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0월 13일 주일[(녹)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0월 13일 주일[(녹)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한국 교회는 1968년부터 군 사목에 종사하고 있는 군종 사제를 비롯하여 군인 성당과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돕고자 해마다 10월 첫 주일을 ‘군인 주일’로 지내 왔으며, 2023년부터는 10월 둘째 주일에 지내기로 하였다(주교회의 2022년 추계 정기 총회). 오늘 전국 각 본당에서는 군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 헌금을 봉헌한다.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이며 군인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속셈을 헤아리시니 그 무엇도 아버지 앞에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말씀의 칼로 꿰뚫으시어, 거룩한 지혜의 빛으로 지상의 것과 천상의 것을 분별하고,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가난하고 자유롭게 살게 하여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또한 군인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합시다.

입당송

시편 130(129),3-4 참조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대영광송>

본기도

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나는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7,7-11
7 내가 기도하자 나에게 예지가 주어지고
간청을 올리자 지혜의 영이 나에게 왔다.
8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9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10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11 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0(89),12-13.14-15.16-17(◎ 14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가 기뻐하리이다.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저희가 비참했던 그 날수만큼, 불행했던 그 햇수만큼 저희를 기쁘게 하소서. ◎
○ 당신 하신 일을 당신 종들에게, 당신 영광을 그 자손들 위에 드러내소서.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제2독서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4,12-13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5,3
◎ 알렐루야.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알렐루야.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30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또는>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7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주님께 의탁하는 교회를 살펴 주시어, 세상 속에서 참된 길을 찾고 그 길을 좇게 하시며, 힘없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참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세계 지도자들을 굽어보시어, 오늘날 세계가 겪는 많은 위기를 이겨 내고자 적극 나서며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노력하게 하소서.

3. 군인 주일을 맞아, 군인들과 군종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만군의 주님,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과 군의 복음화를 위하여 애쓰는 군종 사제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이 충실하게 임무를 다할 수 있게 하시고, 건강을 지켜 주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자이신 주님, 전교의 달을 지내는 본당 공동체를 굽어보시어, 성경 말씀은 물론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을 잘 익히고 삶 안에서 실천하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와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이 정성된 제사로 저희가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7 <그리스도의 순종과 우리의 구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더없이 사랑하시어,
그리스도를 저희에게 구세주로 보내 주시고,
죄 말고는 저희와 똑같은 처지에서 살게 하셨나이다.
그리하여 성자를 사랑하셨듯이 저희를 사랑하시고,
저희가 순종하지 않아 죄를 지어 깨뜨린 계약을,
성자의 순종으로써 다시 맺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34(33),11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또는>
1요한 3,2 참조
주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되리라.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눈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말씀을 듣고서도, 자신의 재물을 감추어 두고 나누지 않으며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엄위하신 주님 앞에 엎드려 비오니
저희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살과 피로 기르시어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사진설명: 오늘은 군인주일입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8주일(군인주일)

 

어릴 때, ‘숨은그림찾기라는 것을 해 보았습니다. 신문에는 옛날이야기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안에는 또 다른 물건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제가 찾았던 그림들은 주걱, 신발, 곰방대, 복주머니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어쩌다 숨겨진 숨은 그림을 찾으면 보물을 찾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숨은 그림을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다른 방향에서 보는 것입니다.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참된 지혜라는 그림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랑, 나눔, 봉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세상은 아름답고,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보석이 많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경쟁과 승리를 위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퇴근길에 아내를 위해서 장미꽃을 사 가는 남편, 부모님의 생일을 기억하고 깜짝 파티를 준비하는 자녀들,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 여보! 사랑해 우리 가족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게요. 오늘도 힘내세요!’라는 편지를 넣어 주는 아내는 각박한 세상에서도 하느님께서 숨겨두신 아름다운 그림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날 높이 오르는 작은 공을 보면서 두려움은 담대함으로 바뀌게 됩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봅니다. 전태일이라는 젊은이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쏘아 올린 공이 있었습니다. 근로 기준법은 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기준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골프의 변방에 있던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박세리 선수가 US 여자 오픈 우승이라는 공을 쏘아 올렸습니다. 당시 IMF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은 위로받았습니다. 많은 학생이 박세리 선수를 보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박인비, 유소연, 최나연과 같은 선수가 등장했고, 대한민국의 여자 골프는 LPGA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저는 수녀원과 사제관 신축이라는 공을 쏘아 올렸습니다. 수녀원과 사제관이 성당 밖에 있습니다. 기존의 수녀원과 사제관을 매각하면 성당 내에 수녀원과 사제관을 신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건축위원회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자고 합니다. ‘친교실 확장, 실내체육관 신축, 추모관 건립과 함께 수녀원과 사제관을 신축하자고 하였습니다. 2027년은 본당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직 3년이 남았으니, 지혜를 모으면 숨은 그림을 찾듯이,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숨은그림찾기의 원조는 누구일까요? 저는 2000년 전에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등장했던 젊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라는 공을 높이 쏘아 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첫 번째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가진 것을 팔아 밭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은 세상 사람들이 찾는 보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명예, 권력, 성공, 건강이라는 보물을 찾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 양심을 팔기도 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친구를 배신하기도 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은 사람입니다. 지금 절망하고 있는 사람,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하느님 나라에서는 더 기뻐한다.’ 착한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밤을 새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굶주리고, 가장 헐벗고,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진 것을 팔아 이런 보물을 찾는 사람, 이런 보물과 함께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공을 높이 쏘아 올리면 좋겠습니다. 나눔과 희생 그리고 겸손의 눈으로 하느님께서 숨겨 놓으신 보물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8주일: 나해

