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9월 10일 화요일[(녹) 연중 제23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 당신은 의로우시고 당신 법규는 바르옵니다. 당신 종에게 자애를 베푸소서.
본기도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6,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3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여러분은 교회에서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9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10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평화를 주셨으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온 마음으로 이 신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또는>
요한 8,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믿는 이들을 생명의 말씀과 천상 성사로 기르시고 새롭게 하시니
사랑하시는 성자의 크신 은혜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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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판관기 9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들은 포도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나쁜 지도자를 선택하면 피해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솝우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때 연못에 사는 개구리들은 그들 자신을 다스릴 왕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우스에게 왕을 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우스는 개구리들의 요청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통나무 하나를 던져 주었습니다. 통나무는 연못에 떨어져서 큰 소리를 냈고, 개구리들은 처음에 겁에 질려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통나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개구리들은 그것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구리들은 곧 통나무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너무나도 무기력하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우스에게 더 강력한 왕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는 제우스가 그들에게 황새를 왕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황새는 개구리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먹기 시작했고, 개구리들은 다시 제우스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제우스는 개구리들의 요청을 더 이상 들어주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나쁜 지도자를 선택하면 피해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의 역사에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말기에 백성들은 ‘동학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동학은 잘못된 조정의 폭압과 폭정을 바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많은 백성은 동학의 사상에 매료되었습니다. 탐관오리와 부패한 관리들의 부정과 불의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당시 조선 정부가 동학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부패한 관리들을 엄벌하였다면 조선은 국정을 개혁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학의 기세에 눌린 조선 정부는 외세의 힘에 의존하였습니다. 청나라에 원병을 청하였고, 일본에 원병을 청하였습니다. 일본은 청나라와 패권 전쟁에서 이긴 후에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였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었습니다.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를 삼켜버리듯이, 황새가 개구리를 잡아먹듯이, 일본은 조선을 삼켜버렸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고, 힘을 키우지 않으면 또 다른 가시나무와 황새가 우리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사제와 율법 학자들에게 잡혔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군대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코스의 귀를 자른 베드로에게 칼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칼로는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것만이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12명의 사도와 함께하셨습니다. 나의 신앙은 온전히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은 참된 내가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입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루카 6,12-19
우리는 기도 바칠 때, 온 삶과 정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지요?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파격적인 모습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료되었습니다.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에 크게 환호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그분의 적극적인 추종자로 따라나섰는데,
당시 12 사도단뿐만 아니라 72제자단도 존재했습니다.
아마도 더 많은 숫자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예수님만을 따랐습니다.
산으로 올라가셔서 밤새워 기도하신 예수님께서는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다음,
그들 가운에 12사도를 뽑으셨습니다.
초대 교회 때 이루어진 일종의 주교 서품식이 막 끝난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간택된 열두 사도, 그리고 수많은 제자들을 앞세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는 장면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평지로 내려서시니 수많은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름처럼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신 예수님께서 이윽고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이어서 은혜로운 치유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불치병에 시달리던 사람들, 영혼의 질병, 마음의 질병, 정신적 병고를 앓던 이들이 예수님을 통해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치유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사람들은 잠시나마 하느님 나라의 실체를 목격했습니다.
이 모든 배경에는 밤을 꼬박 샌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너무나 간절하고 절박해서 밤새워 기도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지금 너무 힘든 분들, 꼭 한번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이지 놀라운 은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밤샘 기도 앞에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최선책이 아니더라도 차선책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도 아니라면 지금 처한 힘겨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적어도 고통과 십자가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잔잔한 마음의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냥 기도하지 않으시고 밤샘 기도까지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어느 정도 열정과 마음이 담겨있는지요?
우리는 기도 바칠 때, 온 삶과 정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지요?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뽑혔기에 거룩하게 된 이들>
오늘 복음에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신 장면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루카 6,12-13)
이는 마치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곳, 시나이 산으로 불러올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산으로 불러올리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먼저’ 부르시고 뽑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르신 이, 뽑으신 이가 누구신가?'입니다.
‘누가’ 부르시고 뽑았는지가 그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곧 ‘부른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응답한 이의 삶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곧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이는 대통령이 부여한 일을 하며 대통령의 영광을 입은 것이고,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이는 하느님의 일을 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에게 부르심 받았고 누구에게 뽑힌 이인지를 항상 기억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시기에 앞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셨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밤 새워 기도하여 뽑은 이들은 능력 있고 자질이 뛰어난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뽑힌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그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뽑힐만한 충분한 자격이나 조건들을 갖춘 거룩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뽑힌 것이 아니라, ‘뽑혔기에 거룩해지게 된 이들’인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뽑힌 사도들은 이름 없는 무명인들이었고, 뽑힌 후에도 그다지 특별한 내력을 전해주지도 않습니다.
마치 '사도'란 모름지기 그렇게 ‘이름 없이 주님의 뜻을 위해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나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러하리라 여기면 될 일일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둥이 건물을 지탱해주고 있다면, 그 기둥을 받치고 있는 것이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초는 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그러기에 대단히 겸손하지 않으면 튼튼한 기초가 될 수가 없고, 또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교회의 기초인 사도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로 뽑혔나 봅니다.
