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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0월 31일 목요일[(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0월 31일 목요일[(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05(104),3-4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6,10-20
형제 여러분, 10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12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19 그리고 내가 입을 열면 말씀이 주어져 복음의 신비를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간구해 주십시오.
20 이 복음을 전하는 사절인 내가 비록 사슬에 매여 있어도,
말을 해야 할 때에 이 복음에 힘입어 담대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4(143),1.2.9-10(◎ 1ㄱ)
◎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내 손가락에 싸움을, 내 손에 전쟁을 가르치셨네. ◎
○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셨네. ◎
○ 하느님, 당신께 새로운 노래 부르오리다.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당신은 임금들을 구원하시고, 당신 종 다윗을 구하시나이다. ◎

복음 환호송

루카 19,38; 2,1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찬미받으소서.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 알렐루야.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 올리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바치는 제사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20(19),6 참조
당신의 구원에 우리가 환호하며,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리이다.
<또는>
에페 5,2 참조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셨네.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놓으시어, 하느님께 향기로운 예물로 바치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은혜를 풍부히 내려 주시어
저희가 거행하는 이 신비를 그대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작년 신문사에 있을 때입니다. 성지순례를 5번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과달루페, 이스라엘, 그리스와 터키, 이탈리아, 한국으로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려면 준비물이 있습니다. 여권, 핸드폰, 지갑은 필수품입니다. 세면도구, , , 노트북도 챙겨야 합니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안내 책자, 묵주, 제의, 성직자 증명서도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외적인 준비를 마치면 내적인 준비를 하면 좋습니다. 신약성서를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준비하고 순례를 떠나도 막상 성지에 도착하면 어려운 상황을 만나곤 합니다. 시차 때문에,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순례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날씨가 문제가 될 때도 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릴 때도 있고, 더위 때문에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질문은 하면 좋습니다. ‘나는 왜 성지순례를 왔는가?’ 성지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순례를 통해서 배우는 겁니다. 성지순례는 신앙의 선조들이 피와 땀을 흘려 지켜온 신앙을 배우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영원한 생명을 향해 떠나는 순례라고 생각합니다.

 

33년 사제 생활하면서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첫 부임지에서의 설렘이 있었습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도 있었고, 자신 있게 갔지만 막다른 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주파수가 맞으면 방송이 들리듯이, 같은 주파수를 공유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컴퓨터 통신이 등장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동호회, 동아리 모임도 있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큰일을 맡아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수호천사가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혼자인 것 같았는데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늘 있었습니다. 말은 없었지만, 먼발치에서 응원해 주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파수가 늘 우리 곁에 있듯이, 하느님의 사랑이 언제나 제 곁에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마음의 문을 열기를 바라셨습니다. 마음의 문만 열면 이웃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는 같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박해의 시대를 견딜 수 있는 준비물을 이야기합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준비물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2000년 전의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준비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는 준비물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진리, 의로움, 평화의 복음, 믿음, 구원의 투구, 성령의 칼을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설명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이런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준비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라는 권력 앞에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두려워하거나, 피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남에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외로움도, 고통도, 죽음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며 우리들 또한 주님의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

 

2024년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루카 13,31-35

 

그리스도인에게 막연한 불안이 없는 이유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두려움으로 예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루카 13,31)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2-33)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생명에 집착하는 겁쟁이로 봅니다. 그래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정체성이 ‘예언자’라고 하십니다. 예언자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그 이전에는

죽게 하지 않으실 것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을 가지고 삽니다. 언제 죽을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로 예언자직을 수행하는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베트남 전쟁에 맥주 배달하러 간 한 남자의 실화를 그린 ‘지상최대 맥주 배달 작전’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1967년 뉴욕시 인우드에서 성당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치키 도너휴’가 주인공입니다.

 

미국은 북베트남과 한창 전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키의 친구들 전사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치키와 가장 친했던 토미까지 행방불명이었습니다. 토니는 치키가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술김에 자신 친구들을 찾아 여전히 미국이 그들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맥주를 전해주고 오겠다고 소리칩니다. 

