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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4월 1일 월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신부님 강론 5개

[매묵]2024년 4월 1일 월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신부님 강론 5개

입당송

탈출 13,5.9 참조
주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오셨으니,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되뇌어라. 알렐루야. <대영광송>
<또는>
말씀하신 대로 주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다. 우리 모두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주님이 영원토록 다스리신다.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언제나 새로운 자녀들로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니
하느님의 종들이 신앙으로 받은 성사를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14.22-33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6(15),1-2ㄱ과 5.7-8.9-10.11(◎ 1)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
○ 저를 타이르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한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깨우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부속가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환호송

시편 118(117),24
◎ 알렐루야.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알렐루야.

복음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8,8-15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바치는 제사를 자비로이 받으시어
주님의 이름을 믿고 세례로 새로 난 저희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로마 6,9 참조
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파스카 신비의 은총을 저희 마음에 가득 채워 주시어
영원한 구원의 길로 들어선 저희가
이 성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파견

<부제 또는 사제가 백성을 향하여 말한다.>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진설명: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노래방이 생기면서 전 국민이 가수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면서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듯이,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면서 몇 번을 간 곳도 내비게이션 없이는 찾아가지 못하듯이, 노래방에 가사가 나오면서 예전에는 외우던 노래들을 외우지 못합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지만, 예전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던 기능들은 점차 약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습니다. 새것을 알기 전에 예전의 것들에서 배우자는 것입니다. ‘Old is but Good'이라는 말도 이와 비슷합니다. 요즘의 음악도 좋지만 예전에 들었던 노래가 가슴에 더 깊이 와 닿는 때가 있습니다. 그 노래에 나의 기억과 나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18번으로 부르는 노래 중에 최성수의 해후가 있습니다. 애잔한 멜로디와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을 아파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하는 가사가 좋았습니다. 또 하나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기도를 성가로 만든 아무것도 너를이 있습니다. 성가가 곧 기도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성가입니다. 가사 중에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 만으로 만족하도다.’가 있습니다. 이 두 노래는 제가 그 가사를 온전히 기억하는 노래입니다.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면서 문득 성가를 묵상하고 싶어졌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성가 329 미사시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쁨이 넘쳐 뛸 때 뉘 나와 함께 나누리./ 슬픔이 가득할 때 뉘게 하소연 하리/ 영광의 주 우리게 기쁨을 주시오니/ 서러운 눈물 씻고 주님께 나가리/ 당신이 아니시면 그 누가 빛을 주리/ 인생은 어둠속에 길 잃고 방황 하리/ 희망의 주 내 삶의 길 인도 하시오니/ 나 언제나 주 안에 평화를 누리리./ 부당하온 이 영혼 주 앞에 어찌 가리/ 주께서 살피시면 결백함 있을런가./ 사랑의 주 우리의 뉘우침 굽어 보사/ 불쌍히 여기시어 받아 주옵소서.” 멜로디가 장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숙연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 몸과 피를 내어 주시면서 제정하신 성체성사의 깊은 뜻을 느끼게 해 줍니다. 먼 길 떠났다가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나그네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젊은 날 객기를 부리면서 방황하던 아들이 어느 날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미사시작은 바로 그런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잔치를 벌여 주는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쉽고, 야속하고, 화가 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믿었던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평안하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었습니다. 걱정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변화된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우리는 주님의 부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 두려움과 슬픔을 다 떨쳐버리고, 주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한 주간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편안한 하루 되십시오. 저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오늘부터 메주고리, 파티마, 루르드 성지순례를 갑니다. 주님의 사랑에 깊이 머물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2024년 나해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마태오 28,8-15

 

관심만 있으면 부활은 저절로 믿어진다. 그러나 관심이 없는 이유가….

 

신자들과 면담할 때 제가 가장 중점으로 삼는 것은 미사만 나오지 말고 레지오와 같은 단체에 들어가

친교 공동체를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미사만 나와서는 신앙의 발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신앙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결과가 공동체이며

그 소속감에서 신앙의 참 행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이것을 매우 꺼립니다. 성당엔 나가야 하는지 알지만, 내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자꾸 물어보는 게 싫은 것입니다.

