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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0월 16일 수요일[(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0월 16일 수요일[(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녀 헤드비제스 수도자 또는
[백]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동정

입당송

시편 130(129),3-4 참조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본기도

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5,18-25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21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요한 8,12 참조)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2-46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와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이 정성된 제사로 저희가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11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또는>
1요한 3,2 참조
주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엄위하신 주님 앞에 엎드려 비오니
저희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살과 피로 기르시어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사필귀정(事必歸正)’도 비슷한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악이 선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어둠이 빛을 가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모든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독서는 신앙을 차갑게 만들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들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을 뜨겁게 만들어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들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주변을 보면 활활 타오르는 불을 꺼버리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불행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행의 이유를 재물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궁핍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행의 이유를 건강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몸이 아프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행의 이유를 관계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외로우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는 사람이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잘난 척하고, 교만한 사람이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앙의 불을 꺼버리려는 사람입니다.

 

주변을 보면 꺼져가는 불도 다시 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의 이유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우리는 행복의 이유를 재물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재물이 많으면 행복할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행복의 이유를 건강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몸이 건강하면 행복할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행복의 이유를 관계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할 거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할지라도, 굶주릴지라도, 슬픔이 찾아올지라도, 박해를 받을지라도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앙의 불을 뜨겁게 살리는 사람입니다.

 

花無十日紅이고 權不十年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곧 사라지고 마는 것들 때문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돈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등한시하기도 하고, 권력 때문에 우정을 팔기도 합니다. 세상의 것을 추구하다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蘭香千里 德香萬里라는 말이 있습니다. 난의 향기는 멀리 가야 천리이지만 사람의 덕은 만리까지 간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희생, 사랑, 나눔, 봉사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11,42-46


정작 필요한 정결은 내면의 정결, 마음의 정결, 눈의 정결입니다!


오래전부터 유다인들이 목숨 걸고 준수해오던 정결예식, 사실 시대를 앞선 선구자적인 관습이었습니다.
팬데믹 시대를 거쳐오면서 감염병 예방을 위해 손을 잘 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정결 예식은 얼마나 극단적 형식주의로
치달았던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결 예식은 한마디로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규칙입니다. 특히 자칭 거룩한 존재로 여겼던 바리사이들은
정결례에 관한 규칙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규칙이 또 규칙을 낳고, 또 규칙을 낳았습니다.


탈무드 제1부의 6권 전체가 씻는 규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장에 갔다가 귀가했을 때, 아주 엄한 정결례 규정이 적용되곤 했습니다.


시장을 다녀오면 죄인이나 이방인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기에, 50리터 이상 들어갈 수 있는 물통에
팔꿈치까지를 넣어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흐르는 물에 팔을 씻어야 했습니다.
랍비들은 이런 규정을 실천하기 위해 4마일을 걸을지라도 고생으로 여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바리사이들, 별것도 아닌 손 씻는 예식은 목숨 걸고 지켰지만, 정작 중요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은
소홀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나 몰라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정통 유다 신앙인이라고 자처했습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죄 없다고, 깨끗하다며 어깨에 힘을 주며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집단 세심증에 빠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여겨집니다.


이런 유다인들의 모습 앞에 율법의 주인이자 자유로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합니다.
그들이 목숨처럼 소중이 여기던 정결례를 무시하는 정도를 넘어 파기하십니다.
보란 듯이 손도 안 씻고 그냥 음식을 드십니다.
절대로 접촉해서는 안 될 나병 환자의 손을 서슴없이 잡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정결은 내면의 정결, 마음의 정결, 눈의 정결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미사 안에서도 작은 정결 예식의 순간이 있습니다.
입당 후 곧바로 이어지는 참회 예식의 순간, ‘제 탓이요.’를 세 번씩이나 외치는 그 순간이
어찌 보면 작은 정결 예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기 전, 사제는 복사가 가져다주는 물그릇에
손을 담그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작은 정결 예식을 행합니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돌아보니 정말이지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손을 씻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손 씻는 예식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가 제 삶 안에서 의식화되고 성취되고 실현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손 씻을 때 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마음으로, 새 삶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겠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 마다 이 미사 안에 재현되는 파스카 신비를 제 삶 안에서 구체화시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미사 때마다 어제의 나를 죄와 종살이의 땅 이집트에 내려놓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홍해바다를 건너
약속의 땅이자 구원의 땅 새로운 이스라엘로 넘어와야겠습니다.


