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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5월 2일 목요일[(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5월 2일 목요일[(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295년 무렵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타나시오 성인은 알렉산데르 대주교를 수행하여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328년 알렉산데르 대주교의 후계자가 된 뒤, 아리우스파에 맞서 싸우다가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정통 신앙을 해설하고 옹호하는 책을 많이 남겼으며, 수도 생활의 창시자인 안토니오 성인의 전기를 써서 서방 교회에 수도 생활을 알리기도 하였다.

입당송

집회 15,5 참조
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알렐루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아타나시오 주교를 보내시어
성자의 신성을 힘껏 변호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가르침과 보호로 기뻐하며
하느님을 더욱 깊이 깨닫고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5,7-21
그 무렵 7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6(95),1-2ㄱ.2ㄴ-3.10(◎ 3 참조)
◎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을 전하여라.
또는
◎ 알렐루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
○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9-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5,1-5)와 복음(마태 10,22-25ㄱ)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아타나시오를 기리며 봉헌하는 제물을 굽어보시어
저희가 그를 본받아 온전한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의 진리를 증언하여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4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진 세상>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제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타락하였던 만물이 새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생명이 온전히 회복되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또는>
성인 감사송 1 <성인들의 영광>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저희는 이 위대한 증인에게서 힘을 얻고,
악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갈 길을 끝까지 달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1코린 3,11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아타나시오와 함께 성자를 참하느님으로 굳게 믿어 고백하오니
저희가 이 성사로 힘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아타나시오 주교학자 기념일

 

성지순례에서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던 곳엘 다녀왔습니다. 두 곳은 교회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공적으로 인정한 곳이고, 다른 두 곳은 아직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곳입니다. 루르드와 파티마는 교회에서 인정했기에 보편교회의 전례력에도 축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루르드의 성모님 발현 기념일은 2월 11일입니다. 교회는 이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기념하기도 합니다. 루르드의 성모님은 자신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 기념일은 5월 13일입니다. 파티마의 성모님은 3가지 비밀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의 피격이라고 합니다. 파티마의 성모님은 자신을 ‘묵주기도의 마리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1981년에 시작되었던 메주고리예의 성모님 발현은 교회에서 공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신자들이 순례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이렇게 발표하였습니다. “메주고리예 순례에 대해서는, 그것이 개인적으로 하는 순례라면, 현재 교회의 조사가 진행 중이고,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중인 사건으로,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본 성은 순례가 허락된 것임을 지적합니다.” 1961년에 시작되었던 가라반달의 성모님 발현도 교회에서 공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신자들이 순례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성모님 발현의 공통적인 메시지는 ‘회개, 성경읽기, 묵주기도, 미사참례, 고백성사’와 같은 것입니다. 성모님 발현에 대한 공적인 인정은 보편교회의 권한입니다.

 

오늘은 성 아타나시우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아타나시우스 주교님은 아리우스 이단으로부터 교회의 신앙을 지켜낸 분입니다. 아리우스 이단은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로부터 발달하였는데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교회의 믿음에 반기를 들고 예수님의 신성을 적극 부인함으로써 반삼위일체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교회는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아리우스의 주장을 단죄합니다. 또 니케아 신경을 발표하여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완전한 신이라는 삼위일체설을 당당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전통 교리를 따르는 교회보다 더 많은 교세를 유지기도 했던 아리우스파의 제자들에 의해 아리아니즘은 북부 게르만 민족에게 전파되었고 게르만족의 로마 진입과 더불어 로마 제국 전역에 퍼져나갔습니다. 7세기에 이르러서야 교회는 아리아니즘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는데 이때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던 분이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아타나시우스 주교 학자입니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을 단죄하고 파면하기로 결행한 니케아 공의회의 가르침을 지키려 혼신의 힘을 바쳤고 가톨릭교회의 정통 가르침을 지켜내셨던 분으로 교회사에 기억되고 있습니다. 

 

성 아타나시우스 주교 학자의 기념일을 지내면서 어떠한 혼란과 암담한 상황 속에도 하느님께 충실하고 정통 가르침을 수호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는 항상 영원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환경과 사상 속에서 정통 가르침을 흔들려고 하는 많은 이단 사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오직 정통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킬 때, 혼란스러운 사상과 이단적인 가르침이 정화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식별은 공의회나 조사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인으로서 개인의 식별도 필요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 23항 ‘원리와 기초’에서 개인의 식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믿고 알아, 구원받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사용할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버릴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단명함을 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삶의 기준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식별의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요한 15,9-11

 

꼭 기억하십시오! 나는 존재 자체로 주님께 기쁨이랍니다!

 

피정 센터 내에 휑한 공간이 있어, 어쩔까 고민하다가 예쁜 꽃나무 묘목을 몇 그루 사다가 심었습니다.

묘목을 구하기 위해 꽤 발품을 팔았습니다.

이리저리 시장을 다니던 중 제 눈길을 확 끄는 친구들이어서 제가 직접 선택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제가 직접 자리도 고르고 구덩이도 파고 식재를 했습니다.

거름도 넉넉히 주고 매일 물을 주고 있습니다.