 

만약 자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가 자신의 가정사를 모르는 본당에 이사 왔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그 본당에서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사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죽은 게 본인 탓이라고 부모는 느낄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상처를 건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본당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하느님 사랑을 그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삶이 참 부활의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상처는 그 부활의 삶으로 가는 길을 막습니다.

만약 그 부활의 삶이 레지오 단체라고 한다면 상처 있는 사람은 그 레지오 단체에 대해

전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분명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들의 발목을 잡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여 많은 유다인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는 부활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있는 상처가 나의 탓이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탓이건, 아니건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습니다. 그런데도 그 상처 때문에 공동체와 하나 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나의 영광’을 추구하고 ‘세상이 주는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집착하면 결국 하늘로 오를 수 없습니다.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신문기자로 그리스도인들의 헛된 신앙을 깨버리려고

성경과 역사를 연구하다가 결국 신앙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실화인데 그가 쓴 책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로 볼 수 있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알려고만 해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는 신문사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그 신문사는 종교색채를 띠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전 경비병들에게처럼 부활의 증거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고 믿으려고만 하면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은 이렇게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보려고 달려가는 노력만 있으면 믿어질 수 있습니다.

 

저도 하.사.시.를 통해 예수님을 알려고 했던 것 덕분으로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이나 세상에서의 성공에 대한 애착이 끊어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 열 권의 책을

5년에 걸쳐 끝까지 읽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참 부활의 갈릴래아인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비행기를 탄 순간은 신학생 때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날 때였습니다.

몇 년 동안 돌아올 수도 없고, 말 한마디도 못 하는 나라로 갈 때 저는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비행장에는 저를 배웅하러 많은 사람이 나왔었는데,

저는 그들과 지내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이후로 참 많이도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리고 가장 기쁘게 비행기를 탔던 순간이

언제였을까요? 바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올 때였습니다.

이탈리아 쪽으로는 오줌도 누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이 떨어졌습니다. 

 

하늘로 오르는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면, 그 부활은 내가 지금 발붙이고 있는 곳에 정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냥 사는 게 힘들어서 무조건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붙이고 있는 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영광이 기대되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말려도 스스로 부활을 믿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영광만을 바라면 결코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오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실 자기 영광만 찾는다면 그는 유익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신학생들은 자기 나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방학 때 여러 신학생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일자리를 얻어 자기 집에 돈을 보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코 신학교로 돌아갈 수 없고 사제가 될 수도 없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내가 지상의 부활을 원한다면 천상의 부활은 믿을 수 없게 됩니다.


3. 송영진 모세 신부 강론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강론>

(2024. 4. 1. 월)(마태 28,8-15)

 

<신앙고백, 증언, 선포>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될 것이다.’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마태 28,8-15).”

 

1) 여자들의 ‘두려움’은 ‘무서움’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일에 대한 경외심과 놀라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무서워하지 마라.”가 아니라 “놀라지 마라.”입니다.

여자들의 ‘기쁨’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대한 믿음에서 생긴 기쁨입니다.

 

만일에 여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즉 천사가 전해 준 부활 소식을 안 믿었다면,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평소의 신앙생활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올바른 믿음에서 참된 기쁨이 생깁니다.

혹시라도, 누구든지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다면, 또는 기쁨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표시가 됩니다.>

 

여자들이 ‘예수님 부활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한 일은, 신앙고백이며 증언이고 선포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이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언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널리 알리는 선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선교활동도, 또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활동도,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선교활동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일이며,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는 일이고,

그리고 복음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는 선포입니다.>

 

2) 경비병들이 본 일은,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일과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옆으로 굴린 일입니다.