기도나 묵상, 로사기오 기도나 각종 전례 행위 등 영적 의무를 실천하는 기회 때마다
매일 회개하고 순간순간 새로워져야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사람으로 끝없이 거듭나야겠습니다.
이것이 그토록 예수님께서 질타하시는 위선과 형식주의, 율법주의를 극복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신앙의 참된 길잡이로 살아가라>

 

예수님께서는 앞 장면에서 정결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어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에게 여섯 가지 ‘불행 선언’을 통하여 신랄하게 질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중에서 바리사이들에 대한 세 가지와 율법 교사들에 대한 한 가지를 들려줍니다. 

첫 번째 불행 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십일조는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2)

이는 십일조의 율법 준수를 부정하거나 율법 준수를 질책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결여된 율법 준수를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레위기(27,30-33)와 신명기(14,22-29)에 따르면, 주요 곡식과 가축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이를 더 세분화하여 뗄 나무에까지 십일조를 적용할 만큼 율법 준수에는 규정 이상으로 열성적이고 철저하고 엄격했지만, 율법의 정신인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행하는 일을 실천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열성은 좋지만, 그릇된 열성은 오히려 위험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 위에 서 있는 열성이어야 합니다.

곧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보다 그 정신인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불행 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루카 11,43)

사람들이 그들에게 윗자리를 내어주고 먼저 인사하는 것은 존경의 표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맡은 바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특권적 우월의식과 교만한 과시욕에 몰두했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의 특권의식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사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윗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합당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존경받기보다 존경하고, 인사받기보다 인사하고, 섬김받기보다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불행 선언입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루카 11,44)

민수기(19,16)에 따르면, 무덤에 닿으면 칠일간 부정하기 때문에 회칠하여 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불결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마치 표시하지 않은 무덤처럼 자신의 부패를 은폐시키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사실 악보다 더 추악한 것은 마치 선인 양 자신의 얼굴을 꾸미고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된 선일 것입니다. 

네 번째 불행 선언은 율법 교사들에 대한 것입니다.

“너희 율법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6)

율법 교사들의 언행의 불일치에 대한 질타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자신들은 율법을 실행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는 짐을 지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보다도 조상들의 전통과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존중했고, 그것을 지나치게 세분화하여 모세의 율법 외에도 613개의 규범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결국 백성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을 지워놓으면서도 자신들은 스스로 지키지는 못했던 것입니다(마태 23,3).

사실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들은 그 당시의 종교적 길잡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까지도 파멸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참된 신앙인이요, 신앙의 참된 길잡이로 살아가라는 강력한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2)

 

주님!

제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신을 믿으면서도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불의와 부패 속에서 행복이 있을 수 없고, 무관심과 냉대 속에도 행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당신 뜻을 행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15.화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515-1582) 기념일

                                                                                                                        갈라5,1-6 루카11,37-41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자유

                                                        “자유롭게 하는 사랑”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시편42,2ㄴ-3)

 

어제는 회개에 대해 나눴고 오늘은 자유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자유하면 희랍인 작가 니코스카잔자키스의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라는 묘비명이 생각납니다. 

 

수도생활은 더 큰 자유에로의 내적 여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진정 영적성장은 사랑의 성장이요 자유와 함께 갑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하느님의 자유이시다’로 고백할 수 있겠습니다.

 

오래전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하늘을 본다

 텅비어 있는 하늘

 자연스럽게 뻗은 나뭇가지들

 하늘은 사랑이다

 하늘은 자유다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1997,3.>

 

하늘이 상징하는바 하느님이요 하느님은 사랑이자 자유임을 깨닫습니다.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집착없는 초연한 사랑, 깨끗한 사랑입니다.

이런 참 사랑이 서로를 자유롭게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이, 바오로의 사랑이, 성인들의 사랑이,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자유로운 모습이 약여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서 식사전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에서 예수님이 얼마나 자유로운 분이신지 깨닫습니다.

본말전도의 바리사이들과는 달리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표리부동의 위선적 어리석은 바리사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속이 깨끗하면 겉은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겉은 걱정안해도 됩니다.

무슨 옷을 입든 어울리며 화장도 성형도 불필요합니다.

사랑의 내적 아름다움과 향기는 저절로 밖으로 스며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자선으로 속의 탐욕과 사악을 말끔히 비워낼 때 비로소 깨끗한 마음에 내외적으로 깨끗한 삶에,

참자유로운 삶입니다.

