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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0월 15일 화요일[(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0월 15일 화요일[(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아빌라의 데레사’로 알려진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515년 에스파냐의 아빌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가 평생을 완덕의 길에 정진하여 신비적 계시를 받았다. 그는 수도회의 발전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맞닥뜨렸으나 그때마다 주님께 의지하여 곤경을 이겨 나갔다. 수도 생활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기고, 1582년에 세상을 떠났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께서 그를 시성하셨고, 1970년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 '교회 학자'로 선포하셨다.

입당송

시편 42(41),2-3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성령을 통하여 복된 데레사를 뽑으시어
교회에 완덕의 새로운 길을 보여 주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그의 거룩한 가르침을 따라
참된 성덕의 열망으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할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5,1-6
형제 여러분,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2 자, 나 바오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3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다시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은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
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6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41.43.44.45.47.48(◎ 41 참조)
◎ 주님, 당신 자애가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 주님, 당신 자애, 당신 구원이,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
○ 당신 법규에 희망을 두오니, 진리의 말씀을 제 입에서 결코 거두지 마소서. ◎
○ 저는 언제나 당신의 가르침을, 길이길이 지키오리다. ◎
○ 당신 규정을 따르기에, 저는 넓은 곳을 걸으오리다. ◎
○ 저는 당신 계명으로 기꺼워하고, 그 계명을 사랑하나이다. ◎
○ 사랑하는 당신 계명을 향해 두 손 쳐들고, 저는 당신 법령을 묵상하오리다. ◎

복음 환호송

히브 4,12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 알렐루야.

복음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37-41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로마 8,22-27)와 복음(요한 15,1-8)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데레사의 정성 어린 봉헌을 기꺼워하셨듯이
주님께 바치는 저희 예물도 기꺼이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89(88),2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주님의 가족에게 천상 양식을 베풀어 주셨으니
저희도 복된 데레사를 본받아
영원토록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즐거이 노래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설득의 3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열정입니다. 두 번째는 논리입니다. 세 번째는 감성입니다. 열정이 있지만 논리가 없으면 중구난방이 됩니다. ‘호떡집에 불났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가끔 열심히 이야기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결론이 무엇입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논리는 있지만 감성이 없으면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예전에 그런 말도 있었습니다. ‘말은 잘하는데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다.’ 국회의 청문회나, 국정감사를 보면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분명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묘하게 기분이 나쁜 때도 있었습니다. 감성은 있지만 열정이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가수는 똑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강의와 개그는 늘 새로운 걸 찾아야 합니다. 열정과 논리 그리고 감성이 있으면 나의 마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습니다. 설득의 3단계가 또 있습니다. 첫째는 경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들어야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서 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정리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하면 좋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는 이스라엘이 좋다는 뜻이죠?’라고 이야기해 주면 상대방이 좋아합니다. 세 번째는 공감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도 기분 좋고, 나도 기분 좋게 됩니다. 나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내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면 설득의 3단계를 한번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본당에는 공적인 조직이 있습니다. 사목협의회를 중심으로 여러 분과가 있습니다. 분과에는 분과의 성격에 맞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전례, 구역, 교육, 사회사목, 선교, 청소년에 소속된 단체들이 많습니다. 본당의 사목은 전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례분과에 속한 단체들이 많습니다. 직원회의를 통해서 수도자와 사무실과 소통하기도 합니다. 사목회의를 통해서 사목을 기획하고 조정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선행을 베풀거나 도움을 주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 말씀이 별로 없고, 행동도 요란하지 않습니다. 소년가장에게 장학금을 주던 분도 있었고, 독거노인에게 추석이나 설날이면 떡을 나눠주던 분도 있었습니다. 본당의 행사에 특히 청소년들의 행사에 남모르게 후원금을 주시던 분도 있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분들의 치아를 무료로 치료해 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마을의 정자에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말은 없지만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을 알아보고, 이런 분들과 함께하는 것은 사제의 기쁨이며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고, 웃으면서 뒤로는 남을 험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남을 돕는 데 인색한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욕심 때문에 형제와 다투는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말, 친절한 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교회는 제도(Institution)와 선포(Kerygma)가 같이 있어야 하느님 백성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제도만 있고 선포가 없으면 빈 그릇이 될 것입니다. 선포만 있고 제도가 없으면 분열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율법이라는 에 갇혀있는 율법학자들에게 선포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11,37-41

 

캄캄해도 희망하십시오!

 

일반 교우들뿐만 아니라 의외로 많은 사제 수도자들이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시는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님 같이 진한 하느님 체험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곤경 중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느님께서는 깊은 침묵 중에 계시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하느님 부재체험을 겪는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가톨릭교회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영성생활의 대가들께서도

우리와 비슷한 그런 체험을 하신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사실 데레사 성녀의 인생에서 묵상과 관상을 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데레사였지만, 그분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영혼의 깊은 밤을 헤매 다녔습니다.

 

깊은 하느님 부재체험과 더불어 오랜 방황과 고뇌를 거듭했습니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잊혀졌다는 느낌, 고통스러웠던 세월의 흔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고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세속을 찾아 헤매 다녔습니다.

