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1월 2일 토요일[(자)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첫째 미사]/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듯이,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예수님과 함께 데려가시리라.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나리라.
본기도
성자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저희의 믿음을 깊게 하셨으니
저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저희도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굳건한 희망을 지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욥기의 말씀입니다.19,1.23-27ㄴ
1 욥이 말을 받았다.
23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25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26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27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또는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 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자비를 베푸시어 응답하소서.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나이다.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5,5-11
형제 여러분, 5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분열과 갈등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평화의 봉사자로서 사랑과 공감의 언어로 화해를 이끌어 내고,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앞장서게 하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창조주이신 주님, 세계 지도자들의 마음에 생명의 소중함을 불러일으키시어, 인간의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고, 창조된 모든 것을 조화롭게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3. 자녀를 잃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자이신 주님, 아들딸을 잃고 슬퍼하는 모든 부모를 돌보아 주시어, 그들이 공동체의 도움으로 고통을 이겨 내며, 마침내 성령께서 주시는 참평화와 위로를 얻어 누리게 하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위령 성월을 맞은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굽어살피시어, 공동체를 위하여 일하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더욱더 열심히 기도하고 다 함께 기쁘게 살아가게 하소서.
예물기도
성자께서 세우신 사랑의 큰 성사로 하나 되어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이 성자와 함께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을 위하여 파스카의 신비를 거행하고 비오니
그들을 빛과 평화의 나라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죽음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컴퓨터와 인터넷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10년이 넘은 컴퓨터는 배터리가 부풀어 올라서 터질 뻔했다고 합니다. 컴퓨터를 잘하는 형제님이 배터리를 새로 주문하였고, 컴퓨터 내부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해 주었습니다. 예전의 프로그램과 조금 달랐지만 금세 익숙해졌습니다. 사제관 인터넷도 파란불과 빨간불이 번갈아 들어왔습니다. 파란불일 때는 인터넷이 잘 되는데 빨간불일 때는 인터넷 사용이 어려웠습니다. 인터넷 회사에서 직원을 보내 주었고,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파란불이 들어오니 막힌 길이 뚫린 것처럼 시원했습니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 뿌리를 내릴 때까지 몸살을 앓는다고 합니다. 나무도, 토양도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거기에서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졌던 나쁜 습관들, 이 세상에서 가졌던 죄의 습성을 버려야 할 겁니다. 시기, 질투, 욕망, 나태, 편견, 분노, 탐식과 같은 걸 버려야 할 겁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입니다. 모두가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배가 아팠는지 다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노벨상 위원회에 로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건 노벨 평화상의 권위를 훼손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이 새롭게 조명되었고, 모두가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문인 중에 배가 아팠는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강 작가에 대한 한림원의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문학상 후보 중에 한강보다 뛰어난 작가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림원은 한강이 여자라서 노벨상을 준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후보 작가들의 서류를 놓고 선풍기를 돌린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건 같은 민족으로서 축하해 주지 못하는 시기와 질투의 발언이었습니다.
서산대사는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이라는 시를 남겨주었습니다. “눈 덮인 길을 걸어갈 때면 발걸음을 신중히 하여라. 오늘 내가 가는 길은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위령의 날을 지내면서 세상을 떠난 모든 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어떤 분들은 욕망의 바벨탑을 쌓으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부활의 십자가를 지고서 살았을 것입니다. 욕망의 바벨탑에 묻혀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 영혼들의 전구를 구하며 우리들 또한 부활의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24년 위령의 달입니다. 지나온 나의 발걸음이 욕망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것이었다면 내려와서 부활의 십자가를 지고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나온 나의 발걸음이 뒷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의 발걸음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위령의 날을 지내면서 ‘위령 감사송’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모든 성인 대축일
묵시7,2-4.9-14 1요한3,1-3 마태5,1-12ㄴ
성인(聖人) 옆에 살기 힘듭니다!