마치 기초가 건물을 떠받들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듯이, 그들은 타인을 떠받들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신 다음,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들과 함께 세상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 나가십니다.
오늘 우리도 겸손한 자로, 예수님과 함께 세상 안에서 그분의 뜻을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루카 6,13)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 뜻의 실행이 제 양식이 되게 하시고, 제 몸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9.연중 제23주간 월요일 1코린5,1-8 루카6,6-11
아름다운 삶
“늘 새로운 시작”
“주님,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
당신이 감싸시니, 그들은 당신 안에서 기뻐하리이다.”(시편5,12ㄴ)
교황님의 파푸아뉴기니 3일째 방문 소식입니다.
파푸아뉴기니 신자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많이도 감동하신 교황님같습니다.
'아름다움(beauty)' 이란 말마디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사랑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아름다움을 퍼뜨리라.
그리스도의 복음의 아름다움의 전문가들이 되라. 사랑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
교황님의 귀한 말씀이 파푸아뉴기니 신자들은 물론 자신을 두고 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파푸아뉴기니 신자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교황님을 '위대한 마음의 사람(a man of great heart)'이라
격찬하며, 파푸아뉴기니 백성들에 대한 교황님의 사랑은 이들을 믿음안에서 더욱 결합시킬 것이라 말합니다.
사랑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랑의 하느님은 아름다움 자체입니다.
사랑할수록 아름답습니다.
이런 아름다움이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합니다.
이미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백치에서 미쉬뀐 공작의 입을 빌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 말한 적도 있습니다. ‘
아름다움’하니 성가 둘이 생각납니다.
제가 세상을 떠나 장례미사를 한다면 입당성가는 “오, 아름다워라”로 시작되는 성가 402장을,
퇴장성가는 “오, 감미로워라”로 시작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를 부탁해 놓고 싶습니다.
또 강론 대신으로 제 좌우명 자작 고백기도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를 읽어달라 부탁하고 싶습니다.
참 멋지고 아름다운 축제와 같은 장례미사가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과 세상을 위해 윗 두 성가를 자주 불러보시길 권합니다.
교황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교회의 아름다움이, 복음의 아름다움이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물론
이 기사를 읽는 사람들을 정화하는 느낌입니다.
아름다움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집니다.
제1독서 바오로의 말씀도 파스카의 삶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마음에 와닿습니다.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순결과 진실의 아름다운 삶을, 주님 파스카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미사보다 아름다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반영하는 예수님이자 교회 전례이자 성인들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후렴 역시 우리를 아름다운 삶으로 이끕니다.
“주님, 당신 정의로 저를 이끄소서.”
정의의 아름다움이여 정의의 용기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예수님의 정의와 용기가 굴절됨이 없이 그대로 표현됩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신자들의 무지를 일깨우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 감지됩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감시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상징하는 바, 온갖 근심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으로 위축되어
오그라든 마음의 우리들입니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그대로 마음이 오그라든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어지는 물음이 적대자들의 정곡을 찌르며 이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제1독서 바오로 사도가 말한 악의와 사악의 묵은 누룩의 사람들인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미 물음 안에 답이 있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사랑은 분별의 잣대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잣대로 보면 답은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들에 대한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정의와 사랑의 주님입니다.
“손을 뻗어라!”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집니다.
우리를 향하여는 “마음을 활짝 펴라!”는 말마디로 바꿔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마음과 몸은 하나입니다.
온갖 스트레스와 두려움과 불안으로 오그라든 마음이 활짝 열리고 펴질 때 저절로
몸의 치유도 뒤따를 것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오그라든 마음을 활짝 펴주시어,
‘늘 새로운 시작’에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주께서는 의인에게 복주시고,
사랑으로 방패 삼아 감싸 주시나이다.”(시편5,13). 아멘.
9/10(화) [(녹)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 대사제와 율법 학자들에게 잡혔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군대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코스의 귀를 자른 베드로에게 칼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칼로는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것만이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12명의 사도와 함께하셨습니다. 나의 신앙은 온전히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은 참된 내가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입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들의 밤샘 기도 앞에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최선책이 아니더라도 차선책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도 아니라면 지금 처한 힘겨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적어도 고통과 십자가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잔잔한 마음의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루카 6,13)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 뜻의 실행이 제 양식이 되게 하시고, 제 몸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이수철 신부)
9/10(화) [(녹)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81일차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오늘의 말·샘 기도>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루카 6,13)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 뜻의 실행이 제 양식이 되게 하시고, 제 몸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9월10일(화) 6시5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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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묵]2024년 9월 11일 수요일[(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2) | 2024.09.11 |
[매묵]2024년 9월 9일 월요일[(녹) 연중 제23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4) | 2024.09.09 |
[매묵]2024년 9월 8일 주일[(녹) 연중 제23주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4.09.09 |
[매묵]2024년 9월 7일 토요일[(녹) 연중 제22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6) | 2024.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