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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9월 20일 금요일[(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9월 20일 금요일[(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9월22일 주일로 경축 이동을 하지 않을 곳에서는 대축일 미사를 드린다.>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몇몇 실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하였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외국 교회에 견주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은 충효를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그 결과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박해가 시작되었다. 신해 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시어 이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103명을 시성하셨다. 이에 따라 그동안 9월 26일에 지냈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을 기리며, 순교자들의 피로 우리를 복음의 빛 안으로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신앙 선조들의 순교 신앙을 본받아,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합시다.

입당송

거룩한 순교자들을 공경하여 축제를 지내며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자. 천사들도 이날을 기뻐하며 하느님의 아드님을 찬양하네.
<대영광송>

본기도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이 땅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선택하시어
오묘한 방법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신앙 고백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자라게 하셨으니
저희도 죽기까지 복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6(125),1-2ㄱㄴ.2ㄷㄹ-3.4-5.6(◎ 5)
◎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
○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
○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1베드 4,14 참조
◎ 알렐루야.
○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행복하리니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주님의 교회를 거룩한 순교 정신으로 이끌어 주시어,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으며, 굳건한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게 하소서.

2.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주님, 스스로 이 땅에 신앙을 들여와 주님 말씀과 가르침을 따랐던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을 굽어살피시어,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당당히 신앙을 증언한 그들이 세계 교회에서 기억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자이신 주님, 질병과 고통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살펴 주시어, 그들이 효과적인 치료와 돌봄을 받고, 필요한 의학 기술도 새로이 개발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스승이신 주님, 저희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시어,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복음 실천의 기회로 삼고, 주님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예물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 백성이 드리는 이 제사를 자비로이 받아 주시고
거룩한 순교자들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자신을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로 바치며
온 세상의 구원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한국 고유 감사송 1 : 선조들의 신앙>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 선조들을 복음의 빛 안으로 불러 주시어
무수한 순교자들의 피로 교회를 세우시고 자라게 하셨으며
그들이 갖가지 빛나는 덕행을 갖추고
혹독한 형벌 속에서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
마침내 아드님의 승리를 함께 누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한국 순교자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순교자 감사송 1 : 순교자들의 증거와 모범>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복된 순교자 {아무}는 주님을 현양하려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피를 흘려 주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었나이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을 증언할 강한 힘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며 끝없이 외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10,3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영원한 참평화를 누리고 있는 순교자들에게서 불사의 희망을 배웁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순교자들의 축제를 지내며
용사들의 음식으로 힘을 얻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도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교회 안에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신부님들과 하와이엘 잠시 다녀왔습니다. 하루 전에 확인 했을 때는 터미널이 A였습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터미널 A에서 신부님을 기다렸습니다. 신부님이 전화했습니다. 저는 게이트 34에 있다고 했습니다. 신부님도 34에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없었습니다. 밤사이에 터미널이 A에서 D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터미널 D로 가야 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 공항은 게이트는 물론 터미널까지 종종 바뀐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행입니다. 어떤 신부님은 게이트 바뀐 걸 몰라서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날 출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고난의 잔을 받아 들였습니다. 신앙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내가 바뀌는 것이지, 나의 뜻에 따라 하느님께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혼란에 빠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여론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에 빠져서 국정을 운영하면 혼란이 발생합니다. 원칙과 공정에 따라서 법이 집행되어야 하는데,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국정에 개입하면 국가의 질서가 엉망이 됩니다. 국방부 장관도 잘 했다고 했고, 절차대로 마무리했으면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사건이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특검의 논란이 되는 것은 외압이 있었다는 정황 때문입니다. 경찰청장도 잘 했다고 했고, 절차대로 마무리했으면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사건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문의 대상이 되는 것도 외압이 있었다는 정황 때문입니다. 권력과 권한은 권력과 권한을 준 국민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권력과 권한을 사적인 욕망과 욕심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살로메의 청을 받아들여 의로운 사람 세례자 요한을 죽였던 헤로데는 자신의 권력과 권한을 잘못 사용했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관리가 지녀야 할 덕목을 이야기했습니다. 관리는 청렴해야 하고,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특별한 체험을 했던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다른 사도들처럼 예수님과 같이 생활한 적도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박해하였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가 신약성서의 집필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였습니다. 교회를 박해하였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도 인정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공생활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에게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를 위해서 죽었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 그런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지금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헌신과 죽음도 헛되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시중을 들고, 자신들의 재산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세상을 따르는 것 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험을 들은 사람들은 보험회사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희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역시 우리들의 신앙, 우리들의 교회가 더욱 발전하고 성장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 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한국 순교 성인 대축일

복음: 루카 9,23-26

 

이제 우리 교회는 백색 순교자를 필요로 합니다!

