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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9월 14일 토요일[(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9월 14일 토요일[(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몸소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전승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의 노력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찾게 되었고, 황제는 이를 기념하고자 335년 무렵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 곁에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다. 그 뒤로 십자가 경배는 널리 전파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축일이 9월 14일로 고정되었다.

입당송

갈라 6,14 참조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외아드님의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저희가 지상에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깨닫고
천상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21,4ㄴ-9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6-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6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8(77),1-2.34-35.36-37.38(◎ 7ㄴ)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 내 백성아,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 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입을 열어 격언을,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언을 말하리라. ◎
○ 죽이시던 그때서야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다시 돌아와, 하느님이 그들의 바위이심을 기억하였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
○ 그 입으로 그분을 속이고, 혀로는 그분께 거짓말을 하였네. 그분께 마음을 굳건히 두지 않고, 그분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네. ◎
○ 그분은 자비로우시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멸망시키지 않으셨네. 당신 분노를 거듭 돌이키시고, 결코 진노를 터뜨리지 않으셨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성자께서 십자가 제대에서 온 세상의 죄를 없애 주셨으니
이 거룩한 제사로 저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5 :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승리(9월 14일)>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 나무에서 인류 구원을 이룩하시어
죽음이 시작된 거기에서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패배한 인간을 나무에서 승리하게 하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이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고
주품천사들이 흠숭하며
권품천사들이 두려워하고
하늘 위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복된 세라핌이
다 함께 예배하며 환호하오니
저희도 그들과 소리를 모아 삼가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또는>
<주님 수난 감사송 1 : 십자가의 힘>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성자의 수난으로
온 세상이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미하게 되었으니
십자가의 무궁한 힘으로
성자의 권능과 세상 심판이 드러났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2,3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생명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저희가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성 십자가 현양.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십자가 현양 축일

 

샤워기의 밸브가 헛돌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밸브에 틈이 벌어졌습니다. 틈이 벌어졌으니 조이는 힘이 약해졌고, 그래서 헛돌았습니다. 더 벌어지기 전에 새로운 밸브를 구매해서 교체했습니다. 새롭게 밸브를 교체하니 잘 열리고 잠겼습니다. 요즘은 자동차도 자동차의 상태를 화면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엔진오일의 교체 시기도 알려주고, 타이어 압력 상태도 알려주고, 자동차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교구에서 1년에 한 번은 건강검진을 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위내시경과 장내시경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성모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미국에 와서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내년에 한국 가면 건강검진을 한번 받아보려고 합니다. 건강검진의 목적은 혹시 모를 몸의 이상을 점검하는 겁니다. 이상이 있다면 더 나빠지기 전에 조처하는 겁니다. 이상이 없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음 일 년을 기다리는 겁니다. 신앙인은 양심 성찰을 통하여 신앙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정해진 시간에 하는지, 선행은 하고 있는지, 영적 독서는 하고 있는지, 말씀은 가까이하고 있는지, 미사 참례는 잘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이 축일은 40일 전에 있었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과 함께 묵상하면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타볼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을 대표하는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완성하는 분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거룩하게 빛났고, 예수님의 옷도 하얗게 빛났습니다. 하늘에서 '이는 내 마음에 드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여기에 천막 3개를 만들겠습니다. 하나는 주님, 다른 두 개는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만들겠습니다.' 베드로는 거룩한 변모의 의미가 영광과 기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율법학자와 대사제들에게 끌려가서 고난을 받아야 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없는 영광을 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변모는, 하느님의 영광은 사람의 일을 통해서는 성취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은총으로 주어지는 겁니다. 하느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십자가는 구원과 부활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미사의 정점인 성찬의 전례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신앙의 신비여!” 교우들은 사제의 선포에 이렇게 응답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며 부활을 굳게 믿나이다.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영원히 경배 받으소서.” 십자가의 길 기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정점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씨 뿌리지 않고 열매 맺으려는 욕심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사막의 신기루일 뿐입니다.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십자가의 수직면은 하느님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수평면은 사람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사람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십자가 현양축일을 지내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갈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복음요한 3,13-17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이마에 깊이 새겨져 있는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십자가라는 화두로 묵상을 해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 없는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꿈꾸지만, 우리네 인간 현실 안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너나할 것 없이 각자 등에는 저마다의 십자가 하나씩 짊어지고 때로 헐떡이며, 때로 용기를 내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마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기쁨과 슬픔, 고통과 행복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돌아보니 행복과 불행이 끝도 없이 교차해온 나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영광과 승리로 가득했던 출애굽은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즉시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척박한 사막과 기약 없는 대규모 공동체 생활, 배고픔과 갈증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민수 21,5)

 

보십시오. 우리네 지상 인생 여정은 그 누구든 어쩔 수 없습니다.

