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9월 17일 화요일[(백) 한가위]/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본기도
해와 비와 바람을 다스리시어 저희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께 오롯한 감사를 드리고
조상을 공경하며 가족과 이웃과 화목하여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22-24.26ㄱㄴㄷ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
제2독서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4,13-16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모든 민족들의 주님, 전 세계 교회를 굽어보시어, 저마다 아름다운 말로 주님을 찬미하며 서로 사귀고 섬기고 나눔으로써, 세상 곳곳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표지가 되게 하소서.
2.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온정의 주님,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과 북한 이탈 주민들을 위로하시며, 한 민족으로서 갈등을 겪는 저희 민족에게 평화의 은총을 주소서.?
3. 조상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 세상을 떠난 조상들을 보살펴 주시어, 하늘 나라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시고, 저희는 조상들을 기억하며 형제자매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 은혜에 보답하게 하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저희 지역 사회를 굽어살피시어, 참된 가치를 찾고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식별과 용기의 은총을 주시고, 지역의 모든 이가 행복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물기도
기쁘게 받아 주시고
저희가 거둔 것을 모두 주님께서 주셨음을 깨달아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하고 아버지를 찬양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 모습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모든 피조물과 함께 어울려 살게 하시며
사람들을 뽑으시어 주님 백성으로 삼으시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으며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시어 자유를 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나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완전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약속을 완전하게 이루시고
교회 안에서 세세 대대 전해지게 하셨나이다.
주님의 위대한 사랑과 섭리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니
저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사람과 온갖 피조물과 함께 평화로이 조화를 이루며
주님의 은총으로
땀을 흘려 주님께 바칠 예물을 마련하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는 사랑과 기쁨에 넘쳐
모든 천사와 성인과 온 세상 만물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끝없이 찬송하나이다.
<또는>
<위령 감사송 3 : 우리의 생명이요 구원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구원이시고
사람들의 생명이시며 죽은 이들의 부활이시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 땅은 당신이 내신 열매로 가득하옵니다. 당신은 땅에서 양식을 거두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 흥겹게 하는 술을 주시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께서 마련하신 한가위 명절을 지내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였으니
저희가 받아 모신 성체의 힘으로 언제나 이웃과 화목하며
주님께서 베푸신 모든 섭리에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한가위
오늘은 우리 민족의 명절 ‘한가위, 추석’입니다. 추석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눔입니다. 농경사회에서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절입니다. 가을에 거둔 곡식과 과일을 이웃과 특히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능력과 재물을 기꺼이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추석을 지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좋은 날씨를 주시고, 적당한 비를 내려 준 하늘에 감사드리는 겁니다. 좋은 땅을 물려준 조상에 대해 감사드리는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추석을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미국에도 있는데 ‘추수감사절’입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이주민들은 낯선 환경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겨울을 지낸 이주민들은 가을에 첫 곡식을 수확했습니다. 신앙인들이었던 이주민들은 하느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고, 음식을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명절입니다. 이는 많은 사람이 귀성, 귀향길에 오르는 우리의 추석과 비슷합니다.
유년시절 제게 추석은 ‘심부름’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우면 돼지고기를, 형편이 좋으면 소고기를 친척들과 나누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친척 집에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면 친척들도 형편에 맞게 추석 명절을 지낼 수 있도록 선물을 주었습니다. 추석날 가족들은 조상들을 위해서 ‘연도’를 바쳤고, 추석 합동 위령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제게 추석은 ‘가을 방학’이었습니다. 신학교는 매년 가을 추석이면 신학생들이 집에서 며칠 쉴 수 있도록 방학을 주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추석 연휴를 보내야 했기에 주어지는 방학이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는 신학생들이 사제관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신학생들에게 추석 선물을 주었습니다. 양복 기지를 받기도 했고, 옷을 받기도 했습니다. 추석 방학이면 동창 신학생들과 등산도 하였습니다. 지리산도 갔었고, 덕유산도 갔었습니다. 한번은 동창 신학생의 집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동창 신학생의 집이 서산이었고,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는 서툴지만 벼 베기를 도와주었습니다. 추석은 ‘영화’를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극장들은 추석을 맞이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는 추석에 맞추어서 개봉되었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추석을 지내는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1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주신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내게 주신 모든 은혜는 하느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재화를 쌓아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주의하십시오. 모든 탐욕을 경계하십시오. 아무리 부유하더라고 사람의 생명은 그 재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 제2 독서는 우리가 누려야 할 천상의 영원한 안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행복하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업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행한 선행, 나눔, 희생,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밝게 비치는 둥근 달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한가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한가위
복음: 루카 12,15-21
남은 날들을 보다 품위있고 고상하게 엮어갑시다!