저처럼 살짝 수준 떨어지는 수도자들끼리 수군수군 이야기하는 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성인(聖人) 옆에 살다가 과로사한다!” 따지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백개의 팔을 지닌 사람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저희 창립자 돈보스코도 결코 바오로 사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가였습니다.
넘쳐나는 뒷골목 청소년들, 산업화의 착취물로 이용당하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노라니, 잠을 많이 잘 수 없었습니다.
천천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 돈보스코가 전혀 다른 장소인 두 곳에 나타나기도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에피소드까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런 돈보스코와 함께 사목했던 제자들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는지
상상이 쉽게 갑니다.
저는 늘그막에야 철이 들어 요즘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다음 할 일, 밀려 있는 일을 생각합니다. 아침에 태안에 있었는데,
오후에는 서울에 찍고 저녁엔 대전 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간 게으름 피운 것을 반성하며 뛰어다니니,
다른 형제들에게는 부담이 될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아 성인은 과연 어떤 분일까 생각합니다.
물론 사목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닌 분들도 성인의 자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게 다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세번째 권고‘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ultate)는 교황님께서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신 ‘성덕(聖德)에로의 초대장’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성덕’과 관련한 제2차바티칸공의회의 핵심 정신인 ‘보편적 성화’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강조하셨습니다.
“성인(聖人)의 길은 주교나 사제, 수도자의 전유물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건조하고 평범한 신앙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성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덕이란 예수 그리스도 삶의 신비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특히 소외된 이들에 대한 친밀성, 그분의 가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 성덕입니다.”
따지고 보니 주님께서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시는 평신도들께 아주 적극적인 초대장을 보내고 계십니다.
성인이 되는 길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각자 몸담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각자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각자 고유한 벙법으로 성덕의 길을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들은 최선을 다해 요리하는 것이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
최선을 다해 도마질을 하는 것입니다. 배우고 익힌 방법에 따라 정성껏 지지고 볶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흡족해하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요리의 달인’이 되는 것이 성덕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거기다 조금 더 보탠다면, 요리할 때 억지로, 짜증내며 하는 것이 아니라 환하고 기쁜 얼굴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드는 요리에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요리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요리하고 계신다면 그는 이미 훌륭한 성인 후보자입니다.
저는 가끔씩 우리 형제들 가운데, 성인 후보자가 있을까? 싶어서 형제들을 살펴봅니다.
정말 깜짝 놀란 일은?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몇명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로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형제들은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은 사람,
늘 자주 차 한잔 했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 아마 이 시대 성인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조금 더 보탠다면 가장 큰 사랑으로 사소한 일상을 정성껏 살아가는 사람,
작고 보잘 것 없는 피조물 안에 깃든 하느님의 손길을 찾는 사람,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환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곧 오늘의 성인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 성인은 대단한 기적을 일으킨다거나 특별한 삶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열중합니다. 그 무엇도 물리치지 않고 그 어떤 청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존재, 사건, 만남을 하느님께로 더 나아가는 계기로 삼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강론
모든 성인 대축일
<우리의 ‘죽음’은 슬픔을 넘어 아름다운 희망입니다>
나뭇잎들 내내 달려와, 단풍이 되었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입니다.
사라져 없어져가는 아름다움입니다.
‘죽음’의 아름다움입니다.
단풍!
이토록 아름다운 변색!
그런데 사실 잎들은 가슴 속 이미 단풍을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있었던 것이 드러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 단풍을 본 것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도 매 한가지일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이 드러나게 되는 일일 뿐일 것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을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막상 그 죽음을 마주치게 되면, 마치 새로운 사실을 맞은 듯이 죽으면 안 되는 것처럼 반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일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은 당하기 전에는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러나 우리가 눈 감고 지낸다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절대극명의 현실입니다.
오늘 위령의 날, 우리는 바로 이 현실 앞에서, 이미 죽은 이들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죽음’과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봅니다.
‘죽음’은 참으로 하나의 진정한 만남일 것입니다.