사랑의 자유입니다. 참사랑과 함께가는 자유요 하느님을 닮은 사랑의 자유입니다. 

 

복음의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대자유인 바오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모범이 됩니다.

어제에 이어 반복되는 서두 말씀과 후반부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사랑과 깊이 연루되어 있는 자유임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자유롭게 했으니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고 참자유를 누리라는 말씀인데

답은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할 때 자유로운 삶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우리들이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오늘 기념하는 신비가 대데레사 역시 참으로 자유로운 성녀였습니다.

현실적일수록 영적이라 했는데 성녀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중에도 성녀는 참으로 낙천적이었고 쾌활했으며 유머도 풍부했습니다.

성녀에 대한 일화도 무수하지만 나누고 싶은 것은 널리 회자되고 있는 성가가 ‘아무것도 너를’ 이란 고백시입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아빌라 대데레사 성녀의 사랑과 자유의 비밀이 다 드러납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했기에, 하느님만으로 아쉬울 것이나 부족함이 없었기에,

하느님만으로 두려움과 불안이 없었기에, 초연한 사랑, 초연한 자유의 참행복한 삶이 였습니다. 

 

성녀는 1582년 여행도중에 병으로 쓰러지고, 1개월 만인 10월4일, “주여, 저는 거룩한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유언을 남긴채 사망하니 향년 67세입니다.

선종후 32년 지나 1614년에 시복되었고, 8년후인 162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됩니다. 

 

300여년 후인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성녀를 시에나의 카타리나와 함께 여성으로는 최초 교회학자로

선포합니다.

여기에 성녀 소화 데레사와 성녀 힐데가르트가 추가됩니다.

성녀 대 데레사를 ‘기도의 박사(Doctor Orationis)’, 성녀 소화 데레사를 ‘사랑의 박사(Doctor Amoris)’로

일컫기도 합니다.

교회 역사상 뛰어난 신비가인 성녀의 대표적 저술에는 자서전인 “천주 자비의 글”, “완덕의 길”,

“영혼의 성” 있고 이외에도 무수한 편지와 책이 있습니다.

 

답은 사랑뿐입니다.

사랑의 자유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사랑입니다.

집착없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안팎으로 깨끗하게 하므로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사랑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참사랑의 자유인으로 변모시켜 날로 주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내 입으로 그 진실하심을 대대에 전하리라.”(시편89,2). 아멘.


10/16(수)[(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蘭香千里 德香萬里라는 말이 있습니다. 난의 향기는 멀리 가야 천리이지만 사람의 덕은 만리까지 간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희생, 사랑, 나눔, 봉사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조재형 신부)

 

2. 미사를 봉헌할 때 마다 이 미사 안에 재현되는 파스카 신비를 제 삶 안에서 구체화시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미사 때마다 어제의 나를 죄와 종살이의 땅 이집트에 내려놓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홍해바다를 건너
약속의 땅이자 구원의 땅 새로운 이스라엘로 넘어와야겠습니다.

기도나 묵상, 로사기오 기도나 각종 전례 행위 등 영적 의무를 실천하는 기회 때마다
매일 회개하고 순간순간 새로워져야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사람으로 끝없이 거듭나야겠습니다.
이것이 그토록 예수님께서 질타하시는 위선과 형식주의, 율법주의를 극복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2)

 

주님!

제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신을 믿으면서도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불의와 부패 속에서 행복이 있을 수 없고, 무관심과 냉대 속에도 행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당신 뜻을 행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아빌라 대데레사 성녀의 사랑과 자유의 비밀이 다 드러납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했기에, 하느님만으로 아쉬울 것이나 부족함이 없었기에,

하느님만으로 두려움과 불안이 없었기에, 초연한 사랑, 초연한 자유의 참행복한 삶이 였습니다. 

 

성녀는 1582년 여행도중에 병으로 쓰러지고, 1개월 만인 10월4일, “주여, 저는 거룩한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유언을 남긴채 사망하니 향년 67세입니다.

선종후 32년 지나 1614년에 시복되었고, 8년후인 162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됩니다. 

(이수철 신부)

 

10/16(수)[(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제117일 기도

 

복음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오늘의 말·샘 기도>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2)

 

주님!

제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신을 믿으면서도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불의와 부패 속에서 행복이 있을 수 없고, 무관심과 냉대 속에도 행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당신 뜻을 행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0월16일(수) 7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