경비병들의 ‘두려움’은 ‘무서움’입니다. 그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습니다(4절).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본 것은 아닙니다. 또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12절의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라는 말은 ‘무덤이 비어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는 뜻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무덤에서 한 일을 알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순간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사가 돌을 굴린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덤 밖으로

나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 위한 일이 아니라, 무덤이 이미 비어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일입니다(6절).>

 

3) 사제들은 예수님의 무덤에서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예수님의 무덤에서 일어난 일을 덮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 부활’은 달갑지 않은 일, 믿기 싫은 일,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습니다.

‘부활’이라는 일 자체를 안 믿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활을 믿더라도 자기 자신의 부활만 희망하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부활은 바라지 않는 태도일 수도 있고,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유대교의 권위와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제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의 권위와 영향력의 추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의 상실로, 즉 재산과 권력의 상실로 이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4) 사도들과 신자들은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 라고 증언하면서,

그 ‘만남’을 예수님 부활의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증언 자체를 헛소리라고 비웃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증언했을 때, 페스투스 총독이 바오로 사도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 일이

대표적인 예입니다(사도 26,24).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덤에서 시신을 훔친 다음에 부활하셨다고 선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안 믿는 사람들의 머리로는 ‘합리적인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이라는 일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 부활을 증명할 수 있는 ‘물적 증거’는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는 사도들과 신자들의

증언만 있을 뿐입니다.

 

무덤에서 시신을 훔친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주장도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일 뿐입니다.

결국 이 논쟁은 ‘물적 증거로 증명할 수 없는 신앙’과 ‘물적 증거로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의 충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기쁨과 희망 속에서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인생은 허무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안 믿는 사람들은 목적지 없는 유랑 같은 인생을 살면서 ‘인생은 허무하다.’ 라는 말만 하다가 끝나버립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4.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제자들을 '극심한 두려움'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승의 죽음이라는 당혹스런 사실 앞에서, 믿음의 흔들림과 의혹과 허탈감으로 절망과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자신들도 붙잡혀 죽게 될까 봐 불안에 떨어야 했고,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숨어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는 그 깊은 어두움 속에서도 결코 갈망이 식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두려움보다 컸던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이 깊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리움이 되어 이른 새벽 스승의 무덤을 찾아가게 했고, 거기서 그들은 천사를 만나 놀랍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

(마태 28,7)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평안하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천사를 통해 사명을 주었건만, 굳이 열절하신 사랑으로 직접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주 오십니다.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향하여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인간을 향하여 계신 분”(본 훼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 나서기만 하면 “나 여기 있노라.”(이사 58,9; 66,1) 하시며, 이미 찾아와 우리 앞에 계십니다.

항상 우리를 향하고 계셔서, 우리가 찾기 전에 먼저 우리를 향하여 찾아오십니다.

 

그러니 더 이상 예수님을 붙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께 붙잡혀 있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를 찾으시는 당신 앞에, 항상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당신 면전에 있어야 할 일입니다.

항상 당신을 향하여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시어, 막달레나에게서 두려움을 몰아내시고, 당신 부활을 선포하는 첫 사도로 파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마태 28,10)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켜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달아나버린 제자들을 말입니다. 

 

비록 그들이 당신을 떠났어도 진정으로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이미 그들을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바로 이것이 당신께서 부활하시어 첫 사도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형제들 안에서 예수님을 뵈올 것입니다.

척박한 땅 갈릴래야,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바로 이 땅, 바로 여기,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께서는 형제들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형제를 사랑할 때 부활 생명이 우리 안에서 피어오르게 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형제를 사랑하게 하소서. 

형제들 안에서 당신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마태 28,10)

 

주님!

그분을 뵙는 일,

이보다 기쁘고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가는 곳에 항상 먼저 와 계신,

먼저 오시어 나를 기다리시는 분,

결코 저를 떠나지를 못하시는,

그 보고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찾으면 ‘나 여기 있노라’ 하시고,

제가 숨으면 ‘너 어디 있느냐?’고 제가 찾기도 전부터 저를 찾으시고,

먼저 제 안에 들어와 ‘어서 가자’고 이끌어 주시는,

그 보고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5.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31.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사도10,34ㄱ.37ㄴ-43 콜로3,1-4 요한20,1-9

                                                            “축하합니다!”

