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0월 24일 목요일[(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3,14-21
형제 여러분, 14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
<또는>
마르 10,45 참조
사람의 아들은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천상 잔치에 자주 참여하여
현세에서 도움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사제관 인터넷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예 안 되면 회사에 연락해서 고치겠는데, 어떤 때는 잘 되고, 어떤 때는 안 되었습니다. 안 되는 때도 정해진 시간이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강론 준비하거나, 인터넷 사용을 해야 할 시간에 안 되면 답답했습니다. TV도 인터넷이 안 되면 볼 수 없었습니다. 참고 지내다, 통신사에 연락했습니다. 통신사에서 인터넷 점검을 하였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선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모르니 모뎀도 바꾼다고 합니다. 교통 신호등은 파란 불과 빨간불이 필요하지만, 인터넷은 늘 파란불만 켜져야 합니다. 가끔 빨간불이 켜져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제 매일 파란불이 보이니 파란 하늘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신앙은 늘 파란불이어야 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첫영성체와 관련된 작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주보에 공지했고, 신청을 받았습니다. 교사들은 신청한 학생들만 받아서 1년 동안 교리를 가르친다고 하였습니다. 주보를 보았지만 깜빡하고 신청을 못한 분이 있었습니다. 3주간 시간이 지났습니다. 교장 선생님께 부탁했는데, 교장 선생님은 늦었으니, 내년에 신청하라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부모님은 보충 교리를 할 수 있으니 받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달라스 지역은 타주에서 이사 오는 분도 많고, 한국에서 이민 오는 분도 많은 편입니다. 부모님은 제게 아이가 내년에 첫영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교실도, 교사도 부족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아이가 내년에 첫영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번에 한 가지 확실한 걸 알았습니다. 아이는 부모님에게 파란불도 빨간불도 있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아이를 위해서라면 파란불이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을 이야기하십니다. 인터넷은 외부선을 교체하고, 모뎀을 바꾸면서 빨간불은 파란불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빨간불이 켜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성당에 나오지만, 삶이 기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세속적으로 살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의 약해진 신앙에 성령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사랑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믿음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희망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과일 바구니에 상한 과일이 있으면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일 바구니에 있는 성한 과일들도 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에 있는 ‘암’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몸의 성한 부분들까지 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열’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분열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덜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욕망과 분노를 덜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시기와 질투를 덜어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희망의 불, 사랑의 불, 믿음의 불, 성령의 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덜어낼 수 있을까요? 오늘 바오로 사도는 그 방법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파란불이 켜져 있을 것입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
2024년 나해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루카 12,49-53
성령의 불이 붙은 리더: 내외적으로 적을 만든다
사람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먼저 해야 할 일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의 목적은 오로지 보수에만 있기에 일에서
흥미를 찾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고위직에 앉으면 그 회사나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로마 황제 네로(서기 37~68년)를 꼽고 싶습니다. 바티칸 박물관에 가서 보면
그의 목욕 욕조가 엄청나게 큰 붉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일보다는 사치와 시, 연기 등에 더 관심을 가졌고 로마의 대화재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랬다고 뒤집어씌워 박해와 같은 수단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무에 대한 충실성이 부족하고 제국의 통치를 소홀히 하여 광범위한 불만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황제를 목숨 걸고 수호해야 하는 근위대까지도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원로원도 네로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자신의 체포와 잔혹한 처형이 불가피하다는 소문을 들은 네로는 처형이라는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기로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대단한 예술가를 잃고 있는가!” 무능한 리더는 내부에서만 적을 만듭니다.
그다음은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도 리더의 자격이 없습니다.
코닥 필름을 이끌었던 CEO 케이 위트모어(Kay Whitmore, 1990~1993)가 그러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재임 동안 수익성을 유지하고 사진 필름 시장에서 지배력을 유지했습니다. 회사는
표면적으로 여전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고, 그는 특별히 무능하다고 인식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코닥의 리더십은 디지털 혁명을 충분히 일찍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수익성이 높은
필름 사업에 너무 집중하여 디지털 사진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위트모어는 업계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 예측할 수 있는 비전과 사진의 미래를 향해
회사를 전환하려는 결단력이 부족했습니다.
