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8월 29일 목요일[(홍)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임금들 앞에서 당신 법을 말하며, 저는 부끄러워하지 않으오리다. 당신 계명을 되새기며 끝없이 사랑하나이다.
본기도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복된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성자의 탄생과 죽음을 미리 알려 주셨으니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그를 본받아
저희도 끝까지 하느님의 진리를 믿고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17-19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
○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당신 의로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저의 입은 온종일 이야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광야에서 외치는 복된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곧게 내라고 가르치며 용감하게 피를 흘렸으니
이 제물을 받으시고
저희도 그 길을 올바로 걸어가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에서
복된 요한을 뽑으시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특별한 영예를 주셨으니
그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선구자 요한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인류 구원이 다가왔음을 기뻐하였고
태어날 때에 구원의 큰 기쁨을 알렸으며
모든 예언자 가운데에서 그 홀로
속죄의 어린양을 보여 주었나이다.
또한 그는
흐르는 물을 거룩하게 하시는 세례의 제정자 주님께 세례를 베풀었으며
피를 흘려 주님을 드높이 증언하였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며 끝없이 외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이 대답하였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복된 세례자 요한의 천상 탄일을 기리며
저희가 모신 구원의 성체를 믿고 공경하오니
그 구원의 열매를 미리 맛보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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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세례자 요한 수난 기념일
병자성사를 다니면서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습니다. 한분은 아들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수술도 하고, 여러 고비를 넘겼지만 6개월 정도 재활 운동하면 어느 정도 좋아질 거라고 합니다. 형제님은 자신의 불행을 원망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몸도 아프지만, 마음까지 아파했습니다. 재활 운동하면 걸을 수 있고, 좋아질 거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행은 원망의 문으로 들어온다고 하는데 형제님은 몸도 아픈데, 마음까지 아프니 안타까웠습니다. 형제님을 간호하는 가족들도 안타까워했습니다. 다른 한분은 7년 전에 근 무력증이 찾아왔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걸렸던 병(루게릭병)입니다. 천천히 근육이 마비가 되면서 지금은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정도였습니다. 병원에서도 호전될 가능성은 없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고통을 형제님은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아직은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딸들이 잘 자라주는 것도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눈으로 움직이는 마우스가 있어서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딸들이 자라는 걸 보는 것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비록 몸은 마비가 찾아왔지만 형제님의 마음은 순수했고, 열정이 넘쳤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마치 욥과 같았습니다. 욥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했다면, 나쁜 것을 주셨을지라도 감사드립니다.”
동료 사제들 중에도 불평과 원망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재능을 아깝게 소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 본당 신부 때문에 힘들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교우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새로 성전을 신축하는 곳에 가서는 성전신축 기금 마련이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기존의 성당으로 가서는 조직과 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보좌 신부님의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뜻하지 않았는데 병이 찾아왔고, 오랜 시간 휴양 중에 있는데, 그것도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 때문이라고 원망했습니다. 몸이 불편하니 운동도 하지 못하고, 운동을 하지 못하니 몸은 더욱 불편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우리도 이제 모두 익어가는 때입니다. 아름다웠던 젊은 날을 회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료 사제도 있습니다. 성전 신축하는 성당으로 3번이나 갔는데도 항상 싱글벙글 이었습니다. 일이 적으면 책 읽을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 합니다. 일이 많으면 결과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간수치가 높아서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매일 꾸준히 운동했고,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행복 바이러스가 있는 것처럼 그 신부님이 있는 곳에는 늘 웃음과 평화가 넘쳐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항상 기도하십시오, 늘 기뻐하십시오,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휠체어에 앉아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던 형제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것,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수난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습니다. 제자들도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처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소리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겁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인공이 되는 것을 기꺼이 포기했고, 조연의 자리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교회는 세례자 요한의 축일을 세상을 떠난 날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날로 정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역시 성령의 이끄심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일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에서 복된 요한을 뽑으시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특별한 영예를 주셨으니 그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선구자 요한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인류 구원이 다가왔음을 기뻐하였고 태어날 때에 구원의 큰 기쁨을 알렸으며 모든 예언자 가운데에서 그 홀로 속죄의 어린양을 보여 주었나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복음: 마르 6,17-29
세례자 요한의 허무한 죽음,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죽음에는 참으로 다양한 유형의 죽음이 있습니다.
