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9월 28일 토요일[(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홍]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 순교자들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본기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11,9―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저희가 경건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천상 성사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규정을 내리시어 어김없이 지키라 하셨나이다. 당신 법령을 지키도록 저의 길을 굳건하게 하소서.
<또는>
요한 10,1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주님의 성체로 저희에게 힘을 주시니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삶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오늘은 2024년 9월 28일입니다. 이 시간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로부터 2024년이 지나간 날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생활합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현대사회는 이 물리적인 시간의 틀 속에서 바쁘게 돌아갑니다. 시간은 돈처럼 여겨집니다. 평균 시급은 시간당 15$ 정도 합니다. 주차하는 경우에도 시간당 주차비를 계산합니다. 시간은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육상 경기에서 시간은 순위의 기준이 됩니다. 9월 28일이 뜻 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이 결혼기념일, 생일, 축일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9월 28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이것은 의미의 시간입니다. 의미의 시간에 가족들이 만나고, 연인이 만나고, 이웃이 만납니다. 74년 전 9월 28일은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빼앗긴 서울을 되찾은 날입니다. ‘9.28 수복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이런 의미의 시간들이 모여서 문명이 되었고, 문화가 되었고, 역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약속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시간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신앙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가치의 시간입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신앙인들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한 시간을 찾으려 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에서 우리는 모두 한 줌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의미의 시간에서 우리는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신앙의 시간은 우리를 부활의 문으로 안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물리적인 시간, 의미의 시간 속에 있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고난과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는 사람,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치의 시간을 사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에게 영원의 시간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하느님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식별’입니다. 처음에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한번 써보고, 살아봐야 안다.’ 겉보기와는 다른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식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식별의 결과입니다. 결과가 좋고, 결실이 있으면 영적식별을 잘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고, 결실이 없으면 그것은 악의 유혹을 따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위로와 고독’이 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 결과는 늘 기쁨과 평화입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도 ‘위로와 고독’이 있습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 결과는 늘 불평과 불만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영적식별을 잘 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영적식별을 잘 하는 사람은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의 의견도 충분히 듣습니다. 누군가 영적 식별을 잘 했는데, 교만하다면 그것은 악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둘째는 진중함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과 탓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깊은 바다와 같아서 사람들을 품어 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순종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의견이 교회의 가르침과 다를 때, 교회를 비판하고 순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영적식별이 아닙니다. 비록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영광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9,44-45
젊은이 여러분, 꽃같은 시절은 잠시입니다!
꽃같은 시절은 잠시입니다.코헬렛 저자의 삶과 신앙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그는 인생의 산전수전과 우여곡절을 다 겪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현자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 살고 있었지만, 이 세상을 초월해서 살던 사람, 인생의 지혜와 경륜으로 충만했던
스승이었습니다.
그런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과 권고는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빛나는 보석 같습니다.
두고두고 마음에 새기고, 틈만 나면 연필로 꾹꾹 눌러 필사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코헬렛 말씀을 묵상하면서 개인적으로 크게 반성하게 됩니다.
나는 나름 인생을 좀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어려운 시대 갈팡질팡하는 후배들에게 지혜와 경륜을 갖춘 선배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때 그때 적절한 조언과 행동으로 젊은이들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고 있는지?
오늘 우리가 봉독한 코헬렛 말씀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참으로 요긴한 말씀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읽고 마음에 새길 명언입니다.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편도나무: 아몬드 나무라고도 합니다.
성막의 등잔대가 아몬드 나무의 꽃 모양으로 만들어집니다.
*참양각초: 근동 지방에서 서식하는 생존력이 강한 나무, 케이퍼 나무로 추정됩니다.
건조한 광야에 뿌리를 내리고 어여쁜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연어 요리를 먹을 때 이 열매를 절여 곁들여 먹곤 합니다.
젊은 형제 자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꽃같은 시절은 잠시입니다.
순식간에 세월은 흐르고 마치 번개처럼, 섬광처럼 인생이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 하루에 충실하십시오.
