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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5월 4일 토요일[(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5월 4일 토요일[(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콜로 2,12 참조
우리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네. 알렐루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세례로 새로 난 저희에게 천상 생명을 주시니
저희를 의롭게 하시고 불사불멸의 옷을 입히시어
완전한 영광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6,1-10
그 무렵 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0(99),1-2.3.5(◎ 1)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또는
◎ 알렐루야.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복음 환호송

콜로 3,1
◎ 알렐루야.
○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여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드리는 제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저희가 받은 것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선물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4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진 세상>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제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타락하였던 만물이 새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생명이 온전히 회복되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7,20-2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위하여 비오니, 이들이 우리 안에 하나가 되게 하시고, 아버지가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자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예전에 수영을 배우려면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론으로 수영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물속으로 들어가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필기시험을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실기시험입니다. 직접 차를 몰고 운전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장롱면허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면허증은 있지만 운전을 해 보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운전해 보지 않으면 면허증이 있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성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메주고리예에서는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함께하였습니다. 파티마에서는 묵주기도와 행렬을 함께 하였습니다. 루르드에서도 성체강복과 묵주기도 행렬을 함께 하였습니다. 몬세랏에서는 성무일도를 함께 했습니다. 예전에는 성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일정이 바쁘기도 했고, 숙소가 성지에서 멀기도 했고, 미처 모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성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함께하면서 성지순례가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화중지병(畵中之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림의 떡은 보기는 좋지만, 그 맛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림의 떡은 보기는 좋지만, 결코 먹을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말만 앞서고 행동이 없다면 참다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신앙생활을 비난하셨습니다. 그들은 말은 하지만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저 사람들의 행동은 따라하지 말아라.” 그리고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들은 자기들도 하느님께로 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성모님의 메시지 중에도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많은 주교와 사제들이 하느님과 멀어지고 있다. 그들이 신자들의 영혼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고 있다. 그러니 주교와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하여라.” 성지순례를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이 제게는 죽비처럼 따갑게 다가왔습니다. 성지순례의 기회가 있어서 몇 번 더 왔지만, 성지순례를 준비하는 마음은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습니다. 성지순례의 마음가짐은 설명하지만, 정작 저 자신은 여행객에서 순례자로, 순례자에서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려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은 성화 되지 않았으면서 남을 성화시키려고 하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분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곧 지치게 됩니다. 힘이 빠지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신앙이 식어버립니다. 즐거웠던 일들도 시들해지고, 성당에 나오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집니다.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화 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기도할 수 있으며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성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원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고철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원이 연결되어야만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냉장고도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성화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연결될 때, 주님 곁에 머무를 때 성화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화 된 신앙인은 박해받을 수 있고, 고독할 수 있으며, 십자가를 지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를 살리는 길이고, 그 길이 영광과 부활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여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15,18-21


세상의 악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교회에 대한 교부들의 정의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로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의 박해와 미움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더 나아가서 숙명이요 운명인 듯합니다.


여기서 ‘세상’이라는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합니다.
세상은 사실 하느님 창조의 손길이 담긴 걸작품이요, 우리 모든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 공동체로서 거룩한 대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의 세상입니다.
죄와 악으로 기운 세상, 기본적인 상식이나 식별력을 상실한 세상, 하느님 아버지를 등지고,
분의 뜻과 전혀 별개의 노선을 추구하는 악에 물든 세상을 일컫습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위로와 축복이 충만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누리는 기쁨과 은총도 클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받게될 세상으로부터의 박해와 고통도
반드시 따를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바오로 사도 같은 경우 주님으로 인해 받는 매질과 돌팔매질, 배척과 모욕,
투옥과 죽음을 더 없는 기쁨이요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고통이 다가올때 마다 더 크게 찬양하고 더 큰 목소리로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어지는 당면한 일상적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과 시련을 당연시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무시당하고 오해받을지라도, 그러려니 하고 너그럽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 때문에 고통과 박해 앞에 설 때마다,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친절한 팁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세상의 악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때로 그 사악함이 너무나 지나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저 착한 사람 흉내만 내서도 안되겠습니다. 악의 세력들의 농간 앞에 웃고 있어서만도 안되겠습니다.
때로는 단호함과 결연함도 필요합니다. 뱀처럼 슬기로움도 요청됩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에 앞서서 필요한 덕행! 곧 인내의 덕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제 5주간 토요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은 ‘제자들과 세상의 관계’에서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게 될 것에 대한 예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는 제자들의 ‘신원’과 ‘사명’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로부터 오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결국 세상과 제자들의 관계에서 제자들의 사명 역시 '사랑'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이유를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세상에서 택한 사람들이기 때문'(15,19)이라고 밝혀줍니다. 

