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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1월 17일 주일[(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1월 17일 주일[(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하셨다. 이날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모범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와 연대, 형제애를 실천하도록 일깨우고 촉구한다.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보살피시니,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시어 잠에서 다시 깨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날마다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어 뽑힌 이들을 모두 주님 나라에 모아 주시기를 기다립시다.

입당송

예레 29,11.12.1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대영광송>

본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그 때에 네 백성은 구원을 받으리라.>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2,1-3
1 그때에 네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제후 천사가 나서리라.
또한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가 오리라.
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2 또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
3 그러나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무궁히 빛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6(15),5와 8.9-10.11(◎ 1 참조)
◎ 주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11-14.18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루카 21,36 참조
◎ 알렐루야.
○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24-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25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26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28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1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2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리의 빛이신 주님, 주님의 백성인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빛과 어둠이 함께 머무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진리를 밝히고, 구원의 희망을 전하며, 참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정치인들에게 정의와 지혜의 은총을 주시어, 살기 좋은 나라와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힘쓰며, 공동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현하게 하소서.

3. 굶주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경제적 어려움으로 굶주리는 이들을 굽어보시어, 이웃과 사회 구성원들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게 하시며, 모든 이가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서 위로를 얻게 하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주님, 저희 지역 모든 이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시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서로서로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고, 저마다 가진 것을 나누며 기뻐하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어
저희가 오롯이 주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8 <삼위의 일치와 교회의 일치>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흩어진 인류를, 성자의 피와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한 가족이 되게 하시고, 삼위의 일치를 본받아 모인 백성이, 주님의 지혜와 사랑을 찬미하는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궁전이 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73(72),28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또는>
마르 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오시어,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비유를 깨달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 수 있도록 깨어 기다립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성자께서 당신 자신을 기억하여 거행하라 명하신 이 성사로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사진설명: 오늘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셨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성서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픈 사람을 위해서 왔습니다.” 착한 목자의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가난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세품아(세상을 품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지금부터 16년 전인 2008년 명성진 목사님은 학교를 나와, 세상에 버려진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학생들은 소년원엘 들락거렸고, 본드를 흡입했습니다. 희망도 없고, 갈 곳도 없고, 고독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명성진 목사님은 우연히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고, 학생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서 경찰서, 법원을 다녀야 했습니다. ‘중독은 중독으로 치료할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학생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음악 공연을 했습니다. 자전거로 몽골 여행을 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었습니다. 목사님의 진심을 본 학생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튕겨 나온 학생들이 이제는 세상을 품은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전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전거는 바퀴가 있고, 페달을 밟아야 움직입니다. 페달을 멈추는 순간 자전거는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학생들이 믿음과 희망의 페달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학생들은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과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목적을 잃으면 멈추게 되고 멈추면 자전거처럼 넘어진다고 합니다.

 

저는 1988, 지금부터 36년 전에 돈 보스코 센터에서 1년 동안 일하였습니다. 돈 보스코 센터는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만든 청소년 자립 직업 학교였습니다.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청소년들이 찾아왔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청소년들이 왔습니다. 돈 보스코 성인은 청소년들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청소년들을 모아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돈 보스코 성인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었고, 그것이 살레시오 수도회가 되었습니다. 1988년 군대에서 제대한 저는 복학 할 동안 돈 보스코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성소국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돈 보스코 센터에서 선반, 조립과 같은 기술을 배웠습니다. 주일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함께 농구도 하고, 미사도 드리고,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주일에는 학생들과 함께 방송통신고등학교에도 갔습니다. 저는 돈 보스코 센터에서 학생들을 위해서 헌신하던 신부님, 수사님,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때 했던 영어 공부는 복학해서 대학원 시험 볼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놀라운 일을 체험했습니다. 20년 후인 2008년 제가 본당 신부로 갔던 본당에서 그때 돈 보스코 센터에서 함께 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결혼해서 세 아이의 아빠가 돼 있었습니다. 본당에서는 청소년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20년 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글을 모르는 사람도, 세상의 지혜를 모르는 사람도, 특별한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진리의 길은, 깨달음의 길은 구원의 길은 아주 평범한 곳에 밝혀 놓으셨다고 합니다. 하늘의 별, 구름, 들의 꽃,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의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변하는 만큼 세상은 그만큼은 변한다고 생각하면 구원의 문제도 그리 큰 숙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3주일: 나해

복음: 마르 13,24-32

 

걷다 보면 발이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는 유달리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들이 많습니다.

