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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4월 8일 월요일[(백)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4월 8일 월요일[(백)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말 그대로 주님의 탄생 예고를 기념하는 날이다.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고 하였는데, ‘영보’(領報)는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셨다는 소식을 천사에게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본디 이 대축일은 '3월 25일’로 예수님께서도 여느 사람처럼 성모님의 태중에 아홉 달을 계셨다고 믿어 주님 성탄 대축일에서 아홉 달올 거슬러 계산한 것이다. 올해는 "이 대축일이 성주간에 오면 부활 제2주일 다음 월요일로 옮겨 지낸다.”라는 『로마 미사 경본』의 지침에 따라 오늘 지낸다.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나자렛의 마리아는 하느님의 총애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을 천사에게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종 마리아를 본받아,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응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입당송

히브 10,5.7 참조
주님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하셨다. 보소서,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나이다.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동정 마리아의 모태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구세주의 신비를 찬양하고
그분의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7,10-14; 8,10ㄷ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8,10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0(39),7-8ㄱㄴ.8ㄷ-9.10.11(◎ 8ㄴ과 9ㄱ 참조)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또는◎ 알렐루야.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 당신 정의를 제 마음속에 감추어 두지 않고, 당신 진리와 구원을 이야기하며, 자애와 진실을 큰 모임에서 숨기지 않나이다. ◎

제2독서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4-10
형제 여러분,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 1,14
◎ 알렐루야.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네.
◎ 알렐루야.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가 성자의 강생으로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깨닫고
이 축제로 그 신비를 경축하며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2 : 강생의 신비(3월 25일)>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들 가운데
성령의 힘에 감싸여 탄생하시리라는 천사의 알림을
동정 마리아께서는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고
새로운 인류의 맏이이신 외아드님을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당신의 흠 없는 태중에 모셔 들이셨나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고
모든 민족들이 기다려 온 구세주가 신비롭게 세상에 드러났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이사 7,14 참조
보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응답합니다. 믿음에 찬 순명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십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참된 믿음의 성사로 저희를 굳건하게 하셨으니
동정녀에게서 사람이 되신 참하느님을 알아 뵙고
그분 부활의 힘으로 영원한 기쁨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주님 탄생 예고.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원래는 3 25일입니다. 그런데 왜 부활 제2주간 월요일로 옮겨서 축일을 지내게 되었을까요? 교회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 성주간과 겹치면 부활 제2주간 월요일로 옮겨서 지낸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성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루어지는 교회 전례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인 성찰에 따른 교회의 결정입니다. 저는 신학적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역사에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축일입니다. 마리아의 순명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구원도 마리아라는 처녀의 자유의지와 결단을 통해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꺼이 아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거룩하게 지내는 성주간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당 교우들과 함께 메주고리, 파티마, 루르드로 이어지는 성모님 발현 성지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의 발현 성지순례를 하는 중에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성모님에게 특별한 공경과 사랑을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교회는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으로 공경합니다. 성모님은 인간 예수의 어머니이면서 삼위일체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성모님에 대한 지극한 공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어머니에게 요한 사도를 아들로 부탁했습니다.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지기에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을 복되신 동정녀로 공경합니다. 성모님의 잉태는 성령으로 인한 잉태였기에 성모님은 동정녀라고 교회의 전승은 이야기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성모님의 몸에서 임마누엘 주님이 태어나셨습니다. 하와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왔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순종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고, 예수님께서는 죄, 죽음,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동정녀는 생물학적인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독신으로 사는 것은 동정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동정을 지키는 사람을 동정녀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정결하게 사는 이들이 동정녀입니다.

 

성모님은 강한 어머니이며 신앙의 여성입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성모님은 예수님 십자가를 함께 지셨습니다. 십자가에 내려진 예수님을 무덤에 묻기 전에 성모님은 가슴에 묻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성모님은 힘들 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두려울 때는 용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고, 성모님은 친척인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당찬 여인들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구세주의 어머니를 알아보았고, 태중의 아이까지 축복하였습니다. 성모님은 구름 속에 있는 고귀한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천상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는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동정녀이기 전에, 천주의 모친이기 전에 성모님은 강한 어머니였고, 신앙의 여성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내면서 마리아의 노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

복음: 루카 1,26-38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늘 새롭게 태어나셔야 합니다!

