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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8월 30일 금요일[(녹) 연중 제21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8월 30일 금요일[(녹) 연중 제21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86(85),1-3 참조
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본기도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17-25
형제 여러분,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3(32),1-2.4-5.10-11(◎ 5ㄴ 참조)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주님은 민족들의 의지를 꺾으시고, 백성들의 계획을 흩으신다.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

복음 환호송

루카 21,36 참조
◎ 알렐루야.
○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단 한 번의 제사로 저희를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주님의 교회에 일치와 평화의 선물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4(103),13-15 참조
주님, 땅은 당신이 내신 열매로 가득하옵니다. 당신은 땅에서 양식을 거두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 흥겹게 하는 술을 주시나이다.
<또는>
요한 6,5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례로 충만한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주님의 자비로 치유를 받고 힘을 얻어
모든 일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열 처녀 (정미연 소화데레사)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궁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ChatGPT(챗지피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알려 주었습니다. “한국 전통에서 두 사람의 운명이나 성격이 얼마나 잘 맞는지 판단하기 위해 주로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사주팔자를 비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궁합은 상대방과의 조화를 보려는 목적으로 사용되며, 서로의 생년월일과 시간을 바탕으로 하여 여러 가지 요소들을 분석합니다. 이러한 분석은 서로의 성격, 운명, 건강, 재물운, 자녀운 등을 포함하여, 결혼 생활에서의 조화와 성공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궁합은 특히 전통적인 결혼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일부 사람들은 이를 참고하여 결혼을 결정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는 궁합뿐만 아니라 서로의 사랑과 이해, 상호 존중 등의 요소가 결혼 생활의 성공에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궁합에는 동양의 철학과 사상이 들어있습니다. 신앙인들은 궁합을 삶의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궁합이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동양적인 방법이라면 서양에는 Enneagram(애니어그램) MBTI(앰비티아이)가 있습니다. 2002년 사목국에 있을 때입니다. 신부님들의 성격이 다르고, 때로 서로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장 신부님은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애니어그램, 앰비티아이 프로그램을 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애니어그램은 사람의 성격을 9가지의 범주로 파악합니다. 앰비티아이는 사람의 성격을 16가지의 범주로 파악합니다. 저는 궁합을 본 적은 없지만 애니어그램과 앰비티아이 검사는 받아 보았습니다. 애니어그램 검사에서 저는 협조자형이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앰비티아이 검사에서 저는 동정심이 많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으며, 나눔과 베풂을 중시하며, 타고난 협력자로서 동료애가 많고 친절하며 능동적인 구성원이라고 파악되었습니다. 애니어그램, 앰비티아이를 믿는 건 아니지만, 저와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직관적인 사람과 논리적인 사람과 대화할 때면 어려움이 있습니다.

 

5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결혼의 조건은 궁합도 아니고, 애니어그램이나 앰비티아이도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유무가 결혼의 조건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직업, 재물, 능력을 결혼의 조건으로 볼 수 있겠지만, 어르신들은 그것보다 먼저 신앙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 먼저 세례를 받았습니다. 형수님도 형님과 결혼하기 전에 먼저 세례를 받았습니다. 부득이하게 세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면 관면혼배를 하였습니다. 나중에라도 꼭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할 방향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성공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예수님께서 전해 주신 복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복음이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보일지라도, 그 복음이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로 보일지라도 우리 신앙인들은 복음과 십자가를 삶의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잔에 담아야 할 기름을 말씀하십니다. 그 기름은 타인과 나눌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 기름이 있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기름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고,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과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그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25,1-13

 

이 하루는 주님께서 아직 우리에 대한 자비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표시입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는 말씀 가운데

‘그 날과 그 시간’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언젠가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의 날이겠지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마주 뵙는 은혜로운 날입니다.

 

동시에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 그분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날,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심판과 단죄의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목숨 걸었던 대상들, 넉넉한 은행 잔고, 탄탄한 주식들, 멋지게 쌓아 올린

지상 장막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슬픔의 날도 될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의 그 날과 그 시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리 삶의 많은 날들이 베틀의 북에 남아 있는 실 사라지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리가 주님 대전으로 나아가는 날, 결국 우리 각자의 종말, 즉 개인의 죽음도 그 날과 그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을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해당되는 것이지만 내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착각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 새로운 시간은 주님께서 매일 우리에게 건네시는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아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비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매일 매일 펼쳐지는 하루하루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이 하루를 어떻게 하면 보다 알차게, 복음적으로,

주님과 이웃과 공동선을 위해 잘 사용할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나는 ‘슬기로운 처녀’인지>

 

오늘 복음인 '열 처녀의 비유'는 혼인잔치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열 처녀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입니다.