바로 작고 가난한 이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진 난민들, 이주민들, 재소자들, 환자들, 노인들, 가난한 사람들...

 

이런 분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고 동반하려는 교황님의 의지가 대단합니다.

교황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총애하시는 당신의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내셨는데,

그것을 바로 오늘,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2015년 미국을 방문하셨을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미국 의회 연설에서 강대국의 횡포를 신랄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야만적인 자본주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횡포로 인한 부의 불균형에 대한 개선을 강하게 촉구하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미국 상하원들은 마음 속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연설이 끝나고 교황님과 함께 하는 만찬이 준비되지 않을까?

식사 후에는 교황님과 찍은 인생샷 사진 한 장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교황님은 연설이 끝난 후 점심 약속이 있다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과 점심 약속이 되었을까?

대통령? 아니면 미국 주교단? 모두 아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성 패트릭 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300여명의 노숙자들과 함께 간소한 점심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이 작은 이들의 사목자요 동반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함께 식사를 나눈 노숙자들을 만나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저도 이민자 가족입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낙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또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셨는데, 그곳은 교도소였습니다.

거기서 재소자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격려하셨습니다.

 

“걷다 보면 발이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더러워진 발을 깨끗하게 잘 씻기 바랍니다.”

 

이혼 후 재혼한 가정과 그 자녀들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적 배려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단호하게 직진하십니다.

 

“실수와 죄악은 단죄돼야 하지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이해받고 사랑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바탕으로 현대 가정의 실제 삶과 현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들의 잘못을 단죄하기보다는, 이혼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위해서

교회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합시다.”

 

“우리 교회는 야전병원입니다.

그 안에서 성체는 완전해진 자들에 대한 포상이 아니라 병자들을 위한 치료약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우선적 선택과 극진한 사랑을

얼마나 본받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연중 제33주일: 나해

 

복음: 마르 13,24-32: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오늘의 전례는 만물이 어떻게 마지막 날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밝혀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역사를 외면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성을 완전하게 성장시킬 수 있도록 역사 속에 깊이 잠기는 것을 말한다. 

 

다니엘서의 내용은 육신의 부활을 긍정하는 구약의 문헌 중의 하나이다(2마카 7,9 참조). 

이제 인간은 마지막 때에 하느님을 자기 전 존재로서, 육체를 가진 자로써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마르코 13장 전체에 걸쳐서 하신 종말론적 담화이다. 

오늘의 이 대목은 예수님의 종말론적 메시지를 “아들”(32절)이신 예수님께도 알려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신앙의 차원으로 확대해 실현하게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먼저 예루살렘이 당할 재난을 말씀하시고, 당신이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 다시 오시리라고 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26절)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영광에 들어가시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시며(마르 16,19) 마지막 날에 영원히 계속될 하느님 나라에 뽑힌 이들을 모으기 위해

다시 돌아오실 분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27절)라는 말은 히브리 사상에서

기다림에 대한 응답이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오직 이스라엘 12지파의 재결합만을 생각했지만(신명 30,4; 에제 34,12~; 이사 27,12-13;

43,5-6; 즈카 2,10; 8,7-8 참조), 

 

여기서는 모든 믿는 이들의 ‘새로운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다(참조: 요한 11,52).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는 예수님 자신도 모른다고 하시며 알려주시고자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복음사가가 의도하는 것은

오셔야 할 그분은 어느 때나 어느 순간이나 오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풀지 말고

깨어있어야 하는 ‘기다림’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29절).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28절), 

주님이 문 앞에 다가온 줄을(29절) 알 수 있는 표징들이 있다. 

 

예루살렘의 종말은 그 동시대인들에게 표징이 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건이 종말의 예표일 수 있었고, 예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32절). 

그러기에 항상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마르 13,35-36 참조). 

