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9월 16일 월요일[(홍)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치프리아노 성인은 210년 무렵 카르타고(현재 튀니지 일대)의 이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246년 무렵 체칠리아노 사제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례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제품을 받고, 249년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어 어렵고 힘든 시대에 모범적인 덕행과 저술로써 교회를 훌륭히 다스렸다.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유배당하고, 신임 총독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게 재판받다가, 258년 9월 14일 카르타고 근교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입당송
<또는>
이 성인들은 주님을 위하여 영광스럽게 피를 흘렸네. 살아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 따라 죽어서는 승리의 월계관을 받았네.
본기도
헌신적인 목자 복된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를
불굴의 순교자가 되게 하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한결같은 믿음을 길러 주시어
저희가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1,17-26.33
형제 여러분,
17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18 우선, 여러분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에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에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20 그렇지만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21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22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23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33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여라.
○ 주님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 당신을 찾는 이는 모두, 당신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리이다. 당신 구원을 열망하는 이는 언제나 외치게 하소서. “주님은 위대하시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코린 4,7-15)와 복음(요한 17,11ㄷ-19)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저희가 거룩한 순교자들의 수난을 기념하여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일찍이 복된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에게
박해를 이겨 내는 용기를 주셨듯이
저희에게도 온갖 시련을 이겨 내는 힘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 있었으니, 나는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
<또는>
보라, 하느님 앞에 성인들이 받을 큰 상이 쌓여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었으니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천상 양식을 받아 모시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복된 순교자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를 본받아
성령의 힘으로 굳세어져 복음의 진리를 증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1988년 5월에 저는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복학하기 전까지 예비자 교리를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중, 고등학생 반을 맡아서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12월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학생 중의 한 명은 취직이 되었고, 첫 월급을 타는 날 제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5시에 ‘대학다방’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저는 약속을 잊어버리고 친구들과 천마산으로 등산을 갔습니다. 오후에 약속이 생각난 저는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10시가 넘었고, 다방 문도 닫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기에 연락할 수는 없었지만, 혹시나 하고, 다방 문을 열었습니다. 다방 한구석에 저를 기다리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학생은 제가 올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저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학생에게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4년 뒤에 저는 그 친구가 근무하던 자동차 대리점에서 승용차를 샀습니다. 저를 믿고 끝까지 기다려주었던 친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믿음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값싼 믿음과 진정한 믿음입니다. 값싼 믿음은 하느님과 거래하려는 믿음입니다. 마치 하느님을 자판기처럼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에 따라서 상황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믿음마저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의 뜻대로 하느님이 변하기를 원하는 믿음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을 바라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성공과 권력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믿음입니다. 신앙이 본래 지닌 깊이와 진지함을 잃어버린 형태의 믿음이 값싼 믿음입니다. 이는 은혜를 값싸게 만들고, 회개나 변화 없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으려 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값싼 믿음은 죄의 진정한 회개 없이 쉽게 용서받으려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값싼 믿음은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의 고난을 가볍게 여기고, 희생 없이 은혜만을 바라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값싼 믿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무시하고,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은전 서른 닢에 스승을 배반한 유다의 믿음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주어지는 상황까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는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니 그리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아이를 갖게 될 상황까지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마리아가 받아들였던 상황은 약혼한 요셉에게 파혼당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받아들였던 상황은 어쩌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3번이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예수님의 얼굴에는 피와 땀이 흘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고난의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외롭게 죽어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었던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고난과 십자가를 받아들였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삶을 변화시키는 깊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참된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픈 종을 보았고, 주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미 이런 모습만으로도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백인대장은 주님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그렇습니다. 참된 믿음은 신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모든 이들에게서 오늘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루카 7,1-1
더 너그럽고 관대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봐야겠습니다!
신앙인이 아님에도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을 보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 뵐 때마다 밀려오는 큰 부끄러움에 가슴을 치게 됩니다.
반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늘 부담이요 민폐로 각인된 사람도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듣고, 규칙적인 성사 생활과 기도 안에 살아가는 저희 같은 사제나 수도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뒷골이 당겨옵니다.