 

원래 3월 25일에 경축하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 올해는 훨씬 뒤로 밀렸습니다.

이유는 올해 이 대축일이 성주간과 겹칠 경우 부활 제2주일 다음 월요일로 옮겨 지낸다는

로마 미사 경본 지침에 따른 것입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맞아 중세 신비가 마이스터 엑가르트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마리아에게서처럼 우리 각자 안에서도 아기 예수의 잉태와 탄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를 낳지 못한다면 마리아가 그때 거기에서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늘 새롭게 태어나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여기 이 자리에서 매일 아기 예수의 탄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우리는 버리고 떠나있기 연습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철저하게도 빈 그릇으로 존재할 때 그 빈 그릇에 겸손하신 아기 예수님께서 잉태되실 것이고

탄생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 속에서 ‘하느님의 탄생’을 이루어 낼 때, 비로소 한 인간은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이런 큰 기쁨과 영광을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우리 마음의 밭갈이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탄생하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잉태하는 일은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도전하는 어려운 일이 분명합니다.

그 옛날 나자렛의 마리아가 그랬듯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다가오는 천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마리아가 그랬듯이 안락한 삶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마리아가 그랬듯이 본능과 이기심, 자기중심적 삶을

철저하게도 배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안개 자욱한 낯선 길을 떠나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과 멸시를 꿋꿋이 견뎌내겠다는

각오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잉태하고 낳아 기르겠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과제이자 세례를 통해 받은 책무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기뻐하시오.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기쁨에 찬 인사말을 전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오늘 복음은 가브리엘 천사와의 세 번의 대화를 통해 마리아께서 어떻게 자신의 신원과 소명을 알아듣고 응답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첫째 대화는 천사의 인사말에 대한 마리아의 당황, 곧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입니다(루카 1,29). 

둘째 대화는 천사의 아기 잉태 예고와 그 아기의 신원과 소명에 대한 마리아의 물음, 곧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라는 물음입니다. 

셋째 대화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 곧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응답입니다. 

이 대화를 통하여, 마리아의 깨달음 역시 세 가지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 이 일을 하시고자 하는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곧 성령이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고 거룩한 하느님의 아들이 탄생하는 이 일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 하시는 일'임을 깨달음입니다. 

둘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신의 신원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곧 '주님의 여종'임을 깨달음입니다. 

셋째는 자신의 소명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아기 잉태’를 원하신다는 것이며, 바로 이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명에 마리아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였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분의 사랑을 허용하는 일, 곧 그분께서 당신의 사랑을 내 안에서 이루시도록 나 자신을 그분께 허용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수락하고, 그분의 사랑을 수락하고, 그분의 사명을 수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름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예'(fiat)라는 동의, 곧 받아들임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은총이 나에게 파고들도록 자신을 그분께 승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곧 당신께서 원하신 바를 내 안에서 하시도록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승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답송처럼 “주님, 당신 뜻을 따르려 이 몸이 대령했나이다.”(시편 39,8)라고 말하는 것이요, 제2독서에서처럼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 10,9)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께 결혼의 단란함과 미래뿐만이 아니라, 율법의 위반자로서 목숨까지도 내어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일이었습니다. 

나아가서 그것을 희망하고 바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그분만이 자신의 전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름하여, 말씀에 대한 '믿음'의 봉헌이었습니다.

그분의 희망 안에 일치를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마리아의 소명은 구세주의 구원 은총을 입은 우리 모두의 소명이요, 교회의 소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이요, 그 사랑을 믿고 따르는 일이요, 먼저 받은 바로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상 필요한 한 가지는 임이 나를 사랑하도록 허용하는 일, 임의 사랑에 나를 승복하는 일, 임이 온전히 나를 사랑하도록 나를 온전히 내어주는 일, 사랑에 앞서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 하여, 받아들인 그 사랑으로 사랑하기, 임으로 임을 사랑하기입니다. 

