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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0월 11일 금요일[(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0월 11일 금요일[(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 요한 23세 교황

입당송

에스 4,17②-③ 참조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3,7-14
형제 여러분, 7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8 성경은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내다보고,
“모든 민족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해 주었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이르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ㄴㄷㄹ-2.3-4.5-6(◎ 5ㄴ 참조)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 주님을 찬송하리라. 올곧은 이들의 모임, 그 집회에서, 내 마음 다하여 찬송하리라.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그 일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네. ◎
○ 그분 업적은 엄위롭고 존귀하네. 그분 의로움은 영원히 이어지네. 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
○ 당신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시고,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시네. 위대하신 그 일들 당신 백성에게 알리시고, 민족들의 소유를 그들에게 주셨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2,31-3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나리라.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이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서 세우신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저희가 정성을 다하여 마땅히 거행하는 이 거룩한 신비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의 구원을 이루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애가 3,25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
<또는>
1코린 10,17 참조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이어도 한 몸이네. 우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함께 나누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자라나
마침내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수업료 낸 셈 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려면 수업료를 내야 합니다. 인생의 길에도 거저 주어지는 건 별로 없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하면서 하나둘씩 배워가는 겁니다.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가끔 수업료를 낼 때가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샀는데, 잘 모르고 정기 배송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신청 안 했는데 의아해하면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1달이 지나니 또 왔습니다. 별로 필요도 없는 거라서 꼼꼼하게 살펴보니 제가 정기 배송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정기 배송을 취소했고, 이왕 온 것은 소모품이라 그냥 두고 쓰기로 했습니다. 수업료를 내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예도 있습니다. 도박에 빠지는 사람은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늦을 때가 있습니다. 도벽에 빠지는 사람도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교도소에 다녀와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 자본, 기술, 디지털 문화는 어느덧 우리 마음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갈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피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 가을 단풍, 흘러가는 시냇물, 지저귀는 새의 노래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도 근심의 먼지가, 시기의 먼지가, 욕망의 먼지가 수북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배는 12척이고, 적의 배는 수백 척입니다. 당연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부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었습니다. 장군의 뛰어난 전략을 믿었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려는 부하들의 용기를 믿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하셨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하셨고, 제자들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무질서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3년만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엉망이 되곤 합니다. 집 앞의 텃밭도 한해만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양들은 목자와 함께 있어야 안전하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세력은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도 우리를 넘어트리지만, 즐겁고 기쁜 일을 통해서도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일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11,15-26:

 

우리 시대 악령의 실체!

 

우리 시대 대 마귀 베엘제불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마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괴한 형상에 날카롭고 큰 뿔이 달린 얼굴에, 괴성을 지르고

길길이 뛰는 무서운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형태의 마귀들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마귀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기괴하고 흉측한 이미지와는 반대입니다.

 

화려한 포장지와 달콤한 맛과 향기로 자신을 감추고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취약함을 파고듭니다.

 

어쩌면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우리 시대 경계해야 할 대 마귀입니다.

오직 돈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입니다.

돈이 하느님 위에 위치하며, 돈을 숭배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인간 취급도 안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악령은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악인들의 승승장구와 떵떵거림, 이를 방조하고 외면하는 사회 시스템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불의한 방법을 총동원해 천문학적 재물을 쌓은 이들이 휘두르는 횡포와 갑질의 칼날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자신만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고통과 상처를 외면하는

우리 교회의 안일함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이 시대 악령으로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배경으로 하고있는

‘죽음의 문화’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가정 안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배금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가정 폭력, 대화의 단절, 편리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슬금슬금 들어오더니

완전히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 시대 악령의 실체인 것입니다.

 

오늘의 가정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그 간교한 악의 세력, 죽음의 문화를

우리 가운데서 쫓아내기 위해 합심해야겠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시대 악령의 우두머리는 다름 아닌 배금주의입니다.

재물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것입니다.

돈을 하느님 윗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합심해서 큰 목소리로 외쳐야겠습니다.

 

“돈이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자리가 다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실상 눈에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은 모두 사라져갑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만은 영원하십니다.

이 세상 지나가면 이 세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운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고통스러워도 견딥시다.

모든 것 주님 손에 맡기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갑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우리 영혼의 집이 ‘거룩한 분의 성전’이 되도록 해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이에 대한 유대인들은 세 가지로 반응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서 놀라워하는 이들이요, 둘째는 예수님의 권위와 권능을 의심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이들, 곧 예수님에게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뒤집어씌우는 이들이요, 셋째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표징을 구하는 이들입니다.

 

그야말로, 요한복음사가의 말대로 그들은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던 것입니다.'(요한 3,1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두 가지 논거로 반박하십니다.

 

첫째는 만일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다면, 결국 베엘제불이 자신의 세력을 제거해버리는 것이기에 모순이요, 둘째로는 자신들의 아들들이 마귀를 쫓아내는 것 역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이기에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비방은 완전히 부정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단지 그들의 비방과 모함에 대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그 일로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그러니 예수님께서 사탄을 쫒아낸 ‘자리’를 눈여겨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탄이 쫓겨난 자리에 ‘하느님 나라’가 와 있음을 말입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심을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더 세고 맹렬한 힘을 갖추고 떼로 몰려올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영혼은 임자(주인)가 있어야 하는 집과 같습니다.

만약 집이 비어 있고 임자가 없으면, 마땅치 않는 자들이 침범해 들어와 살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집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집을 빚으로 채우는 일인 것입니다.

