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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1월 26일 화요일[(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1월 26일 화요일[(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85(84),9 참조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 당신께 돌아오는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본기도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4,14-19
나 요한이 14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는데,
그도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18 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는데, 그는 불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였습니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든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대어 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19 그러자 그 천사가 땅 위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서는,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6(95),10.11-12.13(◎ 13ㄴ 참조)
◎ 세상을 다스리러 주님이 오신다.
○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
○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

복음 환호송

묵시 2,10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명에 따라 바치는 이 거룩한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계명을 지켜
주님의 사랑에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17(116),1-2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또는>
마태 28,20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성체를 모시고 기뻐하오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곁에 머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어릴 적에 시력이 좋았는데, 20년 전부터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당시에 캐나다 토론토에 살았는데, 도로 표시판이 잘 안 보여서 시력 검사했더니 안경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다초점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안경을 쓰면 멀리 있는 건 잘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것이 잘 안 보였습니다. 시력 검사했더니 난시와 근시가 같이 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지럽지만, 다초점 안경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안경을 보내왔습니다. 지금 안경이 오래되었고, 탈색되어서 맞추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새 안경을 사용하는데 멀리 있는 건 잘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것이 잘 안 보였습니다. 알아보니 렌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시 안경을 한국에 보냈고, 새로 와서 지금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경테가 좋아도, 렌즈가 좋아도 시력에 맞아야 합니다. 초점이 틀리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글을 읽을 때도, 어떤 상황을 만날 때도 맥락을 잘 알면 이해가 쉽습니다. 군대에서 이런 맥락을 잘 모르는 병사를 고문관이라고 불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면서 고문관 소리 듣던 병사도 후임병을 가르치는 똑소리 나는 병사가 됩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은 요한 묵시록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으로, 초대 교회의 박해 상황 속에서 고난받는 신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자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은 상징적 언어와 비유, 환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을 통해 하느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새로운 미래를 드러내는 성경이 아닙니다. 요한 묵시록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 현실을 두려워하라는 성경도 아닙니다. 요한 묵시록은 다가올 하느님의 심판을 기다리라는 성경이 아닙니다. 요한 묵시록은 교회의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을 말하는 성경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요한 묵시록의 맥락은 무엇일까요? 요한 묵시록은 하느님의 승리와 악의 종말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비록 세상에는 부정과 악이 존재하고 때로는 그 힘이 강해 보이지만, 결국 하느님의 뜻이 승리한다는 약속을 믿고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확신은 신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요한 묵시록은 또한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순결한 삶을 유지할 것을 강조합니다. 특히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각 교회의 문제점과 장점을 지적하며 신자들에게 회개와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이 내용을 통해 삶의 모습을 돌아보고, 더 나은 신앙의 길을 걸어가려는 결심을 새롭게 다질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세상과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는 영적 전쟁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앙인들은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하며, 자기의 삶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묵시록이 말하는 신앙인들의 기도와 찬미는 하느님 나라의 힘이 되며, 이러한 영적 훈련을 통해 신자들은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처럼 신앙의 여정에서 겪는 도전과 고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교훈서입니다. 신자들은 묵시록을 통해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을 새롭게 다지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확실한 암호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를 알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한 책입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께서 자신들이 하느님을 체험한 걸 꾸밈없이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감동이 있는 글들입니다. 숨은 그림을 찾는 것처럼,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저마다 하느님께서 숨겨 놓으신 암호를 이웃 안에서, 내면의 부르심 안에서, 때로는 시련과 고통 중에서,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찾아내었습니다. 암호를 발견하기 전의 삶은 무의미하고 허망하였지만, 암호를 발현한 후의 삶은 희망과 기쁨이 계속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확실한 암호를 알고 계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차를 운전하기 전에 성호를 긋고, 기도한다면 그분은 암호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손에 스마트 폰 대신, 묵주를 들고 버스를 타는 분도 암호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받기보다는 먼저 사랑하려고 하고, 이해받으려 하기보다는 먼저 이해하려는 분도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럴 수가 있나라고 불평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하늘을 날아가는 구름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면 또한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암호를 참 많은 곳에, 그리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우리가 만나야 할, 마지막 순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 끝에서 하느님과 대면할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암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복음루카 21,5-11

 

불멸의 성전을 건립합시다!

 

연중 시기 마지막을 향해 가는 즈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 우리 눈 앞에 펼쳐질 광경에 대해

가르치고 계십니다.

