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9월 2일 월요일[(녹) 연중 제22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당신은 어질고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나이다.
본기도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2,1-5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 제가 당신 가르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 가르침을 묵상하나이다. ◎
○ 당신 계명은 영원히 저의 것. 그 계명 저를 원수보다 슬기롭게 하나이다. ◎
○ 저는 당신 법을 묵상하기에, 어느 스승보다 지혜롭사옵니다. ◎
○ 당신 규정을 지키기에, 어느 노인보다 현명하옵니다. ◎
○ 당신 말씀을 따르려, 온갖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렸나이다. ◎
○ 당신이 저를 가르치셨기에, 당신 법규에서 벗어나지 않았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드리는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이 제사로 거행하는 구원의 신비가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
<또는>
마태 5,9-10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주님의 식탁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성사의 힘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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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성전 건축 비용 마련이었다고 합니다. 댈러스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교우들과 댈러스 교구 주교님이 한국을 방문하였고, 김수환 추기경님에게 추기경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하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성전 건축 비용 마련과 더불어 지역 사회의 복음화를 위해서 ‘김수환 추기경 배’ 골프대회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매년 골프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고 합니다. 교우는 물론, 교우가 아닌 분들도 골프대회에 참여하였고,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진 행사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지난 2월에 제가 부임했을 때, 교우들은 김수환 추기경 배 골프대회를 이야기했습니다. 여러 경로로 알아본 결과 주일에는 가능하지 않고, 평일에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려와 걱정과 달리 평일에 골프대회를 개회함에도 160명이 넘는 분이 신청했습니다. 댈러스, 휴스턴, 포트워스, 오스틴에서 신부님과 교우들이 신청하였고, 교우가 아닌 분들도 신청하였습니다. 운동을 통해서 교우들이 친선을 도모하고, 교우가 아닌 분들에게는 가톨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봉사해 주신 준비위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아름다운 기억이 있습니다. 2001년, 제가 적성 본당 신부로 있을 때입니다. 적성 본당은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이 군대에 있을 때 다니던 공소였습니다. 당시 오웅진 군인은 김수환 추기경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추기경님께 공소 건물을 새로 신축하겠다고 하였고, 추기경님께서 후원금을 주셨다고 합니다. 오웅진 군인은 추기경님의 격려금을 바탕으로 땀과 눈물로 공소건물을 세웠다고 합니다. 제가 1999년에 부임했을 때, 그 공소 건물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새로 성전을 지었고, 공소건물은 오웅진 신부님이 창설한 꽃동네 수녀님이 머무는 수녀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김수환 추기경님께 2001년 대림특강을 부탁하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대림특강과 미사를 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날은 2001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적성 성당이 서울대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이었기에 기꺼이 오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동네 입구에 현수막도 걸었습니다. 교우들은 장단의 콩을 갈아서 두부를 만들었고, 임진강의 꽃게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본당 교우들 뿐 아니나, 인근 지역의 부대에서 군인들도 왔고, 지역의 주민들도 왔고, 문산과 법원리 신부님도 왔습니다. 23년 전에 대림특강을 해 주셨던 추기경님이 이제 ‘김수환 추기경 배’ 골프대회의 이름으로 저와 함께 해 주십니다. 천상에 계시는 추기경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좋은 결과를 먼저 찾았다면 예수님께서도 포기하셨을지 모릅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사사건건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위험한 선동 꾼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와 희생보다는 영광의 자리에서 얻을 높은 자리만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좋은 생각을 먼저 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눈 먼 이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생각은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를 비롯해서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 신학과 교리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수많은 성인과 성녀들은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전에 먼저 좋은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4,16-30
진정 중요한 회복은 영적인 시력의 회복입니다!
안식일을 맞아 당신의 고향 나자렛 회당으로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펼치시며
당신에게 해당되는 구절을 장엄하게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히십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외아들이자 메시아임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파견되신 이유도 분명히 밝히십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우리 인간들의 위로자요 해방자, 구원자가 되기 위해 오셨음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양한 속박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해방자로 오셨다는 말씀에
참으로 큰 위로와 기쁨을 얻습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다양한 사슬에 묶여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무거운 죄의 사슬, 아무리 노력해도 호전되지 않는 영혼의 병,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이라는 굴레...
이토록 오랜 노예 생활과 유배 생활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의 해방자로 오셨다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또 얼마나 반가운 말씀인지요?