살다보면 가끔 죽음 체험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임사 체험, 죽음 유사 체험, 죽음 근사 체험이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그쪽 세상을 살짝 맛을 보고 온 분들입니다.
요르단강을 건널까 말까 하다가 되돌아온 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임사 체험은 끔찍한 불행을 겪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보통 사람들은 평생 발버둥 쳐도
하기 힘든 은총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분들이 임사 체험이후 보이는 특별한 변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삶의 우선 순위가 변경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우선 가치들이 재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죽음 체험을 통해 일종의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목숨 걸고 추구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아니었구나.
다 지나가는 것들이었구나. 그렇게까지 목숨 걸 대상이 아니었구나.”
그런 깨달음을 통해 여러 대상이나 가치들에 대한 재구성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재물과 사회적 위치, 학벌과 스펙, 사람과 만남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삶의 방향이 더 가치있고, 더 고귀하고, 더 영원하고, 더 불변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결국 영적인 삶, 사랑의 삶, 봉사와 헌신의 삶, 주님 안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도 언젠가 그런 대대적인 삶의 전환점이랄까 분기점을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먹고 즐기며, 그저 이 한 몸 겨우겨우 부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보다 이타적이고, 보다 영적이고, 보다 주님 마음에 드는 그런 방향에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한가위 명절을 맞아 공동체 형제들과 주변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부모님과 가족을 찾아 고향을 향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제 집도 절도 없는 영감님들만 공동체에 남아 있습니다.
추석 연휴를 맞아 몇백년 만에 사무실에 편안히 앉았습니다.
몇 년전부터 순차적으로 주님 품으로 가신 아버지, 어머니, 형의 영정 사진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그 눈빛들이 뭔가를 말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이제 자네 차례라네!” 어쩌다보니 저도 저희 가족 가계도 안에 최고 높은 꼭대기에 위치해 있습니다.
비록 재물은 아니지만, 그 무엇인가를 모으고 또 모으고, 끝도 없이 쌓아 올리며
살아온 지난 날을 가슴 치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주님께서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를 맞아 우리보다 먼저 떠난 조상님들,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의 영원한 안식과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우리들의 죽음도 생각하면서, 남은 날들을 보다 품위있고 고상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엮어가기를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한가위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휘영청 밝고 아름다운, 축복 가득찬 한가위 되셰요. 오늘 말씀전례는 하느님의 축복에 대한 찬양과 감사로 가득합니다. 입당송에서는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라고 노래합니다. 본기도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섭리하시는 하느님, 해와 비와 바람을 다스리시어 저희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께 오롯한 감사를 드리고, ~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또 제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요엘 2,26)고 노래하고, 제2독서에서는 때가 될 때, 구름 위에 앉아계시는 분이 땅 위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들려주며, 복음 환호송에서는 “뿌릴 씨 울며 들고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는 것, 곧 생명이 재물에 달려 있거나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사실 인류 역사는 베풂의 역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곧 하느님의 창조와 축복과 선사로 시작된 역사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베풀어졌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외아드님을 건네주심으로 구원을 베풀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은총에 은총을 덧입은 이들입니다. 