세속적인 향락에 자신을 던질 때는 하느님께 빚진 것에 대한 기억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하느님 일에 종사하면 세속적인 성향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느님과 세속 사이에 어느 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가운데 끼어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그렇게 뚜렷하게 들리는데도 나는 그 소리에 따를 힘이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이 영성생활의 대가께서도 오랫동안 수녀복을 입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조금도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삶에로의 발 돋음이 얼마나 힘겨웠던지 그녀는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오, 지루하고 고통스런 삶이여!

산다고 할 수 없고 완전히 버림받아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삶이여!

주여, 언제이옵니까?

아직 얼마나 더 계속 되려나이까?”

 

영적인 삶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듯한 수직상승이 없습니다.

기도 생활 역시 힘 하나 안들이고 에스켈레이터 타고 올라가듯이 편안하게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 발 한발 오르막 계단을 이용해 밟고 올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깊은 영혼의 밤, 끔찍한 하느님 부재 체험,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이

데레사의 신앙 여정 안에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데레사는 영혼의 무미건조함에 대해서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아주 소중한 깨달음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귀여워하시는 이들을 고생길로 이끄시고 많이 아끼실수록 많은 고생을 내리십니다.”

 

“최고 단계의 완전성은 내적 위로나 고상한 황홀감이나 현시, 예언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뜻을 그분의 뜻에 합일시키고 그분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동일시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여러분의 이성을 가지고 그분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개념들도 끄집어내지 마십시오. 대단하고 복잡한 명상도 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바라보는 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성(城)깊은 곳에 있는 궁방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은총의 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알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문입니다.

좋은 벗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하느님과 단둘이 우정을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데레사는 오늘도 영혼의 깊은 밤 속에 하느님 부재 체험을 겪으면서

지루한 영적 투쟁을 해나가는 우리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조언을 해주고 계십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흐트러트리지 말며 무엇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내는 모든 것을 성취합니다.

하느님만을 차지한 사람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영혼의 어두운 밤, 하느님 부재 체험, 버림받은 느낌이 다가 올 때 마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캄캄해도 희망하는 일입니다.

언젠가 이 어둠이 걷히고 밝은 대낮이 다가오는 것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앞길이 막막해도 우선 내 발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내 등 뒤에서 나를 떠받히고 계심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사랑을 베풀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어떤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에 일어난 일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당혹스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루카 11,38).

왜 그렇게 놀랐을까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의식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위생상의 관습이나 예의였을 뿐 아니라, 나아가 세상과 접촉함으로 인하여 생기는 불결을 제거하기 위한 정결례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는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루가 11,39)

이는 진정한 ‘정결례’는 겉을 씻는 일이 아니라, 속을 씻는 일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음식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루카 11,39)고 하십니다.

 

이는 단지 속을 씻는 일이 겉을 씻는 일보다 낫다는 것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속에 담고 있는 것을 정당하게 취득한 것인지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곧 불의와 착취, 부정과 탐욕, 이기와 사악함을 동시에 질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속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 또 그것들을 어떻게 채웠는지, 왜 채웠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단지 이러한 사실을 깨우쳐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깨끗해지는 방법도 말씀해 주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루카 11,41)

이처럼 더러움을 비워내는 길, 깨끗해지는 길은 형제와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임을 말씀하십니다.

착취와 사악으로 가득 채운 속을 비우는 방법은 바로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정결법이라는 율법의 본래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곧 ‘정결법의 정신’은 깨끗하게 씻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습니다.

 

그러니 속에 있는 것을 비워낸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비워지고 깨끗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 안에 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2코린 4,7) 으로 말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 5,5)

그러니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놀랍고 신비로운 것은 그 사랑을 베풀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를 명심해 새겨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루카 11,41)

 

주님!

제 속을 들여다보게 하소서!

탐욕으로 채운 것을 사랑으로 나누게 하소서!

제가 온전히 깨끗해지고, 당신 얼굴 뵙게 하소서!

제 속에 당신의 뜻을 품고, 당신의 향기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14.연중 제28주간 월요일                                    갈라4,22-24.26-27.31-5,1 루카11,29-32

 

                                                      회개의 표징, 회개의 여정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시편95;1.8)

 

수도원 자비의 집 숙소 문을 열 때 마다의 체험이 늘 새롭습니다.

집무실 문을 열때도 그렇습니다.

제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하늘나라 체험(?)’입니다.

이를 노래한 '이 행복'이란 시입니다.

 

“자비의 집

 숙소 문 열 때 마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

 푸른 산

 황홀한 풍경

 향긋한 공기

 

 그리운 당신

 보고싶은 당신

 

 이 기쁨에

 이 행복에 산다

 내 성명은 이 행복!”<2024.10.14.>

 

아마도 회개의 기쁨, 회개의 행복이 이러할 것입니다. 

참 많이 강론에 인용했던 주제가 회개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도 회개의 열매입니다.

 

회개 없이는 겸손도 없습니다.

무지의 병, 무지의 악, 무지의 죄에 대해서도 참 많이 나눴습니다.

