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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4월 2일 화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4월 2일 화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집회 15,3-5 참조
지혜의 물을 마시면, 굳세어지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지혜가 너희를 영원히 들어 높이리라.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저희를 치유해 주셨으니
천상 선물도 풍성히 내리시어
지금 세상에서 맛보는 기쁨과 자유를
하늘에서 온전히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36-41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3(32),4-5.18-19.20과 22(◎ 5ㄴ 참조)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

부속가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환호송

시편 118(117),24
◎ 알렐루야.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알렐루야.

복음

<제가 주님을 뵈었고,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1-18
그때에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드리는 제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저희가 받은 것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선물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콜로 3,1-2 참조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여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저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세례의 은총으로 깨끗해졌으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파견

<부제 또는 사제가 백성을 향하여 말한다.>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진설명: 제가 주님을 뵈었고,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가슴이 벅찼던 때가 있다면 언제가 있을까요? 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떠오릅니다. 월드컵 사상 첫 16강은 가슴 벅참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8강전에서 이탈리아와 연장전까지 가고 안정환 선수의 결승 골로 4강으로 진출했습니다. 4강전에서 대한민국은 스페인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 끝에 골키퍼 이운재 선수의 선방과 홍명보 선수의 결승 골로 4강에 진출했습니다. 비록 결승전의 문턱에서 독일에 패배했지만 2002년 대한민국은 둥근 축구공 하나로 축제의 날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멋진 말들이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현수막입니다. 히딩크 감독이 했던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라는 말입니다. 서울의 광화문과 시청을 가득 메운 응원단이 있었습니다. 저도 본당의 마당에서 교우들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를 시청하면서 응원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붉은 악마로 불리던 빨간 응원복과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며 응원했던 박수입니다. ! 또 가슴 벅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트럭에 소를 싣고 판문점을 넘던 장면입니다. 그 일이 물꼬가 되어서 남과 북의 경제협력 상징이 되었던 개성공단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뜨거운 축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도 가슴 벅찬 일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제가 투표했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입니다. 8번의 대통령 선거에 투표했고, 3번은 제가 투표했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투표한 후보가 두 번 더 대통령이 된다면 제가 투표한 후보가 50%는 당선되는 것을 볼 것 같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투표는 한바탕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학력고사를 보고 신학교에 지원했을 때입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직접 학교에 가서 벽보에 적혀있는 이름을 확인하였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저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 가슴이 벅찼습니다. 공부에 그리 취미가 없었는데 10 등 안에 들면 자전거를 사준다는 달콤한 유혹에 공부했었습니다. 드디어 10등 안에 들었는데 친구들도 선생님도 저의 실력을 믿지 못하고 커닝했다는 의혹의 눈초리로 대하였습니다. 서운함과 억울함에 코피가 나도록 공부했고, 커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등수를 얻었을 때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 벅찼던 것은 1991 8 23일 사제서품을 받을 때입니다. 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때입니다. 서품식에 참석한 교우들은 모두 성인 호칭기도를 불러주었습니다. 성인들의 전구 함을 청하며 주님의 제단에 봉사할 수 있는 사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가슴 벅찬 체험을 하셨는지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기 전에 베드로 사도는 나약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물 위를 걷다가 두려움을 느꼈고, 물속으로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건져 주시면서 왜 이렇게 믿음이 약하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움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절망에 빠지고, 어둠 속으로 빠졌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전에 세상 것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 사도는 예전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당당했고, 두려움도 없었고, 지혜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에만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에는 많은 순교자가 있습니다. 배움이 부족했던 백정도 주님을 증거하며 순교하였습니다. 아직 어린 소년도 기꺼이 목숨을 바쳐서 순교하였습니다. 기력이 약한 노인도 순교하였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는 지식도, 나이도, 건강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을 받으면 주님께서는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마리아라고 부르셨을 때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마리아는 라뿌니!’라고 가슴이 벅차 소리쳤습니다. 사도들도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렇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신앙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제 모든 우선순위를 주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즐겼던 오락, 취미, 만남이 뒤로 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선교 그리고 나눔의 삶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이제 내 삶의 우선순위를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도록 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슴 벅찬 목소리로 라뿌니라고 소리치면 좋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복음: 요한 20,11-18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고 우리를 동반하실 주님

세상 부끄러운 초대형 참사들을 유독 많이 겪은 우리 백성들입니다.

어쩔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수 있었던 인재라서 더욱 안타깝고 서글픕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할지라도 희생자 유가족들의 참담한 슬픔은 결코 가시지 않습니다.

유가족들 가운데서 가장 혹독한 고통을 겪고있는 분들이 있으니,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이 처참하게

훼손되거나 아예 찾지도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분들의 간절한 바람은 오직 한가지 시신이라도 돌아왔으면! 입니다.

그러면 흔들고 대성통곡이라도 할텐데, 붙들고 울부짖기라도 할텐데...

그만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시신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추모하고 애도할수 있는 공간이 그리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마리아 막달레나는 기절초풍할 일을 겪었습니다.

