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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1월 1일 금요일[(백) 모든 성인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1월 1일 금요일[(백) 모든 성인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따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기억하고 기린다. 이 축일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어 609년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5월 13일이었는데, 9세기 중엽에 11월 1일로 바뀌었다. 교회는 이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우리와 천국의 모든 성인 사이의 연대성도 깨우쳐 준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성인들은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며 영원한 행복을 누립니다. 하늘 나라의 성인들을 기리며 전구를 청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굳게 믿는 우리도, 희망을 안고 성인들처럼 하느님을 뵐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갑시다.

입당송

주님 안에서 다 함께 기뻐하세. 모든 성인을 공경하며 축제를 지내세. 천사들도 이 큰 축제를 기뻐하며, 하느님의 아드님을 찬양하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이 성대한 축제로 모든 성인의 공덕을 기리게 하셨으니
성인들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가 바라던 하느님의 자비를 풍성히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4(23),1-2.3-4ㄱㄴ.5-6(◎ 6 참조)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1-3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11,28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알렐루야.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예물기도

주님,
모든 성인을 공경하며 드리는 이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고 있는 성인들의 전구로
저희도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성인 감사송 3 : 우리의 어머니인 예루살렘의 영광>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오늘 저희 어머니인 천상 도읍 예루살렘을 보여 주시니
거기서 저희 형제들은 이미 승리의 월계관을 받아 쓰고
아버지를 영원히 기리고 있나이다.
나약한 저희도 성인들의 뒤를 따라 영광을 기뻐하며
그들의 도움과 모범으로 힘을 얻어
활기찬 믿음으로 영원한 고향을 향하여
나그넷길을 서두르고 있나이다.
그들의 모범은 나약한 저희에게 힘이 되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성인과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외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5,8-10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보리라.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영성체 후 묵상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듣는 이에 따라 울림이 다른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산 이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한 이들입니다. 우리도 성인들처럼 살아가기로 굳게 다짐하며 성인들의 전구를 청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홀로 거룩하시고 놀라우신 하느님,
모든 성인과 함께 하느님을 경배하며 은총을 간청하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거룩하게 되어
현세의 나그네 식탁에서 천상 고향의 잔치로 건너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모든 성인 이콘.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모든 성인 대축일

 

한국의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강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문학이라는 밭에서 자랐습니다. 저의 작품은 한국 문학이라는 밭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제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한국 문학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저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준 선배, 동료, 후배 문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제게는 영광입니다. 저를 키워준 한국 문학과 함께 기뻐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강의 수상 소감을 보면서 그의 겸손과 인품도 노벨 문학상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와 이예원의 번역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교황청에서 근무하는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있습니다. 시대의 큰 어른이었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있습니다.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가 있습니다. 500만이 넘는 가톨릭 신자가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이렇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박해의 칼 아래 쓰러진 수많은 무명 순교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교회의 역사에 드러나는 성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숭고한 삶과 희생 그리고 순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던 지도자 모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았던 베드로 사도가 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고, 초대교회의 신학적인 기틀을 마련했던 바오로 사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분들만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이웃을 사랑한 분들이 있어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본당도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 있습니다.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있습니다. 신앙의 향기를 전해주는 수도자가 있습니다. 본당에는 지체를 이루는 봉사단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당은 그런 건물과 조직, 봉사자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 일찍 성당에 오셔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기에, 주보를 나누어 주면서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있기에, 나눔과 희생으로 주님을 드러내는 분들이 있기에 본당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을 기억하는 달입니다. 제 기억 속에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생각합니다. 할아버지는 1970년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수염이 멋있었습니다. 곰방대로 담배 피우셨습니다. 제가 어렸고, 54년이 지나서인지 그 이상 생각은 잘 나지 않습니다. 작은형은 2004년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키도 컸고, 운동을 잘했던 형입니다. 구속되기보다는 자유를 좋아했던 형은 자유롭게 먼저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2011년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큰 산과 같았던 아버지는 제게 신앙을 주었습니다. 책을 가까이하였고,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말은 없었지만, 어머니를 무척이나 사랑하였습니다. 어머니는 2020년 코로나 시기에 하느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저를 사랑하였고, 자랑스러워하였던 어머니입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시기여서, 어머니 장례미사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남아 있는 가족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로운 삶으로 옮겨 갈 겁니다. 교회가 위령성월을 지내는 건,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그리고 오늘 제2독서는 우리의 희망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행복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가는 쉼터에 불과합니다. 참된 행복은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 전삼용 요셉 신부

 

2024년 모든 성인 대축일

마태오 5,1-12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유혹할 수 없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성인이 어떤 분인지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그리 깨끗하고 거룩할 수 있었을까요? 

