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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5월 1일 수요일[(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5월 1일 수요일[(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71(70),8.23
저의 입은 당신 찬양으로 가득 찼나이다. 온종일 당신 영광을 찬미하나이다. 당신께 노래할 때, 제 입술에 기쁨이 넘치리이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니
하느님 종들의 마음을 이끄시어
불신의 어둠에서 벗어난 그들이
언제나 진리의 빛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할례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5,1-6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 1 참조)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5,4.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4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진 세상>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제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타락하였던 만물이 새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생명이 온전히 회복되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부활하시어 우리를 비추셨네. 당신 피로 우리를 속량하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저희를 도우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충실히 살아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5주간 수요일

 

1996년 스페인 성지순례를 갔을 때입니다.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모임 장소로 말 동상이 있는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자유시간을 보내고, 말 동상이 있는 광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일행이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확인하니, 그곳에는 말 동상이 있는 광장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성격이 급한 저는 말 동상이라는 말만 들었고, 그 다음 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성당 옆의 말 동상이 있는 광장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실수가 있었습니다. 성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있는 샌디에고 꼼뽀스텔라엘 갔습니다.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모임 장소로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는 자유시간을 보내고 광장에서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되어도 사람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성격이 급한 저는 광장이라는 말만 들었고, 그 다음 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성당 앞의 광장이 아니라, 성당 아래에 있는 광장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광장이 서로 가까이 있었던 것입니다.

 

과학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인류는 천동설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온 우주가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생각입니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니 당연히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도 천동설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온 우주에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지구에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갈릴래오 갈릴래이와 같은 과학자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과학자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우주는 훨씬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먼지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을 단죄하였습니다. 천동설이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동설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을 만큼 크고, 장대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할례에 대한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할례를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할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민족에서 개종했던 사람들은 할례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초대교회는 할례가 신앙인이 되는 필수조건인지 고민했습니다. 다른 민족에서 개종했던 사람들은 할례의 의미도 몰랐고, 할례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문제로 음식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했던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부정한 음식에 대한 규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민족에서 개종했던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을 몰랐고, 음식에 대한 규정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초대교회는 고민을 하였고, 예루살렘에 모여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공의회입니다.

 

교회는 할례 음식에 대한 모세의 율법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제가 찾았던 광장이 모임 장소가 아니었듯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이 아니었듯이, 할례와 음식은 구원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유대교라는 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의 율법과 계명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었습니다. 제도와 관습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제도와 관습을 뛰어 넘는 사랑과 믿음 그리고 희망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15,1-8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내가 성화됩니다!

 

요즘 이런저런 육체노동을 자주 하면서 깨닫는 바가 참으로 많습니다.

일이라는 것,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가끔 왜 사나?

싶을 때, 우울감에 젖어들 때, 만사 제쳐놓고 육체노동에 한 번 뛰어들어 보십시오.

 

일을 설렁설렁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몰입할 때, 완전히 헌신할 때,

거기서 오는 상쾌함이 얼마나 큰지요?

고통이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치료제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에 몰입하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 노동, 근로라는 것이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더군요.

눈만 뜨면 매일, 그리고 평생토록 되풀이해야 하는 일, 그 일이 정말 가치 있고 동시에 재미있으며,

더불어 동료 인간과 세상에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라면,

또한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보람되고 기쁘겠습니까?

 

인간은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합니다.

일을 통해 한 존재로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낍니다.

일로 인해 한 존재가 활짝 꽃 피어나며 충만한 인생을 엮어갑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의 노동 현실을 살펴보면 너무나 암담하다 못해 참담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 안에서 점점 고착화되어가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

그로 인한 극도의 차별대우와 상실감! 틈만 나면 자행되는 해고! 살기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

 

뿐만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여러 측면의 계측에서 불명예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국가별 노동시간을 따지면 최상위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토록 참혹한 현실이 우리 한국의 자화상입니다.

 

더 우리를 힘겹게 하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취직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면접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삶과 죽음 사이로 난 아슬아슬한 벼랑길의 끝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고통과 슬픔은 취직하고 나서도 끊이지 않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직장, 모든 구성원들이 존중받는 직장을 꿈꿨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요?

근로자들은 경영인들의 부속품처럼 쉴새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의아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노동에도 영성이 있습니다.

‘노동의 영성’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사용하신 용어입니다.

 

‘노동의 영성’, 그 핵심은 아주 쉽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창조주시며 구세주이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일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열심히 노동하셨던 한 인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출가하시기 전까지 양부 요셉을 따라 장인(匠人)으로서 매일 이마에 비지땀을 흘리며 사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일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켜나갈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완성시켜나갑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 창조사업을 계승합니다.

따라서 오늘 노동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하나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 부여입니다.

그 어떤 일에 종사하든 자신의 일에 중요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자긍심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을 맞아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하루 노동자 성 요셉의 전구에 힘입어 은총 충만한 하루, 새로운 에너지를 충만히 부여받는

행복한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모든 일들, 세상을 위해, 언젠가 도래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을

확신하십시오.