스승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입니다. 누군가가 탈취해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내려앉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오게 해주신 주님이었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다를바없던 그녀에게 유일하게 손내밀어주셨던 분,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분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은혜롭게도 세상 다 끝난 심정이던 마리아 막달레나 눈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윽고 하시는 말씀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너무나 놀랍고도 당혹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뛸듯이 기뻤고 감사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라뿌니!" 하고 외치면서 예수님 발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두 발을 꼭 붙들었습니다.

더 이상 주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던지신 말씀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종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사이에 현존하시고

우리를 동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현존 방식으로 우리 각자의 내면 깊숙히, 우리 영혼의 성 안로 들어오시겠다는 표현입니다.

때로 미풍같은, 때로 태풍같은 성령의 현존으로, 때로 우리를 영생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성체성혈의 형상 안에 영원히 살아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은 부활 예수님께 대한 막달레나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 2탄입니다.

사랑의 장소는 동산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처음 준비되고 이루어진 곳도 동산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동산에서 사랑으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듯이, 또 다시 동산에서 사랑으로 부활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십니다.

 

그렇게 에덴동산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소명을 주십니다. 

두 제자는 이미 돌아갔건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차마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울다'의 원어의 뜻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큰소리로 통곡하여 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곧 사랑이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무덤을 들여다보고 하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두 천사를 봅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습니다.(요한 20,12)

성 그레고리우스는 천사가 있었던 '머리맡'은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는 사실을, '발치'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사실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곧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보고도 그분이 예수님인 줄은 몰랐습니다.(요한 20,14).

또한 그녀는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 20,15)라는 음성을 듣고도 그분이 누구신지를 몰랐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그랬고(루카 24,13-35),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의 일곱 제자들도 그랬습니다(요한 21,4).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낯선 이’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무엇인가를 요청하고 무엇인가를 도와달라고 하는 낯선 이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러기에 부활 체험은 ‘낯선 이’ 안에서 그분을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낯선 이’의 요청 안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분을 알아보고 ‘눈이 열리어’(루카 24,31)야 할 일입니다.

 

그분은 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이집트에서 불러내듯, 동굴에서 불러내듯 나를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요한 20,17)

 

이는 당신이 더 이상 육신의 손으로 붙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손으로가 아닌 믿음으로 만지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아는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자신이 모르는 낮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손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만지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든다.’고 말합니다. 

결국 부활은 다름 아닌 사랑의 승리이며,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결코 그 무엇도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일은 예수님처럼,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요한 20,17)

 

주님!

이제는 당신을 놓게 하소서!

제가 붙들면 속박이 되지만 당신이 붙드시면 자유이오니,

제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붙들고 있는 것은 제 마음일 뿐,

당신은 붙들 수도 붙들려지지도 않으시는 분이오니,

제가 만들어 놓은, 제가 원하는, 당신이 아니라

주님이신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당신 사랑은 늘 멈춤이 없사오니,

사랑하는 일에 붙들리어 늘 사랑하는 일에 멈춤이 없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4.1.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사도2,14. 22-23 마태28,8-15

 

                                                               예수님 부활

                                                  -사실인가? 또는 가짜뉴스인가?-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어제 3월31일은 3월 성 요셉 성월의 끝날이자 주님 부활 대축일이었고 오늘 4월1일은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에 이어 4월 한달은 만개한 파스카의 봄꽃들과 함께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부활시기가 펼쳐 집니다.

옛 어른의 4월 말씀과 오늘 말씀도 참 좋습니다. 

 

“거피취차(去彼取此); 이상에 취하지 말고 일상에 몰두하자”

다산이 노자를 인용한 4월 주제 말씀입니다.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부활을 체험한 우리들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냉철한 삶의 자세입니다.

 

“사자는 갈기가 없더라도 사자다. 선비는 궁한 처지에도 비굴하지 않다.”

다산 어른의 말씀입니다. 

 

“부귀함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비천함도 이 뜻을 바꾸지 못하며, 위험도 이 뜻을 굽히지 못하니,

이래야 대장부라고 할 수 있다.”

맹자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님 부활을 체험한 자라면 모름지기 다산 어른의 선비의 자세가, 맹자 어른의 대장부의 자세가

마땅하겠습니다.

어제, 성주간 동안 수도원에 머물다간 제 옛 고향, 대전교구 원로사제의 유머스런 말씀도 힘이 되었습니다.

 

“수도원 도서실에서 <요셉수도원 설립 25주년(1987-2012)> 화보집에서 당시 원장이던

‘신부님의 회고사;이제 다시 시작입니다’를 읽었습니다.

초창기 수도원을 일궈 놓으신 대단한 분이더군요.

그분이 누굴까 유심히 살펴 보니 신부님이었습니다.

절로 말하면 수도공동체의 원로가 되는 신부님은 방장이고, 원장신부님은 주지가 되는 셈입니다.

신부님은 불암산의 ‘산중(山僧)’이라면 저는 세속의 ‘들중(野僧)’입니다.”

