니다.

 

곧 부활은 바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 ‘돌’을 치우는 일입니다.

타인과 이웃과의 높이 쌓아놓은 벽을 허는 일입니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돌’을 치우고 자유로워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용서하는 일입니다.

곧 새 생명에로의 전환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알렐루야.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요한 20,4)

 

주님!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듯, 목동들이 구유로 달려가듯,

고귀한 경쟁에서 질세라 빨리 달리게 하소서!

무덤을 들여다보지만 말고,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비어져 나오게 하소서.

비어진 눈으로 보게 하시고, 본 바를 믿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30. 파스카 성야 

창세1,1-2,2 창세22,1-18 탈출14,15-15,1ㄱ 

이사54,5-14 이사55,1-11 바룩3,9-15.32-4,4 에제36,16-17ㄱ.18-28

로마6,3-11 마태28,1-10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십자나무를 통하여 온 세상에 기쁨이 왔나이다.”

 

어제 수난예식시 감격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예수님 부활로 우리의 고백이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어제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과 수난예식에는 영광스럽게도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함세웅 신부님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꽃이, 기쁨의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다시 한번 외쳐보는 만세육창입니다.

 

“하느님 만세!”

“부활하신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 수도원 만세!”

 

동시에 만개(滿開)하기 시작한 파스카의 청초한 봄꽃들이 파스카의 신비를, 파스카의 기쁨을,

파스카의 축제를 한껏 경축하고 있습니다.

4월10일 나라의 명운이 달린 총선을 앞둔 길조(吉兆)입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무덤문 박차고, 죽음의 쇠사슬 끊어버리고 장엄하게 부활시키셨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느님은 우리를 죄살이에서 자유인으로 해방시키셨습니다.

아, 이제 예수님 부활하셨으니 살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빛의 예식시 “그리스도 우리의 빛!” 외침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요!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참빛은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이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활찬송 엑술뗏(Exsultet)은 또 얼마나 웅장한지요!

앞부분 일부만 인용합니다.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의 무리

 환호하라 하늘나라 신비

 구원의 우렁찬 나팔소리

 찬미하라 임금의 승리

 땅도 기뻐하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비춰진 땅아 깨달으러 세상 어둠 사라졌다

 기뻐하라 자모신 성교회

 위대한 광명으로 꾸며진 성교회

 백성의 우렁찬 찬미소리 여기 들려온다.”

 

찬미와 기쁨의 빛으로 충만한 이 거룩한 밤입니다.

이 밤은 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밤이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땅에서 불러내신 밤이고,

광야에서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비추던 밤이고, 이삭이 살아난 밤이고, 죽으셨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밤이며, 세례를 통해 많은 이가 거룩하게 되는 밤이며, 이밤의 말씀전례중에 읽혀지는

구약의 일곱 말씀의 빛이 밤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밤입니다.

 

이처럼 믿는 이들의 밤은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저절로 터져 나오는 하느님 찬미, 하느님 감사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이 우리에게는 참된 구원이 됩니다.

새삼 인간의 본질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빛이요 영입니다.

 

부활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될수록 충만한 삶에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사람의 실현입니다.

말씀전례중 일곱 개 독서때 마다 이를 요약하는 후렴은 또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말씀의 빛만이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주님 보내시는 얼에 누리의 모습이 새롭게 되나이다!”

“주님, 저를 지켜 주소서. 주께 피신하는 이 몸이오이다!”

“주께 내 노래 하리니, 주는 영광스러이 승리하셨나이다!”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내 주님을 높이 기리려 하나이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주님, 생명의 말씀이 주님께 있나이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이 하느님을 그리워하나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복음의 환호송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주님의 말씀의 우리 발의 등불, 우리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이, 말씀의 빛이 온누리의 어둠을, 우리 무지의 내면을 환히 밝힙니다.

세례받아 주님의 자녀로, 빛의 자녀로 탄생된 우리는 계속되는 파스카 미사은총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이미 지상에서 천국을 살게 된

우리의 복된 운명입니다. 

 

떠오르는 태양과 동시에 우리 영혼의 태양으로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의 열린 무덤이 상징하는 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세 여인과 더불어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 천사의 전갈입니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 나셨다.

그래서 여기 계시지 않는다.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너희는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이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리석게도 무덤에서 찾는지요!

바로 오늘 지금 여기 갈릴래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모신 곳은 어디나 빛으로 충만한 하늘나라이지만, 부활하신 주님 계시지 않는 곳은

어디나 무덤같은 어둔 세상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 계시기에 비로소 살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처방도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이 거룩한 부활성야미사를 통한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내리시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가 파스카 성사로 힘을 얻고 비오니, 사랑의 성령을 부어 주시어, 우리 모두 그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게 하소서.” 아멘.


3/31(일) 부활대축일, 463(제93)일 기도

 

1.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어떻게든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나를 막고 있는 죽음의 큰 돌을 굴려내는 일입니다.

 

매일 우리가 접하는 인간 관계 안에서 누군가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측면의 죽음입니다.

내가 아직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수시로 분노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아직도 내가 죽음에 머물러 있다는 표시입니다.

 

오늘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해서도 부단히 죽고 부활하고,

죽고 부활할 것을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나는 오늘 무엇에 죽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지 성찰해보는 부활성야가 되면 좋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의 부활을 볼 수 없도록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 돌, 우리의 생명을 가로막고 있는 이 돌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욕심과 탐욕과 이기심일 수 있고, 상처와 분노와 미움일 수 있고, 자존심과 명예심과 높아지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눈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종류의 생각과 우상들일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 각자 안에서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는 벌레들이요, 주님 사랑을 실행하게 하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장애물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을 찢으셨고, 당신의 거처인 몸의 궁전을 허무셨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바로 서로를 분리시키고 단절시키는 불통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 부활의 표시요, 부활의 삶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요한 20,4)

 

주님!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듯, 목동들이 구유로 달려가듯,

고귀한 경쟁에서 질세라 빨리 달리게 하소서!

무덤을 들여다보지만 말고,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비어져 나오게 하소서.

비어진 눈으로 보게 하시고, 본 바를 믿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파스카의 예수님 계시기에 비로소 살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처방도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이 거룩한 부활성야미사를 통한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내리시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가 파스카 성사로 힘을 얻고 비오니, 사랑의 성령을 부어 주시어, 우리 모두 그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게 하소서.”(이수철 신부)

  

3/31(일) 부활대축일, 463(제93)일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

 

어떻게든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나를 막고 있는 죽음의 큰 돌을 굴려내는 일입니다.

 

매일 우리가 접하는 인간 관계 안에서 누군가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측면의 죽음입니다.

내가 아직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수시로 분노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아직도 내가 죽음에 머물러 있다는 표시입니다.

 

오늘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해서도 부단히 죽고 부활하고,

죽고 부활할 것을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나는 오늘 무엇에 죽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지 성찰하게 하소서.

 

- 2024년 3월31일(일) 5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