결핍과 고통 투성이입니다.

근원적 갈증과 배고픔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너그러운 마음이요, 고개를 들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관대함입니다.

 

가끔 기가 막힌 이웃을 만납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꼬인 인생이 다 있는지?

저런 상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무리 둘러봐도 사방이 높은 벽으로 가로막힌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분들 앞에

뭐라 위로의 말을 드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면, 주님께 매달리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뭔가 상황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삶은 여전히 거기서 거긴 분들 앞에 그저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잘 되기만을 바라시는 분이요 우리를 축복하는 하느님이라 믿었는데,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요, 십자가 투성이인 우리네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제게는 하나의 큰 숙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답을 가르쳐 주시더군요. 우리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만사형통, 승승장구,

지속적인 현세 축복을 외치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의 지상에서의 삶 전체를 통해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추종의 대상인 예수님부터 고난의 인간, 배척당하는 인간,

십자가 죽음을 넘어서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타고 나셨음을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의 운명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분처럼 이 세상에서 고난을 겪고, 때로 배척을 받고, 때로 죽음과도 같은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부활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교는 고통과 십자가 없는 부활을 절대로 외쳐서는 안 됩니다.

희생과 시련은 거부하고 달콤함과 안락함만을 보장하는 교회여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고통과 십자가를 소중히 여기며 고통과 십자가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지속적으로 찾아 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왕이면 져야 할 십자가라면 기꺼이, 관대하게 지고 갈 때 생기는 한 가지 특별한 현상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가볍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십자가가 십자가가 아니라 기쁨이요 은총이요 축복으로 변화되는 느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신 ‘하느님 사랑’이 우리의 자랑>


오늘은 ‘십자가’에서 세 가지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첫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선 ‘죄인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라야 진정한 의미에서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임을 인정하기보다 의인임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지는 일은 억울하고 원망스런 일이 되고 맙니다. 

부당한 처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오히려 십자가를 피하고 도피하고 있는 것이라 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먼저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용서해야 할 존재’이기에 앞서,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비록 죄가 없다할지라도,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죄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쓸 줄을 아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받고, 곡해 받고, 누명쓰는 일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바로 그러한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를 ‘위하여’ 자신이 뒤집어써 주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구원되기를 ‘위하여 자신을 건네 주는 일’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죽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죽음 당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일이요,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일이 아니라 물러나는 일입니다.

승리하는 일이 아니라 패배당하는 일이요,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이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하게 당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는, 틀려서가 아니라 옳으면서도 지는 일이요, 힘 있으면서도 눌리는 일입니다. 

셋째, ‘십자가’는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건네주는 곳’입니다.

 

그것을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가 잘 되기를 바라며 하는 일이요, 그가 구원되기를 희망하여 자신을 건네주는 일이요,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그분을 향하여 자신을 바치는 봉헌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승리요, 구원이 됩니다.

곧 십자가는 죽음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죽이고 진정으로 참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제 자신이 덧붙여 본다면, ‘십자가’는 ‘벌어지는 일을 수락하는 일’이라고 여겨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는 우리의 삶은 그 어떤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내가 만들지 않아도, 아니, 만들지 않은 일들이 마구 벌어져 다그쳐옵니다.

 

오히려 만들고 조작하고 계획했던 일들은 무색하리만큼 우리를 비켜갑니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휩싸고 돕니다.

 

이제 그것들을 ‘사랑으로’ 마주하고 끌어안고 응답하는 일이 제게는 ‘십자가’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서> 58장 7절에 나오는 ‘성소 식별’의 기준에 대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무력함이지만, 구원을 이루는 전능함이 됩니다.

낮아짐으로써 진정 높아지고, 패배이지만 사랑의 승리가 됩니다.

지면서도 쳐부수고, 승리의 깃발이 되고, 영광의 월계관이 됩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의 표상이요, 완전한 승리의 표상이요, 현양이며 영광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 삶의 의미가 되고, 우리 삶을 전환시키는 혁명이 됩니다. 

이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신 ‘하느님 사랑’이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갈라 6,14)

오늘, ‘십자가’를 드높여 이 고귀한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느님의 사랑’을 찬미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한 3,13)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고,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하여,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13.금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349-407) 기념일

                         1코린9,16-22ㄴ-27 루카6,39-42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뿐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시편84,5)

 

화답송 시편이 좋아 인용합니다.

어제 저를 온종일 행복하게 했던 "꽃"이란 깨달음의 짧은 자작 지혜시도 나눕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시대의 현자, 참으로 지혜로운 지도자 교황님의 어제 싱가포르에서의 일정도 감동적입니다.