코닥의 디지털 기술 전환 지연으로 인해 경쟁업체가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고
결국 코닥은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코닥이 마침내 따라잡으려고 시도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회사는 2012년에 파산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금 삼성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열심히는 일하지만, 그래서 겉으로
수익이 나서 나무라는 사람이 없지만, 이런 사람도 결국 한 나라나 회사, 가정을 말아먹게 됩니다.
할 일만 하는 리더는 내외부에서 다 적을 만들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사명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리더로 적합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애이브러햄 링컨’의 사례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직 내내 극심한 반대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도덕적 신념, 비전,
결단력 측면에서 그에게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여준 탁월한 지도자의 모델입니다.
그는 노예해방까지 주장하며 남북이 전쟁하게도 했습니다. 사실 노예제도 해방 문제로 전쟁을
해야 할 때 적들에게만 반대를 받은 게 아니었습니다.
내부에서도 반대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자기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링컨은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신문에 희화화되었고,
정치적 경쟁자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심지어 자신이 속한 당의 일부 구성원들로부터
멸시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를 위한 장기적인 비전에 계속 집중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조국을 보존하고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실천한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링컨이 오늘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감히 행했기 때문입니다.
즉각적인 우려를 뛰어넘고, 반대를 견디며, 더 큰 이익을 위해 용감한 결정을 내리는
그의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든 리더에게 강력한 모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도 불이 붙었고, 그 불의 열정은 자신을 짓누릅니다. 또 분열을 일으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자기 할 일에만 충실한 사람은 큰 분열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불이 붙은 사람은 내부와 외부에서 다 큰 분열을 일으키지만, 결국 한 가정이나
회사, 나라를 부흥시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모델이 고 김수환 추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단체의 리더를 뽑을 때 성령의 열정으로 분열을 초래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그 단체의 장래는 밝을 수밖에 없지만, 안정만 추구한다면 그 장래는 밝을 수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3. 이영근 신부
2024년 나해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참 평화로 이끄는 불꽃>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루카 12,49)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엉뚱하게도 세상에 '불'을 지르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파괴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죄를 불살라 태워버리는 십자가의 세례를 통해 이루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교회 안이나 밖이나, 이 ‘불’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가진 기득권으로 빛을 짓누르고 공격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어둠이 들통나는 것을 막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의와 거짓은 물러가기보다 오히려 불을 꺼버리려 온갖 술수를 부리기 일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루카 12,50)
사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의 세례’로 지상에서의 전도 활동을 완성하시고, 성령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타올라야 할 이 ‘성령의 불’과 ‘피의 세례’는 하나의 큰 도전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들이나 딸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결코 갈 수 없는 도전입니다.
그것은 거짓된 자신과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 불의와 거짓을 맞서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51)
그런데 친히 ‘평화’를 주신 분(루카 24,36)이 어찌하여 분열을 일으키실까?
그것은 세상이 거짓 평화에 물들어 있고, 그 속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분열’은 파괴를 위한 분열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분열이요, 어둠으로부터 오는 분열이 아니라 빛으로부터 오는 분열입니다.
그렇습니다.
분열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열 안에서 빛과 어둠을 보는 눈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위를 감돌고 있었다.”
(창세 1,2)
그렇습니다.
분열이 없는 것이 평화인 것이 아니라, 정의가 이루어진 것이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이신 당신께서는 오늘도 '말씀의 쌍날칼'을 주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속셈과 생각을 갈라냅니다.”
(히브 4,12)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은보석의 선물더미가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말씀의 칼’은 우리를 갈라놓고 분열시킵니다.
오늘도 ‘말씀의 불세례’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분열시킵니다.
다름 아닌, 우리를 당신과 일치시키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참 평화로 이끄는 이 불꽃이 우리 안에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 12,49)
주님!
당신은 제게 사랑의 불을 지르십니다.
