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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1월 28일 목요일[(녹) 연중 제3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1월 28일 목요일[(녹) 연중 제3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85(84),9 참조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 당신께 돌아오는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본기도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8,1-2.21-23; 19,1-3.9ㄱㄴ
나 요한은 1 큰 권한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광채로 땅이 환해졌습니다.
2 그가 힘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21 또 큰 능력을 지닌 한 천사가 맷돌처럼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하였습니다.
“큰 도성 바빌론이 이처럼 세차게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22 수금 타는 이들과 노래 부르는 이들,
피리 부는 이들과 나팔 부는 이들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고
어떠한 기술을 가진 장인도 다시는 네 안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맷돌 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23 등불의 빛도 다시는 네 안에서 비치지 않고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의 상인들이 땅의 세력가였기 때문이며
모든 민족들이 너의 마술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19,1 그 뒤에 나는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
2 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
그 손에 묻은 당신 종들의 피를 되갚아 주셨다.”
3 그들이 또 말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 여자가 타는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9 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0(99),1-2.3.4.5(◎ 묵시 19,9ㄴ)
◎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여라.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감사하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찬양하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복음 환호송

루카 21,28 참조
◎ 알렐루야.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알렐루야.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20-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명에 따라 바치는 이 거룩한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계명을 지켜
주님의 사랑에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17(116),1-2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또는>
마태 28,20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성체를 모시고 기뻐하오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곁에 머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정태현 신부님의 성서 입문을 읽고 있습니다. 주제는 성서의 형성 과정과 각 권의 개요입니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알려주듯이, 성서 입문을 통해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술도 시대에 따른 흐름이 있고, 음악도 시대에 따른 흐름이 있듯이, 성서의 형성에도 시대에 따른 흐름이 있습니다. 오늘은 예언문학, 지혜문학, 묵시문학이 전하고자 하는 사상과 교훈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언문학의 핵심 메시지는 한마디로 하느님의 뜻을 대변하고, 경고와 위로를 통해 신앙 공동체를 회복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예언문학은 하느님의 정의, 자비, 공의가 이 세상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며, 특히 불의와 억압에 반대합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부조리를 지적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공의를 외칩니다. 예언자들은 종종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예언문학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회개와 회복이며, 백성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삶을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정의롭게 심판하실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심판을 경고하면서도, 심판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교정과 회복임을 강조합니다. 장차 올 구원자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약속합니다. 이러한 메시아적 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궁극적인 희망을 제공하고, 나아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중요한 메시지로 작용합니다. 예언문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백성들이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지혜문학의 핵심 메시지는 인생과 신앙, 도덕적 가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인간이 지혜를 통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가르칩니다. 지혜문학의 시작과 중심은 하느님을 경외함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하느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가르칩니다. 올바르고 정직한 삶, 즉 의롭고 도덕적인 삶을 강조합니다. 지혜는 올바른 선택을 하고 다른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히 하느님 앞에 서야 함을 가르칩니다. 인간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없고, 하느님의 계획은 때로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물질적 성공과 쾌락의 무상함을 강조하고, 진정한 행복과 의미를 추구하도록 이끕니다. 인생에서 겪는 고난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며, 이를 극복하는 지혜로서 인내와 신뢰를 가르칩니다. 고난 속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의 한 부분임을 강조합니다. 삶의 작은 부분들 속에서도 지혜를 실천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는 가정과 사회생활, 인간관계 속에서 도덕적이고 올바른 태도를 보이는 것을 포함합니다. 지혜문학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정직과 의로움으로 삶을 살아가며, 삶의 일시적 본질을 깨닫고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을 통해 충만한 인생을 누리도록 이끕니다.

 

묵시문학의 핵심 메시지는 시련 속에서 희망을 전하고, 최후의 승리와 하느님의 정의로운 통치에 대한 약속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박해와 고난 속에서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일시적이며, 끝까지 인내하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구원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합니다. 역사의 모든 흐름이 하느님의 섭리 속에 있으며, 모든 사건이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하느님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현재 상황이 불확실하거나 고통스러워도 궁극적인 목적이 있음을 신뢰하도록 돕습니다. 종말에 하느님께서 완전한 새 창조를 이루실 것이라는 약속을 전합니다. 이는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창조를 의미하며, 신앙인들에게 영원한 희망과 소망을 줍니다. 강력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독자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도록 촉구합니다. 비유적인 언어와 환상은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주며,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신앙을 경계할 필요성을 일깨웁니다. 세상의 악과 싸우는 영적 전투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신앙인들이 이 싸움에서 영적 무장을 통해 승리하라고 요구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있어도 하느님이 함께하시며 그분의 계획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거룩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희망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의 탑을 쌓으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청빈과 정결 그리고 순명의 삶을 산다면 이곳이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복음루카 21,20-28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벽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입니다!