 

일본의 오랜 민담 중에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지구에 내려와 인간의 삶을

경험하고 궁극적으로 천상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천상의 존재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숲속에서 빛나는 죽순을 발견한 나이 든 대나무를 잘라 파는 노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가 죽순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작고 빛나는 소녀를 발견했습니다. 기뻐서 그는 그녀를

아내의 집으로 데려왔고, 그녀를 딸로 키우며 그녀의 이름을 가구야히메(가구야 공주)라고

지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대나무꾼은 숲으로 돌아올 때마다 다른 대나무 줄기에서 금과 보물을

발견하여 금세 부자가 됩니다. 가구야 공주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젊은 여성으로 빠르게 성장하여

그녀를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노인은 시골의 친구들에게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기 딸을 높은 귀족과 결혼시키기 위해

황제가 사는 도시로 이사 나와 커다란 집을 짓습니다. 가구야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각지에서 귀족들이 그녀의 결혼을 청하러 찾아옵니다. 모두 고위 왕자인 다섯 명의 끈질긴 구혼자가

그녀와 결혼할 것을 주장하지만, 가구야는 그들 중 누구와도 결혼하기를 꺼려

각 구혼자에게 불가능한 일을 맡깁니다.

 

그녀는 신화 속 섬의 전설적인 보석 가지와 부처의 구걸하는 돌 그릇 등 희귀한 보물을

각 왕자에게 요청합니다. 각 구혼자는 결국 속임수나 패배로 실패하고

그들의 진정한 성격과 무가치함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일본 천황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듣고 그녀에게 구혼하려고 합니다. 그는 그녀의 온화한

성격과 신비로움에 반해 그녀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냅니다. 가구야는 그를 좋아하고

그의 친절함을 존경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그의 영역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그에게 밝힙니다.

 

어느 날 밤, 가구야는 자신이 실제로 달에서 왔으며 곧 천상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양부모에게 밝힙니다. 상심한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지구에 머물게 하려고 노력하고,

황제는 그녀를 다시 데려가려고 올 천상의 존재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경비원을 보냅니다.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천상의 행렬이 내려오고, 깃털 옷을 입은 가구야는 출발을

준비합니다. 그녀는 황제에게 줄 메모와 불멸의 비약이 담긴 약병을 남겨 둡니다.

 

그녀가 떠난 것에 깊은 슬픔을 느낀 황제는 비약을 마시지 않기로 했고, 그녀 없이 영원히 사는 것보다

슬픔을 안고 사는 것을 더 선호했습니다. 대신 그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불로장생약을

불태우라고 명령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후지산(문자 그대로 ‘불멸의 산’을 의미함)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정상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가구야 공주에 대한 천황의 영원한 기억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가구야는 이 지상의 존재가 아님을 알고는 이 지상의 모든 유혹에 물들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을 깨끗이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바로 믿음으로. 오늘 제2 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지상에서 하느님 자녀임을 시험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자녀임을 믿는다면

이 지상의 어떤 유혹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존재는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이 잿더미처럼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모든 것’을 주시는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1 독서에서는 오로지 구원이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오늘 복음은 이 시련을 이겨낸 이들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디오게네스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온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가 힘과 재산으로

누르려 했을 때 그저 술통에 누워 “햇빛이나 가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구약의 욥은 다 잃었지만,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력을 잃고도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이런 성인들을 유혹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가지면 다 가진 것입니다. 다 가진 이들은 죄를 짓지 않기에 성인들입니다.

다 주시는 분은 전부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3. 이영근 신부

 

2024년 모든 성인 대축일

 

<'하늘에서 받을 상'>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잘 익어 가는 11월의 가을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의 축복과 자비가 잘 익어 ‘성덕’의 열매가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정녕 가을은 ‘변화의 극점’입니다.