이 말씀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와 한 계약 체결의 약속 내용, 곧 “너희를 나의 소유가 되게 하리라. ...거룩한 민족으로 뽑았다.”(탈출 19,5-6)라는 말씀을 떠올려줍니다.

 

그러니 이는 ‘이미’ 우리 안에 ‘성취된 계약’, ‘성취된 말씀’입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주님께 ‘속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주님께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제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2세기의 무명 교부의 작품인 <디오그네투스에게>서 말해주듯이, '세상의 영혼'으로서의 삶입니다.

곧 ‘세상 안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당하는 이유를 “내 이름 때문”(15, 21), 곧 '내 제자라 해서'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그들은(세상은) 나를 보내신 분을 모른다.'(15,2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비록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혹은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 해도’, 혹은 ‘세상이 아버지를 모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제자들도 똑같이 세상을 그렇게 할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그들만의 구원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함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은 것도 그들의 구원만이 아니라 만민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세상이 아무리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한다 하더라도, 오직 당신을 보내신 분인 아버지께만 믿음을 두셨던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믿음으로 복음을 선포하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께 속해 있다면, 미움과 박해는 당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특권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특권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필리피 1,29)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명과 함께 고난의 특권도 부여받았습니다. 

한스 큉은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고난을 없애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 나의 주 나의 전부 나의 임자시여!

나를 독차지하신 나의 지배자 나의 정복자시여,

바로 지금 저를 점령하소서.

저는 본시 당신 것이옵니다.

저는 당신의 것, 당신의 소유이오니, 당신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이옵니다.

당신의 택함, 당신의 보냄을 따라 감히 당신의 뜻을 따르겠사오니, 제가 공동체와 형제들 안에 머물게 하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혹 내 형제가 나를 미워하고 박해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당신 말씀을 사는 말씀의 봉사자가 되어 주인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오 감사하나이다.

나의 주, 나의 임자시여!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한 15,19)

주님!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세상의 사랑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 속하니, 당신의 사랑에 목마르게 하소서!

고난을 겪는 특권을 받았으니,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나 뵙게 하소서!

그 어떤 미움과 배척에서도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3.금요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1코린15,1-8 요한14,6-14

                                                           주님과 만남의 여정

                                               -오늘 지금 여기가 정주의 ‘꽃자리’이다-

 

오늘 5월3일은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순교 축일입니다.

아침성무일도 찬미가 다음절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장하다 복되옵신 두분사도여, 피흘려 우리주님 증거했으니

 희망과 신앙의힘 우리도지녀, 본향을 향해달려 가게하소서”

 

1-2세기는 순교영성의 시대로 믿는 이들 대부분이 주님을 사랑해 순교를 열망했습니다.

이런 순교자들의 후예인 믿는 이들 우리 역시 순교적 삶의 순교영성을, 파스카의 영성을 살아갑니다.

 

올해로 요셉수도원 설립 37주년이 되지만 초창기에는 요즘처럼 수도원 전역에 애기똥풀꽃이 없었습니다.

26년전쯤부터 시작된 애기똥풀꽃이 지금은 수도원 전역 곳곳을 덮고 있습니다.

아마 몇 달은 계속될 것이며 집무실곁길도 꽃길로 변했습니다.

26년전 ‘검정고무신’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이때만 해도 많은 형제들이 검정고무신을 신었습니다.

 

“볼품없는 검정고무신

 애기똥풀꽃밭에 다녀 오더니

 꽃신이 되었다

 하늘이 되었다

 노오란 꽃잎들 수놓은

 꽃신이 되었다

 노오란 꽃잎 별들 떠오른

 하늘이 되었다”-1998.5.7

 

살아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꽃신’으로, ‘하늘’로 격상된 신자들의 존엄한 품위를 상징하는 ‘검정고무신’입니다.

올해도 여지없이 수도원 성전 응달에 끊임없이 피어나는 파스카의 봄꽃, 샛노란 애기똥풀꽃입니다.

