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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4월 11일 목요일[(홍)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4월 11일 목요일[(홍)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스타니슬라오 성인은 1036년 폴란드 슈체파누프시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한 뒤 주교가 된 그는 뛰어난 설교와 영성 지도로 많은 이를 하느님께 이끌었다. 그는 크라쿠프의 교구장으로 활동하면서 폴란드 국왕의 불의와 폭정을 꾸짖고 파문하였다. 이에 국왕은 그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우고, 1079년 4월 11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던 그를 성당에서 끌어내어 살해하였다. 1253년에 시성된 스타니슬라오 주교는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입당송

4에즈 2,35 참조
주님, 당신의 성인들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알렐루야.
<또는>
이 사람은 싸움의 날에 하느님을 버리지 않고,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켜, 승리의 월계관을 받았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복된 스타니슬라오 주교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박해자의 칼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저희도 죽기까지 믿음에 충실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와 9.17-18.19-20(◎ 7ㄱ)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또는
◎ 알렐루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20,29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알렐루야.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묵시 12,10-12ㄱ)와 복음(요한 17,11ㄷ-19)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순교자 스타니슬라오를 기리며
주님께 바치는 화해와 찬미의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가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2,24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알렐루야.
<또는>
시편 116(114─115),15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오늘 이 축제에서 천상 선물을 받고 기뻐하며 비오니
이 거룩한 잔치로 성자의 죽음을 전하는 저희가
거룩한 순교자들과 함께 성자의 부활과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대한민국에서는 22 대 국회의원선거가 있습니다. 지역구 254석과 비례대표 46석을 뽑는 선거입니다. 저도 재외국인 투표 등록을 하였고, 지난 3 31일에 투표를 하였습니다.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3가지라고 합니다. 첫 번째는 구도입니다. 여당은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지를 호소합니다. 야당은 민생과 경제, 국방과 외교의 현안들에 대해서 잘못된 것들이 있으니 견제와 심판을 할 수 있도록 지지를 호소합니다. 때로는 이 구도에 안보와 이념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른바 북한변수라고 합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으면 여당의 구도가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으면 정권을 심판하자는 야당의 구도가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두 번째는 정책입니다. 대통령은 민생토론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을 약속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정부는 민생토론이라고 하였고, 야당은 대통령의 선거개입이라고 하였습니다. 후보들은 지역의 현안들을 해결 할 수 있는 정책을 발표합니다. 현실성이 있고, 창의적인 정책을 가진 후보들이 선택을 받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인물입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공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참신한 인물을 후보로 내세웁니다. 시스템에 의해서 능력 있고, 인품이 있고, 헌신할 수 있는 후보를 공천하는 정당의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투표가 국가와 주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선출할 것입니다.

 

사제는 선출되는 직무가 아닙니다. 사제는 성사를 통해서 임명되는 직무입니다. 교회는 사제에게 3가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사명을 줍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사명과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제사직입니다. 사제는 성사를 통해서 악의 세력을 물리칩니다. 미사를 통해서 사제와 교우들은 예수님의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고백성사를 통해서 죄를 사함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충실하게 살게 됩니다. 교회의 전례와 성사에 충실한 이들은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병자를 고쳐주는 것은 봉사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겸손과 봉사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낮은 자세로 봉사에 충실한 사제와 교우들이 있는 성당은 친교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예언직입니다. 예언직은 앞날을 미리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직은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 모든 형제들과 같은 문헌을 통해서 시대의 징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는 것,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것,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찾는 것이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젖어있는 이 시대에 교회가 드러내는 예언직입니다.

 

오늘 성서말씀은 신앙인들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실의 삶에서 손해 볼 때도 있습니다. 박해와 시련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신앙인은 사람에게 순종하기 보다는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는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2024년 나해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요한 3,31-36

 

선과 악의 싸움에 중립은 없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책 ‘삼체’(Three-Body)의 앞부분 줄거리입니다. 이야기는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였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 중에 시작됩니다. 문화대혁명은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이 자본주의적 잔존 세력을 숙청하여 중국 공산주의를 수호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사회 정치적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수백만 명의 박해,

중국 교육 시스템의 혼란, 심각한 경제적, 문화적 피해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격변을 가져왔습니다.