 

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내 안에 사랑이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주는 이가 있다는 이 사실이 그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우리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 강론

 

2024.4.7.부활 제2주일(하느님 자비의 주일)

                                                                                                사도4,32-35 1요한5,1-6 요한20,19-31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깨어나라, 감사하라, 찬미하라-

                                                             자비하신 주님을!

 

지금 4월 부활축제가 계속 펼쳐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토는 어디나 파스카의 봄꽃들 만개한

하늘나라 지상천국입니다.

그러나 국민현실은 어려움의 절정입니다.

 

새삼 이번 4.10일 총선이 나라의 명운(命運)이 달린 얼마나 절박한 선거인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어느 젊은 정치인이 선거유세시 목이 터져라 외친 말마디가 마음 깊이 와 닿습니다.

 

“이대로 둬서는 대한민국 다 죽는다!”

"우리나라 진짜 큰일났다!"

 

살아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서 아름답게 잘 살라고 부활축제가 계속되고 있는 오늘 부활 제2주일은 하느님 자비의 주일입니다.

 

모두가 하느님 자비를 닮아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 천국을 살라고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하느님 자비의 주일입니다.

자비와 지혜는 함께 갑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자비로운 마음, 지혜로운 정신으로 난국의 현실을 잘 타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을 지내던 2000년 4월30일 부활 제2주일 사백주일에,

하느님 자비를 선포하는 임무를 위임받았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를 성인품에 올렸고

전 세계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의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자비의 사도라 일컫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성지에서의 1997년 6월중 강론은

지금 들어도 공감이 갑니다.

 

“역사상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지금같이 위태로운 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인간 양심이 심하게 세속화될수록, 자비라는 말의 의미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될수록,

하느님에게서 떠나 자비의 신비에 거리를 두면 둘수록, 교회는 큰 소리로 자비의 하느님께 호소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와 인류의 걱정을 자비로우신 그리스도께 의탁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어느때보다 하느님 자비의 체험과 삶이 절박한 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자비를 배우고 공부하여 우리 모두 자비의 사람이 되어야 할 작금의 시대입니다.

방금 흥겹게 부른 “가,나,다”해가 동일한 화답송 후렴이 우리 모두 자비의 사람이 되어 살도록 고무합니다.

오늘 하루뿐 아니라 평생 화살기도 노래로 끊임없이 바쳐도 참 좋은 시편구절입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118,1)

 

어제 일간신문에서 읽은 어느 번역가의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완벽한 번역은 없다, 다만 아름다움을 옮길 뿐이다.”, 저는 번역대신 삶과 강론을 넣어 읽어도

그대로 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완벽한 삶은, 완벽한 강론은 없다, 다만 아름다움을 옮길 뿐이다.”

어떻게?

사랑입니다. 

 

하느님 자비는, 사랑은 어김없이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파스카의 봄철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하느님 자비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자애가 온땅에 가득하네” 얼마전 시편 화답송도 생각납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196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대중가요도 생각납니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아무리 못생긴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사랑을 하면은 꽃이 펴요, 사랑을 하면은 꽃이펴요.

 아무리 못생긴 호박꽃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꽃이 펴요.”

 

사랑을 하면은 꽃이 피고 예뻐지고 아름다워짐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웃어보셔요. 얼굴인지 꽃인지 구별하기 힘듭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갈수록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2007년, 17년전 파스카의 봄철 이맘때쯤 썼던 “아름다운 사람들이여!”라는 시를 나눕니다.

 

“동안거(冬安居)를 끝낸 겨울 나목들 

 잎눈들, 꽃눈들 임사랑에 활짝 열려 피어나니

 오, 찬란한 태양, 

 광활한 창공(蒼空), 

 모두들 깨달은 꽃나무 각자(覺者)가 되네!

 내 존재의 미소(微小)함, 공허(空虛)함

 깨달음으로부터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찬미와 감사

 웃음같기도, 눈물같기도 한

 꽃같은 깨달음이여, 새롭게 열리는 세상이여,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아름다운 삶은 우리의 의무이요 책임이요 권리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 사랑할 때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입니다.

