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0월 19일 토요일[(녹) 연중 제28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본기도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1,15-23
형제 여러분,
15 나는 주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16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아드님이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하늘 위에 당신 영광 높사옵니다. 당신은 아기와 젖먹이들의 찬양으로, 요새를 지으셨나이다. ◎
○ 우러러 당신 손가락으로 빚으신 하늘하며,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시고 너희도 나를 증언하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와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이 정성된 제사로 저희가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또는>
1요한 3,2 참조
주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되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엄위하신 주님 앞에 엎드려 비오니
저희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살과 피로 기르시어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강론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12,8-12: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말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순수한 신앙의 힘에 대해 말씀하신다.
자신의 믿음과 희망과 덕과 영광을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둔 사람은 누구도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8절)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을 증언하면 받는 보상이 바로 이 말씀이다.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고, 입술로만이 아니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함으로써 아는 것이며, 그것이 증언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죄라고 가르치셨다.
당신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겠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신다.
성령을 거스르는, 그래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무엇인가?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사랑의 관계를 말한다.
이 사랑은 인간의 모든 것을 받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사랑이며, 그래서 항상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시는
사랑인데, 그것을 믿지 않아 하느님 앞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모독죄이다.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 알려주실 것이다.”(12절)
성령께서는 순교자들에게 그 위험한 순간에도 당신을 증언할 힘을 주신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리스도를 위한 순교자로서 그분을 증언할 수 없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이끌어주실 것을 믿고, 신앙을 전파하고
생활로써 증거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청하여야 할 것이다.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
오늘 말씀은 아주 짧지만 아주 강력한 당부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때를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깊은 애정과 사랑으로 가르치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면 하느님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증언하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루가 12,10)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용서받지 못할 자’가 있다 하시니 말입니다.
혹 하느님의 자비에 한계가 있다는 말일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이 한계가 있다는 말일까요?
우리는 이 문장의 뜻을 잘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셔도 인간 편에서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용서받지 못함은 용서하시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완고함으로 용서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성령의 활동을 무시하고 모욕한 바람에 초래한 결과라 할 것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란, 우선적으로 성령의 활동을 의지적으로 거스르고 배척하고 비난하거나, 단죄하거나 방해하거나 핍박하거나, 혹은 성령의 활동을 사칭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완고함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고집’과 ‘완고함’은 참으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울의 완고함을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1사무 15,23)
이는 ‘고집’이 성령을 거스르고 배척하고 무시하는 신성 모독에 해당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용서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용서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용서해야 할 일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는 고난과 박해 속에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항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
(루카 12,11)
이는 진리의 성령께서 증언해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반대하는 무리들이 박해를 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성령께 의탁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당신을 증언할 모든 것을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영을 따라 살게 하소서.
더 이상 어둠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18.금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2티모4,10-17ㄴ 루카10,1-9 믿는 우리의 신원 “관상의 제자, 선교의 사도” “당신께 비옵는 누구에게나, 진정으로 비는 누구에게나, 주님은 가까이 계시나이다.”(시편145,17) 오늘 교황청 홈페이지에서 어느 예수회 사제의 이색적인 기사를 읽었습니다. 어제는 보름이요 유난히 크고 밝은 보름달(supermoon)이었고 다음과 같은 기사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고 거의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밤하늘, 특히 달의 아름다움은 한결같은 아름다움이요, 우리에게 우리보다 더 큰 무엇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 인간은 너무 빛을 밝게 만들어 하느님의 빛에 눈멀게 되었다. 별을 바라보는 단순한 수행이 기도처럼 되어야 한다. 한번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할 수 있다면 매일 실천할수록 좋다.” 하루중 얼마나 하늘을, 하늘의 태양을, 하늘의 별들을, 하늘의 노을을 바라보는 지요? 땅에서의 활동에 앞서 하늘의 관상이, 선교에 앞서 주님과의 친교가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은 안으로는 관상의 제자이자 밖으로는 선교의 사도입니다. 안으로는 관상의 마리아로, 밖으로는 활동의 마르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은 사랑, 똑같습니다. 안팎은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관계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과의 친교 관계가 우선입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늘 읽어도 늘 새로운 제 자작애송시 '하늘과 산'입니다. 주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관계를 상징하는 하늘과 산의 시입니다. 오늘 주님은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합니다. 오늘은 루카 사도 축일이며 우리 요셉수도원의 김종훈 루카 수련수사의 영명축일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루카가 일흔 두 제자들 안에 포함되지 않았겠나 추측하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라는 고백에서 보다시피 바오로 사도의 의리있는 제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때가 되자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새삼 이들 제자들의 배경에는 늘 주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습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우리 삶의 복음 선포의 현장은 바로 우리 삶의 자리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존재론적 복음 선포라 합니다. 말그대로 무소유라기 보다는 무소유의 정신으로 민폐를 최소화하면서 주님과의 관계로 무장하고 이리떼 세상 한복판에서 형제들의 환대에 의존하면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주님의 평화의 사도로서 주님의 평화를 나누는 삶의 선교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 되어 산다면 치유는 저절로 일어나고 복음 선포는 저절로 이뤄질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선교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깊어지는 관계가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 되게 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선교활동에 전념한다 할지라도 이들의 돌아갈 중심은 주님뿐입니다. 이어지는 복음에서 이들 일흔두 제자들은 주님께 돌아가 그 활동 사항을 보고합니다. 언제든 돌아갈 주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요! 제자들 역시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임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우리의 선교활동도 선교에 앞서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과의 관상적 친교 관계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바오로가 로마에서 순교의 죽음을 앞둔 수인 상태에서 저리도 평온할 수 있음은 어제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처럼 주님과의 깊은 믿음 관계에 있음을 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죽음에 초연한 바오로입니다. 바로 다음 고백이 사도의 믿음을 반영합니다..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바로 주님과의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바오로 사도의 모든 선교활동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바로 우리의 정주서원이 의도하는바도 우리 삶의 중심인 주님께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데 있음을 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하며. 충실히 복음 선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늘 바쳐도 늘 새롭고 좋은 고백기도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
10/19(토)[(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2.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이끌어주실 것을 믿고, 신앙을 전파하고
생활로써 증거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청하여야 할 것이다.(조욱현 신부)
3. “너희가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항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루카 12,11)
주님!
성령을 따라 살게 하소서.
더 이상 어둠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완전히 죽음에 초연한 바오로입니다. 바로 다음 고백이 사도의 믿음을 반영합니다..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바로 주님과의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바오로 사도의 모든 선교활동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이수철 신부)
10/19(토)[(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제120일 기도
복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너희가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항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루카 12,11)
주님!
성령을 따라 살게 하소서.
더 이상 어둠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0월19일(토) 5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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