피정 센터 내에 수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제가 직접 선택하고 심은 나무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건네고 있습니다.

 

며칠전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심은지 불과 한달 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 묘목이었는데, 봄비가 흠뻑 내리고 난 다음날 아침 지나가면서 보니,

세상에 그 여린 줄기에 벌써 초록빛 이파리들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여리디 여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오가시는 피정객들에게 늘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 예쁜 묘목 보이죠?

제가 사 와서 제가 심은 나무랍니다. 정말 예쁘죠?

 

아마도 우리를 손수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신 우리의 주님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마도 그분 눈에 우리 각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존재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 각자일 것입니다.

 

이런 우리 주님의 마음이 오늘 요한 복음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보십시오. 우리 주님의 기쁨이 우리 각자 안에 있답니다.

보잘것없는 죄인인 우리,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한심한 우리 각자이지만,

주님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쁨이랍니다.

 

세파에 지쳐 쓰러질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배신당할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나를 배신해도 주님만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것을.

오늘 내 삶이 아무리 비참하고 부끄럽다 해도 나란 존재 자체가 주님께 기쁨이라는 진리를.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요한 15,9)

이는 우리가 이미 사랑을 받았다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기원이 아버지께 있다는 선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 ‘이미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버지께로부터 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결코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호의와 자애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곧 선사된 사랑이 베풀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선사받은 존재임을 깨닫는 일, 모든 것이 베풀어진 사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이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오늘 우리를 경탄과 탄성, 경배와 예배, 음미와 감사, 찬미와 찬양의 삶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자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찬미 찬양의 삶을 사셨듯이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사랑 안에 머무르기를 초대하십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

여기에는 ‘먼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이 전제됩니다. 

곧 선사되는 당신의 사랑을 ‘먼저’ 받아들여 그 안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랑이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먼저’ 자신을 허용하고 승복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랑이 아니라, 선사받은 바로 그 사랑 안에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 안에 머무는 방법도 함께 가르쳐주십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요한 15,10)

이미 당신께 선사받은 그 사랑을 지키는 것이 곧 당신 사랑 안에 머무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그 어떤 사랑이 아니라, 선사받은 그 사랑을 간직하고 준수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사랑은 말이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하기를 실행할 때 그 실행 안에 머문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 ‘새 계명’으로 선포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

그리고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게 되면 당신의 기쁨이 우리 안에 들고 우리 또한 기쁨으로 차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그 기쁨은 뒤에서 요한이 말한 대로, “그 누구에게도 빼앗겨지지 않는 기쁨”(요한 16,22)입니다.
그러기에 그 기쁨은 예수님께로부터 선사받은 신적인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은 결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사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만족, 나의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의 실현으로부터 오는 까닭입니다. 


오늘 하루 그 기쁨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숨결이 흐릅니다.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사랑입니다.
제 안에 굴을 파고들어 와 빈 무덤으로 모습을 숨긴 그지없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결코 빼앗길 수도, 빼앗겨지지도 않는 기쁨입니다.
주님!
당신의 기쁨의 숨결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1.부활 제5주간 수요일                                                                      사도15,1-6 요한15,1-8

 

                                                        관상기도의 훈련과 생활화

                                                             “내 안에 머물러라”

 

어제 4월의 끝은 오늘 5월 1일, 성모성월의 시작입니다.

신록으로 빛나는 파스카 축제가 계속되는 5월입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11월 배밭 농사가 끝나면서 시작된 전지와 거름 구덩이를 보면서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1998년 26년전 당시는 거름을 구덩이에 넣었으며 그때 이를 보며 써놨던 시입니다. 

 

“살수록 힘들구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 산다

다시 시작된 배농사

가지런히 파진 구덩이

든든하다

끝은 시작이다

삶은 엄숙하다

삶은 반복이다

새로운 반복, 거룩한 반복이다

묵묵히 생명의 품되어

흙으로 산다.”-1998.11.1

 

흙처럼 겸손히 살라고 사람입니다.

사람(homo)과 겸손(humilitas)의 어원이 흙(humas)에서 기원합니다.

하루하루 산다는 생각은 이미 수도원 초창기부터 였습니다.

이때는 잘살고 못살고가 아닌, 하루하루의 생존(生存)이,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더불어 제가 늘 되뇌이는 지론도 생각납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의 자포자기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다.

넘어지면 곧장 다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끝이 새로운 시작이듯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파스카의 삶이다.”

 

바로 파스카의 축제시기이자 신록의 계절 성모성월인 5월의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5월 교황님의 기도지향은 “남녀 수도자의 양성에 대해서”인데 수도자뿐 아니라 평생, 하느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 교회의 사람, 신자가 되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싶어 일부 나눕니다.

 

“양성은 특별한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생 지적으로, 인간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계속 통합시켜 가는 과정이다.

준비는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통해 계속된다.

공동체내에서의 삶은 비록 때로 힘들지라도, 매우 풍요롭다.

더불어 삶은 공동체내에서의 삶과 똑같은 것은 아니다. 획일성의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의 일치이다.

성소의 여정중에 끊임없이 성장하도록 기도하자.”