바로 자비하신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을 잘 키우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첫째,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중심의 일치의 공동체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공동체입니다. 참으로 이상적 교회 공동체의 모델이요 2000년 동안

공동체 운동에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이상적 유토피아 공동체로 공산주의도 여기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가장 근접한 공동체가 자발적 사랑의 공산주의 공동체인 수도공동체이고

그 빛나는 모델이 지금 여기 성 요셉 수도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사도행전의 참 아름다운 사랑의 교회공동체입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바로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공동체를 키워주고 보존해 줍니다.

공동체 성립의 핵심 요소를 알려줍니다. 한마음 한뜻, 공동소유, 공동체의 중심인 부활하신 주님,

사랑과 정의가 실현된, 빈부의 격차가 사라진 공평과 평등이 실현된 하늘 나라 교회공동체입니다.

 

둘째,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우선적 선물이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臨在)와 더불어 두려움의 벽은 평화의 활짝 열린 문이 됩니다.

참으로 교회공동체, 수도공동체의 평화는 이 주님의 평화에 기반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 말마디에 ‘항상’을 덧붙여 “평화가 항상 너희와 함께!”말하고 싶습니다.

무려 오늘 복음에 세 차례나 나오는 주님의 참 좋은 말마디입니다.

제자들은 평화의 주님을 뵙고 몹시 기뻐했다니, 평화와 함께 주어지는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주시는 평화와 기쁨의 선물입니다.

 

주목할 바, 이 모든 선물은 공동체가 함께 할 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회의론자, 이성주의자, 토마와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의 전광석화 반응의 고백이 우리에게는 참 좋은 배움이 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주님이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이라니 얼마나 멋지고 놀라운 고백인지요!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부끄럽게 하면서 분발케 하고 우리의 믿음을 고무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오늘 마지막 복음 말씀이 믿음과 생명이 얼마나 깊이 결속되어 있는지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참 엄중한 진리가 믿음과 함께 가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우리가 믿고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

최상의 축복입니다.

제2독서 요한 사도의 믿음에 대한 말씀도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셋째,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성령입니다.

주님 선물중의 선물이 참 좋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은 사랑이자 진리입니다.

그러니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성령뿐입니다. 성령없는 인간은 반쪽의 인간일뿐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구원의 문입니다.

성령께 마음을 열면 누구에게나 선사되는 성령의 선물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느님께서 창세기에서 사람을 창조하실때 진흙으로 만든 몸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살아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듯 우리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우리를 살리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성령의 은총으로 가능한 용서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으로부터 평화의 선물과 더불어 용서의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자비의 사도, 평화의 사도, 성령의 사도, 용서의 사도로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자비의 사도로 살라고 수도원 형제들의 숙소 명칭도 “자비의 집”이며, 피정오신 분들은 평화의 사도로 살라고

피정집 명칭은 “평화의 집”입니다. 

 

혼자 독점하라 주신 선물이 아니라 서로 나누라 주신 선물입니다.

자비도 평화도 성령도 용서도 나눠야 서로 삽니다.

자비하신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그러니 사랑의 나눔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에 대한 응답은, 자비하신 주님을 닮는 길은 감사와 찬미, 겸손과 온유,

사랑과 나눔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모두 세상을 이깁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부활하신 주님 중심의

참 좋은 하늘 나라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주시며, 날로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아가는

“하닮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4월8일(월) <부활 제2주간 월요일,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 되새김 구절

 

1.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내면서 마리아의 노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잉태하는 일은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도전하는 어려운 일이 분명합니다.

그 옛날 나자렛의 마리아가 그랬듯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다가오는 천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으로부터 평화의 선물과 더불어 용서의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자비의 사도, 평화의 사도, 성령의 사도, 용서의 사도로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이수철 신부)

 

4월8일(월) <부활 제2주간 월요일,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 471(101)일 기도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2024년 4월8일(월) 6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