 

이때 예 원지에(Ye Wenjie)는 천재 물리학 교수인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처형되는 것을 봅니다.

미국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입니다. 아버지를 신고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반동분자의 딸로서 수용소에서 지내던 그녀는 또한 마음을 주던 유일한 남자 과학자에게까지

배신당합니다. 최고의 과학자로서 우주에 신호를 보내는 일을 담당하게 된 원지에는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발전한 문명을 지닌 평화주의자 외계인으로부터 이상한 메시지를 수신하게 됩니다.

 

신호를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치가 발각되고 자신들의 문명이 그들을 파괴하러

갈 것인데, 자신들이 도착하면 문명의 차원이 다른 자신들의 종족이 지구를 식민지로

만들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세상에 환멸은 느끼던 예 원지예는 잘됐다 싶어 그들에게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태양이 세 개인

행성에 사는 그들이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세 태양이 합쳐질 때 문명이 파괴되고 마는데

태양이 하나뿐인 지구는 그들이 원하는 가장 완전한 행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구까지 오는 데는 400년이 걸립니다. 그동안 지구가 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 원지에와 그녀를 추종하는 세력을 규합하여 지구의 문명이

더는 발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작전을 수행합니다. 지구는 그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과학

혼돈의 늪에 빠지게 되고 매우 발전이 매우 느려지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외계인들이 도착하게 될 무렵 그들을 무력화시킬 인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평화를 위해 지구인들이 냉동인간으로 그때 깨어나게 만든 루오 지(Luo Ji)입니다.

루오 지는 트리솔라리안들이 자기들을 공격하면 그들의 좌표를 온 우주에 다시 날려 보낼 것이고

그러면 그들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들이 와서 또 그들을 몰살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으로 트리솔라리안들과 거래하고 그들을 물러나게 합니다. 

 

‘삼체’는 SF 소설이지만, 사실 우리 삶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누군가를 위해 일합니다.

원지에는 자신도 지구인이지만, 지구인들에 대한 환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파괴해 줄 대상을 찾고 그들의 뜻에 순종하여 그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지구인들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지연시킵니다. 

 

반면 루오 지는 지구인들 편에 서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저지시킬 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기술로는 도저히 되지 않기에 깨달음을 통해 이 일을 이뤄냅니다. 정글 숲속에 병아리 한 마리가

있지만,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누군가 자기를 잡아먹게 되면 다른 누군가가 또 그놈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게 만들면 된다는 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구원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치 원지에와 같은 일당인데,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면 안 되게 하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들어주는 이들의 뜻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들이 은혜를 받는 이들에게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한량없는 은혜인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적들은 또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들을 고마워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들의 말을 하고

그들의 뜻을 따라줍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고 있고 은총과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 은혜를 주는

이의 말을 하고 뜻을 따라줍니다. 그런데 그 은혜는 빛과 어둠, 두 곳에서 옵니다.

지구를 침공하러 오는 이들이 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또 지구를 지키려는 이들에게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중립일까요?

 

그 사람은 지구 파멸의 문제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외계인과 그 일당의

편입니다. 어머니를 거부하면 중립일까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거부하면 그냥 악에 머물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은총을 원하느냐에 따라 내가 따라주는 뜻이 결정됩니다.

은총과 뜻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하여 말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요한 3,36)

왜 그럴까? 

왜 그분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졌다고 누구나 내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시는 것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곧 그분의 신원과 그분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신원을 “위에서 오시는 분”, “하늘에서 오신 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반복해서 증언합니다.

곧 아드님(예수님)은 위에서 오신, 보내진 사랑입니다.

