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9월 19일 목요일[(녹) 연중 제2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당신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본기도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5,1-11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
○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저의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36-50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물을 너그러이 받으시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가
모든 이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하느님, 당신 자애가 얼마나 존귀하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당신 날개 그늘에 피신하나이다.
<또는>
1코린 10,16 참조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며, 우리가 나누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먹는 것이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천상 은총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이끄시어
저희가 제 생각대로 살지 않고
그 은총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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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지난 8월 24일에 성가대에서 ‘한 여름 밤의 작은 음악회’를 준비했습니다. 합창곡으로 ‘바람의 노래와 다시 살아나신 주’를 준비하였고, 9명의 단원이 독창을 준비하였습니다. 합창이 멋진 화음과 넘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면, 독창은 내면의 깊이와 영혼의 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성악을 전공한 지휘자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잘 따르는 단원들이 만들어낸 ‘한 여름 밤의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9개의 행성이 빛을 내듯이, 지휘자를 중심으로 9명의 단원이 위로와 용기의 빛을 전하였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빛을 전하였습니다. 감사와 찬양의 빛을 전하였습니다. 그날에 ‘임마누엘 어린이 합창단’이 문을 열었습니다. 19명의 어린이가 고운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아모르 성가대가 현재의 빛이라면, 임마누엘 어린이 합창단은 미래의 빛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가대가 아름다운 노래로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면 그것 또한 복음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복음의 뜻은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을 가져오는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승리한 전쟁으로 평화가 지켜지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우리들 개인의 삶에도 복음이 있습니다. 냉랭하던 여인이 마침내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마음 졸이던 남자에게 복음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이의 울음도 엄마에게는 복음입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다가온 제대의 날은 복음입니다. 서류 미비자에게 마침내 주어지는 그린카드는 복음입니다.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마침내 눈을 뜨고 깨어난 환자의 미소는 가족들에게 복음입니다. 제게도 복음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벽보에 쓰여 있던 저의 이름이 복음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합격했음을 알리는 이름이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언제나 감사하고, 늘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매일매일이 복음일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3가지 의미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때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 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과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말씀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이 지금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오늘 바오로 사도가 선포한 복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우리를 행복에로 이끄는 것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 힘들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것, 세상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참된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7,36-5
이 깊은 상처가 때로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상처나 흠결, 과오나 흑역사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때로 그 흠결이나 과오가 너무 깊고 커서 걱정합니다.
이런 나를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런 내가 과연 주님 나라에 합당하기나 할까?
그런데 요즘 와서 드는 생각,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난 우리 삶 안에서 너무나 깊이 아로새겨져 문신처럼 사라지지 않은 상처가
때로 약이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처는 나의 결핍과 약점을 상기시키기에 나를 거만하지 않게 만듭니다.
겸손하게 만들고 결국 나를 하느님과의 만남에로 인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오랜 세월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온 한 가련한 여인, 상처로 인해 늘 아파하고 갈등하고
한평생 주눅 들어 살아온 한 여인이 예수님으로 인해 너무도 당당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실이 나빴던 여인으로 지칭되는 그 여인은 오랜 방황과 악순환의 세월을 접어보겠다고
그토록 노력했지만 항상 그때뿐이었습니다.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몸은 어느새 과거의 비참함에로 떨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왔습니다.
여인의 머릿속에 늘 잠재되어 있던 큰 걱정거리는 이것이었습니다.
‘과연 죽기 전에 내가 변화될 수 있으려나?
죽을 때 까지 계속 이렇게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토록 불가능해 보이던 여인의 회개는 결국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 오랜 고통의 세월을 견뎌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새 삶을 부여하십니다.
그녀의 쓰라린 상처를 당신 자비로 아물게 하십니다.
결국 여인은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으로 인해 지난 세월의 모든 상처를 완전히 치유 받습니다.
자신을 죽음의 사슬에서 풀어주신 예수님이 너무도 고마웠던 여인은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물건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예수님께 드릴 가장 좋은 선물이 어떤 것인지 찾아봅니다.
향유가 든 옥합이었습니다.
당시 꽤 값나가던 물건이었습니다.
아마도 여인에게 있어 전 재산과 다름없는 물건이었습니다.
그 향유를 가져온 여인은 회개의 표시로 예수님 발치에 서서 울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회개가 얼마나 절실했으면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다 적셨습니다.
그 눈물을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냅니다.
정성껏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십시오.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마음은 지상 최고의 봉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봉사는 더이상 극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사랑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실한 사랑이었으며 용감한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이렇게 행동 양식이 달라집니다.
사고방식이 달라집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 위주로, 이타적으로 변화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됩니다.