어려운 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매일 되풀이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내가 성화되며,

내가 하느님 창조사업에 참여한다는 의식을 지니시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오늘 복음은 '참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서 예수님의 진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참된 진리는 '참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 곧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 ‘관계’를 '붙어있다, 머물다, 열매 맺다'라는 세 가지 동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여덟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머물다'라는 단어입니다. 

'머물다'라는 말의 의미는 오늘 복음에서 우선 '붙어있음'을 말합니다.

곧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서, 다른 데서가 아닌 바로 그 포도나무로부터 수액을 받아먹는 것, 그리하여 '열매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제자는 예수님께 ‘붙어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으실 수 있도록 자신을 비워드림이요, 그분의 말씀의 권능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참 생명’을 공유하고, 그분과 결합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 분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 6,17)

그러기에 '머물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상호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로 ‘붙어있음’ 말합니다.

곧 '상호 내주 혹은 상호 공유의 관계'로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벌리는 역동적인 활동이 벌어지는 ‘상호 친교’요, ‘상호교제’요, ‘상호 교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그의 둘째 편지에서 밝히듯,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 1,4)

참으로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그분과 이토록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고, 참으로 신비로운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며 활동하십니다.

 

바로 이 ‘공동본성’이 우리에게 신적 진리, 참된 진리를 가능케 하는 자리요, 사랑이 피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로운 '공동본성'(Connaturality) 결합을 두고, 천사적 박사라 불렸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경탄하여 이렇게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 우리가 하나라는 걸 그토록 모르는가?”

그리고 그는 공동본성에서 오는 사랑의 지혜를, ‘하느님 사랑으로 주어지는 신적 지혜’ 혹은 ‘관상’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신적 진리, 참된 진리에 참으로 머물러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오늘 복음에서 찾아본다면,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곧 가지는 나무에 속해 있을 뿐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곧 가지가 나무를 지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존속시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분께 승복하여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여 참된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요한 15,5)

 

주님!

오늘도 십자나무에 붙어 당신 사랑을 수혈 받게 하소서.

제 삶에 사랑의 피가 흐르게 하고 그 사랑 내어주게 하소서.

당신처럼 십자나무에 붙어 자신을 내어주게 하소서.

당신은 골고타 언덕에 심어진 참 포도나무.

당신만이 저의 혈관, 저의 숨통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4.30.부활 제5주간 화요일                                                            사도14,19-28 요한14,27-31ㄱ

 

 

                                                                 떠남의 여정

                                                      -참 좋은 선물, 주님의 평화-

 

"주는 온유한자 의를 따라 걷게 하시고

 겸손한 자 당신 도를 배우게 하시나이다."

 

눈만 열리면, 마음의 눈만 열리면 하루하루 날마다 배울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리하여 제 좋아하는 강론 주제중 하나가 ‘배움의 여정’입니다.

참으로 하루하루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는 일에 지치지 않아야 강론쓰는 것도 덜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승의 두 자질이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을 꼽으며 공자는 호학(好學)을,

배움을 좋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입니다.

주님은 오늘 하루 잘 살아보라고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선물하십니다.

하루를 마칠때면 흐뭇하게 마치는 경우는 드물고 늘 아쉬움만 남듯 죽음앞에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날은 하루하루가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어제 모 일간신문의 첫 사설은 우리나라 하루 42명이 자살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얼마나 삶이 고달프고 절망적이었겠나 생각합니다.

출산율은 꼴지인 나라가 자살율은 1위이니 참 개탄스러운 현실입니다.

 

삶은 떠남의 여정이요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오늘 4월 30일이 끝나면 내일부터는 계속되는 파스카 시기에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성모성월의 시작이요

행사도 유난히 많은 5월입니다.

 

아마 스승의 날 전후로는 거의 50년전, 지금은 환갑나이의 초등학교 6학년때 제자들도 저를 찾을 것입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루하루 잘 떠나야 끝은 새로운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잘 떠나야 마지막 죽음의 떠남도

잘 떠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갑작스러운 잘 떠남의 죽음은 없습니다. 정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떠남은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자연의 변화가 떠남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개나리, 수선화가 떠나니 배꽃들이요 배꽃들이 떠나니 철쭉, 영산홍, 애기똥풀꽃이 한창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사람은 꽃이다”라는 자작시를 다시 나눕니다.

 

“사람은 꽃이다

주님 파스카의 꽃이다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세상 떠날 그때까지

새롭게 폈다 지는 

사람은 꽃이다

사랑의 꽃, 주님 파스카의 꽃이다”

 

어제 밤에 받은 연미사를 부탁하는 이름이 특이하여 자매에게 물었더니 시할머니 이름이라 하여,

“시할머니 이름까지 기억하여 연미사를 봉헌하니 참 대단하십니다.” 답신을 드렸습니다.

시할머니가 잘 살다 잘 떠난분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 자매님이 보낸 내용도 삶을 뒤돌아보게 했습니다.

 

“요즘 신부님의 자작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가 머리로만이 아닌 가슴에서 절절했습니다.

어찌 평생을 이렇게 한결같이 살 수 있을까요?”

 

평생 정주의 서원을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의 심정 역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고백 하나뿐일 것입니다.