젊은 시절부터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께서 기뻐하실 삶을 추구하십시오.
오늘은 다시는 오지 않는 축복과 은총과 구원의 날입니다.
부디 오늘을 허송세월하지 마시고 충만히 누리고 만끽하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이루신 다음, 산에서 내려와 더러운 영에 들린 아이를 고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루카 9,44)
그러나 제자들은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루카 9,45 참조).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라는 말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순명’, ‘순종’을 표현할 때, 구약성경은 히브리 단어 ‘쉐마’를 사용하는데, 이는 단순히 청각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아듣는 것보다, 말씀하시는 분의 명을 ‘마음의 귀에 담아 행동에 옮긴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귀담아들어,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그의 모든 명령을 성심껏 실천하면, 너희 하느님께서는 땅 위에 너희를 높여주실 것이다.”
(신명 28,1)
그래서 말씀은 ‘믿음의 순명’과 ‘사랑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따를 수가 없나 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하느님이 너에게 바라시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사실 성경을 읽다 보면, 때로는 성경 본문이 아무 말씀도 안 할 때도 있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불투명한 말이나 난해할 때도 있습니다.
곧 말씀이 뜻을 감추고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가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채로도 사랑의 마음, 순명과 믿음으로 응답하고 따르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알아듣기 어려운 성경본문을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신앙’이라고 이렇게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장애라고 여겼던 대목들이 실로 크고 거룩한 유익이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필로칼리아)
또한 사막의 마카리오는 역시 믿음으로 먼저 ‘실천’할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는 분량에 만족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애쓰십시오.
그리하면 이해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바가 여러분의 영에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들은 말씀을 비록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한 채로 말씀하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실천’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곧 '신비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성으로 이해하는 바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비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삶은 풀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당신께 오라고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말씀 혹은 삶은 품고 살아야 하는 선물이요, 그것을 통하여 그것을 주신 분을 만나야 하는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인생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이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의 손에 넘겨져 죽음으로써 되살아나셨듯이, 오늘 우리도 형제들의 손에 넘겨져 죽음으로써 되살아나는 ‘부활 신비의 삶’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루카 9,45)
주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 이해하지 못해도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죽음에 넘겨져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죽어 사라져 되살아나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27.금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1581-1660) 기념일
코헬3,1-11 루카9,18-22
때를 아는 지혜와 겸손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나의 사랑, 내 성채,
나의 산성 구원자,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편144,1-2)
얼마 전에 이어 제46차 해외 사목 여정차 9.26-9.29일까지 룩셈부르그와 벨지움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모든 때가 하느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적절한 때에 가톨릭 교회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물하셨고, 또 당신의 때가 되자
해외 사목방문을 하게 하십니다.
교황님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주옥같은 제목들입니다.
“섬김, 선교, 그리고 기쁨은 복음의 핵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룩셈부르그는 평화를 위한 협력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교황은 새로운 인문주의를 퍼뜨리기위해 룩셈부르그를 방문한다.”
“교황의 벨지움 방문은 ‘들음과 만남’의 계기가 될 것이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하느님의 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과연 여러분의 생애를 압축할 때, 일일일생(一日一生), 일년사계(一年四季) 어느 때에 있습니까?
이런 때에 대한 확인이 오늘 지금 여기서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제1독서 코헬렛은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때에 대해 적절한 가르침을 줍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고,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때가 될 때까지 겸손히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때에 최선을 다해 협력하며 노력하는 것도 믿는 이들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고 우리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때요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다 좋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시도 생각납니다.
“햇빛 밝은 날은
햇빛 밝은 날대로
비오는 날은
비오는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모든 날이 다 좋다
주님 늘 함께 계시기에”<2023.10.21.>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습니다.
계절 한가운데 주님이 계시기에 봄,여름,가을,겨울 모두가 다 좋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늘 함께 계시고 모든 날이 다 좋기에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오늘 충실하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됩니다.
다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그날에 최선을 다하며 됩니다.
하느님은 때의 대가이자 달인입니다.