살아생전 국가와 이웃을 위해 큰 족적을 남겼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와 눈물 속에 떠나는
황홀한 죽음이 있습니다.
건강하게 백수를 누리면서 평생 잘 지내다가 후손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는 편안한 죽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죽었다 깨어나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한 한 청춘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우리는 할 말을 잃습니다.
난폭하고 오만한 지도자의 그릇된 정책, 게으름과 무성의, 안일무사함으로 인해 벌어진 대참사,
그로 인한 희생자들의 죽음도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오늘 수난 기념일을 맞이하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구약 시대 마지막 대 예언자, 자기 뒤에 오시는 구원자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잘 닦은 선구자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한때 타오르는 횃불 같이 찬란했던 그의 삶이었습니다.
죽는 모습도 그에 못지 않게 장엄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사악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헤로디나의 간계와 허당 기질이 다분한
헤로데의 허언 한 마디로 인해, 세례자 요한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어이없는 참수형을 당하고 맙니다.
요한의 머리는 댕강 잘려져 쟁반에 담깁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가 담긴 쟁반을 받아든 헤로디아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하고 수치스런 죽음인지요.
대예언자의 결말이 너무나 초라하게 끝이 나는 것 같아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든 분위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허무한 죽음,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참으로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예언자로서의 삶과 죽음의 본모습인 듯합니다.
쓸쓸하고 아쉽고 드러나지 않는 삶과 죽음, 자신이 아니라 자기 뒤에 오시는 주인공이신
주님을 빛내게 해주는 존재로서의 삶과 죽음이 곧 예언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무척이나 신산하고 을씨년스런 삶, 씁쓸하고 고독한 현실, 그래서 오직 주님에게로만 초점이 맞춰지는 삶
그것이 참 예언자로서의 삶이 분명합니다.
예언자들이 대단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예언자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너무나 괴로울 때는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하소연했습니다.
항상 하느님과 소통하며 그분의 뜻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 또 다른 예언자들인 사제들과 수도자들, 선구자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이 보다 가난해지도록 그들이 좀 더 고독해지도록 도와줘야겠습니다.
그들이 갖출 것 안 갖출 것 다 갖추고 떵떵거리며 산다면, 그것처럼 예언자로서 부끄럽고 비참한 삶이
다시 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예언자로 산다는 것,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박해받는
의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일, 사회 정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외치는 일,
남들이 마다하는 선행과 봉사를 실천하는 일,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볼 때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일,
손해 보는듯한 느낌이 드는 일, 그 일을 하고 계신다면 제대로 된 예언자의 삶을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랜 역사 안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참 신앙인의 길은 세상의 논리와 이치를 뛰어넘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납니다.
결국 바보처럼 살게 합니다.