또한 지금도 우리가 만난 모든 것들 안에서 저희와 동행하시며 승리로 이끄시는 당신의 사랑을 베푸십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러한 은혜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부자에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루카 12,20) 비유 안의 이 '어리석은 자'(αφρων: 정신없는 자, 무분별한 자)인 부자는 ‘내일’이라는 시간이 마치 자기 손에 있는 것인 양 '여러 해'를 계획하지만, '오늘 밤'이라도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는 것을 통해, ‘탐욕과 집착’이 얼마나 허망하고 헛된 것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이는 ‘재물’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곧 그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와 의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재물에 집착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자신만의 것인 양 여기고, 이웃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마치 자신이 자기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인 양 착각하고 오만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 곧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루카 12,21)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하느님의 재물임을 깨닫고 되고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하늘의 곳간에 재물을 쌓는 사람'(루카 12,33)입니다. 묘하게도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유당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게 되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게 되어 ‘전부’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성모 마리아께서 주님의 소유가 되면서 주님을 소유하게 되었듯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가지게 되면 ‘전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 그 누구에게도 소유당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으며, 그 누구의 전부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가지면 전부를 가진 것입니다.” (안토니오 더블유) 그러니 자신의 ‘재물’보다 ‘자신의 영혼’을 관리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재물을 보기에 앞서, ‘나는 누구의 재물인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누구의 소유이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기꺼이 소유당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꽉 찬 보름달처럼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꽉 차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내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놀라우신 일을 하신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 12,15) 주님! 탐욕의 온상지인 제 자신을 경계하게 하소서. 제 곳간이 아니라 당신 곳간에 희망을 두게 하소서! 제 곳간이 비워지고 당신 곳간이 채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비워지고 당신 뜻의 거룩함을 이루소서. 주님, 당신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16.월요일 성 고르넬리오(+253)와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258) 기념일 1코린11,17-26.33 루카7,1-10 무엇이 주님을 감동시켜 치유케 하는가? “겸손한 믿음”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주님, 나는 좋으니 하신 일을 낱낱이 이야기 하오리다.”(시편73,28) “주님을 찬미하라 좋으신 하느님을, 그 이름 노래하라 꽃다우신 이름을.”(시편135,3) 새벽 성무일도시 새롭게 와닿은 시편 성구입니다. 이런 시편기도 은총이 겸손한 믿음을 선사합니다. 겸손한 믿음이 지혜입니다. 겸손한 믿음이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입니다. 겸손한 믿음 또한 은총입니다. 겸손한 믿음이 주님을 감동시켜 치유에 이르게 합니다. 정말 청하고 싶은 은총이 겸손한 믿음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겸손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좋은 것을 배울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하고, 허물을 고칠 때는 우레처럼 과감하게 하라.”<다산> 이런 이들이 겸손한 믿음을 지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제 주일 삼종기도후 교황님의 짧은 강론중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네가 참으로 예수님을 알아간다면 모든 것은 변화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참으로 주님을 알아갈 때 겸손한 믿음과 더불어 참나를 알게 되고 정화와 성화, 치유의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장거리, 장시간의 해외 사목 방문후에도 한결같이 쉴사이 없이 일상에 충실하십니다. 사목여행후 함께 했던 분의 요약글 끝부분도 감동적이며 깊은 깨우침을 줍니다. 이 또한 겸손한 믿음의 은총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황님 자체가 신비로웠다. 사람들은 아열대 기후의 나라들안에서 이런 긴 여정의 어려움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의아해 한다. 그 반대다. 그것은 ‘위에로의 여정’(an upward journey)이었다! 숱한 이동과 거리, 비행시간으로 날마다 피곤했던 대신, 그분은 힘을 얻었다(gained energy)! 그분은 다양한 나라의 젊은이들을 만났고, 수시로 준비했던 원고를 버렸고, 대화자들에 따라 대화 내용도 바꿨다. 자신의 영과 몸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면서(refrsehing his spirit and body)! 88세 생신을 얼마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젊은이들가운데에서는 젊게 되었다(became young).” 기도의 교황, 믿음의 교황입니다. 피곤으로 지친 '아래에로의 여정'이 아니라 날로 활력이 더해가는 '위에로의 내적 여정'이었으니 그대로 겸손한 믿음의 은총입니다. 이것은 제가 10년전 산티아고 800km 2000리 순례여정시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발바닥 물집 하나 없었고 피곤도 전혀 못느꼈으며, 산티아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도 가벼이 날을 듯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오늘은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두분 다 겸손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충실히 섬겼던 친구들이였습니다. 