 

여기서 ‘위’ 혹은 ‘하늘’이란 단순히 하늘과 땅, 위와 아래라는 상대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이’와 ‘오신 분’이라는 차이, 곧 본질적으로 다른 절대적인 차이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태어난 이'가 아닌, 우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오신 분', 곧 태어나지 않은 영원한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분, 곧 우리를 넘어서 계시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분을 받아들이는 데는 이해를 넘어선 믿음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믿음'은 단지 자신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이는 내면적인 응답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그분께 바치는 ‘행위’를 동반합니다.

곧 응답을 통하여 자신을 건네 드리는 실천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믿음은 두 가지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게르하르트 로핑크의 “믿음의 재발견”).

곧 정해진 내용을 믿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차원인 ‘하느님께 성실함’을 뜻합니다.

‘성실함’(믿음이나 성실함은 다 같이 히브리어 '에무나'를 쓴다)은 '하느님께 자신을 고정하다.', '하느님을 붙들고 놓지 않다.'라는 뜻으로, 구체적인 의미로 ‘순전한 헌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믿음’은 하느님께 성실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성실하심에 자신을 고정하는 일이요, 자기 자신에게서 하느님의 것으로 온전히 돌아서는 철저한 헌신을 토대로 하는 방향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credo)이라는 단어 역시, 자신의 심장, 생명, 곧 자기 자신을 건너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cro;심장, 생명’+dare;주다). 

그러기에 '믿음'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인격적인 결속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가 믿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 한가운데서 행동하시며,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서 행동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실제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에게서는 이미 신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되는 일입니다.

곧 ‘오신 분’이 이미 ‘와 계신 분’이 되고, ‘이미’ 신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되고, 영원한 생명이 곧 현재가 되고, 현세에서 ‘이미’ 하늘나라의 생명을 살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필리 3,20)이 됩니다.

땅에서 부활의 기쁨을 사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요한 3,31)

 

주님!

항상 당신을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 머리 위에 올라 당신을 조정하지 않게 하소서.

제 이성 위에 지혜로 계시고, 제 판단 위에 자비로 계시소서.

오늘도 당신에 신비, 그 놀라움 우러러 주님이신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4.10.부활 제2주간 수요일                                                             사도5,17-33 요한3,16-36

                                                         구원은 선물이자 선택이다

                                                    -주님을 선택하라, 주님을 사랑하라-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오늘 옛 어른 다산 정약용의 어록부터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현자들이 이렇게 통찰했다. ‘가장 오래 간직된 부는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내놓은 기부였다.”

“재산을 숨겨두는 방법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여유당전서.

 

어제 열심한 개신교 신자이면서 가톨릭교회로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주 피정오는 자매가

제 강론을 선물받고 보낸 짧은 답신의 말마디입니다.

 

“아멘. 메멘토 모리, 코람데오, 카르페 디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 ‘지금을 살라’는 말은 알겠는데 코람데오는

생전 처음보든 라틴어 말마디였습니다.

검색해보니 개신교에서는 잘 쓰이는 유명한 말마디가 코람데오(Coram Deo), ‘하느님 앞에서’였습니다.

이 좋은 말마디를 몰랐다니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늘 하느님 앞에서 품위있고 고결한 삶이라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겠는지요! 

 

여기에 한말마디를 더해야 완벽하겠습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즉 운명애입니다.

엊그제 강론을 쓴후 저절로 나온 고백에 만족했습니다.

 

“주님은 내 운명이자 사랑이듯 강론 역시 내 운명이자 사랑이다.”

그렇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 예수님은 내 운명이자 사랑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주님께 대한 사랑은 아모르 파티, 운명애요, 꼭 기억해야 할 말마디는 다음 순서의 넷이 되겠습니다.

 

“코람데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오늘 강론 제목은 “구원은 선물이자 선택이다-주님을 선택하라, 주님을 사랑하라-”입니다.

마침 카톡을 열어보니 어제 어느 신부님께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신이었습니다.

 

“절망은 없다, 힘내세요! 사랑하는 신부님!”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운명이자 사랑인 봄날같은 내 인생입니다.

새벽 집무실에 들어 옛 자작 시집을 펼치는 순간 23년전 “선물”이란 시에 반갑고 기뻤습니다.

