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9월 12일 목요일[(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당신은 의로우시고 당신 법규는 바르옵니다. 당신 종에게 자애를 베푸소서.
본기도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8,1ㄷ-7.11-13
형제 여러분, 1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3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하늘에도 땅에도 이른바 신들이 있다 하지만
─ 과연 신도 많고 주님도 많습니다만 ─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7 그렇지만 누구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11 그래서 약한 그 사람은 그대의 지식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12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 당신은 제 오장육부를 만드시고, 어미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나이다.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당신 작품들은 놀랍기만 하옵니다. ◎
○ 하느님, 저를 샅샅이 보시고 제 마음을 알아주소서. 저를 꿰뚫어 보시고 제 생각을 알아주소서. 저의 길이 굽었는지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평화를 주셨으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온 마음으로 이 신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또는>
요한 8,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믿는 이들을 생명의 말씀과 천상 성사로 기르시고 새롭게 하시니
사랑하시는 성자의 크신 은혜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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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아버지는 약주를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금주를 하신 건 제가 고등학생 때인 1979년입니다. 형제 중에 술을 잘못 배운 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며,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금주가 형에게 영향을 준 건 아니지만, 저는 아버지의 단호한 결심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성서 필사를 하였습니다. 자식이 사제가 된다는데 아버지로서 성서를 가까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성서 필사를 하였습니다. 나중에 제가 사제서품 받았을 때, 아버지는 저의 서품 성구를 족자에 써 주었습니다. 제가 받은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사제인 제가 책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신 아버지는 늘 책을 읽으셨습니다. 제게도 책을 가까이 하면 좋겠다는 걸,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은 헌팅턴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는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밝은 모습으로 그토록 원하신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장례미사 강론 중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읽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아름다웠다고 말하면서 하느님께로 갔습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아버지와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자비로운 아버지처럼 형을 대하였습니다. 형이 집을 나가면 어머니는 늘 따뜻한 밥을 한 공기 남겨 놓았습니다. 먼 길에 지친 형이, 혹시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을 형이 오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늘 기다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기일을 꼭 챙겼습니다. 연미사를 신청하였고, 연도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본인의 건강보다는 자식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음력이라 생일을 기억하기 어려웠을 텐데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식구들의 생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생일을 제대로 기억 못했지만, 어머니는 저의 생일을 챙겨 주었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었을 때입니다. 어머니는 인사이동이 되면 저보다 먼저 제가 가야 할 성당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아들 사제가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었습니다. 제가 시골 성당의 본당 신부로 갔을 때입니다. 어머니는 저의 부탁을 받고, 3년 동안 저와 함께 지냈습니다. 사제관 일도 하였고, 예비자 교리도 하였고, 환자 방문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은 복자회 재속회 옷을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머니의 장례미사는 갈 수 없었지만, 추기경님께서 어머니의 장례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낌없는 사랑을 남겨 주고,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아버지와 함께 천상에서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선택받는 또 다른 길을 이야기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라고 하십니다.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이 길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힘든 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길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6,27-38
천상적 사랑, 참사랑을 요구하시는 주님!
너무나 억울하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들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피정 센터를 찾은 분들 가운데 참으로 많은 분들이 그런 사연 한 보따리를 안고 오십니다.
그를 떠나 보낸 이후 내 삶이 내 삶이 아닌 그분들 바라보며 너무 환하게 웃고 다녀도 안 되겠구나,
너무 행복한 표정 지어도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가 없는 이 세상,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분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를 불시에 떠나보내고 난 후 사는게 사는게 아닌 분들, 차라리 내가 그를 대신해서 먼저 갔으면 하는 마음에,
밥숫가락 뜨는 것조차 송구스런 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게 한 그 웬수는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요?
참으로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복음의 가르침,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대목을 접할 때 마다 화딱지가 하늘 끝까지 솟구치니 참으로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는 말씀은
너무나 기가 막힌 말씀이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막막할 정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고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원수는 보통 어떤 사람을 두고 원수라고 합니까?