이걸 지금 받아야 해, 말아야 해, 망설입니다.
혹시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볼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한 백인대장은 정통 신앙을 자랑하는 유다인들로부터 멸시받고
무시당하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행동, 언어와 믿음은 얼마나 탁월한 것이었던지 예수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습니다.
열두 사도들도 받지 못하던 칭찬을 그가 받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든 이유가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그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의 치유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물건처럼 매매가 되고 있던 노예의 치유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백인 대장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품성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욱 예수님을 감탄하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백인대장의 겸손한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를 위해 걸어가고 계실 때, 그는 친구들을 보내어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보십시오. 백인대장이 얼마나 말을 예쁘게 하는지?
예수님을 향한 강한 믿음뿐만 아니라 지극히 겸손한 태도까지 겸비했으니, 극찬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보아하니 백인 대장은 이미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완벽한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 죽어가는 자신의 노예를 반드시 치유시켜주실 능력을 지닌 분임을 확신한
강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세례받은 세월이 길다 해서 절대 신앙의 깊이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의 옷이 결코 예수님의 칭찬을 불러오는 표시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주님께 청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청이 나를 위한 것보다는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청이 되어야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의 건설 같은 큰 것이어야겠습니다.
더 너그럽고 관대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봐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우리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 존재인가?>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에서는 이방인을 위한 최초의 이적을 베푸시는 장면입니다.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지 설교를 마치시고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 병든 노예를 위한 백인대장의 청을 전하는 유다인 원로들의 말을 듣고 백인대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백인대장의 친구들이 와서 백인대장의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 ~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루카 7,6-8)
이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군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루카 7,9)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는' 이방인임을 알았으며, 또한 자신이 군사력을 지닌 백인대장이지만 왕에게 속해 있듯이, '상관 밑에 매인 사람', 자신이 누구에 속해 있는지를 철저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깨달음, 곧 자신의 부족과 한계와 무능함과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 존재인가를 깨달은 데서, 한편으로는 ‘겸손’이,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이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
그는 자신이 누구 ‘밑에 매인 사람’인지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에게 매여 있고 ‘속해 있는 종을 소중하게 여길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이 속한 분께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졌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말씀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청한 것은 오로지 한 마디의 '말씀' 뿐이었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루카 7,7)
그는 말씀의 권능을 믿었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시어 은총을 입은’ 성모님처럼 ‘은총’을 입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백인대장’에게서 배웁니다.
우리의 무능과 나약함을!
그리고 주님께 속해 있는 존재임을!
그러나 그분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존재임을!
그러기에 우리 또한 주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함을!
그리고 주님의 말씀의 권능을 믿고 의탁해야 함을!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루카 7,7)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머리 위에 계시되 누르지 않으시는 분, 당신을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소유하시되 속박하지 않으시는 분,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15.연중 제24주일 이사50,5-9ㄴ 야고2,14-18 마르8,27-35
하느님의 꽃(花), 하느님의 시(詩)
예수 그리스도님
“믿음의 여정”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우리 믿음의 여정에 좋은 참고가 됩니다.
“잘못을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아첨하는 것이다.
아첨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모두 무너지게 한다.”<다산>
믿음의 현자는 결코 아첨하지 않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논어>
이런 교정의 용기야말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의 거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순교자 성월 9월을 맞이하여 9.2-9.13일 까지
제45차 해외 사목 순례 여정은 그대로 “믿음의 여정”이었습니다.
역시 귀국중 기내에서의 장시간 언론인들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인적 힘은 순전히 기도의 힘, 믿음의 힘을 반영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설립 500주년을 맞이히여 모인 테아티노 수도 참사 회원들을 향한 연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쇄신, 친교, 기쁨의 봉사를 실천하십시오.”
“쇄신의 용감한 길을 선택하십시오. 환대의 집은 홀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회원들의 믿음을 촉구하는 말씀들입니다.
믿음이 답입니다.