오늘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화된 여인을 바라보면서 저 역시 다시 한번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 역시 누구나 여인 못지않은 ‘변화와 새 출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참해 보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이토록 비참한 국면을 결정적으로 반전시킬 전환기가 찾아오리라고 확신하면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리 매일 망가지고 깨져도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다시 새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기뻐하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4.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아직도 향유를 나를 치장하기 위해 쓰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 때 있었던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 하나가 있었는데, ~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루카 7,37-38)
이 자리에서 ‘죄 많은 여인’이 영광을 입습니다.
죄 많은 그녀는 감히 예수님의 앞쪽에 나서지도 못하고 뒤쪽 발치에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셨습니다.
자신의 머리 위에 간직한 가장 고귀한 머리카락으로 땅에 붙이고 있는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 발에 당신 입을 맞추고 그 발에 자신의 전부를 쪼개어 부수고 깨뜨려 그 발에 붓고 발라드렸습니다.
하여, 그 옥함의 사랑의 향기는 온 집안 온 고을로 퍼져나갔습니다.
교부들은 이 ‘죄 많은 여인’을 교회에 비유합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교회 말고는 누구도 그런 향유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죄인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교회가 창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루가복음 해설)
이러한 '창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의 아름다움은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선언으로 그 향기를 뿜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루카 7,47)
그렇습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우리 집, 우리 공동체 안에는 ‘죄 많은 여인’(교회)이 부은 사랑의 향유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공동체에 파고든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내게 사랑이 없어 사랑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까닭이 아닐까요?
사실 오늘도 내 형제들은 예수님을 섬기며 발을 닦아드리느라 여념이 없는데도, 그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것은 결코 닦아드릴 머리카락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를 수그려 발까지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까닭이 아닐까요?
아직도 향유를 나를 치장하기 위해 쓰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요?
값비싼 것을 낭비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물질에 애착하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요?
사실 오늘도 ‘죄 많은 여인’인 교회는 옥함을 깨뜨려 향유를 쏟아 붓듯 내 발에 사랑이 쏟는데, 아직 내가 그 사랑을 보지 못함은 아직도 구린내를 담고 있는 나를 깨부수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요?
아직도 자신을 감추어 둔 채, 다 부수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요?
결국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까닭이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온 집안 온 공동체를 사랑의 향유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온 집안에 가득 퍼진 이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에 종일토록 취할 일입니다.
내내토록 찬미할 일입니다.
그 향기 온 몸에 묻혀, 바다소라처럼 그 향 되어 날릴 일입니다.
오늘 하루 이 그리스도의 향기에 흠뻑 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향기가 되어 세상에 뿜으시길 바랍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의 불순한 입이 당신의 발에 입 맞추고 거룩해지게 하소서!
저 자신을 깨뜨려 형제들의 발에 입 맞추는 사랑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루카 7,47)
주님!
제 영혼의 막힌 코를 뚫으소서!
옥함을 깨뜨려 향유를 쏟듯 제 온몸에 쏟아지는 숨 가쁜 당신 사랑의 향기를 맡게 하소서.
저를 부수어 진한 향기의 피가 흐르게 하고 부서질수록 향기 짙어가게 하소서.
온 집안에 베인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를 내내토록 찬미하게 하소서.
많이 용서 받았기에, 많이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18.연중 제24주간 수요일 1코린12,31-13,13 루카7,31-35 사랑은 아무나 하나? “무지에 대한 답은 평생 사랑 공부와 실천뿐이다” “주님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한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시편146,1-2) 지금도 생각하면 잘 했다 싶은 평생 좌우명입니다. 여전히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다음 평생 좌우명입니다. 그동안 수도생활 생존비법의 평생 좌우명이요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詩같은 하루 詩같이 살자 비움은 지극히 고요히 함은 두터이” 하느님의 꽃이, 하느님의 시가 하느님의 사랑이자 지혜인 예수님입니다. 꽃이, 시가 상징하는바 아름다움이요 사랑입니다. 꽃같이, 시같이 살아간다 함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비움은 지극히, 고요히 함을 두터이 할 때 비옥한 마음의 토양에서 보기 좋게 자라나는 꽃같은 삶, 시같은 삶입니다. 시(詩)같은 인생은 말씀(言)의 사원(寺)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랑의 인생을 의미합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사랑이자 지혜가 됩니다. 평생 사랑을 공부하고 실천함이 지혜요 무지에 대한 참 좋은 답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지혜로운 삶에 좋은 지침이 됩니다. “남을 들여다보기는 쉬워도 나를 깨닫기는 어렵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허물을 지적받을 때 기뻐하였다.”<다산> 이런 이들이 사랑과 지혜의 관대한 어른이자 참 선비입니다.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슬기로움(智)’이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현명함(明)’이다.”