육체적으로 눈먼 이들의 시력을 되돌려주시는 것은 일종의 표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 중요한 회복은 영적인 시력의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정신의 눈 멈, 본질적인 것, 특히 하느님의 빛으로부터 멀어진 영혼의 암흑으로부터의 회복은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두운 이 세상에 찬란한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이제 우리 인간 이성의 빛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이성의 빛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빛을 통해 더이상 어두워지지 않을 참된 광명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성의 빛(lumen rationis)은 계시의 빛(lumen revelationis)으로 변형되고
드디어는 영광의 빛(lumen gloriae)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 낭독이 끝나고 예수님께서는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말씀 한마디를 덧붙이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명료한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경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그런 말씀이 흘러나온 것에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구원의 기쁜 소식에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더니 여기저기서 불신과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목소리가 이것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해버린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자렛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잔뜩 기대했을 것입니다. 메시아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며 순식간에 자신들의 처지를
180도 뒤바꿔주실 분으로 기대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지상적 번영이나 물질적인 부, 강력한 정치력,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사실 메시아를 통해 기대했던 것은 빵, 기적, 권세,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력히 요구하신 것은 회개와 새 생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간단한 예수님의 요구조차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완고해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자신들의 눈앞까지 다가온 구원을 발로 차버리는, 그래서 그 구원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차지가 되고 마는 불행을 선택한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오늘 우리도 완고함과 고집으로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 않는지>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고 갈릴래아로 와 당신이 자란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시고, 당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시면서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18-19)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선언하십니다.
이 희년선포는 한 마디로, ‘에덴’의 회복, 곧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본래의 신원인 하느님의 자녀로 돌아가게 하시며, 해방을 실현하십니다.
그것은 단지 빚진 이가 탕감 받거나, 눈먼 이가 보게 되거나, 혹은 억압과 묶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가난한 이가 기쁜 소식을 듣거나,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해방인 것이 아니라, 빛으로 나아갈 때라야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리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갈 때라야 진정 자유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방이 선포되고 빛이 왔건만, 고향 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배척하고 죽이려고 고을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죽이려는 그들의 음모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습니다.(루카 4,30)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언덕 위 벼랑에까지 그분을 떨어뜨리려 내몰아갔지만, 그들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시는 그분을 그 누구도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수난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신이 수난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당신이 고난을 받으실 때가 아직 오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때가 되면 당신께서는 수난을 스스로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강제로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몸소 당신을 내어주실 것입니다.
그야말로 당신께서는 원하시면 붙잡히시고, 또한 원하시면 빠져나가십니다(요한 18,7-8).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실 때는 잡혀가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원하실 때에는 스스로 잡혀 나무에 달리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완고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거역하였습니다.
혹 오늘 우리도 완고함과 고집으로 형제를 불신하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주님!
오늘 저희가 결코 당신을 배척하지 않게 하소서!
제 형제를 배척하는 바람에 당신을 배척해버리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루카 4,21)
주님!
말씀의 영으로 저를 도유하소서!
제 가슴이 뜨거워지고, 제 입에 당신 말씀을 담게 하소서!
제 발 인도하시고, 제 삶이 당신 말씀을 떠받들게 하소서!
들은 바를 살게 하시어, 듣는 가운데 당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9.1.<순교자 성월>
연중 제22주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4,1-2.6-8 야고1,17-18.21ㄴ-22,27 마르7,1-8.14-15, 21-23
하느님 중심의 참 좋은 사람들
“경청, 실천, 순수”
“주여, 당신 장막에 묵을 이 누구오리까
거룩한 당신 산에 살을 이 누구오리까
허물 없이 살아가며 의를 하는 이,
마음 속에 진리를 품은 사람이외다.”(시편15,1-2)
오늘 화답송 시편이 누가 주님 장막에 묵을 수 있을지, 주님 거룩한 산에서 지낼수 있을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게 합니다.
“왜 전부 일본만 가노,
제발 좀 오세요.
심지어 동해도 폭망, 거품이 빠져도 이정도까지!”
새벽 열어본 한 동영상 제목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일본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건 국수적인 사고가 아니라 애국심의 발로입니다.
우리의 관광지를 이용해 주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작금의 의료대란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호소도 절절합니다.
“어느 여당 인사의 말이다, 국가를 이루는 3요소가 ‘국민, 주권, 영토’인데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주권이 없었기에 나라가 없었으므로, 8월15일은 건국절이란다.
인용하기에도 민망한 말이라 잠시 주저해 보지만 그럼 지금은 국민이 있는가 묻고 싶다.
국민이 없는 의료정책을 펼치는 이 시국에 과연 나라가 존재하는가?”
오늘은 9월 첫날, 달력을 넘기는 순간 참 많은 과제를 부여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참사람되어 사는 보람과 기쁨을 충만히 느끼는 9월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 가을의 도래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10월, 묵주기도 성월, 11월, 위령성월에 이어지는 대림시기,
참으로 풍요로운 영적수확을 위해 부지런히 성실히 치열히 살아야 할 날들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은 특별히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 103위와 순교 복자 124위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굳은 믿음을 본받고자 하는 달이요, 특히 순교 성지 순례를 권하고 싶습니다.
순교적 삶에 항구하는 것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자랑스런 의무이기도 합니다.