다름 아닌 그분과의 만남일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하다가, 마침내 그 희망하던 분과 만나는 바로 그 일일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죽음’은 그분과 만나는 통로요, 그분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욥기>는 바로 이러한 만남의 희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계심을.
~내 살갗이 이처럼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욥기 19,25-27)
욥은 ‘죽음’에서 하느님을 뵙고 체험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이 만남의 희망을 보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성 베네딕도는 말합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수도규칙 4,47)
이 가을, 떨어지는 단풍 잎새 하나에서 희망을 봅니다.
‘만남’을 봅니다.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내 안에 이미 있는 ‘죽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미 내 안에 계시는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결국 우리는 죽으면서 그분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음’은 슬픔을 넘어 아름다운 희망입니다.
사실 우리는 ‘영원’을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본래 영원불멸한 존재인 우리의 영혼이 영원하면서도 영원한 줄을 모르기에 이 세상의 한계와 제한을 통하여 영원한 존재임을 배우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악을 보면서야 선이 무엇인지를 배우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죽을 몸에 하느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2코린 4,10)
오늘도 우리는 ‘죽음’을 몸에 달고 다닙니다.
하루하루 죽으면서 삶을 살아갑니다.
새싹처럼, 내 몸 안에서 단풍을, 곧 ‘죽음’을 성숙시켜갑니다.
아니, 영원의 향하여 달려갑니다.
마지막 교부 철학자인 보에티우스(470~524)는 말합니다.
"흘러가버리는 지금이 시간을 만들고, 머물러 있는 지금이 영원을 만든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이익보다 손해 볼 줄을, 자신보다 타인을 존중할 줄을, 옳기보다 허물을 뒤집어쓸 줄을 알게 하소서.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지고,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지고,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어지게 하소서!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하고,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홀로 고독할 줄을 알게 하고, 진정 당신이 주님 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1.금요일 모든 성인 대축일
묵시7,2-4.9-14 1요한3,1-3 마태5,1-12ㄴ
모든 성인들(All Saints)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성인성월, 희망성월”
어제 외출했다가 귀원 도중 수도원 정문을 통과하던 택시기사와 주고 받은 덕담이 생각납니다.
“천국에 들어오는 기분입니다.”
“맞습니다. 수도원은 지상천국입니다. 수도원 천국에 방문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연이어 ‘천국엔 누가 살고 있나? 성인들이 아닌가? 그럼 여기 수도원에 살고 있는 수도자들은
성인이겠다!’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천상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모든 성인들, 그리고 지상에서 살아가는 알려지지 않은 모든 성인들의 대축일입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 모두의 희망이자 성소입니다. 성인은 기억하고 기념할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성인이 되라고 불림받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여전히 좋아하는 오래 전 시가 생각납니다.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뒤뜰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민들레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네!”<2001.4.16.>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인들입니다. 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참 기분 상쾌한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착한 삶을 살다가 죽어 영광의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세례받은 신자들 역시 넓은 의미의 성인들이요,
양심의 확신에 따라 진실로 착한 삶을 살았던 모든 비크리스찬들 역시 오늘 축일에 포함되는 성인들입니다.
성인들은 비단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무수한 별들처럼 곳곳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의 품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아 넓고도 깊습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이 회색빛 11월 위령성월을 희망의 빛으로 환히 밝히는 느낌입니다.
희망과 기쁨의 위령성월이요 그래서 저는 11월 위령성월을 주저없이 성인성월이요 희망성월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위령성월이 끝나면 대망의 대림시기에 돌입합니다. 11월 위령성월 한달은 오늘 저녁성무일도시
흥겨운 후렴을 끊임없는 기도로 노래하려 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묵시록에 근거한 천국의 성인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성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흰옷을 입고 어린양을 따라 가는 도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둘째 독서에서 우리 모두가 성인임을 기분좋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단숨에 읽혀지는 2독서 사도의 말씀 대부분을 인용합니다.