 

젊은 시절, 유학 생활이 끝나갈 무렵이 기억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과정을 마무리 짓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깊은 감사의 정이 솟구쳤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내게 수도회에서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셨으니, 어서 빨리 돌아가서 이 좋으신 주님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이 특별하고 대단한 성인 돈보스코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열정으로

마구 솟구쳤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마카오에서의 길고 긴 유학 생활을 끝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러나 저와는 달리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던 고국 땅 조선의 상황은 암담하고 살벌했습니다.

박해가 한창이었기에, 입국 과정은 철저하게도 은밀했습니다.

입국 과정은 소설 몇 권을 써도 남을 정도로 처절하고 위험했습니다.

 

육로가 꽉 막혀있으니 바닷길을 선택하고, 조각배에 몸을 싣고 건너오다 폭풍우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조선 땅을 밟았지만, 언제나 사람 눈을 피해 산길로,

밤길을 쉼 없이 걸어야 했습니다.

 

숙박을 청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노숙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끼니를 자주 건너뛰니 건강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 어떤 건강한 장정도 견뎌내지 못할 여행길에 온몸은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피 흘리는 순교 이전에 이미 땀과 일의 순교자, 백색 순교자로서의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활활 한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적색 순교자들로 흘러 넘치고 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백색 순교자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증언하는

백색 순교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박해 시대가 지나가면서 순교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순교의 의미, 순교의 개념이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피흘림 없는 순교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피흘림 없는 순교를 영적 순교, 백색 순교라고 불렀습니다.

 

박해가 사라진 시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자 하는 의지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자 하는 의지만큼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깊은 사막 속으로 들어간 수도자들, 고행자들,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증거증언하는 사람들까지 백색 순교자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종교 자유 이후 많은 신자들이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거나. 순교자들의 무덤을 순례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백색 순교로 여겼습니다.

 

오리게네스 교부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것,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것, 역시 순교입니다.”

 

백색 순교에 대해서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각자 삶의 처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증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비록 피를 흘리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기꺼이 희생하고, 적극적으로 헌신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증언하는 사람이 되며,

백색 순교자로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우리의 삶의 현장이 신앙을 증거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1784년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부터 1886년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기까지, 약 100년 동안에 순교한 이들 중에 11명의 성직자와 92명의 평신도, 모두 103 위께서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되었고, 그 외에도 약 1만 명의 순교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성인품에 오르지 않은 모든 순교자들을 포함하여 기념하는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순교자들이 살았던 그 당시의 법은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횡포를 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하느님의 질서, 곧 정의와 자비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그 당시의 인간과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한 순간에 걷어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는 일이었으며, 진정한 사회 개혁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는 말합니다. 
“순교자의 피는 악마들을 묶어버리는 쇠사슬이며 악마의 목덜미를 조이는 족쇄이다”

오늘 제1독서는 의인들이 비록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느님과 함께 사랑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하며, 제2독서는 세상의 어떠한 세력도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랑의 대헌장'을 들려줍니다. 


이는 순교의 본질이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에 있음을 밝혀줍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믿음을 굽히지 않고 모진 형벌을 당하고, 목숨을 바쳤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교부 테리툴리아누스가 말한대로, '순교는 믿는 이들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사랑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곧 하느님 사랑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사랑하시고 고통을 통하여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우리 앞에 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것을, 또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동행하시며, 고통 속에서 함께 고통당하시면서 사랑하기를 가르쳐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선조들이 걸은 이 '순교'의 길은 비록 그 모습은 다르다 할지라도 바로 오늘날 우리가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은 오늘 복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루카 9,23)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순교와 희생의 삶이 일회적이 아닌 연속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순교는 매일의 삶 속에 벌어지는 지속적인 사건이요, 또한 '참된 삶은 긴 순교'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봉헌하고 자신의 뜻을 바치는 백색순교와 진리와 이웃을 위해 매일의 삶 안에서 자신을 나누는 봉사와 사랑의 녹색순교로 죽음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본회퍼 목사님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부르는 것은 죽음에로 부르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순교정신을 되살려 '순교'(martyr; 증거)라는 말 뜻 그대로, 우리의 삶의 현장이 신앙을 증거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루카 9,23)


주님!
제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을 갑니다.
제 능력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을 믿는 일,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일,
이토록 제 자신을 바치는 일,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19.목요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코린15,1-11 루카7,36-50

 

                                                    회개의 여정, 믿음의 여정

                                                         “참회, 용서, 사랑”

 

“주님, 당신의 은총을 어서 입게 하옵소서,

 당신께 의지하는 이 몸이오다.”(시편143,8ㄱ)

 

모두에 선행하는 은총이요 모두가 은총입니다.