 

의술의 발달로 인해 임사 체험자, 근사 체험자, 죽음 유사 체험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때가 되어 한 인간의 수명이 다해 맥박이 그치고 숨이 멎는 순간, 의료진들이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합니다.

이제 요르단강을 건너 꿈에 그리던 하느님 나라로 들어섰는데, 유능한 의료진으로 인해

심폐소생술이 성공해서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많은 임사 체험자들이 죽음 이후 공통적으로 겪은 체험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죽음과 동시에 체외 이탈을 해서 자신과 가족들을 보게 된답니다.

그리고 그토록 간절히 보고 싶었던 먼저 떠난 가족들과 친지들을 만났답니다.

 

세상 강렬하고 환한 빛의 통로를 본답니다.

아마도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통로겠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세상 따뜻하고 자상한 크신 분의 현존을 느낀답니다.

그분이 마중나와 계셨답니다.

그분을 뵙는 순간 그간 지니고 있었던 그 모든 상처와 두려움, 고통과 슬픔이 눈 녹듯이 사라진답니다.

 

그래서 임사 체험자들은 하나 같이 고백했습니다.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벽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고.

죽음은 절대로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건너가는 사다리요 통로라고.

 

요즘 예수님께서는 계속 종말에 펼쳐질 광경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간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공포스런 분위기에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까무러칠 것이겠지만,

평생토록 주님을 의지하고 살았던 신앙인들을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답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 27-28)

 

보십시오. 평생 주님 안에 살아왔던 우리에게 그날은 공포스러운 날이 아니라 황공스럽게도

몸소 우리를 맞이하러 나오실 주님을 대면하는 날입니다.

그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는 찬란한 빛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각자 개인의 죽음은 개인 차원에서의 또 다른 종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두고 울며 슬퍼하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참여하는 순간이며, 그분 나라에서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새롭게 창조될 것이라는 약속>

 

우리는 지금 전례시기의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마지막 날’에 벌어질 무시무시한 표징들을 듣습니다.

곧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고’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대한 표징들입니다.

 

이는 ‘종말’, 곧 ‘구원’은 올 것이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그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그때에 그 어떤 시련을 당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8)

이는 ‘종말’ 그날이 우주의 파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새롭게 창조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곧 그날의 대재앙은 단순히 미래를 앗아가는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를 '속량'하신다는 것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의 종말은 집단적 죽음이나 멸망, 결별이 아니라, 하나의 변형이 될 것입니다.

곧 인간의 종말은 분열과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탄생이 될 것입니다.

곧 대재앙이 아니라, 정신적 역전이 될 것입니다.

정신은 역전하고 다른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며, 세계는 순간적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서의 희열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말론적인 표현들을 미래의 세상 종말에 대한 지식을 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종말론적인 표징들은 우주론적인 표현이라기보다 신학적인 표현으로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먼 미래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오셨고, 세상은 이미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성의 때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그분을 맞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헨리 나웬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내년이 아니라 올해, 
우리의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가 아니라 그 비참함 한가운데로,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주님은 오십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의 삶 안에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들어옵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질 때, 그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때'에 결정적으로는 드러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8)

 

주님!

새롭게 하소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하소서.

변형되게 하소서.

당신의 속량을 입게 하소서.

제 삶이 역전되고 당신 승리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27.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묵시15,1-4 루카21,12-19

 

                                                       하느님 중심의 영적 승리의 삶

                                                          “인내로서 생명을 얻어라”

 

"내 마음은 주님 안에서 기뻐 춤추며,

 나의 힘은 하느님 안에서 높혀지는도다."(사무상2,1)

 

만추가 아니라 초겨울입니다.

11월7일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 지났고, 11월22일 소설도 지났는데 여전한 단풍이라 만추인줄 알았는데

지난밤 소리없이 첫눈이 내렸습니다.

지금도 펑펑 내리고 있는 눈으로 온누리가 흰눈꽃들 만발합니다.

바야흐로 온누리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하늘 은총이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전쟁으로 점철된 세상에 평화로운 세상 살라고 온누리에 첫눈이 내립니다.

오래전 첫눈 내릴 때 쓴 “님의 편지”란 시가 생각납니다. 

 

“계속 쏟아지는 

 흰 눈발들

 님 보내시는 

 천상 편지

 

 하얀 그리움

 가득 담겨 있는

 님의 편지

 잔잔히 물결치는 마음

 

 글씨

 보이지 않아도

 다 알아 보겠네.”<2001.1.28.>

 

누구나 꿈꾸고 희구하는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흰눈 덮인 온 세상, 모두가 원래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살라는 교훈을 줍니다.

 

이렇게 눈이 온 날은 모든 안팎의 전쟁도 멈추고 하느님의 사랑을 관상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치열히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세계나 국내 상황이나 별 차이 없습니다.