복음: 마르 10,17-30

 

지혜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갖게 되는 확신입니다.

나이든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인생의 지혜로구나, 하는 확신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이 먹어서도 어리석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거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시하지, 정작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것들, 예를 들면 영혼, 정신, 마음,

영원한 생명을 개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첫 번째 독서로 봉독되는 지혜서는 얼마나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지 모릅니다.

 

지혜서의 보다 완전한 이름은 ‘솔로몬의 지혜서’입니다. 지혜서의 본문 안에는 독자가 누구인지

암시되어 있습니다.

본문이 지칭하는 독자는 ‘세상의 통치자들’이지만, 내용상 독자층은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로 확장됩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지혜는 다정한 영, 사람에게 우호적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영입니다.

결국 지혜는 하느님의 영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에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조금 더 깊이 있게 다섯 가지 측면에 걸쳐 지혜를 소개합니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입니다.

지혜는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입니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입니다.

지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입니다.

지혜는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입니다.

 

솔로몬은 살아 생전 언제나 지혜를 추구했고 그리워했습니다.

지혜를 사랑했고 존중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지혜를 찬미했고, 지혜를 얻기 위해 간절히 하느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는 지혜를 평생의 동반자로 삼았습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지혜 7, 8-10)

 

솔로몬은 세상의 통치자들을 향해 지혜를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라고,

그래야 자신의 손에 맡겨진 백성들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고, 구원에로 이끌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7장 말미에서 솔로몬은 장엄한 어조로 지혜의 본성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솔로몬의 지혜 찬미’입니다.

그는 지혜가 지니고 있는 스무가지 이상의 속성을 쭉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 짚어보니 오늘 우리 지도자들과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지혜는 명석합니다. 거룩합니다. 유일합니다.

다양합니다. 섬세합니다. 민첩합니다. 명료합니다. 청절합니다. 티없이 맑다는 말입니다.

분명합니다. 손상될 수 없습니다. 선을 사랑합니다. 예리합니다. 자유롭습니다. 인자합니다. 항구합니다.

확고합니다. 평온합니다. 전능합니다. 모든 것을 살핍니다. 명석합니다. 깨끗합니다. 빠릅니다.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합니다.

 

인류역사상 지혜롭기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솔로몬이었지만, 놀랍게도 하느님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낮춥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무지를 고백하면서 겸손되이 하느님께 지혜를 청합니다.

 

“저는 정녕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연약하고 덧없는 인간으로서 재판과 법을 아주 조금밖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사람들 가운데 누가 완전하다 하더라도 당신에게서 오는 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지혜 9,5-6)

 

요즘 정계나 학계에서 국민들 인내력 테스트라도 하는 듯, 정말이지 참아주기 힘든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면서, 아주 고압적이고 교만한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양,

따져대고 가르치는 안하무인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참된 지혜의 덕이 겸비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참된 지혜를 갖춘 사람은, 주님의 성령 안에 살아가기에 교만하거나 무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지를 늘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극히 겸손합니다.

 

결국 지혜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참된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오고, 그 하느님께서 지니신 가장 우세한 속성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삶은 사랑의 삶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8주일(군인주일)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따를 것인가?>

 

오늘 말씀전례는 ‘참된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먼저 ‘참된 지혜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진정 지혜를 원하고 있는가, 지혜를 찾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기도하자 나에게 예지가 주어졌고 간청을 올리자 지혜의 영이 나에게 왔다.”