오늘은 주로 지혜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사랑과 함께 가는 지혜입니다.

교황 홈페이지 전부를 채우고 있는 싱가포르에서의 소식이요 몇 기사 제목을 나눕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양한 믿음의 사람들을 한가족처럼 느끼게 만든다.”

“교황은 ‘싱가포르는 인간의 성취할 수 모든 것의 반짝이는 빛이다.’말했다.”

“교황은 ‘지도자들은 모든 백성과 나라들의 공동선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미사시, ‘사랑은 복음의 중심이다.’라 말했다.”

 

교황님의 지혜가 반짝이는 내용들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지혜를 상기시킵니다.

 

“어제를 돌아본다고 해서 지식이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는 깨달을 수 있다.”<다산>

“옛일을 거울삼아 오늘 일을 본다면 풀지 못할 어려운 일이 없다.”<명심보감>

 

회개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참된 회개를 통해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요, 바로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참으로 무지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살고 싶다면 하느님의 지혜인 주님과 친교를 깊이하면 됩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오늘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요,

오늘 기념하는 교회학자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입니다.

성 요한 금구는 349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났으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밑에서 자라나며

독실한 신앙을 물려 받습니다.

교회학자 기념일 마다 큰 소리로 되뇌는 성무일도 초대송 후렴도 참 좋습니다.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께 어서와 조배드리세.”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과 깊은 친교로 참으로 지혜로웠던 교회학자들이었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성 아타나시오, 성 대 바실리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와 함께

동방의 4대교부에 속하며 뛰어난 설교로 황금의 입이라 하여 한자로 금구라 불리는 성인은

연설가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설교와 저술에서 구약을 약7천번, 신약을 1만1천번 인용했다니 얼마나 성경에 정통한 주님을 사랑한

주교학자인지 깨닫습니다. 

 

정말 뛰어난 주교학자에 정의의 예언자와 목자로 소박한 민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며

숱한 박해로 파란만장한 순교적 삶을 살다가, 유배중 흑해 동쪽 해안에 있는 피티우스 인근의 코마나에서

407년 9월14일 향년 60세에 선종하며 그 장면이 감동적입니다.

 

‘코마나 경당에 도착하자 요한은 하얀 의복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을 조용히 벗어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신발만 빼고 모두 바꿔 입었다.

그런 다음 요한은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성체를 모시고(여행중에 성체를 가지고 다님),

그의 삶을 요약하는 마지막 기도를 바치니 임종어가 되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서 찬미받으소서!” 이어 “아멘”이라고 말하며 성호를 그었다.’

 

얼마전 읽은 잠언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잠언9.10).

그대로 성 요한의 삶이 이를 입증하며 오늘 제1독서 코린토 전서의 바오로 사도의 다음 고백도

그의 지혜를 입증합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모든 사람의 종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고,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복음선포를 위해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끊임없는 자기훈련과 절제, 끈기, 지혜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역시 값싼 은총은 없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교회의 눈 밝은 지도자, 성 요한 금구와 바오로 사도가 바로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이 됩니다.

눈먼이가 눈먼이를 인도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주님입니다.

 

나라든 교회든 가정이든, 무지에 눈먼 인도자!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습니다.

이것은 작금의 우리가 겪는 현실입니다. 눈먼 지도자들뿐 아니라 눈먼 무지의 국민들도 참 많습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은 이들은 물론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침된 자존심은 자기고집이 아닌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부단한 회개를 통해 참나를 아는 것이 지혜와 겸손입니다.

매일 미사의 은총이 참 나를 아는 지혜와 사랑, 겸손의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주 하느님은 태양이요 방패이시니,

주님은 은총과 영광을 주시나이다.

흠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을 아끼지 않으시나이다.”(시편84,12). 아멘.


9/14(토) [(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되새김 구절

 

1.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십자가의 수직면은 하느님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수평면은 사람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사람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십자가 현양축일을 지내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갈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만사형통, 승승장구,

지속적인 현세 축복을 외치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의 지상에서의 삶 전체를 통해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추종의 대상인 예수님부터 고난의 인간, 배척당하는 인간,

십자가 죽음을 넘어서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타고 나셨음을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의 운명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분처럼 이 세상에서 고난을 겪고, 때로 배척을 받고, 때로 죽음과도 같은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부활인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한 3,13)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고,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하여,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침된 자존심은 자기고집이 아닌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부단한 회개를 통해 참나를 아는 것이 지혜와 겸손입니다.(이수철 신부)

 

9/14(토) [(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 85일차 기도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오늘의 말·샘 기도>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한 3,13)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고,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하여,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9월14일(토) 4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