손해 보는 삶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결국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언자의 길이요 의인의 길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비록 비극적이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조차도 예수님의 구원사업 성취의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출생은 물론 생애 전체, 죽음까지도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위해 온전히 봉헌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오늘도 우리는 숨 막히게 외치고 있는 예언자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오늘은 ‘성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오히려 고난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가 의로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고난을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로운 이의 무고한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을 미리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필리 1,29 참조). 어찌 보면 한 푼 춤 값으로 팔려버린 그의 목숨은 마치 은전 30냥에 팔리게 될 예수님의 목숨처럼, 억울하고 무참한 죽음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리는 베었어도, 그의 소리는 벨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혀는 잠잠하게 만들었지만, 그가 외치는 진리의 소리는 가라앉힐 수가 없었습니다. 예언자의 소리는 가로막는다고 가로막히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극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한편에는 눈치와 체면에 눈이 가려진 부패하고 부도덕한 권세가인 헤로데와 음모를 꾸미며 악의에 찬 헤로디아와 허영심에 찬 그의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진실하고 의로운 세례자 요한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불경스러운 네 가지 죄악을 봅니다. 권세가의 파렴치한 생일잔치, 소녀의 음탕한 춤과 그 어머니의 악의에 찬 음모, 임금의 무모한 맹세입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결국 무고한 의인의 죽음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올가미에 걸려 넘어진 이는 의인이 아니라 폭군이었습니다. 악인의 혀는 결국 자신이 쳐놓은 덫에 걸려 넘어지고, 의인의 혀는 영광의 관이 씌워졌습니다. 의로운 사람의 고난을 떠올리면, 금세기의 의인으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이 떠오릅니다. 그는 히틀러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당시의 국가 교회를 탈퇴하여,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고, 히틀러의 암살계획에 연루되어 나치에 의해 사형 당했습니다. 그는 '고난에 관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 의식을 세상 속으로 가져온 까닭이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느님 의식'을 세상 속으로 가져온 바람에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그가 <옥중서간>에서 썼던 이런 말이 적여 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을 위하여 바쳤으며,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 말씀을 가르쳤다” 그는 참으로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되, 예수님처럼 죽음을 통해 가르쳤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월이 흐를지라도 폭군의 죄악을 고발하는 의인의 외치는 소리는 계속될 것입니다. 비록 혀가 잘려도, 온몸이 혀가 되어 외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숨 막히게 외치고 있는 예언자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이 외치는 소리는 교종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 ‘남을 위해 우는 법’을 빼앗아 가버린 이 시대에, ‘남을 위해 우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우는 법’을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혀가 진정으로 사랑하여 울게 하소서. 눈물 흘리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 울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르 6,25) 주님! 제 혀가 거짓을 꾸미지 않고, 진실되게 하소서. 타인을 뭉개지 않고, 자신을 뭉개어 내어주게 하소서. 제 혀가 어둠을 가르는 불혀가 되고, 진리를 밝히는 말씀의 쌍날칼이 되게 하소서! 헛된 맹세로 덫에 걸려들지 않고, 침묵에 묶어 두어도 의로움을 외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8.28.수요일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2테살3,6-10.16-18 마태23,27-32
행복하여라
“무지의 불행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시편128,1)
오늘 화답송 시편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선택입니다.
주님을 선택하여 주님 중심의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국민 절반이 울분상태 ‘30대 심각’”, 새벽 인터넷 뉴스를 일별하는 순간 들어온 말마디입니다.
어제 유투브에서 본 70대 이후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도록 준비하라는 10가지 지침도 일부 공감이 갔고
유익했습니다.
“1.저축, 2.배우자, 3.건강, 4.친구, 5.취미, 6.배움, 7.연금, 8.도전, 9.일기(기록), 10.대화(자녀간)”로
아주 현실적인 지혜로운 처방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볼 때,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하나가 빠졌음을 봅니다.
삶의 목표이자 방향, 삶의 중심이자 의미인 “하느님”이 빠졌습니다.
이어 제가 주장해온 노년의 품위있는 삶을 위한 3대 우선 순위,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도
생각이 났습니다.
더불어 오랫동안 강조해온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란
말마디도 생각이 났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할수록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무지의 탐욕에, 어리석음에 눈이 가려 길을 잃은, 희망과 꿈을, 빛을 잃은 중생들입니다.
그러니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이요 국민 절반이 울분상태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관상적 삶과 쉼의 선택과 훈련이 참으로 절박한 시점입니다.
‘살 줄 알면 행복인데 살 줄 몰라 불행’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어제에 이은 마지막 둘의 불행선언으로 마태복음 13장 7개의 불행선언은 모두 끝납니다.
마태복음 5장 서두의 “행복하여라”로 시작하는 참행복선언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6.“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7.“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저주’가 아니라 깊은 좌절감의 반영인 ‘깊은 아픔’이자 ‘분노’입니다.
인간의 위선적 무지의 병이 너무 깊습니다.
무지의 병, 무지의 죄, 무지의 악에 대해 참 많이 강조했습니다.
참 쉬운 것이 남판단하는 것이요 참 힘든 것이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입니다.