옛 어른의 오늘 말씀도 떠남의 여정에 도움이 되는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누구나 아는 가르침을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듯, 보통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보통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다산>

하루하루 날마다 보통이상의 노력으로 살아야 한결같은 정주의 삶이겠습니다.

 

“바른 이치에 순종하면 여유가 있고, 욕심을 따르면 위험에 빠지게 된다”<장자>

바른 이치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한결같은 평탄대로 정주의 삶일 것입니다.

 

어제 받음 카톡 메시지 ‘인생의 6대 잔고’란 글도 공감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반드시 남겨야 할 3가지와 반드시 비워야 할 3가지입니다.

남겨야 할 세가지는 “1.가족에게는 그리움을, 2.친구에게는 웃음을, 3.세상에는 감동을” 남겨야 하고,

 

비워야 할 세가지는 “1.마음의 빚, 2.마음의 응어리, 3.우정, 애정 인정의 정”이라 합니다.

친구에게는 우정의 잔고를, 반쪽의 반려자에게는 애정의 잔고를, 세인들에게는 인정의 잔고를

남김없이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좋은 사랑의 추억을 가득 남기는 것이겠습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무료진료소 “요셉의원”을 세워 21년간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다 선종한

선우경식 원장일 것입니다.

 

지난 4월18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는 선우경식 원장의

16주기 추모미사 봉헌과 더불어 <의사 선우경식>출판기념회가 열렸었습니다.

 

바로 오늘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떠남을 보여줍니다.

정말 이웃에게, 친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참 좋은 떠남일 것이며 특히 죽음의 경우는 그러합니다.

 

남은 가족들에게 그리움과 평화, 일치를 선물로 남기고 떠나는 이들의 장례미사를 보면

흡사 축제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종종 그런 체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장례미사를 보면 그분의 전생의 삶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죽음을 앞둔 주님의 선물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고맙고 아름다운지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면서 주신 참 좋은 평화, 똑같은 평화를 역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서도 주십니다.

세상의 평화, 사람의 평화가 아닌 주님의 평화입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평화요 단지 폭력의 부재인 평화가 아닌 더욱 긍정적이고 더욱 깊은 평화입니다.

 

역설적으로 크나큰 고통과 혼란중에도 평화요, 외적인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또 우리가 올바른 장소에 있다는 확신에서,

내적 안정감에서 선물처럼 오는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죽음의 위협도 결코 앗아갈 수 없는 그런 평화입니다.

바로 성인들이, 우리가 간혹 체험하는 주님의 평화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바로 이런 평화가 마음 깊이 내재해 있었기에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의 성공적 선교 여정이요

사목방문이었음을 봅니다.

두 사도 역시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감동적인 떠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사도는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말하며

이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아 줍니다. 

 

하느님의 은총 덕분으로 선교여정을 완수한 두 사도는 그들을 파견한 안티오키아 교회에 도착하자,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신 것을 보고하고

오래 머물며 지친 심신을 충전하니 참 해피엔딩으로 끝난 선교지 사목방문입니다. 

 

바로 이 성공적 선교여행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은혜는 주님의 평화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참 좋은 선물, 당신의 평화를 선사하시어 우리 모두 떠남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시편145,12). 아멘.


5/1(수) 부활제5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이 아니었듯이, 할례와 음식은 구원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유대교라는 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의 율법과 계명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었습니다. 제도와 관습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제도와 관습을 뛰어 넘는 사랑과 믿음 그리고 희망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조재형 신부)

 

2. 오늘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을 맞아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하루 노동자 성 요셉의 전구에 힘입어 은총 충만한 하루, 새로운 에너지를 충만히 부여받는

행복한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모든 일들, 세상을 위해, 언젠가 도래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을

확신하십시오.

어려운 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매일 되풀이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내가 성화되며,

내가 하느님 창조사업에 참여한다는 의식을 지니시면 좋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요한 15,5)

 

주님!

오늘도 십자나무에 붙어 당신 사랑을 수혈 받게 하소서.

제 삶에 사랑의 피가 흐르게 하고 그 사랑 내어주게 하소서.

당신처럼 십자나무에 붙어 자신을 내어주게 하소서.

당신은 골고타 언덕에 심어진 참 포도나무.

당신만이 저의 혈관, 저의 숨통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남은 가족들에게 그리움과 평화, 일치를 선물로 남기고 떠나는 이들의 장례미사를 보면

흡사 축제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종종 그런 체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장례미사를 보면 그분의 전생의 삶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죽음을 앞둔 주님의 선물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고맙고 아름다운지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이수철 신부)

 

5/1(수) 부활제5주간 수요일, 494(124)일 기도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요한 15,5)

 

주님!

오늘도 십자나무에 붙어 당신 사랑을 수혈 받게 하소서.

제 삶에 사랑의 피가 흐르게 하고 그 사랑 내어주게 하소서.

당신처럼 십자나무에 붙어 자신을 내어주게 하소서.

당신은 골고타 언덕에 심어진 참 포도나무.

당신만이 저의 혈관, 저의 숨통입니다.

아멘.

 

- 2024년 5월1일(수) 8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