 

정말 평생 분투의 노력을 다해 불암산 성 요셉수도원의 산승(山僧)답게, 수도공동체의 겸덕(謙德)과

학덕(學德)을 겸비한 출중한 영적지도자 방장답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어제는 참 많이 부활 축하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주님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신부님, 주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요지의 축하글이었습니다.

너무나 자명한 부활의 기쁨을 전하는 글이었습니다.

교황님의 부활성야강론시 “예수님과 함께, 무덤은 더이상 삶의 기쁨을 압도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주제로

말씀하셨고, 부활절 메시지에서는 “그리스도는 살아나셨다!

모든 것은 새롭게 시작한다!(Christ is risen! All begins aneu!)” 희망찬 주제를 택하셨습니다.

 

부활의 희망, 부활의 기쁨이 우리를 살게 하는 참된 내적힘입니다. 

정순택 서울대교구장의 부활메시지도 적절했고 일부 인용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자주 ‘반대자들을 사랑하고 우리를 험담하는 이들을 축복합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은 국가의 발전과 국민들의 행복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곧 치르게 될 총선에서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권리를 잘 행사해서

국민의 참 봉사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과 사회의 어려움을 넘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나라의 명운이 달린 총선입니다.

나라의 좋은 일꾼을 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후보의 배경인 당과 삶을 역사를 봐야 할 것이고,

무수한 쓰레기 가짜뉴스들에 휘둘리거나 속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 부활하셨고 일부 제자들은 너무나 생생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

이에 당황한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며 매수하니

종교지도자들이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됩니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자기들이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갔다”고

그들이 시킨대로 했고, 이 가짜뉴스 유언비어가 유다인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합니다.

정말 믿음의 없는 이들에게는 예수님 부활이 유언비어 가짜뉴스처럼 들렸을 것이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정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참 분별하게 난감합니다.

 

무엇이 유언비어요 가짜뉴스인지 오늘 복음을 보면 분명합니다.

종교지도자들과 경비병들이 유언비어 가짜뉴스의 진원지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유언비어 가짜뉴스가 만연된 세상에서 이에 속지 않도록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여

좋은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배경의 당과 인물의 과거 행적을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살아온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회개가 아니곤 사람은 결코 고쳐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너무나 자명한 진리입니다.

부활의 희망, 부활의 기쁨이 우리를 험난한 광야여정 중에도 무너지지 않고 독야청청 살게 하는,

샘솟는 내적 힘의 원천이 됩니다.

 

도대체 부활한 파스카의 예수님이 아니곤 어디에다 참 희망과 기쁨을 둘 수 있을런지요!

바로 그 생생한 부활의 증인이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베드로 사도입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그대로 베드로의 주님 부활체험을 반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서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어 예로 드는 다윗 시편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의 고백을 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고백을 여러분의 내 고백으로 삼으셔서 바쳐도 은혜롭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시는 참 좋은 선물이 시편16,8-11절입니다.

 

저는 오늘 부활절 다음날 4월1일 오늘 파공은 주님 부활의 희망과 기쁨을 관상하며,

또 교황님의 부활 강론과 메시지를, 아래 시편을 묵상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려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고백이자 주님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우리의 행복한 고백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시편(16,8-11)을 그리스도화하여 렉시오디비나 하는 관상의 경지가 참 놀랍습니다.

과연 렉시오디비나의 모범이자 관상가의 모범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아멘.


4월2일(화) <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마리아라고 부르셨을 때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마리아는 라뿌니!’라고 가슴이 벅차 소리쳤습니다. 사도들도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렇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신앙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제 모든 우선순위를 주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재형 신부)

 

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종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사이에 현존하시고

우리를 동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현존 방식으로 우리 각자의 내면 깊숙히, 우리 영혼의 성 안로 들어오시겠다는 표현입니다.

때로 미풍같은, 때로 태풍같은 성령의 현존으로, 때로 우리를 영생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성체성혈의 형상 안에 영원히 살아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요한 20,17)

 

주님!

이제는 당신을 놓게 하소서!

제가 붙들면 속박이 되지만 당신이 붙드시면 자유이오니,

제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붙들고 있는 것은 제 마음일 뿐,

당신은 붙들 수도 붙들려지지도 않으시는 분이오니,

제가 만들어 놓은, 제가 원하는, 당신이 아니라

주님이신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당신 사랑은 늘 멈춤이 없사오니,

사랑하는 일에 붙들리어 늘 사랑하는 일에 멈춤이 없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아멘.(다윗 시편)

(이수철 신부)


 

4월2일(화) <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465(95)일 기도

 

복음 <제가 주님을 뵈었고,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요한 20,17)

 

주님!

이제는 당신을 놓게 하소서!

제가 붙들면 속박이 되지만 당신이 붙드시면 자유이오니,

제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붙들고 있는 것은 제 마음일 뿐,

당신은 붙들 수도 붙들려지지도 않으시는 분이오니,

제가 만들어 놓은, 제가 원하는, 당신이 아니라

주님이신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당신 사랑은 늘 멈춤이 없사오니,

사랑하는 일에 붙들리어 늘 사랑하는 일에 멈춤이 없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4월2일(화) 6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