국어 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나 자기 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
결국 원수는 나를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트린 사람,
잘 나가던 내 인생을 끝장나게 만든 사람, 내 가정을 산산조각나게 만든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라니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적당한 선에서의 양보,너그러운 관용,
신사다움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적극적인 천상적 사랑, 참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결국 바보처럼 살라는 말씀,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이 세상을 초월하라는 말씀,더 이상 이 세상 것들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요청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넘어서야 가능합니다.
자아를 완전히 초월해야만 가능합니다.
협소한 인간적 관점, 인간의 시선을 벗어나 하느님 눈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마음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적당히 한걸음이 아니라 크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인간을 넘어 하느님처럼 되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인성을 극복하고 신성을 획득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요원해 보이겠지만 언젠가 세월이 좀 더 흐르고, 우리의 시야가 좀 더 광대해지고,
우리 안에서 신성이 점점 성장해가는 어느 순간, 불가능해보이던 예수님의 권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가 인간이지만 우리 인간 안에 하느님의 성령께서 힘차게 활동하실 때,
우리 인간은 비루함에서 위대함으로 이기적 성향에서 이타적 성향으로,
인간적 사랑에서 신적 사랑으로 나아가 마침내 기꺼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그날, 우리 삶 안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의 거룩한 형상을 우리 안에 심어놓으셨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잘했든 잘못했든, 나를 비난하고 미워하거나 내 뺌을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하나요?
만약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를 멈춰버린다면 그것은 중책이요, 그들이 한 대로 되돌려주거나 보복한다면 그것은 하책이요, 악을 선으로 갚는다면 그것은 상책입니다.
우리는 어떠한지요?
상책을 행하고 있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을 선언하신 뒤에 제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윤리를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하느님의 자비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이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루카 6,31)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대상을 가리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자비를 받았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자비를 이미 받아서 가진 존재이기에, 그것을 내어줄 수가 있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의 거룩한 형상을 우리 안에 심어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자비로운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형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처럼 자비는 우리가 하느님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자비의 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것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동사로 표현하십니다.
“심판하지 말라.”, “단죄하지 말라.” “용서하라.”, “주어라.”
앞의 둘은 행하지 말라는 것이요, 뒤의 둘은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앞의 둘을 행하게 되면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그저 그 자리에 머물 것이요, 뒤의 것을 행하게 되면 우리 안에 심어준 하느님의 형상으로 돌아가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용서한 것은 아니지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은 이미 심판과 단죄를 벗어나게 해 줍니다.
그것은 우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하느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곧 타인들 앞에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하느님 앞에 자신을 다소곳이 내려놓고 엎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미 우리 안에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가 울려 퍼져 타인에게 흘러들게 될 것입니다.
이미 자신 안에 들어온 용서가 울려 퍼져 타인을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주님!
당신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자비로운 자 되게 하소서!
제 안에 심어진 자비가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제 안에서 자비가 흘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자비 안에 심어 둔 당신의 거룩한 형상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11.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코린7,25-31 루카6,20-26
어떻게 살 것인가?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
교황님의 동티모르에서의 두 번째 날인 9월10일 어제는 동티므로 신자들에게 참 풍요로운 날이었습니다.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은 인구 134만에 98%가 가톨릭신자들이며 어제는 인구 절반에 해당되는 60만명이
야외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2002년 독립했으며 인구의 평균 연령은 20세라니 정말 젊은 국가입니다.
파푸아뉴기니에 이은 동티모르, 작고 가난한 나라지만 신자들은 순수한 복음적 삶을 살고 있음을 봅니다.
특히 교황님의 방문으로 가톨릭 젊은이들의 넘치는 기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제 교황님이 곳곳에서 주신 말씀 제목도 은혜로워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복음의 중심은 지구의 변두리 여기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작음’의 소중함을 보여 줍니다.”
“복음의 중심에 있는 나라, 동티모르입니다.”
“우리에게 배려하고 배려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우쳐준 어린이들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문화와 역사를 바꾸려는 악어를 조심하십시오.”
“전통을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의 문화가 되도록 하십시오.”