흡사 치열한 내전상태를 방불케하는 국내 현실입니다.

솔직히 말해 좌우의 대결이기 보다는 상식과 비상식, 정의와 불의, 빛과 어둠, 선과 악, 참과 거짓,

생명과 죽음의 대결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는 영적전쟁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평화를 추구하나 역설적으로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인간 무지의 적나라한 표현이 전쟁이 아닌가 싶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모토가 되는 성구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의 전사로 궁극의 승리를 상징하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 역시 ‘하느님의 궁극의 승리’(God,s final victory)가 그 핵심입니다.

예전 초등학교 운동회 시절, 청군-백군이 치열히 싸울 때 “브이아시티오알와’(VICTORY) 응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쟁의 현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희구하나 엄연한 전쟁의 현실입니다. 

 

참으로 불멸의 하느님의 전사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영적전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늘 강조해온, 죽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강조해야할 영적전쟁입니다.

수도자는 물론이고 믿는 모든 이가 죽어야 끝나는, 살아 있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워야 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인 우리들입니다.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 바로 평생 주님의 전사는 바로 우리의 신원입니다. 

오늘 복음의 박해 상황은 그대로 영적전투 치열한 현실을 상징한다 싶습니다.

복음과 같은 박해상황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 맞게 이해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떤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겠다.”

 

영적전투중 최고의 힘이, 배경이 되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모든 기회를 깨어 지혜롭게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증언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겸손과 비움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당하면 치명적 상처로 남을 수 있지만 이런 증언이나 겸손, 비움의 계기로 삼는다면

영적성장으로 이어져 노련한 주님의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초연한 자유를 주기도 할 것입니다.

옛 어른의 지혜입니다.

 

“인생 또한 음악이 그러하듯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가 어우러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다산>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패배해도 궁극의 전쟁에서 이기면 됩니다.

일승일패 병가상사(一勝一敗 兵家常事)라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병가에서 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함으로 영적전투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좋은 영적탄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죄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다산의 여유당전서>

 

새삼 즐거움과 괴로움은 하나의 실재이자 삶의 리듬임을 깨닫습니다.

역시 전쟁과 평화역시 하나의 실재이자 삶의 리듬이요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제 지론중 하나는 유혹에 빠져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며,

태풍은 즉시 미풍으로 전환시키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은총이자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참 고맙습니다. 그 누구도 삶의 중심인 주님께 깊이 뿌리내린 영혼은

추호도 다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에서 순교의 죽음까지 가능했음을 봅니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서 생명을 얻어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인내입니다.

영적전쟁에서 인내하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인내의 믿음, 인내의 정주요 유불리의 모든 상황을 겸손과 비움의 계기로 삼는 자가 인내할 수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궁극의 승리에 희망을 둔 자가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인내의 믿음은 하느님의 승리에 대한 희망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봅니다.

이런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고는 인내의 믿음도 얼마 못가 무너져 내립니다. 

 

희망도, 인내의 믿음 역시 훈련입니다.

부단한 훈련을 통한 습관화로 알게 모르게 희망을, 인내의 믿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단한 노력의 훈련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바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은 제1독서 묵시록이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갈대 바다를 건넌 뒤에 모세가 이집트인들에게서 구원된 백성을 대신하여

감사노래를 부르는 것처럼(탈출15), 짐승을 눌러 이긴 신도들도 ‘유리바다’에 서서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노래합니다.

이는 바로 ‘어린양의 노래’이니 우리의 승리가 어린양이 거둔 승리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묵시록 15장 3-4절,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는 우리 가톨릭교회가

매주 금요일 저녁성무일도시 바치는 찬미감사가입니다.

어린양이신 파스카의 주님과 함께 하루하루 평생 날마다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의 훈련과 습관이 우리의 희망과 인내의 믿음을 키우면서

영적승리를 담보하는 최상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은총이 우리 모두의 영적승리의 대한 희망과 인내의 믿음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 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아멘.


11/28(목) [(녹)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거룩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희망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의 탑을 쌓으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청빈과 정결 그리고 순명의 삶을 산다면 이곳이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어찌 보면 우리 각자 개인의 죽음은 개인 차원에서의 또 다른 종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두고 울며 슬퍼하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참여하는 순간이며, 그분 나라에서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8)

 

주님!

새롭게 하소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하소서.

변형되게 하소서.

당신의 속량을 입게 하소서.

제 삶이 역전되고 당신 승리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일승일패 병가상사(一勝一敗 兵家常事)라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병가에서 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함으로 영적전투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좋은 영적탄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죄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1/28(목) [(녹)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제 160-30 기도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8)

 

주님!

새롭게 하소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하소서.

변형되게 하소서.

당신의 속량을 입게 하소서.

제 삶이 역전되고 당신 승리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28일(목) 7시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