 

이 소문은 온 마을에 퍼집니다. 치키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전쟁터에

아들과 애인을 떠나보낸 이들은 그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들이 주는 선물을 전해주라고

많은 양의 맥주와 선물들을 싸 줍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치키가 당연히 안 갈 것이라고

은근히 무시합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을 믿고 선물을 맡기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베트남으로 떠나는 배를 알아봅니다. 혹시 자리가 없으면 핑계라도 대겠지만

3시간 뒤에 출발하는 배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운명처럼 맥주를 들고 급유 담당으로 배를 탑니다. 

 

2개월 후에 베트남에 도착하고 사흘 동안 휴가를 얻습니다. 혼자 친구들에게 맥주 배달을 왔다는

그를 군인들은 모두 C.I.A. 요원으로 알고 도와줍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일로 전쟁터로 올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다른 친구를 찾으러 최전방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점점 그는 자신을 C.I.A.로 믿고 도와주는 군인 장교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물론 진짜 C.I.A.에게 쫓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군 기자들보다 더 훤하게 전쟁의 상황을

파악해갑니다. 그리고 의미 없는 전쟁에 자신이 친구의 입대를 종용한 것을 후회합니다.

친구들은 처음엔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치키에게 화를 내다가도 나중엔 고마워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치키에게 거짓으로 보도되는 전쟁의 참상을 올바로 깨닫고 미국으로 건너와 그 사실을

알려 빨리 전쟁이 종식되게 하도록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명을 모르고

오히려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막상 전쟁터에 가자 불안과 공포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칩니다. 만약 이것이 하느님의 사명으로 인식했다면, 그는 그곳에서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의 때와 장소는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베트남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의 예언자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면 지금 이 시각에 나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와 그 장소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물론 그때를 대비해 믿음을 키워가기는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하느님께서 주신 예언자직이 있습니다. 

 

야누슈 코르착은 폴란드계 유대인 의사였습니다. 그는 거의 고아처럼 자란 탓에 부모가 끌려고

홀로 남은 유대인 아이들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고아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독일군들이 들이닥쳤고 코르착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소풍을 가자고

했습니다. 독일군들은 고르착은 갈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위험할 때 부모가 자녀를 버리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그들과 함께 당당하게 가스실로 향했습니다. 

 

비르짓다 성녀의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 죽기 한 달 전에 죽을 때를 알려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는 이 기도를 바치는 이는 예언자직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어떤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 사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사명이 완수되어 가면 ‘이젠 때가 되어 오는구나!’를 명확히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이나 그 때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나를 봉헌했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3. 이영근 신부

 

2024년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자진하여 당신의 길을 가심>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죽음에 직면하신 장면’과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신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합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루카 13,31)

바리사이들의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예수님께 호의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여행을 방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여우’라고 지칭하시면서 그에게 가서 전하라고 합니다.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루카 13,32)

예수님께서는 그 어떠한 인간적 장애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계획과 당신의 사명 수행을 관철’하십니다. 

곧 당신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진하여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루카 13,33)

'가야 한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다는 것’을,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이하신다.’는 말씀은 그분의 뜻에 따라 ‘당신의 삶을 완성하시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자진하여 당신의 길을 가심’을 밝히십니다.

곧 담대하고 의연하고 결연한 의지로 당당하게 당신의 길을 가실 것을 밝히십니다.

 

마치, 최초의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라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연상시켜줍니다.

그것은 헤로데가 베들레헴의 아이들을 모두 살해하면서도 이루지 못했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지만 이루지 못했던, ‘당신의 죽음’을 이제 스스로 이루시러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제시하고 있는 길을 먼저 예수님께서 가신 것입니다.

곧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칼을 쥐고 담대하게 가는 길입니다.’(에페 6,13-17 참조).

이처럼 예수님께서 ‘사명 수행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듯이’,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고’(에페 6,13)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우리가 가야할 길을 계속 가야겠습니다(루카 13,33).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루카 13,33)

 

주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가야 할 길을 계속 가게 하소서.