                                            -예수님 부활 만세, 우리들 부활 만세-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축하합니다!

예수님 부활, 우리들 부활을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덕분에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였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기쁜 소식은,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파스카의 주님과 하나되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일 4월1일은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만개한 파스카의 봄꽃들과 더불어 이제 참 멋지고 황홀한

부활시기 4월을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날이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118;24.1)

 

오늘 부활 대축일 낮기도 시편 화답송 후렴도 참 적절합니다.

어제 부활 성야 미사도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1.빛의전례, 2.말씀전례, 3.세례전례, 4.성찬전례” 네부분으로 이뤄진 전례로 새삼 세례전례가

부활성야미사의 중심임을 깨달았습니다.

 

수도원 개원후 최초로 장차 입회가 예정되는 이종원 베네딕도 형제가 공동체의 특별한 배려로 세례를 받았고,

이어 모두가 세례 서약 갱신에 참여함으로 모두가 예수님과 함께 부활을 체험했습니다. 

 

말씀전례 7개의 독서에 이어, 복음전 로마서 독서는 아랫집 저와 띠 동갑인 우리 나이로

88세 노령의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 “서 마리레몽 수녀”가 또박또박 낭낭한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이 또한 신선한 감동에 충격이었습니다.

수녀님 역시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부활하였음을 입증합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부활 축하드리며 주님의 크신 평화가 가득하시길 빕니다!!

기쁜 축제의 날, 어린양의 파스카, 승리의 날, 감사와 기쁨의 날 되시길 기도합니다.”

 

디지털 스마트폰 카톡의 시대, 유일하게 초코렛 선물과 더불어 받은 수녀님의  친필서한입니다.

영혼이 육신을 끌고 가는, 늘 파스카의 신비를 사는 열정과 순수의 수녀님입니다.

 

또 뜻밖에 총선을 앞두고 재판이 끝나자 마자 곧장 유세에 오른 어느 정치가의 간절하고 절박한 호소가

깊은 감동의 충격으로 마음을 울렸고 그대로 하느님께 기도로 올렸습니다.

이어 열심한 도반으로부터 부활축하편지와 더불어 만개한 개나리꽃 사진 선물을 받고 발송한 답신도 나눕니다.

 

“신부님 부활 축하드려요. 부활하면 개나리와 매일 부활의 삶을 사시는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이어 즉시 옛 “개나리” 시를 선물했습니다.

 

-“겨울 지낸 

 개나리

 햇빛 환한 대낮도 

 너무 어두워

 샛노란 꽃초롱들 가득 켜들고 

 대낮의 어둠

 환히 밝히고 있네”-2001.4.11.

 

23년전 시이지만 여전히 아끼고 있는 시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어둠을 환히 밝히며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깨어있는 영혼을 상징하는

청초한 사랑, 샛노란 개나리꽃입니다.

어떻게 하면 파스카의 승리를,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지요?

 

첫째, 예수님을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오늘 복음의 빈무덤을 배경한 세 제자들이 예수님 사랑의 모범입니다.

누구나 자명한 주님 부활체험이 아닌 참으로 예수님을 열렬히 한결같이 사랑한 이들만이

부활한 주님을 체험했습니다.

맨처음 빈무덤을 확인한 마리아 막달레나 만큼 예수님을 사랑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전갈에 쏜살같이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애제자와 수제자의 대결,

그러나 앞선 것은 애제자의 사랑이었고, 겸손한 애제자는 잠시 멈추었다가

수제자 베드로 다음에 무덤에 들어섭니다.

 

세분의 예수님 사랑은 막상막하입니다.

그러나 빈무덤을 봤을 때 전광석화 주님 부활을 감지하고 확신한 것은 에제자였습니다.