 

신부는 당연히 신랑께 깨어 있어야 하고, 신랑을 고대하고 기다림으로 준비합니다.

왜냐하면 신랑이 오면 마중 나가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마중 나갈 뿐 아니라 신랑이 자신을 잘 찾아오도록 ‘등’을 밝혀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등’을 밝혀들기 위해서는 ‘기름’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이가 바로 ‘슬기로운 처녀’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준비해야 할 ‘등’은 무엇이고 ‘기름’은 무엇일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등’을 ‘선행’으로 등에 불을 타오르게 하는 ‘기름’을 ‘사랑’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의 ‘세상의 빛과 소금’의 가르침에서 말씀하십니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15-16)

그러니 ‘등’은 ‘착한 행실’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등’을 밝히는 데 꼭 필요한 ‘기름’은 ‘신랑에 대한 사랑’, 곧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자세’이며, 성령의 기름부음에 도유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습니다.(마태 25,6)

여기서 '한밤중'은 가장 예기치 않은 때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등불을 챙겼습니다. 
(마태 25,6-7)

여기서 ‘챙기다’(코스메오, κοσμεω)는 ‘심지를 자르다’라는 뜻으로, 다 타버린 심지 끝을 잘라서 그을음이 나지 않고 환하게 타오르도록 정돈하는 행동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곧 불꽃이 잘 타오르도록 그래서 환하게 비추도록 하기 위해서 심지가 기름에 닿아있는지, 기름은 충분한지, 그리고 심지가 타버리지는 않았는지 보고 잘라내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기름에 몸을 담그고 있는지, 성령에 젖어 있는지, 그 사랑의 기름에 도유되어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신랑이신 주님’께 깨어있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인 사랑의 착한 행실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나는 ‘슬기로운 처녀’인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

 

~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마태 7,24-26)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깨어 있어라.”

(마태 25,13)

 

주님!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되, 신랑인 당신을 향해 깨어있게 하소서.

당신을 희망하고 기다리며, 더더욱 갈망하게 하소서.

빛 속에서 은총을 볼 줄 알게 하시고, 그 은총이 얼마나 큰지 경이로워하고 놀라워할 줄 알게 하소서.

사랑의 등불을 켜들고, 임을 보게 하소서.

임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당신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에 깨어있게 하시고, 당신 사랑에 기름칠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29.목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예레1,17-19 마르6,17-29

 

                                              하느님 중심의 삶

                                                   “참행복”

 

“주님,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시편71,3)

 

사제생활 35년 동안 처음부터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강조될 “삶의 중심, 하느님”입니다.

어제 수도공동체 소풍은 참 풍요롭고 충만하고 유익한 날이었습니다.

저에게 원내 매일 소풍을 제외한 외부 소풍은 이날이 유일합니다.

 

이번 주는 미사주례가 아니기에 자유롭게 일기쓰듯, 기록을 남기듯 쓰는 강론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강론 주제와 일치합니다.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이런 사람만이 경쟁에 임할 자격이 있다.”<다산>

 

르네상스형 인간인 다산 어른의 말씀입니다.

르네상스형 인간이란 삶과 예술과 학문의 모든 분야에 정통한 사람”, 백과사전적 인간을 말합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의 챗gpt 세상에서 이런 인간의 출현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스스로 바로 잡은 후에 활을 쏘고, 적중하지 않더라도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돌이켜 본다.”<맹자>

 

삶의 중심을 확고히 하는 회개와 겸손의 미사전 참회의 기도는 정말 귀하고 고맙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탓이요, 제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기도문의 깊이입니다. 

 

하늘 보며 기도하며 살라고 직립인간이요, 세상 어디서나 눈들면 하늘입니다.

밤 12:30분경 어김없이 잠깨어 수도원 자비의 집 본원 숙소 현관문을 열자 마자

눈들어 헤아리는 하늘의 별들입니다.

 

이어 집무실에 들어와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 만세칠창입니다.

아주 오래 전 “땅의 행복”이란 시가 고맙게 떠올랐습니다.

 

“땅의 행복은 밤마다 누워 

 하늘 바라보며

 별들 가득 담아 두었다가

 꽃들로 피어내는 것이다.”<2001.8.20.>

 

이래서 하늘에는 별들이요 땅에는 꽃들이라 믿습니다.

또 아주 오래전 41세 늦은 나이에 사제서품되어 신림본당(지금은 서원동본당으로 바뀜)에서 첫미사,

“사람이 되는 길” 강론시 마지막 인용했던 <김준태>의 시가 반갑게 떠올라 나눕니다.