언뜻 보기에 공포스러운 분위기입니다. 사방에서 전쟁과 환난이 일어나고,

대재앙과 함께 그간 인간이 쌓아올린 높은 탑들이 산산이 허물어질 것을 예고 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6)

 

무척이나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가르침 앞에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자지러지겠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그간 쌓아온 신앙의 내공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해석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낡고 빈약한 성전을 허물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지상 성전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아름다움, 청춘의 푸르름, 인생의 화려함은 절대 영원하지 않음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보다 영속적이고 가치있는 대상, 불멸의 성전, 영적인 성전을 건설할 것을 요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전 파괴와 관련된 예수님의 가르침은 벌써 우리 한국 교회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수십 수백억을 들여 정성껏 건립한 대성전, 신자들로 가득했던 아름다운 성전들이

인구 절벽 시대에 진입하는 동시에 가톨릭 교회에 대한 호감도 급하락으로 인해 텅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불과 십 년 뒤면,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 자명합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성전에 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서구 교회는 문화재에 등록되어 볼거리라도 있어 관광객들이 찾아오지만,

우리 본당들은 그런 요소도 없습니다.

 

무용지물의 성전들은 애물단지처럼 방치되다가 서구의 수많은 성전들처럼 매각되어 허물어지고,

다른 용도의 건물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는 불멸의 성전을 건립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충만한 한 영혼이 곧 새로운 성전입니다.

지극정성으로 성체를 영한 한 그리스도인이 불멸의 성전입니다.

우리 각자 안에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주님의 성전을 건립합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아주 특별하고 고약한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에서 하신 긴 담화의 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과 세상 종말이 오기 전의 표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루카 21,6)

옛 솔로몬 성전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586년에 파괴되었고,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에 의해 기원전 515년에 즈루빠벨의 치하에서 재건된 제2성전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헤로데 왕에 의해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지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십니다. 

사실 성전 파괴에 대해서는 이미 예언자 미카, 예레미아, 에제키엘 등에 의해 예고된 바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때와 표징을 묻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루카 21,8)

이는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이비 메시아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재물’이라는 우상을 사이비 구세주로 따르고 속아 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소.” “치유해주고 행복하게 해주겠소.”하고 외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결국 우상을 따르고 섬기도록 부추기는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 행세를 하고 있는 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을 구원자라 고백하지만, 정작 무엇에 목매달고 쫓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재물’이나 ‘능력’ 혹은 ‘세속 정신’을 사이비 메시아로 따르고 섬기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또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고약한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녀석입니다. 

 

우리는 곧잘 자신의 욕망과 생각, 자신의 주장과 뜻을 섬기고 추종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말합니다. 

“그대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그대의 가르침의 내용을 잘 살피시오. 
이렇게 꾸준히 일을 해 나가면, 그대 자신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티모 4,16)

그렇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루카 21,8)

 

주님!

속이지도 속지도 말게 하소서.

재물에 속지 않고, 세속에 속지 않게 하소서

또한 나의 생각과 견해와 편견, 허영과 탐욕에 속지 말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내 자신과 내 자신의 뜻에 속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25.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묵시14,1-3.4ㄴ-5 루카21,1-4

 

                                   지상(地上)에서 천상(天上)의 삶을 사는 사람

                                               <존엄한 품위의 가난한 과부>

 

“주님의 산으로 오를 이 누구인고?

 거룩한 그곳에 서 있을 이 누구인고?

 그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시편24,3-4ㄱㄴ)

 

오늘 복음을 묵상하던중 성녀 아빌라 데레사의 기도문을 바탕한 ‘아무것도 너를’이라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성가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은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그대로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대변한다 싶습니다.

마태복음의 진복팔단을 연상케 하는 참행복한 가난한 과부요 자기를 다 비운 주님을 닮은 분입니다.

가진 것이 많아 부자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적은 자가 참으로 부자라 하는데

하느님만으로 부유한 가난한 과부가 바로 그러합니다.

동병상련,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통해 자신의 가난한 비움의 삶을 확인한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시편의 고백처럼, 가난하나 살아있는 참보물 주님을 모시고 사는 내적으로는 부자요 자유로우며

행복한 과부입니다.

참으로 소유욕의 집착에서 벗어난 초연한 사랑, 초연한 자유의 사람입니다.

마태오의 참행복 선언중 다음 둘에 그대로 해당되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진복팔단의 참행복 선언은 예수님의 자화상입니다.

예수님의 삶에 고스란히 적용될 정도로 참행복을 사셨던 예수님이셨고 바로 주님을 닮은 가난한 과부가

그러합니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요, 하느님을 볼 것이라 했으니 이보다 더 큰 행복도 부요함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한 과부의 내면도 이처럼 풍요로웠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옛 현자 <다산>의 지혜입니다.

 

“술에 취하는 것은 하룻밤이면 끝나지만, 뜻에 충실하지 않으면 평생을 취해서 산다.”

 

가난한 과부처럼 초지일관 봉헌의 삶에 충실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부자의 내면은 텅빈허무이겠지만 이런 빈자인 가난한 과부의 내면은 텅빈충만의 행복이요

자유로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정한 예수님을 감동케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입니다.

