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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1월 29일 금요일[(녹) 연중 제34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1월 29일 금요일[(녹) 연중 제34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85(84),9 참조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 당신께 돌아오는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본기도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나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20,1-4.11―21,2
나 요한은 1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하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2 그 천사가 용을, 곧 악마이며 사탄인 그 옛날의 뱀을 붙잡아
천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하였습니다.
3 그리고 그를 지하로 던지고서는 그곳을 잠그고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뒤에 사탄은 잠시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4 나는 또 어좌들을 보았는데, 그 위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11 나는 또 크고 흰 어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분 앞에서 달아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12 그리고 죽은 이들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
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3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4 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15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21,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4(83),3.4.5와 6과 8ㄱ(◎ 묵시 21,3ㄴ 참조)
◎ 보라,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이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
○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
○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은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리이다. ◎

복음 환호송

루카 21,28 참조
◎ 알렐루야.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명에 따라 바치는 이 거룩한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계명을 지켜
주님의 사랑에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17(116),1-2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또는>
마태 28,20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성체를 모시고 기뻐하오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곁에 머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뜻밖에 등장하면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거기에서 왜 나와?’ 사제들의 모임에 스님이 있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이슬람 사원에 교회의 목사님이 있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지난번 미국 대선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연설에 뜻밖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호명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일등 공신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 후보에게 2,000억 원 이상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트럼프의 공약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주 복권을 추첨해서 100만 불을 주었다고 합니다. 언론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2,000억 원을 투자했지만, 2조 원 이상의 이익을 얻었다.” 저는 예전에 일론 머스크의 강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화성에 인류가 이주해서 살 수 있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는 소행성과 충돌할 수 있고, 지구 자체의 원인으로 큰 재앙이 닥칠 수 있습니다. 지구는 여섯 번의 멸종을 이미 겪었습니다. 화성에 인류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언젠가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화성으로 가는 방법을 찾으면서 인류의 과학 기술은 더 발전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일론 머스크의 꿈이 인류에게 준 긍정적인 요소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꿈은 여러 방면에서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비전은 단순히 기술 발전을 넘어서, 인류의 미래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답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테슬라를 통해 머스크는 전기차와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을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이바지를 했습니다. 머스크의 비전은 단순히 수익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기술의 상용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스페이스X를 통해 우주 탐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미래의 화성 이주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주여행을 넘어서,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지구 밖으로 확장하려는 장기적 목표로 인류의 존재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머스크가 추진하는 다양한 혁신 기술들은 단순히 미래를 꿈꾸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퍼루프와 같은 교통 혁신, 인공지능 연구, 뉴럴링크와 같은 신경 과학 기술 등은 인간의 삶을 더욱더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만들려는 노력입니다. 테슬라 특허 공개와 같이, 머스크는 기술을 독점하기보다는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해 공유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는 개인적 성취보다 공동체의 발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실천한 사례로, 기술과 지식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머스크의 도전적인 꿈과 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특히 청년층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성공 사례는 개인의 꿈이 사회와 세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망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꿈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000년 전에 묵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새로운 별을 찾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죽어서 가는 나라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꿈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도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생명은 죽음이 있기에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주어진 삶에 충실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며,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복음루카 21,29-33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찬 기쁨의 날, 종말!

 

사흘 내내 강풍을 동반한 비와 진눈깨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늘 잔잔하던 바다도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표지판이 넘어지고, 그간 용케 버티고 있던 단풍들도

모두 떨어져 내렸습니다.

순식간에 가을에서 한겨울로 넘어온 느낌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이 세상 것 무엇 하나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물건들도, 죽고 못 살던 인연들도, 목숨처럼 중요시 여겼던 일도, 직책도, 사랑도,

젊음도 다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끝도 없이 순환을 거듭하는 자연, 부침을 거듭하는 인간사야말로 인생의 참된 깨우침을 주는

큰 스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진리를 명확히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이 세상 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더 큰 가치와 우위성을 두고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은혜롭게도 하느님은 변화무쌍한 우리 인간과 달리 언제나 한결 같고 든든하십니다.

영원불멸하십니다. 언제나 그곳에 서 계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세월의 흐름 앞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서서히 무너져 내립니다. 천천히 사라져갑니다.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고 태초의 상태, 무(無)로 돌아가고 맙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도 가고, 꽃다운 청춘도 다 지나갑니다.