자신이 죽어 타인을 살리는 길을!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칼을 쥐고,

담대하게 가야 할 길을 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순종의 길을 가오니, 당신이 하고자 하신 바를 이루소서.

당신 안에서 제 삶이 완성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30.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에페6,1-9 루카13,22-30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회개의 삶”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자애로우시다.”(시편145,12ㄴ)

 

태어나기도 좁은 문이고 내내 이어지는 좁은 문들의 연속입니다.

굳이 좁은 문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양상만 다를뿐 누구나 각자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각자 고유의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도 잘 들여다보면

넓은 문일수 있습니다.

 

“이 선생,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 쉽게 살아!”

 예전 초등학교 교사시절, 선배교사의 충고에,

“제겐 이렇게 사는 것이 쉽습니다.”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남보기에 힘든 좁은 문같았지만 이렇게 살지 않으면 못살 것 같았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부부생활도 결코 좁은 문이지 넓은 문일수는 없을 것입니다.

고진감래란 말도 있듯이 어제 고향집 카페에 함께 했던 두 좋은 분도 똑같이

좁은 문들을 통과해온 분들입니다. 

 

요즘 젊은이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온통 좁은 문들뿐같습니다.

공동생활 역시 외관상 좁은 문같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수도생활도 밖에서 볼 때는 좁은 문이지만 이제 저에겐 역설적으로

날로 넓은 문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베네딕도 규칙도 이런 진리를 분명히 밝힙니다.

 

“결점을 고치거나 애덕을 보존하기 위하여 공정한 이치에 맞게 다소 엄격한 점이

있더라도, 즉시 놀래어 좁게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마라.

그러면 수도생활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감미로써

하느님 계명들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다.”(성규 머리47-49)

 

규칙서 <7장 겸손에 대하여> 긴글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끝맺습니다.

머리말의 결론과 일치합니다. 겸손의 좁은 문들 열둘을 통과한 후에

펼쳐져 있는 넓은 문에 대한 묘사입니다.

 

“겸손의 모든 단계들을 다 오른 다음에 수도자는 하느님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이전에는 공포심 때문에 지키던 모든 것을

별로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지키기 시작할 것이니,

이제는 지옥에 대한 무서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하게 될 것이다.”(성규7.67-69)

 

새삼 좁은 문의 통과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좁은 문들 통과의 삶에 결코 값싼 은총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삶은 평생 영적전쟁이라 하는 것이며 백전노장(百戰老將),

불퇴전(不退轉)의 ‘주님의 전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10월 중순 넘어 단풍 물들어가는 불암산의 풍경이 장관입니다.

요즘은 한국 어디서나 가을산 풍경은 이러합니다.

집무실 문을 열 때 마다 되뇌는 두편의 시가 좁은 문을 넓은 문으로 바꿔주며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1.“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2.“늘

   눈앞에 있는 산

   늘

   눈앞에 있는 당신

   이

   행복에 삽니다”

 

옛 어른의 말씀도 나름대로 좁은 문 통과의 비법을 알려줍니다.

“인생에 조급함이 닥쳐올 때마다 현자들의 이 한마디를 기억하라.

‘천천히 서둘러라.’”<다산>

“나는 관직을 맡은 후에 항상 네 글자를 지켜왔다.

바로 부지런함, 삼감, 조화로움, 느림이었다.”<송명신 언행록>

 

제가 자주 제기했단 “삶은 선물인가? 짐인가?”물음도 바꿔 “삶은 넓은 문인가?

좁은 문인가?” 물을 수 있겠습니다. 답은 단 하나입니다.

 

“기도와 사랑이 있으면 삶은 선물이지만 기도와 사랑이 사라지면 삶은 짐이 되기 시작한다.

마찬가지 기도와 사랑이 있으면 좁은 문도 넓은 문이 되겠지만

기도와 사랑이 사라지면 날로 삶은 무거워지고 문은 날로 좁아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값싼 은총은 없다는 것입니다.

