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0월 17일 목요일[(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노라.
본기도
거룩한 순교자들의 신앙 고백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시니
순교로 불멸의 월계관을 받은 복된 이냐시오를 본받아
저희도 굳센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시작입니다.1,1-10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3,17─4,1)와 복음(요한 12,24-2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복된 이냐시오가 순교로 그리스도의 밀알이 되어
주님께 깨끗한 빵을 봉헌하였으니
저희가 정성껏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복된 이냐시오의 천상 탄일에 하늘의 양식을 받아 모셨으니
저희가 새로운 힘을 얻어
말과 행동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인생(人生)은 무엇일까요? 고인이 되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은 강의 중에 ‘하숙생’을 불렀습니다. 하숙생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노래의 가사에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나그네는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나그네는 욕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곧 떠나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헤어짐에 슬퍼할 필요도 없고, 의견이 다르다고 화낼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곧 떠나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피곤한 몸을 의탁할 쉼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그네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면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구로 가는 기차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삶은 계란 있어요.’ 인생은 계란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란은 둥글게 생겼습니다. ‘둥글게 둥글게’라는 동요가 있듯이 인생은 둥글게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큰일을 망치는 경우를 봅니다. 조금만 참고, 조금만 기다리고, 조금만 양보하면 오해는 이해로 바뀌고, 원망은 용서로 바뀌기 마련입니다. 계란은 깨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소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닮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 앞에 자유인도, 노예도,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모두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길가의 돌로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귀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계란은 노른자가 있습니다. 인생에 노른자는 성공, 명예, 권력이 아닙니다. 인생의 노른자는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오늘 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시작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는 것도,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 것도 우리의 선택에 맡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남도 따르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야단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들의 위선과 가식을 말씀하십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비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행동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다.”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사람은 본인도 진리를 보지 못하지만, 남들도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루카 11,47-54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내 삶의 뿌리를 살펴봅시다!
혹시 지금까지 이 세상 살아오시면서 혹시라도 누군가로부터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인 있는가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야! 빨리 그 가면을 벗어라!” 라든지 “인생을 그따위로 살지 마라!” 라는 식의
충격적인 말.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가슴이 부들부들 떨릴 것입니다.
복수심에 이를 갈 것입니다.
어떻게라도 반격하고 되갚아 주기 위해 골몰할 것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쌍날칼 같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 눈에 제일 먼저 포착된 볼썽 사나운 광경이 있었으니,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짓 목자들, 오직 자기 배, 자기 주머니 채우는데 혈안이 된 지도자들의
타락과 횡포였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함께 가던 유다 문화 안에서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은 고스란히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으로
슬픔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종교의 권위를 등에 업은 지도자들의 횡포 앞에, 착취와 희생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가 있었으니, 자신들뿐만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 백성들까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죄입니다.
이런 비참한 현실 앞에 예수님께서는 큰 껄끄러움과 부담을 무릅쓰고 거짓 지도자들의 회심을 촉구하는
강력한 펀치를 날리고 계신 것입니다.
가끔씩 우리에게도 강력한 펀치가 날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신속한 회심을 촉구하는
주님 편의 신호라고 보면 거의 정답입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강력한 한방이 날아올 때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내 삶의 뿌리를 한번 돌아볼 일입니다. 무엇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성찰해볼 일입니다.
결국 그 강력한 한방은 우리 각자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마음, 어서 빨리 당신께로 돌아서라는
자비의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종교지도자들의 형식주의와 거짓과 위선>
앞부분에 이어, 오늘 복음은 율법학자들에 대한 두 번째와 세 번째 경고 말씀과 그에 대한 그들의 반응입니다.
두 번째 경고는 이렇습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루카 11,47)
이는 율법 교사들이 진리를 핍박하고 있음에 대한 질타입니다.
그들이 죽은 예언자들은 기념하면서도 살아있는 예언자를 죽이는 모순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은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듯이, 여전히 지금도 지혜이신 예수님을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세 번째 경고는 이렇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루카 11,52)
'지식의 열쇠'란 율법을 해석하고 여는 열쇠로, 곧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묵시록>에서는 말합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묵시 3,7)
사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그분을 가리키고, 그분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에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요한 5,39)
“너희가 모세를 믿었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요한 5,46)
그러나 그들은 예언에 담겨 있는 그리스도 오심에 관한 지식을 숨겼습니다.
곧 율법의 '열쇠'인 그리스도를 숨기고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버렸던 것입니다.
문을 열어주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는 그들이 오히려 문을 닫아버렸던 것입니다.
마치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했던 선조들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거역하고 죽였듯이, 그들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 사회에 횡행했던 도둑이나 살인이나 간음보다 종교지도자들의 형식주의와 거짓과 위선을 더 많이 질책하십니다.
이는 종교 지도자들의 죄악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마치 전염병처럼 그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까지도 파멸로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은 경고를 받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반응을 전해줍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루카 11,53-54)
우리는 어떨까요?