 

“하늘을 보면서 삽시다

 땅 바닥을 보면서 삽시다

 눈이 내리면

 하늘을 보면서 삽시다

 비가 내리면

 땅 바닥을 보면서 삽시다

 하늘과 땅 바닥을 보지 않으면

 사람 몸뚱이는 총알이 돼 버립니다

 사람 몸뚱이는 짐승이 돼 버립니다

 두 눈에 하늘을 넣지 않고

 가슴에 풀꽃 향기를 넣지 않으면

 사람 목숨에는 늑대의 피가 흐르기 마련입니다

 아, 이제 우리는 제발!

 하늘을 보면서

 사람을 보면서 사람이 됩시다”<1989.7.16. 신림본당에서 첫미사날>

 

어제는 계속되는 폭염이라지만 처서와 말복이 지나 성큼 가을 문턱에 들어선 느낌의

높고 푸른 하늘에 흰구를 두둥실 뜬 그림같은 장면같았습니다.

마침 어느 자매가 이런 풍경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 줬고 제가 보낸 시와 함께 시화를 만들어 보내줘 

많은 친지들에게 소풍 선물로 나눴습니다.

역시 오래전 시입니다.

 

“하늘 보면

 마음은

 훨훨 날아

 흰구름 되네”<2006.8.>

 

푸른 하늘 품에 안겨 있는 흰구름처럼, 푸른 하늘 보면 누구나 푸른 하느님 품안에 두둥실 흰구름 되어

자유로이 노닐고 싶음은 인지상정입니다.

강화도 공동체 소풍 참 알뜰하게 보낸 하루였습니다.

세속의 푸른 하늘안에 흰구름 자유인 되어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며 떠돌며 지낸 하루였습니다. 

 

1.온수리 성공회 성당, 2.전등사, 3.동검도 채플, 4.강화도 케이블카, 5.조양방직(미술관 카폐).

6.샤브 올데이(저녁식사)

 

알게 모르게 많이 먹다보니 새벽 체중계에 올라서니 어제보다 1.4kg 늘었고 곧 감량할 계획입니다.

1906년에 건립된 대한성공회 한옥 건물이니 100년이 훨씬 넘었고 이젠 활력을 잃어

유적으로 전환되는 느낌이었지만 감회가 깊었습니다.

여기서도 100년을 훨씬 노송이 성당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전등사였는데 곳곳의 건물에서 부처님 앞에서 불경을 드리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살아 있는 절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이로웠던 것은 700년에서 250년 수령의 무수한 나무들이 전등사의 역사를 알리는 듯 했습니다.

 

사람이 오지 않으면 망합니다.

중이 절이 싫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오지 않아 중이 절을 떠난다 합니다. 

작금의 인구감소의 심각한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아무리 전통좋고 자연좋고 건물좋아도 사람이 오지 않으면 망합니다.

사찰, 수도원, 학교, 교회, 병원, 음식점,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베네딕도 수도회의 정주와 환대의 영성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검도 채플의 주인공은 조광호 신부님입니다.

신부님은 지금은 저명한 화가에 속합니다만 제 수도원 입회후 지원자 시절 담당 책임신부였습니다.

저보다 2년 연상이지만 제가 늦깎기로 입회한 까닭입니다.

 

채플의 운영도 자유로웠습니다.

물욕이 전혀 없는 신부님이 평생 벌었던 모두를 교회에 봉헌하는 마음으로 지은 채플입니다.

넓은 갯벌 넘어 마니산이 보이는 풍광좋고 전망 좋은 동검도 채플에서 공동낮기도를 바쳤고

카페에서 빵과 커피도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화의 소재는 챗gpt 였고 경악할 내용이었습니다.

인류가 망한다면 인공지능의 챗gpt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하느님 중심의 지혜로운 분별이 없으면 비인간의 괴물로 변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싶지만 인공지능에는 땀과 눈물의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가, 사랑이, 생명이,

만남이, 친교가, 감정이, 영성이 없고 인간은 날로 불통의 외롭고 외로운 홀로의 인간이 될 수뿐이 없으니

새롭게 도래할 자업자득의 지옥입니다.

 

판도라의 열린 상자처럼 남은 것은 하느님 희망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날로 새롭게 함이 챗gpt에 대한 유일한 대안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영적인 것의 선택과 영적훈련 및 습관화가 절실하다 싶었습니다.

 

강화 케일블카를 통해 산정상에 올라가 강화도 인근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59년생 이전 노인들은 내려올 때 차를 탈 수 없다기에 저를 포함 세분의 연노한 형제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왔습니다.

세월의 나이에 순응하는 것도 자기를 비운 겸손임을 배웁니다.

 

이어 조양방직 미술 카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옛 추억과 역사가 가득 담긴 낡은 건물과 고물들 즐비한 카페가 새삼 뿌리의 고향을 찾는 인간 실존을,

원시와 최첨단,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균형과 조화의 공존을 추구하는 역설적,

모순적 인간 실존을 보여준다 싶었습니다. 