무지의 병이 얼마나 깊은지 우리는 주변에서 도대체 사과할 줄, 회개할 줄 모르는 이들도 무수히 만납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바로 문제는 나에게 있고 회개가 답임을 일깨웁니다.

 

“내가 어떻게 남을 비난하는지 살펴보면 나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다산, 정약용>

 

인도의 성자라는 간디는 그리스도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자주 “내가 잘못했다(I was wrong)”는

잘못의 고백에서 그가 얼마나 ‘회개의 달인’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다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론입니다.

끊임없는 회개가 내적부패를 막아 부패인생을 발효인생으로 바꿔줍니다.

부패에서는 악취이지만 발효에서는 향기입니다. 

 

결국 무지에 대한 답도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우선적 응답도 회개입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로 돌아와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게하는 회개입니다.

한 두번의 회개가 아니라 평생 회개이니 우리 삶은 회개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개와 더불어 참된 겸손이요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나의 표징’에 관한 내용인데 역시 주제는 회개입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라는 말씀, 시공을 초월한 진리입니다.

악한 세대는 무지한 세대입니다.

무지한 세대가 표징을 찾습니다.

예나 이제나 무지한 인간이요 새삼 답은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날 주님이 오셔도 똑같이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 요나의 표징 하나 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나의 표징뿐 아니라 눈만 열리면 온통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성인들은 물론 무수한 회개의 표징들이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하늘의 표징이요 회개의 표징들인데 새삼 무슨 표징이겠는지요.

예수님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던 남방 여왕의 예를 통해, 또 요나의 설교를 들은

니느베 사람들의 신속한 회개의 예를 통해 당대 사람들은 물론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아주 결연합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바로 오늘 우리 이 세대에 주시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심판 때 단죄받기 전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연장되는 인생이요 죽으면 회개도 끝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오늘 지금 여기서, 회개의 절박성을 말씀하십니다.

이어 오늘의 결론 같은 말씀입니다.

바로 솔로몬보다 요나보다 더 큰, 영원한 회개의 유일한 표징이 당신이심을 천명합니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현자 솔로몬보다 더 큰 분, 예언자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신 주님과의 만남이 회개에 결정적입니다.

사실 우리가 평생 매일 거행하는 전례가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회개를 이뤄줍니다.

말그대로 회개의 선택이자 훈련이요 습관화입니다.

 

이런 선택-훈련-습관은 제가 영성생활에서 늘 강조하는 지론이요, 이런 끊임없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점차 무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일상화’를 이뤄주는 ‘회개의 시스템’ 같은 수도원의 일과표에 따른 성전에서의

평생 공동전례가 참 고마운 것입니다.

새삼 엊그제 복음 말씀도 우리의 회개의 일상화, 생활화에 결정적 도움이 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수행 역시 평생 선택에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이런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수행이 끊임없이 우리의 회개를 촉발시키고

회개의 일상화를 이루어 줌으로 점차 무지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참자유, 참행복에 이르게 합니다.

새삼 값싼 자유, 값싼 행복은 없음을 깨닫습니다.

부단한 회개 은총과 노력의 열매가 참자유, 참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갈라티아서 결론 부분도 바로 바오로 사도의 체험적 고백이자 회개의 열매임을 깨닫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5,1). 아멘.


10/15(화)[(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고, 웃으면서 뒤로는 남을 험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남을 돕는 데 인색한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욕심 때문에 형제와 다투는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말, 친절한 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조재형 신부)

 

2. “기도는 영혼의 성(城)깊은 곳에 있는 궁방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은총의 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알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문입니다.

좋은 벗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하느님과 단둘이 우정을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데레사는 오늘도 영혼의 깊은 밤 속에 하느님 부재 체험을 겪으면서

지루한 영적 투쟁을 해나가는 우리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조언을 해주고 계십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흐트러트리지 말며 무엇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내는 모든 것을 성취합니다.

하느님만을 차지한 사람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영혼의 어두운 밤, 하느님 부재 체험, 버림받은 느낌이 다가 올 때 마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캄캄해도 희망하는 일입니다.

언젠가 이 어둠이 걷히고 밝은 대낮이 다가오는 것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앞길이 막막해도 우선 내 발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내 등 뒤에서 나를 떠받히고 계심을 확신하는 일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루카 11,41)

 

주님!

제 속을 들여다보게 하소서!

탐욕으로 채운 것을 사랑으로 나누게 하소서!

제가 온전히 깨끗해지고, 당신 얼굴 뵙게 하소서!

제 속에 당신의 뜻을 품고, 당신의 향기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현자 솔로몬보다 더 큰 분, 예언자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신 주님과의 만남이 회개에 결정적입니다.

사실 우리가 평생 매일 거행하는 전례가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회개를 이뤄줍니다.

말그대로 회개의 선택이자 훈련이요 습관화입니다.(이수철 신부)

 

 

10/15(화)[(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제116일 기도

 

복음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루카 11,41)

 

주님!

제 속을 들여다보게 하소서!

탐욕으로 채운 것을 사랑으로 나누게 하소서!

제가 온전히 깨끗해지고, 당신 얼굴 뵙게 하소서!

제 속에 당신의 뜻을 품고, 당신의 향기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2024년 10월15일(화) 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