혹 우리가 질책당할 때 어떻게 하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 질책을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회개하는지, 아니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처럼 광분하여 화를 내며 앙갚음하려고 기회를 노리는지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불행하여라, ~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루카 11,52)
주님!
말씀을 치워버리는 일이 없게 하시고,
말씀을 선포하면서도 행하지는 않은 까닭에 자신만이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막아버리는 일이 없게 하소서.
말씀의 실행이 당신의 나라를 여는 열쇠이오니, 선포한 바를 실천하게 하소서!
저의 주님!
제게는 당신의 말씀이 있으니, 바로 이 이유로 행복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16.연중 제28주간 수요일 갈라5,18-25 루카11,42-46 성령의 인도에 따른 영적인 삶 “자유와 사랑”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요한8,12) 오늘로서 제1독서 갈라디아서는 끝납니다. 바오로 사도의 갈라디아 서간이야말로 자유의 복음, 사랑의 복음, 성령의 복음임을 깨닫습니다. 얼마나 우리의 내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요! 육과 영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오늘 서간의 내용도 참 풍부합니다. 육적인 삶이냐 영적인 삶이냐 우리의 선택이 참 중요합니다.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사랑의 삶을 원한다면 성령의 인도에 따른 삶을 선택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독서에서 생략된 부분이 아까워 인용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를 위한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하신 계명입니다.” 제 멋대로의 자유가 아니라 섬김의 사랑을 위한 자유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성령의 인도에 따른 영적 삶이 목표하는바 참으로 자유로운 섬김의 사랑에 있음을 봅니다. 또 여기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육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간곡한 권고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어 바오로 사도는 육적인 삶에 따른 육의 행실을 적나라하게 제시합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런 이들은 결코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흡사 오늘 현대인들의 온갖 쓰레기와 오물들로 가득한 부정적 내적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결론이 참 명쾌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이런 삶이라면 지상천국의 삶입니다. 참 좋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행실(works)’이 아닌 ‘열매들(fruits)’이요, 인간이 ‘성취(achievement)’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gifts)’입니다. 이런 성령의 열매는 ‘덕(vertue)’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에게 선사되는 ‘생명력(vitality)’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선택은 분명해졌으니 성령의 인도에 따른 영적인 삶이요 이어지는 결론 말씀이 우리의 결심을 확고히 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 갑시다.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 성령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갈라디아서 제1독서는 오늘 복음에 대한 답임을 깨닫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인도따라 살아가는 자유로운 사랑의 영적 삶을 대변한다면 꾸짖음의 대상이 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육적 삶을 대변합니다. 육적 삶의 무지로 인해 스스로 자초한 불행한 삶입니다. 어제 안팎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을 지탄 받은 데 이어, 오늘은 십일조는 충실하면서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소홀히 하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삶을, 또 윗자리를,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실속없는 외적 허영의 삶을 살아가는 참 어리석은 삶이 지탄의 대상입니다. 또 드러나지 않은 무덤과 같은 진실치 못한 삶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이어 삶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율법교사들도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교회안팎에서 법지상주의의 육적 삶의 부정적 경우들을 수없이 목격하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런 무지한 육적 삶에 대한 답은 주님의 가르침에 따른, 성령의 인도에 따른 영적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령에 따른 참 좋은 영적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시편34,11). 아멘. |
10/17(목)[(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다.”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사람은 본인도 진리를 보지 못하지만, 남들도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조재형 신부)
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 눈에 제일 먼저 포착된 볼썽 사나운 광경이 있었으니,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짓 목자들, 오직 자기 배, 자기 주머니 채우는데 혈안이 된 지도자들의
타락과 횡포였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불행하여라, ~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루카 11,52)
주님!
말씀을 치워버리는 일이 없게 하시고,
말씀을 선포하면서도 행하지는 않은 까닭에 자신만이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막아버리는 일이 없게 하소서.
말씀의 실행이 당신의 나라를 여는 열쇠이오니, 선포한 바를 실천하게 하소서!
저의 주님!
제게는 당신의 말씀이 있으니, 바로 이 이유로 행복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이런 삶이라면 지상천국의 삶입니다.
참 좋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행실(works)’이 아닌 ‘열매들(fruits)’이요, 인간이 ‘성취(achievement)’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gifts)’입니다.
이런 성령의 열매는 ‘덕(vertue)’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에게 선사되는
‘생명력(vitality)’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선택은 분명해졌으니 성령의 인도에 따른 영적인 삶이요 이어지는 결론 말씀이
우리의 결심을 확고히 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 갑시다.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이수철 신부)
10/17(목)[(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18일 기도.
복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불행하여라, ~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루카 11,52)
주님!
말씀을 치워버리는 일이 없게 하시고,
말씀을 선포하면서도 행하지는 않은 까닭에 자신만이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막아버리는 일이 없게 하소서.
말씀의 실행이 당신의 나라를 여는 열쇠이오니, 선포한 바를 실천하게 하소서!
저의 주님!
제게는 당신의 말씀이 있으니, 바로 이 이유로 행복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0월17일(목) 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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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묵]2024년 10월 14일 월요일[(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6) | 2024.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