(지혜 7,7)

여기에서, 현인이 ‘기도하자’, 혹은 ‘간청을 올리자’ ‘예지’가 오고, ‘지혜의 영’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그것을 바라고 찾을 때 '주어졌고' '왔습니다.'

 

그러니 지혜는 '주어진 것'이며, '오신' 것입니다.

곧 ‘선사된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지혜서>의 이 말씀은 <열왕기 상권> 3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기도와 매우 흡사합니다.

주님께서 기브온에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1열왕 3,5) 하고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지혜는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경외할 때, 곧 사랑할 때’ 하느님으로부터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랑을 실행할 때마다’, ‘사랑을 지신을 비우고 헌신을 실천할 때마다’, ‘그분에게서 부어져 조금씩 조금씩 몸에 익혀지는 삶의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2독서에서, ‘선물’로 주어진 ‘지혜’는 시편 작가에 따르면, '꿀보다도 단'(시 119,103) 맛이지만, 동시에 히브리서 작가에 따르면, ‘살아있고 힘이 있는’ “쌍날칼보다도 날카로운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이’ 안에서 일어납니다. 

히브리서 작가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히브 4,12)

이는 ‘말씀’이 참됨을 가려내는 ‘지혜의 힘이요 능력’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분 눈앞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히브 4,13)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참된 지혜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청년과 제자들을 '벌거숭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재물을 버리지 못해서 예수님을 따라나서지 못한 ‘부자인 어떤 사람’과, 이미 재물은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으면서도 온전히 자신을 버리지도,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지도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립니다. 

그 말씀은 부자 청년에게 하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르 10,21)라는 말씀과 제자들에게 하신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10,29 참조)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들을 가리고 있던 ‘껍데기의 옷’이 발가벗겨버리고, 그들의 마음 속 생각과 속셈을 들통내버립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따를 것인가?’라는 결단의 문제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런데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라는 부자 청년의 질문과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마르 10,26)라는 제자들의 질문 사이에는 애초부터 서로 다른 마음의 안배로부터 시작됩니다.

 

곧 부자 청년의 질문은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제자들의 질문은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자신의 영생을 위해 죄짓지 않고 율법을 지켜왔고, 제자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집과 형제를 떠나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같이 아직 영생과 구원을 얻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인 어떤 사람’에게는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르 10,21) 라고 하시며,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10,29 참조)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부자 청년은 비록 율법을 지켰다 하나, 그것은 단지 자신을 위하여 죄를 짓지 않았을 뿐,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을 냉대하고 무관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지 자기 지킴이 아니라, 자기 버림과 자기 나눔을 통해서 ‘타인에게 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곧 가진 것을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판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십니다. 

 

곧 ‘가난한 이들과 깊은 연대를 맺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곧 ‘사랑을 실행하라’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 힘으로는 바늘귀를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의탁해야 할 일입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의 능력에 자신을 비워드려 그 지혜가 우리 살 속으로 파고들도록, 말씀의 영의 권능에 승복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르 10,25)

주님!

재물이 없어도 고집과 완고함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는 저는 부자입니다.

힘과 능력이 없어도 제 주장과 의견을 앞세워 물러서지 않는 저는 제 뜻으로 가득 차 있는 부자입니다.

저를 가늘게 부수고 부수어, 당신 바늘귀에 꿰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12.연중 제27주간 토요일                                                      갈라3,22-29 루카11,27-28

 

                                                        참행복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삶”

 

“아이는 세상에 나와 말을 익히고, 

 노인은 세상을 겪으며 침묵을 배운다.”<다산>

 

세월 흘러 나이들어 가면서 침묵의 경청이, 침묵의 겸손이, 침묵의 관상이 참으로 절실함을 깨닫습니다. 

어제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을 세 번째 방문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35분동안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서로 주고 받은 선물중 교황이 젤레스키 대통령에게 건넨 청동 주물에 꽃과 더불어 쓰여져 있는 글자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Peace is a fragile flower”

(평화는 연약한 꽃이다)

 

그렇습니다. 평화는 연약한 꽃과 같아 다치기 쉽습니다.

참으로 정성을 쏟아 고이 다루어야 할 꽃처럼 평화도 그러합니다.

평화만이 아니라 사랑도 행복도 그러합니다.

 

값싼 평화가 없듯이 값싼 사랑도 값싼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니 평화도 사랑도 행복도 선택이자 정성을 다한 노력임을 깨닫습니다.