자신을 찬란하게 꾸며오던 일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는 일로 ‘건너감’입니다.

 

그것은 붙들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구는 낙엽처럼, 매여 있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영의 이끄심’에 끌려 다니는 일입니다.

임을 찾아 바삐 달리던 일에서, 찾아 만난 ‘임과의 속삭임’으로 건너가는 일입니다.

이제는 뒹구는 낙엽처럼,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지기를,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지기를,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어지기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비워지고서야 타인의 존귀함이 보이고, 허물을 뒤집어쓰고서야 자신이 비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해야 할 때입니다. 

자신이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주님을 주님 되게 해 드려야 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주님 안의 자신과 홀로 고독할 줄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동체에 힘입어 살아왔다면, 이제는 공동체에 거름으로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성성’에로 나아가라는 강력한 호소를 듣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권고 문헌’인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마태 5,12)에서 밝히셨습니다.

“모든 이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의 사명입니다.”(9항)

오늘 말씀전례는 ‘성성’에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참된 행복'입니다. 

그것은 ‘가난을 사는 일’입니다. 

이미 그분을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할 것입니다. 

그것은 ‘슬퍼할 줄을 아는 일’입니다. 

자신과 세상의 죄를 슬퍼하되, 자비 안에서 위로를 받고 기쁠 것입니다.

 이미 깨어, 항상 임을 바라보며 기도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온유해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진정 있어야 할 하느님 품에 안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감미로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일’입니다. 

곧 그분 외에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을 극단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이미 주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손길에 매만져진 까닭입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영에 끌려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고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정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오늘, '모든 성인의 대축일', 이토록 우리는 복된 삶에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성 베네딕도는 말합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성인으로 불리기를 바라지 말고, 참으로 성인으로 불리어지도록 먼저 성인이 되십시오.”

(수도규칙 4,62)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제 가슴이 찔리게 하소서.

온유해지게 하소서.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지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게 하소서.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어지게 하소서.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게 하소서.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지게 하소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끌게 하소서.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제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복된 삶이 제게는 참된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31.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에페6,10-20 루카13,31-35

 

영적 전쟁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105,3-4)

 

오늘은 묵주기도성월 10월의 끝날이자 내일은 11월 위령성월의 첫날이자

모든 성인들의 대축일입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입니다.

어느때 보다도 ‘한반도가 전쟁의 위기를 맞고 있는 시대’,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절박한 시절입니다. 

 

강론쓰기전 인터넷 뉴스를 일별하면 온통 어둔 소식들에 힘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국내외가 온통 전쟁이야기들이고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무지의 어리석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화를 희구하는 인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인류와 함께 시작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류사는 그대로 전쟁사처럼 생각됩니다. 며칠전 교황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부단히 성령의 선물인 평화를 역설하며 전쟁중단을 호소하는 교황입니다.

 

“누구도 전쟁에서 승리는 없다. 모두가 잃는다. 전쟁은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패배다.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전쟁에 희생된 이들이 참 많다.

아이들과 가정들이 첫째 피해자들이다. 오늘은 10월29일이고 지난 19일동안

필레스틴에서는 770명이 죽었다.”

 

얼마전 일간지 컬럼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서로가 공멸이요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내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나쁜평화가 좋은전쟁보다 백배 천배 낫다는 생각입니다.

남북이 폐허에서 일어나 간신히 좀 살게 되었는데 서로 파괴하는 전쟁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국가지도자의 우선적 책무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전쟁금지임을 절감합니다.

 

인간내에 잠재해 있는 선성과 더불어 폭력성, 잔인성, 공격성의 악성입니다.

참으로 물리적 폭력의 전쟁을 영적 전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성서영성,

수도영성이 보여준 진리이자 지혜입니다.

삶은 영적전쟁이요 우리 믿는 이들의 주님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수도사제생활 초창기부터 무려 35년 동안 강론에 참 많이 인용했던 주제이기도 합니다.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은 예외없이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평화의 전사요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입니다.

 

삶은 반복입니다. 강론을 통해서도 많이 깨닫는 진리입니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제 강론도 참 많이 반복됩니다. 반복도 깨달으면 늘 새롭게 들립니다.