그러므로 종말론적 삶이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일상 활동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온갖 사물과 이 세상을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더 합당한 요소가 되게 하고, 

언제나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의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언제나 오실 수 있는 그분을 맞이하는데 떳떳하고 기쁘게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사는 삶을 말한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해 계속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제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스러운 사제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아버지 오른편에 계시면서 당신의 사제직을 수행하고 계시다. 

즉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는 사제직이다. 

 

둘째는 종말론적 내용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히브 10,12-13).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에는 심판관으로서의 모습이지만, 

또한 우리에게 대사제이신 분이시다.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 오른편에서 수행하고 계신 사제직 때문에 더욱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마지막 때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도,

 그때가 되어 여러 가지 어려운 때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잃지 말아야 할 희망을 간직하고

이겨내고, 항상 깨어있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깨어있는 삶은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해 줄 것이며 완성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16.토요일 성녀 제르투르다 동정(1256-1302) 기념일 

                                                                                                                    3요한5-8 루카18,1-8

                                                간절히 항구히 기도합시다

                                                       <진리의 협력자>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낙으로 삼는 이!”(시편112,1)

 

오늘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성녀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성녀 제르투르다 동정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오늘 대 젤투르다 주보성녀 대축일을 지내는 서울분도수녀원은 오후 2시, ‘상지피정의 집 레모델링 축복식 및

대축일미사’가 봉헌되며 요셉수도원에서도 여섯 수도형제가 참석합니다. 

 

대(大) 젤투르다로 불리는 성녀는 1256년 1월6일 독일에서 태어나 다섯 살 되던 해 ]

헬프타 시토회 수녀원 학교에 입학하여 15세 학교를 마치고 수녀원에 입회합니다.

그는 성녀 멕틸다 수련장 밑에서 개방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타고난 지능과 열망으로

베네딕도 성인의 영성뿐 아니라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등에 능통하였습니다.

 

그는 1281년 1월27일 예수님 발현을 체험한후 세속적인 학문에 흥미를 잃고 오로지 성서와 교부들의 저서,

전례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녀의 생활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영적체험의 연속이었으며 그녀의 신심의 특징은 예수 성심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체험과 헌신이었습니다.

 

영성사에서 “예수성심의 신학자”로 불리는 그는 예수성심공경을 시작한 선구자 혹은 사도 여겨집니다.

그녀는 중세의 신비신학과 신비주의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며 특히 13세기 독일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비가로 ‘독일의 데레사’라 불려집니다.

 

1288년 제투르다는 합병증을 앓아 병상에 눕게 되며 오랜 투병생활을 하던 그녀는

1302년 11월16일 향년 46세에 바로 오늘 선종합니다.

무려 병상 생활 14년후 그녀는 아름다운 임종어 “아! 신랑께서 오신다!” 부르짖으며 선종합니다.

 

그녀는 교회로부터 정식으로 시성식을 거치진 않았지만 성인으로 인정받아 공경을 받았으며,

167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성녀에게 ‘위대한(Great)’ 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대(大) 젤투르다 기념일을 제정하여 모든 교회가 성녀의 기념일을 지내도록 지시합니다.

 

11월은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입니다.

성녀는 연옥영혼들에 대해 항상 연민과 동정심을 느꼈으며 예수님이 발현하여 가르쳐준 기도를

매일미사후 바칠 것을 권했습니다.

이 기도를 바칠 때 마다 1000명의 연옥영혼을 구해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합니다.

 

“영원하신 아버지! 연옥에 있는 모든 죄인들과 온 세상 교회에 있는 죄인들과

내 집안과 가정 안에 있는 죄인들을 위하여 오늘 온 세상에 드는 모든 미사성제와 더불어

당신 성자 예수의 가장 값진 피를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아멘.”

 

남은 11월 위령성월도 천상의 성인들을 기리며 계속 부르고 싶은, 제가 참 좋아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

저녁성무일도시 마리아의 노래 후렴입니다.

 

“성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흰옷을 입고 어린양을 따라가는도다.”

 

성녀 젤트루다는 정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의 사람이야 말로 ‘진리의 협력자’입니다.