더불어 요즘 저를 행복하게 하는 수차례 인용했던 평생 좌우명 같은 짧은 시도 생각났습니다.

제가 평생 쓴 시들을 요약한 소원이 담긴 글입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꽃을 평화로, 사랑으로, 행복으로 바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하루, 평화롭게 살자,

사랑의 하루 사랑하며 살자, 행복한 하루 행복하게 살자”며 각오를 새로이 합니다.

 

고맙게도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참행복의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청중은 매사 비판적인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청중으로

양분되어 있는 듯 합니다.

 

어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후 능란하게 대처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시종일관 목격한 어떤 여자가

군중속에서 목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11.27)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적 소원을 드러낸 고백입니다.

예수님같은 아들을 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하겠는가입니다.

또 하나 여자들의 간절한 바램은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갖고 싶은 것이란 말도 들은 적이 생각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자의 행복, 어머니의 행복을 능가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능가하는 행복이 있으니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의 참행복입니다.

한 어머니의 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참행복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합니다.”(루카11,28)

 

‘오히려’는 말마디가 중요합니다. 나를 낳아서 행복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기 때문에

마리아 성모님이 행복했다는 것이며 이것은 믿는 모든이들에게 해당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킨 삶이었음을 봅니다. 

 

수태고지에서 순종과 더불어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기까지 늘 아드님 예수님과 함께 했던,

“예yes”로 일관했던, ‘비움의 여정’에 항구했던 마리아 성모님의 삶이었습니다.

이 성모님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순종의 믿음을 그대로 보고 배운 예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부전자전이기 보다는 모전자전같습니다.

 

새삼 누구나에게 열린 참행복이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삶이 바로 참행복의 첩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선택과 노력에 따라 참행복의 꽃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며,

믿는 누구나에게 주어진 평생 과제임을 깨닫습니다. 

 

참행복을 살 권리와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

그대로 참행복의 실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 가까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시편 1장도 참행복은 말씀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행복하여라,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1,2)

 

시편 119장은 176절까지 시편집에서 가장 긴 장으로 참행복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킴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로

시작하여 176절 까지 계속됩니다.

 

새삼 말씀은 인간의 본질이요, ‘기도하는 사람’처럼 ‘말씀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인간에 대한

정의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바로 다음 시편의 고백도 이를 입증합니다.

 

“내 주여, 내 기쁨은 당신 뜻을 따름이오니,

 내 맘속에 당신 법이 새겨져 있나이다.”(시편40,9)

 

참기쁨, 참행복은 말씀을 듣고 지킴에 있는 인간의 복된 운명을 보여줍니다.

세상맛, 돈맛, 밥맛의 행복이 아니라, 말씀맛, 하느님 맛이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킴과 함께 가는 믿음이니 믿음의 기초는 하느님 말씀의 경청과 실천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을 통한 공동체의 일치임을 오늘 갈라티아서가 입증합니다.

 

다음 사도 바오로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갈라티아 교회 신도들은 물론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종도, 자유인도.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3,26-28)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된 우리들이요,

이 믿음의 일치를 견고히 해주는 부단한 말씀의 경청과 실천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말씀과 믿음의 공동체 성장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아멘


10/13(일) [(녹) 연중 제28주일(군인주일)] , 되새김 구절

 

1. 가진 것을 팔아 이런 보물을 찾는 사람, 이런 보물과 함께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공을 높이 쏘아 올리면 좋겠습니다. 나눔과 희생 그리고 겸손의 눈으로 하느님께서 숨겨 놓으신 보물을 찾으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결국 지혜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참된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오고, 그 하느님께서 지니신 가장 우세한 속성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삶은 사랑의 삶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르 10,25)

주님!

재물이 없어도 고집과 완고함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는 저는 부자입니다.

힘과 능력이 없어도 제 주장과 의견을 앞세워 물러서지 않는 저는 제 뜻으로 가득 차 있는 부자입니다.

저를 가늘게 부수고 부수어, 당신 바늘귀에 꿰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종도, 자유인도.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3,26-28)(이수철 신부)

 

10/13(일) [(녹) 연중 제28주일(군인주일)] , 제114일 기도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오늘의 말·샘 기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르 10,25)

주님!

재물이 없어도 고집과 완고함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는 저는 부자입니다.

힘과 능력이 없어도 제 주장과 의견을 앞세워 물러서지 않는 저는 제 뜻으로 가득 차 있는 부자입니다.

저를 가늘게 부수고 부수어, 당신 바늘귀에 꿰소서!

아멘.

 

- 2024년 10월13일(일) 7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