다음 담쟁이란 26년전 이 자리에서 썼던 시도 참 많이 반복하여 나눴습니다.

지금도 수도원 곳곳에서 여전히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담쟁이들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 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새 다시 시작했다

 초록빛 열정으로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타오르다 

 가을 서리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정주의 삶에도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다만 오늘 향해 타오를 뿐 내일은 모른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다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정주의 영성이다”<1998.6.3.>

 

늘 새롭게 시작하는 정주의 영성은 그대로 파스카 영성입니다.

밖으로는 한결같은 정주의 산이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하느님 향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입니다.

바로 ‘산과 강’의 영성을 살아가는 우리 정주의 수도자들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영적전쟁,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로 그대로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반영합니다.

제1독서 에페소서는 오늘 끝납니다만 마지막 주제는 영적투쟁이고 여기서 착안한 강론 제목입니다.

에페소서 내용 전부가 단숨에 읽힙니다만 일부만 인용합니다.

지옥은 텅 비어 있고, 악마들은 모두 뛰쳐나와 세상에서 활개치고 있는 세상이라 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인내를 다하고 깨어 있으십시오.”

 

그대로 영적승리를 위해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한 주님의 전사,

바오로 사도의 모습입니다. 바오로 사도뿐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인 모든 사도와 성인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평생 영적전쟁중에 영적승리로 이끈

장엄한 전사가 순교의 죽음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믿는 우리들의 신원 역시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한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십자가의 길 예루살렘 도상에 있는, 죽음에 직면한 하느님의 전사,

예수님의 단호한 결의가 또렷합니다.

해로데가 당신을 죽이려 하니 어서 이곳을 떠나 피하라는 바리사이 몇 사람이

전갈에 대한 주님은 지체없이 헤로데를 여우로 지칭하며 그에게 다음 말씀을 전하라 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전사로서 결연한 전의가 진하게 와닿습니다.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가야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니 다른 곳에서 죽을수야 없기 때문이다.”

 

평생 휴식이 없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순교로 전사하는 그날까지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책임을 다했던 영원한 현역의 하느님의 전사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완전히 무장시켜 주시어 하루하루

날마다 영적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다음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 마지막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11/1(금)[(백) 모든 성인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행복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가는 쉼터에 불과합니다. 참된 행복은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우리가 하느님 자녀임을 믿는다면 이 지상의 어떤 유혹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존재는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이 잿더미처럼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모든 것’을 주시는 그리스도뿐입니다.

 

디오게네스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온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가 힘과 재산으로

누르려 했을 때 그저 술통에 누워 “햇빛이나 가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구약의 욥은 다 잃었지만,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력을 잃고도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이런 성인들을 유혹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가지면 다 가진 것입니다. 다 가진 이들은 죄를 짓지 않기에 성인들입니다.

다 주시는 분은 전부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이십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잘 익어 가는 11월의 가을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의 축복과 자비가 잘 익어 ‘성덕’의 열매가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붙들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구는 낙엽처럼,

매여 있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영의 이끄심’에 끌려 다니는 일입니다.


이제는 뒹구는 낙엽처럼,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지기를,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지기를,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어지기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비워지고서야 타인의 존귀함이 보이고, 허물을 뒤집어쓰고서야 자신이 비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해야 할 때입니다. 

자신이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주님을 주님 되게 해 드려야 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주님 안의 자신과 홀로 고독할 줄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동체에 힘입어 살아왔다면, 이제는 공동체에 거름으로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성성’에로 나아가라는 강력한 호소를 듣습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제 가슴이 찔리게 하소서.

온유해지게 하소서.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지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게 하소서.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어지게 하소서.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게 하소서.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지게 하소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끌게 하소서.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제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복된 삶이 제게는 참된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가야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니 다른 곳에서 죽을수야 없기 때문이다.”

(이수철 신부)

 

11/1(금)[(백) 모든 성인 대축일], 제 133-4 기도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제 가슴이 찔리게 하소서.

온유해지게 하소서.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지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게 하소서.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어지게 하소서.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게 하소서.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지게 하소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끌게 하소서.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제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복된 삶이 제게는 참된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1일(금) 5시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