<도덕경>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얼마전 강론 제목이었지만 오늘의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사랑도 평생 배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지혜로워지고 무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탄식이 깊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왜곡된 사랑, 변질된 사랑, 병든 사랑의 무지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당대의 세대에 대한 깊은 탄식입니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공감과 배려, 섬세함과 존중이 사라진 무감각하고 무뎌진 무지의 영혼들을 상징합니다. 그대로 왜곡된 사랑, 병든 사랑, 변질된 사랑의 무지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랑과 지혜의 눈이 아니라, 편견으로 고착된 왜곡된 시선의 눈먼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사람이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하고 너희는 말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도 여전히 현존하는 세대들이요 회개가 시급한 이들이요, 우리도 또한 그러합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냅니다. 요한과 예수님이 지혜의 자녀들이요, 두분의 삶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자들 역시 지혜의 자녀들입니다. 참으로 순수한 사랑을 지닌 우리들이라면 우리 역시 지혜의 자녀들이 됩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참으로 지혜의 자녀들이 되게하는 평생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사랑은 무엇입니까? 바오로 사도가 왜곡된 사랑, 변질된 사랑, 병든 사랑을, 한마디로 무지의 사랑을 치유할 절호의 기회를 줍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런 사랑은 연인간의 육체적 성적 에로스적 사랑도 아니요, 친구간의 우정같은 필로스적 사랑도 아닌, 하느님을 닮은 일방적 이타적 사랑이요, 인간 모두에 대한 차별이 없는 연민과 존중, 배려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 정의할 때 그런 사랑입니다. 밑빠진 독에 물붓듯 끊임없이 주어지는 일방적 사랑입니다. 끊임없는 아가페 사랑의 동력은 어디서 기인합니까? 필로스 사랑입니다. 예수님 친구와 끊임없이 주고 받는 우정의 사랑이 아가페 사랑의 샘이 됩니다. 제 아무리 많은 능력에 온갖 뛰어난 덕행을 지녔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런 사랑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 생생한 행위로 표현되니 각자 사랑의 현상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2.사랑은 친절합니다. 3.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4.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5.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기뻐합니다. 6.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7.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이래서 삶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랑의 여정이요, 우리는 영원한 초보자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날로 사랑이 성장, 성숙하여 주님을 닮아갈 때, 지금은 거울에 비친 어렴풋한 모습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며.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니, 바로 이것이 우리의 궁극의 희망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끝까지 계속되지만 으뜸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무한한 창조주 하느님과 마주할 때, 믿음은, 희망은 필요없을 것이니, 우리 존재의 모든 가능한 욕망이 영원히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은 남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마주할 때,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우리를 창조된 행복으로 채워주는 그 아가페 사랑에 영원히 젖을 것입니다. 이미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맛보는 천상에서의 아가페 사랑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불순한 사랑을 부단히 정화하고 성화하여, 우리 모두 꽃같은, 시같은 아가페 사랑의 삶을 살게 합니다. “은총과 자비로 관을 씨워 주시는 분, 한평생을 복으로 채워주시니, 네 청춘 독수리마냥 새로워지도다.”(103,4ㄴ-5). 아멘. |
2024년 9월19일 목요일 [(녹)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우리를 행복에로 이끄는 것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 힘들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것, 세상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참된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조재형 신부)
2. 오늘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화된 여인을 바라보면서 저 역시 다시 한번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 역시 누구나 여인 못지않은 ‘변화와 새 출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참해 보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이토록 비참한 국면을 결정적으로 반전시킬 전환기가 찾아오리라고 확신하면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루카 7,47)
주님!
제 영혼의 막힌 코를 뚫으소서!
옥함을 깨뜨려 향유를 쏟듯 제 온몸에 쏟아지는 숨 가쁜 당신 사랑의 향기를 맡게 하소서.
저를 부수어 진한 향기의 피가 흐르게 하고 부서질수록 향기 짙어가게 하소서.
온 집안에 베인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를 내내토록 찬미하게 하소서.
많이 용서 받았기에, 많이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사람이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하고 너희는 말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도 여전히 현존하는 세대들이요 회개가 시급한 이들이요,
우리도 또한 그러합니다.(이수철 신부)
2024년 9월19일 목요일 [(녹)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90일차 기도
복음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루카 7,47)
주님!
제 영혼의 막힌 코를 뚫으소서!
옥함을 깨뜨려 향유를 쏟듯 제 온몸에 쏟아지는 숨 가쁜 당신 사랑의 향기를 맡게 하소서.
저를 부수어 진한 향기의 피가 흐르게 하고 부서질수록 향기 짙어가게 하소서.
온 집안에 베인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를 내내토록 찬미하게 하소서.
많이 용서 받았기에, 많이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9월19일(목) 6시3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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