회개의 은총입니다.

참된 회개의 표지가 참된 겸손,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회개의 표지가 참된 지혜, 참된 감사, 참된 믿음입니다.

 

참된 회개 자체가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잠시 교황님 인터넷 홈페이지 소식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일반알현후 삼종기도후에는 최근의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사목여정중 소감을 밝혔습니다.

얼마나 교황님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물한 여정인지 깨닫습니다.

 

“나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살아 있는, 기쁨 가득한 믿음을 보았다!”

“이들 교회는 ‘개종(by proselytizing)’이 아니라, ‘매력(by attraction)에 의해 성장하고 있다.”

“믿음, 형제애, 연민은 인도네시아 방문의 모토였다”

“무엇보다, 나는 동티모르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았다.

시련중에도 기쁨이 넘쳤고, 고통중에도 지혜로웠다.

많은 아이를 낳은 사람들일뿐 아니라, 이들에게 웃음(smile)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나는 결코 아이들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이어 제39차 세계 젊은이들의 날을 맞이한 메시지도 고무적이었습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라, 그러면 지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오늘 강론 주제는 ‘회개의 여정, 믿음의 여정’입니다.

윗 말마디들은 우리 삶의 여정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여정의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겸손이요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의 죄많은 여자의 참회 과정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죄녀의 참회와 예수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와 사랑을 매우 겸손하게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 시몬과의 대화가 사건의 본질을 명확히 깨닫게 합니다.

시몬과 대조하여 죄녀의 ‘회개의 표지’인 환대를 예로 듭니다.

둘의 예수님 환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다.”

 

그대로 죄많은 여자의 온맘을 다한 참회의 구체적 표현에 감동하신 예수님의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죄녀가 회개하기에 앞서 회개 은총이 선행했음을 봅니다.

참회와 용서의 결과 이런 감동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이 많아서 용서가 아니라 참회와 용서에 대한 감사에서 샘솟는 주님 향한 사랑입니다. 

회개와 용서와 함께 가는 사랑입니다.

회개의 여정과 더불어 끊임없이 용서받음으로 겸손과 사랑은 날로 증대됩니다.

 

정말 날로 겸손해지고 사랑이 많아지는 사람들은 바로 끊임없는 회개로 주님께 끊임없는 용서를 받은

은총의 사람들입니다.

한 두 번의 회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그날까지 ‘회개의 여정’입니다.

참된 회개와 더불어 용서의 은총이요, 주님과 사랑의 우정도 날로 깊어집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죄책감에 아파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죄녀처럼 즉각적인 참회로 주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요,

이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주님의 용서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대로 오늘 복음은 미사장면의 압축같습니다.

복음의 죄녀처럼 참회의 표지로 큰 사랑을 드러낸 우리에게 미사후 파견시 우리를 향한 말씀으로 들어도

무방합니다.

 

참된 회개를 통해 입증되는 믿음입니다. 회개를 통한 용서와 겸손한 믿음이요

살아나는 순수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복음의 죄녀와 참 좋은 대조를 이루는 제1독서 코린토 서간에 나오는 죄인 바오로입니다.

바오로의 회개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말그대로 은총에 감격하는 은총의 사도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은총이 한 것입니다.”

 

모두가 은총입니다.

참된 회개를 통한 은총이 ‘참된 겸손, 참된 지혜, 참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아마도 동병상련(同病相憐), 누구보다 복음의 죄녀를 깊이 이해했을 바오로이며,

누구보다 바오로를 깊이 이해했을 복음의 죄녀입니다. 

 

은총의 열매가, 은총의 자녀가 바오로이며 복음의 죄녀이고 회개로 용서받은 죄인들인 우리들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의 여정중 주님과 사랑의 우정을 날로 깊이해 주시며

‘사랑의 제자’, ‘사랑의 사도’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2024년 9월20일 금요일[(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 그런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지금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헌신과 죽음도 헛되다고 합니다.(조재형 신부)

 

2. 백색 순교에 대해서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각자 삶의 처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증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비록 피를 흘리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기꺼이 희생하고, 적극적으로 헌신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증언하는 사람이 되며,

백색 순교자로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루카 9,23)

주님!
제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을 갑니다.
제 능력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을 믿는 일,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일,
이토록 제 자신을 바치는 일,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은총이 한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2024년 9월20일 금요일[(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91일차 기도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루카 9,23)

주님!
제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을 갑니다.
제 능력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을 믿는 일,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일,
이토록 제 자신을 바치는 일,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아멘.

 

- 2024년 9월20일(금) 7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