언젠가 한 번 인용했지만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꽃처럼 환한 웃음보다 더 좋은 선물 있을까

 삶은 선물이다

 꽃같은 삶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순식간 사라져가는 꽃들

 바로 선물 인생 아니던가

 얼마나 그 많고 좋은 선물들 놓쳐 버리고 살았는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대로 꽃인 인생인 거다

 

 어제의 꽃폈다 지면 오늘의 꽃폈다 지고...

 평생을 그렇게 날마다 죽을 때까지

 파스카의 꽃으로 사는 거다

 

 끊임없이 폈다 지면서 떠나는 삶이다

 잘 떠날 때 아름답지 않은가

 길이길이 향기로 남는다

 

 그리스도의 향기, 존재의 향기, 사랑의 향기, 겸손의 향기”-2001.4.23.

 

온갖 만개한 파스카의 봄꽃들 선물로 가득한 축제같은 부활시기 4월입니다.

또 오늘 4월10일은 나라의 명운(命運)이 달린 총선거날입니다.

 

잘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바라고 할 수 있는 무혈 혁명은 선거혁명 하나뿐입니다.

분별의 요령은 당이든 사람이든 그가 살아온 과거 역사를 면밀히 잘 들여다 보면 답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어느 당이, 어느 인물이 진정 나라를, 국민을 사랑하고, 정의롭고 지혜롭게 활약하며, 

섬기는 마음으로 민생을 챙겨 왔는지 잘 들여다 본후 선택하는 것입니다.

축제와 같은 선거 결과가 나오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온통 주님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선물중의 선물, 최고의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이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이 그대로 증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새삼 구원의 믿음도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구원도 심판의 멸망도 선택입니다.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선택 여부에 따라 자초하는 심판입니다.

심판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였다.” 

 

무지의 악을, 무지의 어둠을 사랑하여 선택하는 무지에 눈먼 사람들이 문제인 겁니다.

그리하여 악을 선택하여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반면 진리를 사랑하여 선택,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삶은 구원의 선물이자 선택입니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어둠이 아닌 빛을, 거짓이 아닌 진리를, 불행이 아닌 행복을, 절망이 아닌 희망을,

전쟁이 아닌 평화를, 미움이 아닌 사랑을, 허무가 아닌 충만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여 파스카의 예수님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구원의 답은 파스카의 예수님 선택 하나뿐입니다.

 

삶은 빛과 어둠의,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요 이것이 영적전쟁의 요체입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을, 거짓이 진리를 이길수는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 내용이 이를 입증합니다.

어둠의 세력을 대변하는 대사제와 모든 동조자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 그리고 빛의 세력을 대변하는

사도들과의 대결이요, 사도들을 인도하는 자는 주님의 천사입니다. 

 

사도들이야말로 빛이신 주님을 사랑하여 선택한 분들이 아닙니까?

세상 그 누구, 그 무엇도 진리이자 빛이신 주님을 이길 수도, 가둘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도들의 승리는 불문가지(不問可知)요, 다음 사도들의 승리를 예견하는,

또 승리의 결과를 알리는 말마디입니다.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사도들을 직접 진두지휘(陣頭指揮)하는 주님의 천사입니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하는 소식이 흡사 사도들의 승전보(勝戰譜)처럼 들립니다.

구원은 선물이자 선택입니다.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마다 주님을 선택하고 사랑함으로 영적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아멘,


4월11일(목) <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되새김 구절

 

1. 우리는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요한 3,31)

 

주님!

항상 당신을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 머리 위에 올라 당신을 조정하지 않게 하소서.

제 이성 위에 지혜로 계시고, 제 판단 위에 자비로 계시소서.

오늘도 당신에 신비, 그 놀라움 우러러 주님이신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코람데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하느님 앞에서, 죽음을 기억하라, 지금을 살라, 운명을 사랑하라.

(이수철 신부)

 

4월11일(목) <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474(104)일 기도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코람데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하느님 앞에서, 죽음을 기억하고, 지금을 살며, 운명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2024년 4월11일(목) 5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