제1독서의 사도 요한이 가이오스에게 전하는 서간이 참 품위있고 아름답습니다.

얼마전 바오로가 필레몬에게 전한 서간을 연상하게 합니다.

가이오스의 환대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그를 ‘진리의 협력자’란 영예로운 칭호도 부여합니다

 

“나는 그대를 진리 안에서 사랑합니다.

나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로, 이교인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이들을 돌보아 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말마디, ‘진리의 협력자’는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이 주교가 되었을 때 사목표어이기도 했습니다.

교황님이 살아 계실 때 감동적인 인터뷰 기사를 나눕니다. 

 

“교황님의 묘비에 무엇이 새겨지기를 바랍니까?”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이름만 있으면 됩니다.-
“주교가 되었을 때 진리의 협력자란 사목표어는 어떻게 지었나요?“

-진리의 협력자라는 말은 요한의 셋째 서간 1장 8절의 말씀입니다.

진리는 인격이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에 협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감동하여 더욱 진리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진리에 봉사하려는 각오가 되어 있으며,

그 진리를 위해 협력할 채비가 되어 있습니다.-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 베네딕도 교황에 대한 존경과 사랑, 신뢰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며

두분의 아름답고 품격있는 우정도 감동적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마음을 지키면 보존되고, 놓으면 사라진다. 때없이 들고 나기에 그 거처도 알 수 없다.”<맹자>

 

마음을 지키는 첩경의 지름길은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길뿐임을 깨닫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자신을 “진리의 연인”이라 불렀습니다.

참으로 진리를 사랑할 때 순교에 까지 이르게 되고, 저절로 진리의 협력자가 되며

기도 역시 간절하고 항구할 수 뿐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주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비유를 들려줍니다.

고집불통의 완고한 재판관도 지칠줄 모르고 물러설줄 모르는 과부의 목숨을 건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에 항복합니다.

진리의 협력자가 되려면 이정도의 영적탄력 좋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워하여 진리의 협력자가 되려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간절히 항구히 기도하는 믿음이 정말 절대적입니다. 공부하다 죽어라는 말도 있듯이

기도하다 죽을 지언정 결코 기도를 포기해선 안됩니다.

한결같이 끊임없이 기도하다보면 기도도 정화되어 ‘원하는 것에서 필요한 것으로’

올바른 판결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되고 날로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닮아 주님 뜻대로 기도하게 되며

저절로 기도의 응답입니다. 

 

세월흘러 나이들어 육신의 탄력은 떨어져도 영혼의 탄력은, 신망애(信望愛)의 탄력은

날로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답은 단 하나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뿐이요 이래야 평생 진리의 협력자로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성인들의 공통적 특징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영적탄력을 날로 좋게 하시어 당신의 충성스러운 진리의 협력자로

성실히 살아가게 하십니다.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시편112,4). 아멘.


11/17(일) [(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되새김 구절

 

1.   하늘의 별, 구름, 들의 꽃,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의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변하는 만큼 세상은 그만큼은 변한다고 생각하면 구원의 문제도 그리 큰 숙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교황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총애하시는 당신의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내셨는데,

그것을 바로 오늘,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야전병원입니다.

그 안에서 성체는 완전해진 자들에 대한 포상이 아니라 병자들을 위한 치료약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우선적 선택과 극진한 사랑을

얼마나 본받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마지막 때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도,

 그때가 되어 여러 가지 어려운 때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잃지 말아야 할 희망을 간직하고

이겨내고, 항상 깨어있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깨어있는 삶은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해 줄 것이며 완성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조욱현 신부)

 

4. 오늘 복음은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주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비유를 들려줍니다.

고집불통의 완고한 재판관도 지칠줄 모르고 물러설줄 모르는 과부의 목숨을 건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에 항복합니다.

진리의 협력자가 되려면 이정도의 영적탄력 좋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이수철 신부)

 

11/17(일) [(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 149-19 기도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하늘의 별, 구름, 들의 꽃,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의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변하는 만큼 세상은 그만큼은 변한다고 생각하면

구원의 문제도 그리 큰 숙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저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17일(일) 10시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