무지의 탐욕에 중독되어 눈멀면, 광신과 맹신의 무지에 눈멀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이래서 참으로 살기를 바란다면 적극적 자발적 회개의 선택과 훈련이 필수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불행선언은 회개의 촉구입니다.
회개의 은총을 입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받아들이는 회개의 선택과 실천이,
그리고 계속된 회개의 여정을 사는 것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회개의 여정은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자아초월의 겸손과 지혜의 여정입니다.
참으로 회개 없이는 자기를 아는 겸손도 지혜도 없습니다.
참된 회개를 통한 하느님 중심의 진실과 겸손, 지혜의 삶만이 표리부동의 위선적 무지의 병에 대한
유일한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회심의 대가이자 달인이 오늘 제1독서의 주인공인 바오로 사도요,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입니다.
어제 성인의 모친 모니카에 이어 아드님의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성인이 제 나이와 같은 76세에 선종하셨다는 사실이 더욱 분발하게 합니다.
17년 동안 모니카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주효하여 마침내 아드님을 결정적 회심으로 이끈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 사건은 너무 잘 아실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회심의 열매는 하느님 중심의 질서와 전통의 강조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바로 바오로의 이런 모범적 삶과 더불어 다음 성도들에 대한 평화의 축복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온갖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언제나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한번의 결정적 회심에 이은 부단한 회심의 여정을 통해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 사도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진리의 연인’이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극적 회심 사건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밀라노 정원에서 앉아있을 때 보이지는 않지만 소년의 “Tolle, lege(집어 읽어라)”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왔고
되는 대로 성서를 펼쳤을 때 한눈에 들어온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13,12-14)
이어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두 대표적 아름다운 고백을 나누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과 저녁성무일도에 나오는 내용으로 최민순 신부 번역입니다.
“주여, 당신을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우리가 당신을 찬양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게 하시나이다.
당신 안에 쉬게 될 때 까지는 우리 마음이 평온치 못하리이다.”(즈가리야의 노래 후렴)
“옛 것이나 항상 새로운 주님의 아름다움이여, 늦게서야 당신을 사랑했나이다.
주님은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게 하셨나이다.”(성모의 노래 후렴)
바오로 사도 이후 최고의 신학자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요 천주교, 개신교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두 성인입니다.
두분의 생애를 보면 결정적 회심후에도 죽을 때까지 회심의 여정에 항구했음을 보며
회심의 여정은 동시에 보속의 여정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구원 은총에 감사하며 보속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사랑했던 두 성인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심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8/29(목) [(홍)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세례자 요한은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소리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겁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인공이 되는 것을 기꺼이 포기했고, 조연의 자리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오랜 역사 안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참 신앙인의 길은 세상의 논리와 이치를 뛰어넘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납니다.
결국 바보처럼 살게 합니다.
손해 보는 삶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결국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언자의 길이요 의인의 길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르 6,25)
주님!
제 혀가 거짓을 꾸미지 않고, 진실되게 하소서.
타인을 뭉개지 않고, 자신을 뭉개어 내어주게 하소서.
제 혀가 어둠을 가르는 불혀가 되고, 진리를 밝히는 말씀의 쌍날칼이 되게 하소서!
헛된 맹세로 덫에 걸려들지 않고, 침묵에 묶어 두어도 의로움을 외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밀라노 정원에서 앉아있을 때 보이지는 않지만 소년의 “Tolle, lege(집어 읽어라)”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왔고
되는 대로 성서를 펼쳤을 때 한눈에 들어온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13,12-14)(이수철 신부)
8/29(목) [(홍)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69일차 기도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르 6,25)
주님!
제 혀가 거짓을 꾸미지 않고, 진실되게 하소서.
타인을 뭉개지 않고, 자신을 뭉개어 내어주게 하소서.
제 혀가 어둠을 가르는 불혀가 되고, 진리를 밝히는 말씀의 쌍날칼이 되게 하소서!
헛된 맹세로 덫에 걸려들지 않고, 침묵에 묶어 두어도 의로움을 외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8월29일(목) 8시1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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