믿음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제 집무실 게시판에도 믿음을 북돋우는 말마디들로 가득합니다.
“깨어 있어라!”
“모두가 지나간다. 하느님 중심에 날로 깊이 뿌리 내려, 흔들림없이 한결같이 현재의 삶에 충실하자.”
“하늘에 보물을 쌓는 맛, 기쁨, 재미로 살아갑니다.”
“어디에서도 인간의 존엄, 품위, 분별의 지혜를 지녀야 비로소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 프란치스코!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15,28)
어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는 평생 좌우명을 써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붙여놓고 지극히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이제 집무실은 명실공히 지족암(知足庵)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꽃’에 ‘시(詩)’를 덧붙였습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詩같은
하루
詩같이
살자!
비움을 지극히
고요히 함을 두터이”
하느님의 꽃이, 하느님의 시가 예수 그리스도님입니다.
꽃같이, 시같이 ‘비움’을 지극히, ‘고요히 함’을 두터이하며 하루하루 날마다 믿음의 여정,
예닮의 여정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인공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사도가 그 좋은 모범이 됩니다.
이런 믿음의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믿음의 전통도 정말 중요합니다.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믿음을 살게 하는 교회의 전통입니다.
전통의 깊이, 뿌리의 깊이입니다.
전통의 뿌리 빈약하면 삶의 깊이도 잃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믿음에 관한 세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 신앙 고백입니다.
제자들을 통해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아는 것 역시 제자됨에 필수입니다.
따르는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평생 화두와 같은 물음이자 답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여기 그리스도의 정체는 제1독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광의 주님에 앞서 고난의 종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이런 주님의 종에서 자신의 신원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하느님을 배경한 천하무적, 주님의 종, 믿음의 종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이런 주님 고백을 늘 새로이 하면서 추종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노자의 말씀대로 날로 ‘비움을 지극히, 고요히 함을 두터이’ 해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예수님은 당신의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신원을 밝힙니다.
바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그리스도, 주님의 종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는 것을 제자들에게 명백히 가르칩니다.
곧장 성급한 베드로의 조건반사적 거부 반응이 뒤따르자 주님의 지체없는 호된 질책입니다.
오늘 복음의 백미요, 우리 모두에 대한 평생 깨우침이 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다 실패한 사탄이 재차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을 유혹한 것입니다.
멋진 신앙 고백으로 반석이라 칭찬받던 ‘주춧돌’ 베드로가 졸지에 ‘걸림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까맣게 잊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던 것이며 바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애당초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닫고 배우며 성장하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예수님의 충격요법적 꾸중은 평생 베드로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런 충격적 깨우침을 받은 베드로인데 후에 세차례 또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셋째,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실천적 믿음입니다.
추상적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 책임을 다하는, 운명의 십자가를 사랑하여 지고 가는 믿음입니다.
제2독서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실천으로, 즉 선행의 실천, 자비의 실천, 섬김의 실천,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추종의 실천으로, 믿음의 정수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라는 말마디가 모든 인류에 해당되는 믿음의 여정임을 깨닫게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한결같이 추종하는 믿음이, 주님과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순교적 믿음이 진짜 실천으로 보여주는 믿음입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이고 어제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오늘 9월15일은 원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믿음의 여정에 결정적 본보기가 되는 아들 예수님과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순교적 믿음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2024년 9월 16일 월요일[(홍)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참된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픈 종을 보았고, 주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미 이런 모습만으로도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백인대장은 주님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조재형 신부)
2. 백인 대장은 이미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완벽한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 죽어가는 자신의 노예를 반드시 치유시켜주실 능력을 지닌 분임을 확신한
강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루카 7,7)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머리 위에 계시되 누르지 않으시는 분, 당신을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소유하시되 속박하지 않으시는 분,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이수철 신부)
2024년 9월 16일 월요일[(홍)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87일차 기도
복음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오늘의 말·샘 기도>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루카 7,7)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머리 위에 계시되 누르지 않으시는 분, 당신을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소유하시되 속박하지 않으시는 분,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9월17일(화) 10시5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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