 

다음 짧은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랑의 눈이, 영의 눈이 활짝 열린 애제자만이 빈무덤을 보는 순간 주님 부활을 믿었습니다.

참으로 사랑할 때 체험하는 부활하신 주님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천상의 꿈, 희망이신 그리스도를 추구하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간곡한 권고입니다.

주님 부활 체험만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부단히 천상의 그리스도를 추구할 때 샘솟는 영적 열정에

영적 승리의 삶입니다.

초월과 내재의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참 귀한 말씀이요 부활시기 내내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살아있다하여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떠난 삶은 살아 있는 삶이 아닌 유령같은 좀비같은 헛된 삶, 죽은 삶이겠습니다. 

 

이미 살아서 그리스도와 깊어지는 일치와 더불어 생명력 넘치는 참나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광속에 환히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자 영원한 꿈이요 희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 백절불굴 파스카의 삶을,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셋째, 주님 부활 선포의 증인이 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예전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던 제자가 아닙니다.

불굴의 주님의 용사가, 주님 부활의 전사가 된 베드로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후의 베드로의 활약상을 보여줍니다.

이제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에 전념하는 베드로입니다.

 

“그분은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우리도 부활하였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 갈릴래아에서 만나는

부활하신 주님입니다.

다음 파스카의 부속가 그대로입니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 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루하루 파스카의 삶을, 주님 부활 승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참삶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부활하신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사랑과 신뢰의 삶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입니다.

 

1.늘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날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아 닮아갈 때 참나의 실현입니다.

 

2.늘 천상의 꿈,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추구하십시오. 

 초월과 내재의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3.늘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십시오.

  바로 내 삶의 자리 갈릴래아에서 내 삶자체로 부활하신 주님을 환히 드러내는 삶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길 빕니다. 아멘.


 

4월1일(월)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쉽고, 야속하고, 화가 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믿었던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평안하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었습니다. 걱정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조재형 신부)

 

2. ‘나에게 있는 상처가 나의 탓이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탓이건, 아니건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습니다. 그런데도 그 상처 때문에 공동체와 하나 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나의 영광’을 추구하고 ‘세상이 주는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집착하면 결국 하늘로 오를 수 없습니다. (전삼용 신부)

 

3. <이 말은, 우리의 평소의 신앙생활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올바른 믿음에서 참된 기쁨이 생깁니다.

혹시라도, 누구든지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다면, 또는 기쁨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표시가 됩니다.>(송영진 신부)

 

4. <오늘의 말·샘 기도>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마태 28,10)

 

주님!

그분을 뵙는 일,

이보다 기쁘고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가는 곳에 항상 먼저 와 계신,

먼저 오시어 나를 기다리시는 분,

결코 저를 떠나지를 못하시는,

그 보고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찾으면 ‘나 여기 있노라’ 하시고,

제가 숨으면 ‘너 어디 있느냐?’고 제가 찾기도 전부터 저를 찾으시고,

먼저 제 안에 들어와 ‘어서 가자’고 이끌어 주시는,

그 보고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1.늘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날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아 닮아갈 때 참나의 실현입니다.

 

2.늘 천상의 꿈,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추구하십시오. 

 초월과 내재의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3.늘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십시오.

  바로 내 삶의 자리 갈릴래아에서 내 삶자체로 부활하신 주님을 환히 드러내는 삶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길 빕니다. 아멘.(이수철 신부)

 

4월1일(월)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464(94)일 기도

 

복음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마태 28,10)

주님!
그분을 뵙는 일,
이보다 기쁘고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가는 곳에 항상 먼저 와 계신,
먼저 오시어 나를 기다리시는 분,
결코 저를 떠나지를 못하시는,
그 보고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찾으면 ‘나 여기 있노라’ 하시고,
제가 숨으면 ‘너 어디 있느냐?’고 제가 찾기도 전부터 저를 찾으시고,
먼저 제 안에 들어와 ‘어서 가자’고 이끌어 주시는,
그 보고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멘.

- 2024년 4월1일(월) 7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