이런 봉헌이야 말로 주님께 대한 전적 신뢰와 사랑, 그리고 희망의 표현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얼마씩을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21,3-4)

 

하느님 사랑으로 가득한 텅빈충만의 내면임을 봅니다.

놀랍고 반가운 것은 아무도 못보고 모르는 것 같지만 주님은 가난한 과부를 그대로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 121장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그분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리라.

 하느님을 너를 지키시는 분, 

 네 오른쪽의 그늘이시어라.

 낮이며 해도 너를 해치지 못하고, 

 밤이면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주께서 너를 지켜 모든 액을 막으시고,

 당신이 네 영혼을 지켜주시리라.”(시편121,4-7)

 

바로 이런 가난한 과부의 안식처가 되는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치가 참 절묘합니다.

루카복음이 지상에서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다뤘다면 제1독서 묵시록은

‘어린양이신 파스카의 예수님과 그의 백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대로 가난한 과부의 미래의 현실을 보여준다 싶습니다. 

 

새삼 가난한 과부가 궁극의 희망을 둔 것은 천상의 삶이었음을 봅니다.

말그대로 지상에서 천상의 삶을 산, 존엄한 품위의 가난한 과부입니다.

어린양과 함게 서있는 십사만 사천명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하는데

세례성사를 받아 인호를 받은 우리의 미래를 엿보는 듯 합니다.

이들에 대한 묘사가 평생 날마다 제대 주변에서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 믿는 이들의 삶에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지상에서의 거짓없는, 흠없는 삶을 반영하는 성인들의 천상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가난한 과부처럼 자기를 온전히 비우며 일편단심 주님을 사랑하여 따랐던 거짓없는,

흠없는 삶을 반영합니다.

이런 천상적 삶에 희망을 뒀던 가난한 과부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천상의 희망을 능가할 수 있는 희망은 없습니다. 

 

바로 이를 노래한, 오늘 제1독서 묵시록에 근거한 11월1일 모든 성인의 대축일 저녁성무일도시

마리아의 노래 후렴입니다.

위령성월, 희망성월, 성인성월 11월 마다 제가 끊임없이 애송하여 바치는 기도입니다. 

 

“성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흰옷을 입고 어린양을 따라가는 도다.”

 

어제부터 시작된 연중 마지막 34주간은 성서주간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을 사랑하듯 성서를 충실히 공부하며

주님을 잘 따를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마태24,42.44참조). 아멘.


11/26(화) [(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확실한 암호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를 알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한 책입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께서 자신들이 하느님을 체험한 걸 꾸밈없이 이야기합니다.

 

암호를 발견한 후의 삶은 희망과 기쁨이 계속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확실한 암호를 알고 계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받기보다는 먼저 사랑하려고 하고, 이해받으려 하기보다는 먼저 이해하려는 분도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럴 수가 있나라고 불평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하늘을 날아가는 구름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면 또한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암호를 참 많은 곳에, 그리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우리가 만나야 할, 마지막 순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 끝에서 하느님과 대면할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암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낡고 빈약한 성전을 허물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지상 성전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아름다움, 청춘의 푸르름, 인생의 화려함은 절대 영원하지 않음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보다 영속적이고 가치있는 대상, 불멸의 성전, 영적인 성전을 건설할 것을 요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는 불멸의 성전을 건립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충만한 한 영혼이 곧 새로운 성전입니다.

지극정성으로 성체를 영한 한 그리스도인이 불멸의 성전입니다.

우리 각자 안에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주님의 성전을 건립합시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루카 21,8)

 

주님!

속이지도 속지도 말게 하소서.

재물에 속지 않고, 세속에 속지 않게 하소서

또한 나의 생각과 견해와 편견, 허영과 탐욕에 속지 말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내 자신과 내 자신의 뜻에 속지 않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 사랑으로 가득한 텅빈충만의 내면임을 봅니다.

놀랍고 반가운 것은 아무도 못보고 모르는 것 같지만 주님은 가난한 과부를 그대로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 121장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그분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리라.

 하느님을 너를 지키시는 분, 

 네 오른쪽의 그늘이시어라.

 낮이며 해도 너를 해치지 못하고, 

 밤이면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주께서 너를 지켜 모든 액을 막으시고,

 당신이 네 영혼을 지켜주시리라.”(시편121,4-7)

(이수철 신부)

 

11/26(화) [(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제 158-28 기도

 

복음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낡고 빈약한 성전을 허물어야 마땅합니다.

우리 각자 안에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주님의 성전을 건립합시다!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루카 21,8)

 

주님!

속이지도 속지도 말게 하소서.

재물에 속지 않고, 세속에 속지 않게 하소서

또한 나의 생각과 견해와 편견, 허영과 탐욕에 속지 말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내 자신과 내 자신의 뜻에 속지 않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26일(화) 6시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