2년전에 써놨던 ‘꽃자리’란 시입니다.

 

“음지든 양지든 상관없다

 자리 찾지 않는다

 자리 탓하지 않는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어디든 뿌리내리면 거기가 꽃자리이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아도 성전옆 북향 응달

 그늘진 외딴곳

 늘 거기 그 자리 꼬박 1년, 기다렸다가 때되어 피어난 

 샛노란 별무리 애기똥풀꽃들

 외롭지 않다

 눈물 겹도록 고맙고 반갑고 기쁘다

 살아있음이 찬미와 감사다

 꽃처럼 폈다지는 인생이고 싶다

 사랑의 꽃, 주님 파스카의 꽃이 되고 싶다

 늘 거기 그 자리,

 정주의 꽃자리에서”-2022.4.

 

피정자들에게 부단히 강조했던 살아 있는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시간전례나 미사전례의 목적도 살아있는 주님과의 만남임을 강조했습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이요, 이런 만남의 여정중에 ‘만남의 기쁨’으로 산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필립보 사도의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는 요청은 하느님을 찾는 수도자는 물론이고

신자들의 갈망을 반영합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답변은 수년간에서 수십년에 걸쳐 주님의 집에 정주하는 우리 수도자들 모두를 향합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 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늘 주님을 만나면서, 주님을 보는 것은 아버지를 보는 것인데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니

어찌 그런 요청을 할 수 있는지 필립보는 물론 우리의 무지를 책하는 예수님같습니다.

늘 거기 그 자리 꽃자리, 주님의 집에서 주님 사랑 안에 정주하면서, 날마다 미사전례를 통해 주님을 만나면서

어찌 그런 요청을 하는지 묻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주님의 말씀인 진리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복음 구절은 예수님의 자기계시에 근거한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최고봉이요 요약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뵌 것이다.”

 

좋고 나쁜 장소의 여부가 아니라 주님과 관계의 깊이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어디든 주님이 함께 하시는 정주의 꽃자리에서 ‘아버지께 가는 길이신 생명이자 진리이신 파스카 예수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관계라면 그대로 생명이자 진리이신 아버지를 뵙는 삶이기에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필립보는 주님의 이 말씀에 큰 충격적 가르침과 더불어 무지의 눈이 열려 깊은 깨달음에 도달했을 것이며

더 이상 이런 요청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었을 것입니다. 

 

바로 제1독서 코린도 1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주님과 은총의 만남을 고백합니다.

주님과의 깊은 관계로 때가 되어 눈이 열려 파스카의 주님을 만났음에 대한 체험의 고백입니다.

먼저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가 나중에 바오로 자신이 언급됩니다.

 

“그 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 바오로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이런 살아계신 파스카의 주님을 만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이요,

날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사는 꽃자리 정주의 삶’에,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의 관계임을

깨닫게 해주는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5/4(토)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되새김 구절

 

1. 무엇이 우리를 성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원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고철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원이 연결되어야만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냉장고도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성화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연결될 때, 주님 곁에 머무를 때 성화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화 된 신앙인은 박해받을 수 있고, 고독할 수 있으며, 십자가를 지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를 살리는 길이고, 그 길이 영광과 부활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여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조재형 신부)

 

2.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세상의 악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때로 그 사악함이 너무나 지나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저 착한 사람 흉내만 내서도 안되겠습니다. 악의 세력들의 농간 앞에 웃고 있어서만도 안되겠습니다.
때로는 단호함과 결연함도 필요합니다. 뱀처럼 슬기로움도 요청됩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에 앞서서 필요한 덕행! 곧 인내의 덕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한 15,19)

주님!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세상의 사랑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 속하니, 당신의 사랑에 목마르게 하소서!

고난을 겪는 특권을 받았으니,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나 뵙게 하소서!

그 어떤 미움과 배척에서도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 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늘 주님을 만나면서, 주님을 보는 것은 아버지를 보는 것인데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니

어찌 그런 요청을 할 수 있는지 필립보는 물론 우리의 무지를 책하는 예수님같습니다.

(이수철 신부)


 

5/4(토)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496(126)일 기도

 

복음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한 15,19)

주님!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세상의 사랑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 속하니, 당신의 사랑에 목마르게 하소서!

고난을 겪는 특권을 받았으니,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나 뵙게 하소서!

그 어떤 미움과 배척에서도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5월4일(토) 7시...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