제 고향집 충남 예산의 구암리 카페 인근의 솔뫼성지, 해미성지, 신리성지, 그리고 수덕사와
윤봉길 의사 생가와 추사 김정희 생가가 볼만합니다.
교황님의 9월의 기도지향도 절박합니다.
“우리 각자는 지구와 환경재해와 기후변화의 희생자들의 울부짖음을 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세상의 보호를 위해 온갖 개인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도지향입니다.
또 오늘 9월1일 첫날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기도 합니다.
열정에 넘치는 교황님의 담화문 극히 일부만 소개합니다.
“피조물과 함께 희망하고 행동하십시오.
피조물이 진통을 겪으며 탄식하는 가운데 기다리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역사속에서 우리 지상의 삶만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주인이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사랑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우리의 미래,
지극히 복된 종말, 평화 가득한 낙원인 지구가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자 예수님 안에서 참으로 성부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거룩한 삶을 삽시다.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에, 우리 삶은 하느님을 위한, 인류를 위한, 피조물과 함께
피조물을 위한 사랑의 시가, 노래가 될 수 있고, 거룩함으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우리에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과제가 부여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랑의 시로, 사랑의 노래로 사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랑하는 하느님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부를 때 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 있느냐?”
그대로 오늘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이 더욱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도록 우리를 북돋웁니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도 안되고 빼서도 안된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모세에 이어 야고보 사도의 거듭된 경청과 실천의 충고가 참 은혜롭습니다.
우리의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단숨에 읽혀지는 금과옥조의 말씀입니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빛의 아버지께서 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의 본질은 진리의 말씀 입니다.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과 하나될 때 참사람이 될 수 있고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없는 신심을 지니고 살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도
이런 신심의 은총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오늘 몇 현자의 말씀입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기보다 남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도록 마음을 지키라.”<다산>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그 이유를 살피고, 그가 만족하는 바를 관찰하라.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수 있겠는가? 어떻게 숨길수 있겠는가?”<논어>
“‘존재하는 것은 나타내는 것이다.’ 히브리 철학자이자 신비가 아브라함 헤쉘의 말이다.
한 인간의 존재는 본인이 알든 모르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그의 언행이 그대로 어김없는 자기증언인 것이다.”<어느현자>
답은 단 하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만든 조상들의 전통이나 관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이요 말씀입니다.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오물통과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다음 어리석은 무지의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의 위선자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하느님을 참되이 섬기는 것은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 심어진 진리의 말씀을
공손이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부단한 말씀을 통한 정화은총이, 성화은총이 마음을 순수하게 합니다.
주님의 오늘 복음 말씀이 참 통쾌합니다.
우리를 더럽히는 것들에 대해 번호도 달아봤습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1.나쁜 생각들, 2.불륜, 3.도둑질, 4.살인, 5.간음, 6.탐욕, 7.악의,
8.사기, 9.방탕, 10.시기, 11.중상, 12.교만, 13.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오물통같은 마음이요 이런 오물들이 배설될 때 세상은 악취 진동하는 오물통같은 세상이 됩니다.
이런 주님의 진리 말씀을 깨달아 실천해 가면서 날로 정화되어 순수해지는 마음에,
자유로워지는 마음입니다.
세상은 우리 마음의 축소판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영어 말마디입니다.
“As you are, so is the world(네 정도만큼의 세상이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나를 탓해야 합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그만큼 변합니다.
참으로 부단한 하느님 중심의 말씀공부와 실천의 생활화가 절박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물통 세상을 탓할게 아니라 오물통 마음의 정화와 성화가 우선이요,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마음의 정화와 성화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아멘.
9/2(월)[(녹)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조재형 신부)
2. 어두운 이 세상에 찬란한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이제 우리 인간 이성의 빛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이성의 빛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빛을 통해 더이상 어두워지지 않을 참된 광명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성의 빛(lumen rationis)은 계시의 빛(lumen revelationis)으로 변형되고
드디어는 영광의 빛(lumen gloriae)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루카 4,21)
주님!
말씀의 영으로 저를 도유하소서!
제 가슴이 뜨거워지고, 제 입에 당신 말씀을 담게 하소서!
제 발 인도하시고, 제 삶이 당신 말씀을 떠받들게 하소서!
들은 바를 살게 하시어, 듣는 가운데 당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세상은 우리 마음의 축소판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영어 말마디입니다.
“As you are, so is the world(네 정도만큼의 세상이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나를 탓해야 합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그만큼 변합니다.
참으로 부단한 하느님 중심의 말씀공부와 실천의 생활화가 절박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수철 신부)
9/2(월)[(녹)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73일차 기도
복음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루카 4,21)
주님!
말씀의 영으로 저를 도유하소서!
제 가슴이 뜨거워지고, 제 입에 당신 말씀을 담게 하소서!
제 발 인도하시고, 제 삶이 당신 말씀을 떠받들게 하소서!
들은 바를 살게 하시어, 듣는 가운데 당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9월2일(월) 5시3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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