파푸아뉴기니 신자들과 동티모르 신자들보다 교황님이 이들에게 받은 복음적 삶과 가치에 대한 충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싶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생한 복음적 삶에 대한 체험은 교황님의 삶에 신선한 활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참으로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은 가톨릭 신자들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어떻게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을,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복음의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이 답을 줍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도 그렇게 대하였다.”
참으로 하늘 나라에,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있기에 가난중에도, 굶주림중에도, 울음중에도,
박해중에도 품위를 지키며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을 내다보며 기뻐하고 뛰놀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 욕구와 탐욕을 초월한 참으로 자유롭고 품위있는 고결한 복음적 삶, 이런 삶자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행복선언에 이은 불행선언은 저주도 아니고 형벌의 선고도 아니고, 하나의 탄식이자 경고입니다.
회개하라는 엄한 부르심입니다.
지금 부유한 이들은 자만, 자족하기에 앞서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굶주린 이들과
나누고, 지금 웃는 사람들은 우는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하라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삶이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저주는 축복이 될 수 있고, 품위있고 자유로운 고결한 복음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현실에 압도되지 않고 참으로 자유롭고 품위있는 복음적 삶에 바오로 사도가 결정적 답을 줍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태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없어도 있는 것처럼, 이것은 위선이 아니라 고도로 자기를 절제하고 지키는,
품위있고 자유로운 삶의 절정입니다.
세속적인 현실에 무관심하라는게 아니라 깨어 살라는 것이며, 세상에 빠져 살지 말고 자본주의에 역행하여
초연한 이탈의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소유의 쾌락이 아니라 자발적 가난을, 존재의 기쁨을 살라는 것입니다.
늘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기후위기도 해결되어 지구도 자연도 사람도 살 수 있고 희망의 미래도 가능할 것입니다.
녹색평론 2024년 가을호 머리말 끝부분을 나눕니다.
“다른 길이 없다. 에너지 소비를 절대적으로 줄이고, 경제성장을 그만두고, 인구의 과반수가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무기를 버리지 않고는 인류는 미래를 맞을 수 없다.
이 혁명은 민주주의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모든 것이 거꾸로 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꿈꾸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태도이다.
체념해서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하느님이 궁극의 미래이자 희망이지만, 인간의 자발적 협조가 절대적입니다.
바로 자발적 가난과 절제,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의 회복으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함이
바로 진정한 영적혁명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언젠가 이런 자유롭고 품위있는 삶을 꿈꾸며 써놓은 시가 있어 나눕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밤 하늘 초롱초롱한 별빛 영혼으로
사는 이,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되어 님의 품안에
노니는 이,
떠오르는 태양 황홀한 사랑 동녘 향해 마냥 걷다가
사라진 이,
첫눈 내린 하얀길 마냥 걷다가 사라져
하얀 그리움이 된 이,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1999.2.28.> 아멘.
9/12(목) [(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라고 하십니다.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이 길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힘든 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길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적당히 한걸음이 아니라 크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인간을 넘어 하느님처럼 되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인성을 극복하고 신성을 획득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요원해 보이겠지만 언젠가 세월이 좀 더 흐르고, 우리의 시야가 좀 더 광대해지고,
우리 안에서 신성이 점점 성장해가는 어느 순간, 불가능해보이던 예수님의 권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가 인간이지만 우리 인간 안에 하느님의 성령께서 힘차게 활동하실 때,
우리 인간은 비루함에서 위대함으로 이기적 성향에서 이타적 성향으로,
인간적 사랑에서 신적 사랑으로 나아가 마침내 기꺼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그날, 우리 삶 안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주님!
당신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자비로운 자 되게 하소서!
제 안에 심어진 자비가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제 안에서 자비가 흘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자비 안에 심어 둔 당신의 거룩한 형상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도 그렇게 대하였다(이수철 신부)
9/12(목) [(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83일차 기도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주님!
당신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자비로운 자 되게 하소서!
제 안에 심어진 자비가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제 안에서 자비가 흘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자비 안에 심어 둔 당신의 거룩한 형상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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