제 속의 어둠을 태워 새로운 살이 돋게 하시고, 이기심을 태우고 자비가 돋게 하소서.
무관심을 태우고 사랑이 돋게 하시고, 사랑의 분열을 일으키소서.
제 살을 가르고 어둠을 몰아내시고,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고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소서.
제 안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당신 영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23.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에페3,2-12 루카12,39-48 책임을 다하는 믿음의 정주(定住) 종신불퇴(終身不退)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주시고, 당신은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시편18,29) 아침성무일도중 마음에 와닿은 시편성구입니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12,3) 오늘 화답송 후렴 성구입니다. 교황청 홈페이지에서 읽은 뉴스의 두 제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와 대화의 건설자’(a builder of peace and dialogue)였다.” “시노드는 멕시코에서 살해된 ‘평화의 전사’(warrior of peace)인 사제를 위해 기도하다.”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모름지기 공동체 지도자는 평화와 대화의 건설자로, 또 평화의 전사로 책임을 다해야 함을 배웁니다. 또 금정산의 범어사를 찾은 모 정치지도자에게 주지스님과 방장스님이 선물했다는 액자의 글귀가 마음에 와닿아 나눕니다. “무구무애(無垢無碍,인생을 살면서 허물이 없으면 걸릴 것이 없다)” “감인대(堪忍待,견디고 참고 기다리라)” 이 또한 책임을 다하는 자들이 마음에 담아야 할 교훈입니다. 어제는 매월 갖는 수도원을 사랑하는 예수성심자매회 회원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매들입니다. 미사를 봉헌하고자 피정집을 향하는 순간 떠오른 말마디 “늘 깨어 있어라!” 강론에 추가했습니다. 어제 강론은 너무 강열해 제가 쓴 강론이지만 잊지 못합니다. “깨어 있음은 개방입니다.” 참 중요한 말마디를 잊은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열려 있는 사람이요 벽이 아니라 문인 사람입니다. 주변에 환히 활짝 열려 있는 빛같은 사람이 진정 깨어 있는 자유로운 사람, 욕심없는 사람, 질투나 분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깨어 있을 때 죄도 짓지 않습니다. 깨어 있음을 잊을 때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예수성심자매회가 설립된지도 거의 20년이 됩니다. 수도원이 곤경중에 있을 때 시작된 자매회요 이때부터 20년간 총무와 회장 책임을 다한 자매의 진솔한 고백을 잊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해 공동체를 추스르기에 많이많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40대 중반의 젊음이 이제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고 있는 분이나 여전히 소녀같이 청순하고 지혜로운 분입니다. 새삼 감동한 것이 자매님의 책임감입니다. 20여년간 참으로 성실히 책임을 다했다는 사실에 새삼 감동했습니다. 추상적 믿음이나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 사랑이 감동을 주고 이런 책임을 다할 때 구원이라 믿습니다. 말없이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삶에 옛 어른의 말씀도 도움이 됩니다. “말이 많아지면 어느새 쌓인 말들이 행동을 앞서게 된다.”<다산> “말이 많으면 빨리 궁해지니 차라리 속을 비워 지키느니만 못하다.”<도덕경> 지도자들은 입이 무거워야 함을 배웁니다. 36년전 수도원 초창기 수도원에 부임할 때 회상하며 쓴 글을 약간 손질하여 나눕니다. 이때의 결의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평생 믿음의 정주생활에 온힘을 쏟게 하는 고백이 됩니다. “본원에서 파견받아 떠나기 전날 밤, 밤새워 성전에서 주님께 3천배 절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다짐하며 살아왔다. 성철 큰스님의 ‘종신불퇴’말씀을 좌우명 삼아 평생 매일 미사와 강론에 배수진을 치고 살아왔다. 지금까지 만36년 동안 하루만 살았다. 나에겐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가 영원이다.” 평생 정주 서원은 죽을 때까지 그 삶의 자리에서 종신불퇴(終身不退; 몸이 다할지언정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의 자세로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주님을 향한 신망애의 자세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진인사대천명’,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한다’, ‘백절불굴, 칠전팔기’,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모두가 목숨을 내놓고 책임을 다하는 순교자적 삶의 자세를 지칭하는 말마디들입니다. 오늘 복음도 어제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오늘은 교회지도자들은 물론 모든 사회 각층의 지도자들에게 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믿는 자들 모두에게도 좋은 참고가 되는 말씀입니다. 지도자들을 모름지기 깨어 있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종으로서 집사의 직분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도자들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들의 책임은 특권(privilege)이 아니라 봉사직(service)이요, 시험(test)이자 신뢰(trust)의 문제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평생 쌓은 명예와 신뢰도 무너지기는 순간이요, 실추되는 명예와 신뢰의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며 특히 종교지도자들의 경우는 거의 치명적입니다. 