저역시 날마다 매일강론쓰기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루 넓은 문의 하루가 펼쳐집니다.

하루하루 첩첩산중 산을 넘듯이 좁은 문을 통과하듯 써온 강론입니다.

온갖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오늘 복음의 주님의 충고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어지는 복음의 집주인의 비유가 참 적절합니다.

집주인이 문을 닫아버리자 값싼 은총의 넓은 문 인생을 살아온 이들은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다” 하며

주님과의 친분을 과시하지만 완전 착각이었습니다.

주님을 상징하는 집주인의 반응이 참 냉정 단호합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일방적으로 내 좋을 대로 하며 주님과 짝사랑 삶을 살아온 업보입니다.

한마디로 회개가 전무했던 삶입니다. 주님 앞에 일체의 기득권은 소용없습니다.

참으로 모두를 회개의 계기로 삼아 주님께 가까워지도록,

주님의 뜻에 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세 사실에 놀란다 합니다.

“내가 천국에 있다는 사실, 전혀 뜻밖의 사람이 천국에 있다는 사실,

꼭 천국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 셋입니다.

 

오늘 복음은 누가 하느님의 나라에 있는 지 실상을 보여줍니다.

바로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비롯한 모든 예언자들과 더불어 동서남북 곳곳에서

나름대로 주님의 뜻에 최선을 다했던 이들이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결론 말씀이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합니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 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죽는 그날까지 방심은 금물입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여 한결같은 용기, 그리고 겸손과 진실,

정의와 선행의 삶에 항구히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는 어제 부부관계에 이어 오늘은 자녀와 부모관계,

종과 주인의 관계를 다룹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해 주님은 좁은 문 통과의 지혜를 가르쳐 주십니다.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즉흥적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상호존중과 사랑의 정신으로 대할 때 좁은 문은

넓은 문으로 바뀔 것입니다.

꼰대가 아닌 존경과 사랑의 어른들이 될 것입니다.

종과 주인 관계는 요즘 없지만 이 관계의 진리를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종 여러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인 여러분,

종들의 주님이시며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시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종과 주인의 관계라지만 주종관계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차별하지 않는 주님 안에서

상호존중의 관계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회개를 통한 관점의 변화가, 진실하고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이 좁은 문 통과에

제일임을 봅니다. 좁은 문은 넓은 문이 되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끊임없이,

한결같이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꺽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주시나이다.”(시편145,15). 아멘.


10/31(목)[(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보이지 않는 주파수가 늘 우리 곁에 있듯이, 하느님의 사랑이 언제나 제 곁에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마음의 문을 열기를 바라셨습니다. 마음의 문만 열면 이웃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는 같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조재형 신부)

 

2. 어떤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 사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사명이 완수되어 가면 ‘이젠 때가 되어 오는구나!’를 명확히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이나 그 때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나를 봉헌했기 때문입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루카 13,33)

 

주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가야 할 길을 계속 가게 하소서.

자신이 죽어 타인을 살리는 길을!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칼을 쥐고,

담대하게 가야 할 길을 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순종의 길을 가오니, 당신이 하고자 하신 바를 이루소서.

당신 안에서 제 삶이 완성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겸손의 모든 단계들을 다 오른 다음에 수도자는 하느님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이전에는 공포심 때문에 지키던 모든 것을

별로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지키기 시작할 것이니,

이제는 지옥에 대한 무서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하게 될 것이다.”(성규7.67-69)

 

새삼 좁은 문의 통과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좁은 문들 통과의 삶에 결코 값싼 은총은 없기 때문입니다.(이수철 신부)

 

10/31(목)[(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제 132-3 기도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루카 13,33)

 

주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가야 할 길을 계속 가게 하소서.

자신이 죽어 타인을 살리는 길을!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칼을 쥐고,

담대하게 가야 할 길을 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순종의 길을 가오니, 당신이 하고자 하신 바를 이루소서.

당신 안에서 제 삶이 완성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0월31일(목) 8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