만약 죄나 어둠을 비우고 깨끗해지고도 그냥 그대로 있게 되면 그 자리는 즉시 또 다시 어둠이 찾아들게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어둠과 악이 동료들을 데리고 떼거리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영혼의 집이 거룩함으로 채워져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혹 우리가 어둠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하더라도, 혹 빛으로도 채워져 있지도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어쩌면 우리는 어둠으로도 빛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채, 자기 자신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자기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어 있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거룩한 주인을 모셔야 할 일입니다.

거룩하신 분이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우리 영혼의 집이 ‘거룩한 분의 성전’이 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의 감실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10.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갈라3,1-5 루카11,5-13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도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청을 들어주지 않던 친구라도 그가 끈질기게 간청하면 결국 들어준다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결론에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확신이 넘치는 말마디가 꼭 앞에 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염치와 체면불구하고 간절하고 절실해야하며 항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낮은 자세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겸손한 기도의 자세는 그대로 믿음의

자세요, 정말 주님을 믿는다면 이처럼 항구하고 끈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자세가 감동을 줍니다. 제 주변에도 이렇게 믿음으로 절실히 살아가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여기 수도자들이 대부분 이렇게 살아갑니다.

이어지는 기도에 관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더욱 용기백배하게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정말 이렇게 믿어 기도하는 자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좌절함이 없이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쳐야 합니다. 불퇴전의 자세로, 칠전팔기, 백절불굴의 자세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주님께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래야 참으로 탄력좋은 기도요 믿음이요

삶입니다. 기도의 탄력, 믿음의 탄력, 삶의 탄력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봅니다.

 

제가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한결같이 참 많이 강조해온 것이 ‘주님의 전사’에게 탄력좋은

믿음입니다. 새 용수철처럼 누르면 즉시 튀어나오는 탄력이 영성생활에도 절실함을

강조했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과 함께 가는 영적탄력의 삶이요, 이래서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우선해야 합니다. 언제든 넘어지면 즉시 일어나 다시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노력에

항구할 때 영적탄력도 보존됩니다. 영적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영적탄력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늘 푸르른 믿음, 푸르른 희망, 푸르른 사랑의 사람이라면 영원한 청춘입니다. 

 

제가 여기 불암산 기슭 요셉 수도원에 36동안 정주하면서 가장 많이 바라본 것이 늘 거기 그 자리의

하늘과 불암산이며, 간혹 답답하고 암담할 때도 있었지만 결코 절망, 원망, 실망의 삼망은 없었음도

좋은 영적탄력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정주와 믿음의 표상인 산을 흠모하여 쓴 시들이 가장 많습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1997.2>

 

하늘과 산의 관계는 주님과 나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무려 27년 고백시가 여전히

지금도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더불어 10월 한달 저를 내내 행복하게 하는 “산앞에 서면”이란

시입니다. 늘 고백해도 늘 좋고 새롭습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2024.9.29.>

 

영적탄력이 손상되어선 안됩니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의 자포자기로

일어나 다시 시도하지 않는 것이 대죄라고 단언하곤 합니다. 한번 나태함으로 영적탄력 떨어지면

회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에게는

한결같은 기도의 훈련은 절대적입니다.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훈련, 믿음의 훈련, 삶의 훈련에 결코 지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어라”, “기도하다 죽어라” 삶의 치열성을

강조한, 영적전투에 최선을 다하는 어느 구도자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다음 복음 말씀도 단숨에 읽혀집니다.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한다면

결코 끊임없이 한결같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에, 믿음에, 삶에 지치는 일이,

영적전의를 상실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새삼 청해야 할 최고, 최상의 선물은 성령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은혜 자체가 성령입니다.

정말 한결같이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늘의 아버지는 최상의 선물,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년의 삶은 말그대로 성령에 따른 자유롭고 초연한 사랑의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평생 영적전투에 성령의 도움은 절대적이며, 성령께서는 평생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사실 이렇게 항구히 청하고 찾고 두드리며 살 수 있음도 순전히 성령의 은총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제1독서 말씀이 정신 번쩍 들게 합니다. 성령의 사람, 복음의 사람,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성령에 따라 복음적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사도의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큰 깨우침이 됩니다.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교황님은 어제 수요 삼종기도후 강론에서 교회의 영혼과 같은 성령은 교회를 확장시키고 일치시킴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영혼의 영혼이 성령입니다. 정말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적 삶을,

경청과 겸손,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마치지 않도록

더욱 영적 삶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영적탄력 좋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10/11(금) [(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 되새김 구절

 

1.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양들은 목자와 함께 있어야 안전하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세력은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도 우리를 넘어트리지만, 즐겁고 기쁜 일을 통해서도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일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조재형 신부)

 

2. 악인들의 승승장구와 떵떵거림, 이를 방조하고 외면하는 사회 시스템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불의한 방법을 총동원해 천문학적 재물을 쌓은 이들이 휘두르는 횡포와 갑질의 칼날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자신만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고통과 상처를 외면하는

우리 교회의 안일함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이 시대 악령으로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배경으로 하고있는

‘죽음의 문화’를 지적하고 계십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정말 이렇게 믿어 기도하는 자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좌절함이 없이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쳐야 합니다. 불퇴전의 자세로, 칠전팔기, 백절불굴의 자세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주님께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래야 참으로 탄력좋은 기도요 믿음이요

삶입니다. 기도의 탄력, 믿음의 탄력, 삶의 탄력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봅니다.(이수철 신부)

 

10/11(금) [(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 제112일 기도

 

복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 2024년 10월11일(금) 7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