 

비단 성직자,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자기 성소의 여정에, 참 신자가, 참 사람이 되는 가는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해야 함을 배웁니다.

평생 성소의 여정, 교육의 여정, 양성의 여정에 매일미사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더불어 성소의 여정에 오늘 복음은 참 적절한 도움이 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무수한 가지들이 하나로 붙어있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이 상징하는바 교회의 한몸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참 포도나무 공동체입니다.

흡사 배밭 전지가 연상됩니다.

공동체이든 개인이든 주님과 함께 끊임없이 내외적 ‘삶의 가지치기(전지;剪枝)’를 통해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고 삶을 단순화해야 함을 배웁니다.

중심을 잃고 무질서한 삶중에 내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저는 제가 오랫동안 해왔고 때로 지도해왔던 명상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는, 더 구체적으로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집중적 관상의 훈련이 바로 명상기도요

명상기도의 습관화가 우리를 내외적으로 단순하고 순수하게 해주고 주님과의 일치, 공동체와의 일치,

나와의 일치를 견고히 해준다는 것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사랑에 관한 말씀도 공감이 갑니다.

 

“사랑은 참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근본이자 길이다.”<다산>

“사랑은 곧 사람이다. 사람과 사랑이 합해지면 그것이 바로 도(道)다.”<맹자>

 

참으로 주님 사랑안에 머무르는 관상기도와 더불어 위로와 치유, 정화(淨化)와 성화(聖化), 일치와 성장이요,

주님과 상호내주(相互內住)의 일치와 더불어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힐링에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관상 수행을, 미사전례를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이 주님 안에 머무름은 그대로 기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주님 사랑안에 깨어 머무르는 관상기도중 강조하는 것이 하느님 말씀인 성구를 호흡에 맞춰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많이 강조하는 성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비송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네 단락의 성구를 호흡에 맞춰

소원을 담아 기도로 바친다면 그 사랑의 기도는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관상기도의 집중적 훈련과 습관화가 요즘 물질주의, 활동주의에 빠져,

삶의 중심을 잃고, 자기를 잃고 뿌리없이 표류하는 불행한 현대인의 치유에 참으로 필요한 기도임을 깨닫습니다.

 

참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이니 희망이자 길이요, 생명이자 진리요, 빛이신 주님을 잊었기,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혼이 “살기위해” 이런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관상기도는 절박할 수 뿐이 없습니다. 

 

넓이보다도 깊이를, 채우기 보다는 비움을, 모으기 보다는 버림을, 행함의 기쁨보다는 존재의 기쁨을 ,

주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참으로 우리에게 초연한 자유를 선사하는 관상기도 훈련입니다.

“세상 안”에 머물러 표류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물러, 주님 중심에 날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관상기도입니다.

우리의 정주생활에 참 좋은 도움이 되는 관상기도입니다.

 

율법이 아닌 사랑이 분별의 잣대입니다.

참으로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수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뿐 아니라 지혜로운 분별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가며 오늘 사도행전에서 제기되는 할례의 문제도 말끔히 해결할수 있습니다. 

 

결론하여 율법을 지켜서, 할례를 받아서 구원이 아니라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올바른 분별의 지혜를

발휘해야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예루살렘 모교회의 파견했고

사도들과 원로들은 사랑의 분별, 분별의 지혜로 답을 줄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봉헌하는 미사은총이 주님 안에서 공동체의 일치를 견고히 해주고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며 살게 합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랑의 관상기도 시간이 바로 우리가 평생 날마다 바치는 이 거룩한 미사와 더불어

시편공동전례기도요, 관상의 일상화, 관상의 생활화를 이뤄주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요한15,8). 아멘.


5/2(목)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단명함을 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삶의 기준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식별의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조재형 신부)

 

2. 세파에 지쳐 쓰러질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배신당할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나를 배신해도 주님만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것을.

오늘 내 삶이 아무리 비참하고 부끄럽다 해도 나란 존재 자체가 주님께 기쁨이라는 진리를.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숨결이 흐릅니다.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사랑입니다.
제 안에 굴을 파고들어 와 빈 무덤으로 모습을 숨긴 그지없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결코 빼앗길 수도, 빼앗겨지지도 않는 기쁨입니다.
주님!
당신의 기쁨의 숨결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율법이 아닌 사랑이 분별의 잣대입니다.

참으로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수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뿐 아니라 지혜로운 분별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가며 오늘 사도행전에서 제기되는 할례의 문제도 말끔히 해결할수 있습니다. 

 

결론하여 율법을 지켜서, 할례를 받아서 구원이 아니라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올바른 분별의 지혜를

발휘해야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예루살렘 모교회의 파견했고

사도들과 원로들은 사랑의 분별, 분별의 지혜로 답을 줄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5/2(목)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495(125)일 기도

 

복음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오늘의 말·샘 기도>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숨결이 흐릅니다.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사랑입니다.
제 안에 굴을 파고들어 와 빈 무덤으로 모습을 숨긴 그지없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결코 빼앗길 수도, 빼앗겨지지도 않는 기쁨입니다.
주님!
당신의 기쁨의 숨결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5월2일(목) 20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