우리의 복된 신원은 그대로 하느님의 자녀인 성인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런 희망을 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바로 순결한 그리스도처럼 순결한 하느님의 자녀인 성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행복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답게, 성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마침 다산어록 11월은 주제어와 11월1일 오늘의 말씀도 성인다운 삶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일일청한(一日淸閑;하루만이라도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본다는 것)”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중심이 있다. 마음에 중심을 곧게 세운 사람을 어른이라고 한다.”<다산>
어른을 성인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늘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드러나지 않는다. 섬세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 그 중심을 붙잡아야 한다.”<송나라 진덕수의 심경>
늘 하느님 중심을 꽉 붙잡고 사는 자가 성인이요 참 어른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 산상수훈의 진복팔단이 성인이 되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 줍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대영성가들이 열광하는 산상설교의 참행복입니다. 말그대로 ‘거룩함의 대헌장’입니다.
구약의 십계명과는 비교가 불가합니다. “...하지말라”는,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금령의 십계명은
착한 모범적 신자는 될 수 있겠지만 절대 성인은 되지 못합니다.
닫힌 금령의 십계명과는 달리 하느님을 닮은 성인의 삶으로 끝없이 활짝 열린 참행복선언입니다.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요 늘 시작임을 깨닫게 하는, 늘 우리를 앞으로, 위로 향하게 하는,
참으로 우리를 겸허하게 하는 진복팔단을 살았던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참행복의 중심에 우리의 영원한 멘토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인들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가 하느님이자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거룩한 욕심, 청정욕(淸淨慾)의 성인들이 목표하는 참행복의 목록을 보며 여러분의 성덕 수준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머리맡에 써붙여놓고 평생 좌우명 삼아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모두가 이만하면 됐다가 아닌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그날까지 전력을 다해야 하는,
늘 시작처럼 느껴지는 성덕의 여정임을 깨닫게 합니다. 진정 참행복을 추구하며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을 닮은 진짜 성인들입니다.
고백성사 성찰시 십계명 기준이 아니라 진복팔단을 기준으로 삼아 성찰하시기 바랍니다.
성화의 여정, 성덕의 여정에 이보다 거룩하고 적절한 수행은, 영적훈련은 없습니다.
아니 하늘에 가기 전, 참행복의 삶을 추구하는 진리의 사람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행복의 상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한껏 격려하고 고무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아멘.
11/2(토) [(자)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되새김 구절
1. 2024년 위령의 달입니다. 지나온 나의 발걸음이 욕망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것이었다면 내려와서 부활의 십자가를 지고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나온 나의 발걸음이 뒷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의 발걸음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성덕이란 예수 그리스도 삶의 신비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특히 소외된 이들에 대한 친밀성, 그분의 가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 성덕입니다.”
사랑으로 사소한 일상을 정성껏 살아가는 사람,
작고 보잘 것 없는 피조물 안에 깃든 하느님의 손길을 찾는 사람,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환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곧 오늘의 성인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 성인은 대단한 기적을 일으킨다거나 특별한 삶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열중합니다. 그 무엇도 물리치지 않고 그 어떤 청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존재, 사건, 만남을 하느님께로 더 나아가는 계기로 삼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이익보다 손해 볼 줄을, 자신보다 타인을 존중할 줄을, 옳기보다 허물을 뒤집어쓸 줄을 알게 하소서.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지고,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지고,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어지게 하소서!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하고,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홀로 고독할 줄을 알게 하고, 진정 당신이 주님 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고백성사 성찰시 십계명 기준이 아니라 진복팔단을 기준으로 삼아 성찰하시기 바랍니다.
성화의 여정, 성덕의 여정에 이보다 거룩하고 적절한 수행은, 영적훈련은 없습니다.(이수철 신부)
11/2(토) [(자)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제 134-4 기도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이익보다 손해 볼 줄을, 자신보다 타인을 존중할 줄을, 옳기보다 허물을 뒤집어쓸 줄을 알게 하소서.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지고,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지고,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어지게 하소서!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하고,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홀로 고독할 줄을 알게 하고, 진정 당신이 주님 되소서.
아멘.
- 2024년 11월2일(토)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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