더불어 공선사후(公先私後; 공적인 일을 먼저하고 사적인 일은 나중으로 미룬다), 예전 재판을 받을 때 찾았던 변호사 사무실에 걸려 있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베네딕도 규칙을 보면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은 나중에 주님앞에 헴바쳐야 함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 책임을 다하도록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이어지는 경우는 이와 반대로 자기 책임을 망각한 불충실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들에게 언젠가 분명히 있을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말합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보고 배워야 할, 희망의 표지가 되어야 할, 윗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해 있으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정의롭지 못한 지도자들의 폐해가 얼마나 심대한지 작금의 상태를 보면 누구나 체감할 것입니다. 지도자의 모범이 바로 제1독서 에페소서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정말 목숨을 내놓고 복음 선포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바오로의 고백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을 펼치시어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에 따라, 나는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나에게 그러한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은총의 선물'같은 사명을 깨달아 전력투구한 바오로 사도야 말로 지도자들의 모범입니다. 10월 내내 저를 행복하게 하는 불암산을 볼 때마다, 불암산앞에 설 때 마다 떠오르는 고백시입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바 물론 ‘주님’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늘 주님 앞에서, 주님 안에서 책임을 다하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시편33,18). 아멘. |
10/24(목)[(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파란불이 켜져 있을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링컨은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신문에 희화화되었고,
정치적 경쟁자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심지어 자신이 속한 당의 일부 구성원들로부터
멸시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를 위한 장기적인 비전에 계속 집중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조국을 보존하고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실천한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링컨이 오늘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감히 행했기 때문입니다.
즉각적인 우려를 뛰어넘고, 반대를 견디며, 더 큰 이익을 위해 용감한 결정을 내리는
그의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든 리더에게 강력한 모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도 불이 붙었고, 그 불의 열정은 자신을 짓누릅니다. 또 분열을 일으킵니다.
(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 12,49)
주님!
당신은 제게 사랑의 불을 지르십니다.
제 속의 어둠을 태워 새로운 살이 돋게 하시고, 이기심을 태우고 자비가 돋게 하소서.
무관심을 태우고 사랑이 돋게 하시고, 사랑의 분열을 일으키소서.
제 살을 가르고 어둠을 몰아내시고,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고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소서.
제 안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당신 영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깨어 있음은 개방입니다.”
참 중요한 말마디를 잊은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열려 있는 사람이요 벽이 아니라 문인 사람입니다.
주변에 환히 활짝 열려 있는 빛같은 사람이 진정 깨어 있는 자유로운 사람, 욕심없는 사람,
질투나 분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깨어 있을 때 죄도 짓지 않습니다. 깨어 있음을 잊을 때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이수철 신부)
10/24(목)[(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제125일 기도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 12,49)
주님!
당신은 제게 사랑의 불을 지르십니다.
제 속의 어둠을 태워 새로운 살이 돋게 하시고, 이기심을 태우고 자비가 돋게 하소서.
무관심을 태우고 사랑이 돋게 하시고, 사랑의 분열을 일으키소서.
제 살을 가르고 어둠을 몰아내시고,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고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소서.
제 안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당신 영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0월24일(목) 6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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