금세기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물하신 하느님은 오늘 기념하는 16세기 모든 자선 단체의 수호성인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를 교회에 선물하셨습니다.
빈첸시오는 프랑스 말로 ‘승리자’라는 뜻이라 하는데 정말 영적승리자로 사셨습니다.
물론 사랑의 승리입니다.
이분의 전생애가 온통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 활동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어려부터 가난한 이를 돕기를 무엇보다도 즐겼으며 자기 천성을 잘 보전하고 지켜서
자선과 박애 사업에 일생을 송두리째 투신했습니다.
루이사 드 마릴락을최초의 수녀원장으로 모신 사랑의 자매회도 설립했습니다.
성인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주님이시고 스승이라고 가르쳤고,
이것이 존경심과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이유이며,
가난한 이들을 찾아갈 때는 겸손과 소박과 사랑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성인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만나는 모든 사람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보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하느님의 때를 기다릴줄도 알았습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빈첸시오는 아주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딱딱하고 쌀쌀하며 거칠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나,
은총으로 온화하고 애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 다른 이의 요구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업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성인은 1660년 9월27일 오늘 잠자듯이 79세 나이로
고요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교황 글레멘스 12세에 의해 1737년에 시성되었고, 레오 13세는 그를 1885년 모든 자선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제때에 이뤄진 일입니다.
복음에서 보다시피 하느님을 닮은 예수님 또한 때의 달인이자 대가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혼자의 깊은 기도가 때를 아는 지혜를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도 필요시 혼자 깊이 기도하신 주님이요 오늘 복음에서도 기도가 끝나 때가 되자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원을 확인시킵니다.
베드로에게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받아낸후 즉시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면서
제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내다보며 늘 오늘 지금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최선의 때를 사신 주님이셨습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았던 베네딕도 성인 역시 언제나 하느님의 때를 사셨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모두 순례여정중 하느님의 때를 살게 하십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오늘도 비움을 지극히, 고요히 함을 두터이 하면서,
‘꽃같은 하루 꽃같이, 시같은 하루 시같이’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피시나이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헤아리시나이까?
사람이란 한낱 숨결 같은 것,
그 세월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사옵니다.”(시편144,3-4). 아멘
2024년 9월28일 토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영적식별을 잘 하는 사람은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의 의견도 충분히 듣습니다. 누군가 영적 식별을 잘 했는데, 교만하다면 그것은 악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둘째는 진중함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과 탓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깊은 바다와 같아서 사람들을 품어 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순종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의견이 교회의 가르침과 다를 때, 교회를 비판하고 순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영적식별이 아닙니다. 비록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영광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조재형 신부)
2. 꽃같은 시절은 잠시입니다.
순식간에 세월은 흐르고 마치 번개처럼, 섬광처럼 인생이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 하루에 충실하십시오.
젊은 시절부터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께서 기뻐하실 삶을 추구하십시오.
오늘은 다시는 오지 않는 축복과 은총과 구원의 날입니다.
부디 오늘을 허송세월하지 마시고 충만히 누리고 만끽하십시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루카 9,45)
주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 이해하지 못해도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죽음에 넘겨져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죽어 사라져 되살아나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고,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때가 될 때까지 겸손히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때에 최선을 다해 협력하며 노력하는 것도 믿는 이들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고 우리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때요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다 좋습니다.(이수철 신부)
2024년 9월28일 토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99일차 기도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오늘의 말·샘 기도>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루카 9,45)
주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 이해하지 못해도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죽음에 넘겨져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죽어 사라져 되살아나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9월28일(토) 7시10분
'매일미사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묵]2024년 9월 30일 월요일[(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4.09.30 |
---|---|
[매묵]2024년 9월 29일 주일[(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신부님 강론 4개 (4) | 2024.09.29 |
[매묵]2024년 9월 27일 금요일[(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4) | 2024.09.27 |
[매묵]2024년 9월 26일 목요일[(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7) | 2024.09.26 |
[매묵]2024년 9월 25일 수요일[(녹) 연중 제25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2) | 202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