251년 고르넬리오가 교황에 선출되었을 때 직면한 것은 박해가 아니라 교회내의 분열이었습니다. 교황의 입장은 배교자들도 회개 절차를 밟아 교회의 품안에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배교한 이들은 물론 살인, 간통, 두 번째 결혼의 경우 역시 다시 교회에 받아들이기를 단호히 거부하며 대립 교황으로 맞선 극단의 엄격주의자 로마의 사제 노바티우스의 이단에 맞서 교황은 치열히 투쟁했고, 여기에 결정적 도움으로 교황의 권위를 강화해 주었던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였습니다. 치프리아노는 일찍이, “하느님이 우리중 하나에게 곧 죽을 은총을 주신다면, 우리의 우정은 주님 앞에서 계속될 것이다.”라는 대목의 서한도 교황에게 보내며 영적우정을 돈독히 했습니다. 고르넬리오 교황은 갈루스 황제가 다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253년에 순교했고, 교황중 최초로 무덤에 라틴어로 새겨진 “고르넬리우스 순교자(Cornelius Matyr)”라는 비문도 세워집니다. 이어 치프리아노 주교도 258년 발레리우스 박해시 참수형으로 순교했으며, 마지막 임종어는 “하느님께 감사!”(Thanks be to God!) 였습니다. 역시 주교님의 전생애를 요약한 겸손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는 백인대장의 겸손한 믿음에 감동하게 됩니다. 병든 종을 고쳐주기 위한 그의 사랑이 겸손한 믿음으로 표현됩니다. 자기의 청에 오시겠다는 주님을 극구 사양하는 백인대장이요, 백인대장의 진정성에, 겸손한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주님 만찬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일치를 지향하는 주님의 만찬이 서로 배려와 존중이 결여되어 있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일치를 지향하는 만찬의 취지를 자상히 설명한 후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라고 간곡히 권합니다. 끝까지 기다려 주었다 함께 나눠 먹고, 함께 주님 만찬에 참여하는 것 역시 겸손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서로 배려하는 사랑, 겸손한 믿음이 주님의 만찬을 위한 최상의 준비임을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백인대장처럼 겸손한 믿음을 고백하며 주님의 성체를 모실 때 공동체의 일치와 치유의 은총이겠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아멘. |
2024년 9월 17일 화요일 [(백) 한가위].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업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행한 선행, 나눔, 희생,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밝게 비치는 둥근 달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한가위 되시기를 바랍니다.(조재형 신부)
2.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를 맞아 우리보다 먼저 떠난 조상님들,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의 영원한 안식과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우리들의 죽음도 생각하면서, 남은 날들을 보다 품위있고 고상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엮어가기를 다짐하면 좋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 12,15)
주님!
탐욕의 온상지인 제 자신을 경계하게 하소서.
제 곳간이 아니라 당신 곳간에 희망을 두게 하소서!
제 곳간이 비워지고 당신 곳간이 채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비워지고 당신 뜻의 거룩함을 이루소서.
주님, 당신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오늘은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두분 다 겸손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충실히 섬겼던 친구들이였습니다.
251년 고르넬리오가 교황에 선출되었을 때 직면한 것은 박해가 아니라 교회내의 분열이었습니다.
교황의 입장은 배교자들도 회개 절차를 밟아 교회의 품안에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배교한 이들은 물론 살인, 간통, 두 번째 결혼의 경우 역시 다시 교회에 받아들이기를
단호히 거부하며 대립 교황으로 맞선 극단의 엄격주의자 로마의 사제 노바티우스의 이단에 맞서
교황은 치열히 투쟁했고, 여기에 결정적 도움으로 교황의 권위를 강화해 주었던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였습니다.
치프리아노는 일찍이, “하느님이 우리중 하나에게 곧 죽을 은총을 주신다면,
우리의 우정은 주님 앞에서 계속될 것이다.”라는 대목의 서한도 교황에게 보내며 영적우정을 돈독히 했습니다.
고르넬리오 교황은 갈루스 황제가 다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253년에 순교했고, 교황중 최초로
무덤에 라틴어로 새겨진 “고르넬리우스 순교자(Cornelius Matyr)”라는 비문도 세워집니다.
이어 치프리아노 주교도 258년 발레리우스 박해시 참수형으로 순교했으며,
마지막 임종어는 “하느님께 감사!”(Thanks be to God!) 였습니다.
역시 주교님의 전생애를 요약한 겸손한 믿음의 표현입니다.(이수철 신부)
2024년 9월 17일 화요일 [(백) 한가위]. 88일차 기도
복음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오늘의 말·샘 기도>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 12,15)
주님!
탐욕의 온상지인 제 자신을 경계하게 하소서.
제 곳간이 아니라 당신 곳간에 희망을 두게 하소서!
제 곳간이 비워지고 당신 곳간이 채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비워지고 당신 뜻의 거룩함을 이루소서.
주님, 당신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9월17일(화) 13시3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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