 

여기서도 빵과 음료수를 먹었습니다.

곳곳에 카페였습니다.

수도원 방문하는 형제와 함께 1년 2회 정도 점심식사후는 꼭 배부른 상태에도 시간을 낭비하며

왜 굳이 카페에 가서 비싼 빵과 음료수를 먹는지 몰랐는데, 요즘의 관행이라는 것을

어제야 조신부님의 설명을 듣고 알았습니다. 

 

도대체 세상 어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가의 카페에 음식점이었습니다.

먹는 재미로 살다 싶을 정도로 정말 맛집에 먹는 것을 너무 밝히는 사람들이요,

날로 빈약해지고 척박해지는 문화, 예술, 인문, 출판 풍토가 정말 우려스러웠습니다.

이 먹는 돈으로 책을 사 본다면, 불우한 문화 예술가들을 돕는 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많이 생각했습니다. 

 

너무 물질적인 식욕, 성욕, 물욕 추구의 삶에 날로 빈약해지는 영성과 날로 쇠퇴하는 정신문화 풍토는

인류사회를 낙관할 수 없게 합니다.

죄도 많은 세상에 정신 질환은 일상적인 현실이 되었습니다.

정말 쓸만한 사람들이 날로 사라져가는, 서사를 지닌 거목들은 없고 얄팍한 잡목들 우거진

야산같은 세상이 전개된다 싶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지옥도를 보는 듯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사람은, 제대로의 참사람은 순교자 세례자 요한뿐이요, 나머지는 사람의 탈을 쓴 괴물들입니다.

헤로디아와 그의 딸 살로메는 물론이고 예수님께 호감을 지닌 듯한 헤로데이지만 하느님 중심이 없기에

경박하고 우유부단하며 부족한 분별의 지혜로 의인 세례자 요한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광야인생여정, 하느님 중심의 성인도 있겠고 중심을 잃어 세상 것들에 중독되었을 때 괴물도, 야수도,

악마도, 폐인도 될 수 있겠습니다.

얼굴은 사람이지만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도 있듯이 축생(畜生;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의 비유)

같은 인생도 얼마나 많은지요. 

 

인면마심(人面魔心)이라는 말도 나올 듯 합니다.

저절로 불교의 윤회설을 연상하게 됩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 중심의 파스카의 삶이 얼마나 절박한지 깨닫게 합니다.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느님 중심의 일당백의 주님의 전사, 참사람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다 해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저만은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저처럼 76세 나이에 하루종일 소풍후 8:40분에 취침하여 12:30분에 일어나

01시부터 04시까지 제가 저절로 알아 강론을 쓸 수 있겠는지요?

 

이건 제 자랑이 아니라 하느님 자랑입니다. 

소풍을 통해 한 젊은 형제와는 열린 친교를 통해 한 젊은 형제와는 많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내적 오해를 해소하여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강론 끝나는 대로 다시 감사의 만세칠창을 바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참사람이 되어 살게 합니다.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시편71,5-6ㄱㄴ). 아멘.


8/30(금)[(녹) 연중 제21주간 금요일],되새김 구절 

 

1. 그 기름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고,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과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그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조재형 신부)

 

2. 오늘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을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해당되는 것이지만 내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착각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 새로운 시간은 주님께서 매일 우리에게 건네시는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아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비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매일 매일 펼쳐지는 하루하루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이 하루를 어떻게 하면 보다 알차게, 복음적으로,

주님과 이웃과 공동선을 위해 잘 사용할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깨어 있어라.”

(마태 25,13)

 

주님!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되, 신랑인 당신을 향해 깨어있게 하소서.

당신을 희망하고 기다리며, 더더욱 갈망하게 하소서.

빛 속에서 은총을 볼 줄 알게 하시고, 그 은총이 얼마나 큰지 경이로워하고 놀라워할 줄 알게 하소서.

사랑의 등불을 켜들고, 임을 보게 하소서.

임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당신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에 깨어있게 하시고, 당신 사랑에 기름칠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시편71,5-6ㄱㄴ). 아멘.(이수철 신부)


 

8/30(금)[(녹)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70일차 기도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오늘의 말·샘 기도>

 

“깨어 있어라.”

(마태 25,13)

 

주님!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되, 신랑인 당신을 향해 깨어있게 하소서.

당신을 희망하고 기다리며, 더더욱 갈망하게 하소서.

빛 속에서 은총을 볼 줄 알게 하시고, 그 은총이 얼마나 큰지 경이로워하고 놀라워할 줄 알게 하소서.

사랑의 등불을 켜들고, 임을 보게 하소서.

임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당신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에 깨어있게 하시고, 당신 사랑에 기름칠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8월30일(금) 7시55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