세상도 지나가고 하늘을 찌를 것 같던 권세도 잠시입니다.

모든 것이 떠나가고 인간 세상과 인류 역사의 끝에 오직 한 분만 남을 것인데,

그분은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끝, 종말에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겠지만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사랑은 끝까지 남아있을 것이라는 말씀,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세상의 끝, 재림의 시기에 하느님을 거슬러 살아온 사람들, 하느님을 거부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때가 확실하다.

 

그러나 반대로 하느님 말씀 안에 살아온 사람, 하느님만 신뢰하며 그분만 붙들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해방의 날이자 구원의 날, 기쁨과 환희의 날이 분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종말이 공포심에 부들부들 떠는 날이겠지만, 하느님 말씀 안에 산 우리들,

그분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온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찬 기쁨의 날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우리가 시대의 징표를 진정 깨닫는다면 세상을 달리 보게 될 것>

 

오늘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세상의 종말과 하느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곧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듯이(루카 21,30), 세상의 사건들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야”(루카 21,31) 한다고 깨우쳐 주십니다. 

시대의 징표를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비가 올지 혹은 안 올지, 추울지 혹은 더울지를 감지해내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징표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시대의 징표를 진정 깨닫는다면, 세상을 달리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마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모든 사건을 바라보고, 모든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당신의 나라를 펼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먼 미래에나 혹은 이 세상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언젠가 먼 미래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오셨고, ‘지금 여기’에 와 계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미’ 오신 주님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아니한 까닭일 것입니다.

우리가 완고한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이미 받았음을 보는 것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발견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 발견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그것이 우리를 발견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베풀어진 하느님의 선물'이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청한다는 것은 그것을 주시도록 하느님을 설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주신 그분의 선물을 알아차리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맛보기 시작한 그 무엇을 청할 수 있을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당신의 사랑이 먼저 우리에게 베풀어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오늘,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으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 21,33)

 

주님!

제 영혼이 당신의 자리이오니, 말씀을 이루소서.

당신께 승복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활기차게 하소서.

저에게 뿌리신 말씀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이 저에게서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28.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묵시18,1-2.21-23;19,1-3.9ㄱㄴ 루카21,20-28

                                                       희망의 순례 여정

                                         “희망의 빛, 희망의 힘, 희망의 훈련”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여라.“(묵시19,9ㄴ)

 

오늘 화답송 후렴은 그대로 어린양의 미사잔치에 초대받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이런저런 유익한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지난 10월4일 제가 주례한 혼인미사후 신부의 어머니가 했다는, 그의 남편이 전해준 고백글을 잊지 못합니다.

나이 40을 훌쩍 넘어 늦게 결혼한 외동딸입니다. 

-결혼식을 마치자, 아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위가 ‘장모님’하고 부를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고 살았는지 몰라.”-

 

끝까지 희망을 내려놓지 않고 하느님의 때를 기다린 신자 부부입니다.

결혼은 부부가 서로를 구원할뿐 아니라 부모들까지 구원함을 봅니다.

 

어제 일간지에서 읽은 주목할 기사도 소개합니다.

“검찰권의 정치 무기화, ‘바나나 공화국 전락한다”제하의 내용이었고 공감했습니다.

바나나 공화국은 ’부패한 권력자가 지배하는 불안정한 후진국’이라 하는데 결코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습니다. 또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앞둔 미국과 중국에 관한 기사내용이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전통에서 나오는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깊은 지혜와 전략, 희망에 공감했습니다. 

 

“이 불확실성이 중국을 불안하게 하지만, 트럼프의 거칠고 혼란스러운 정책이 미국의 분열과 쇠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중국의 기대도 높다.

트럼프가 중국에 단기적으로 나쁘지만, 장기적으로는 좋다는 판단을 많은 중국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다.

지금 중국은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내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외적의 침입보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적 분열의 내란이요, 사람이든 나라든 아무리 작아도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고 견고한 일치를 이루면 안전합니다.

개인이든 나라든 “희망찬 미래”가 내외적 일치를 보장함을 깨닫습니다.

더불어 지도자들의 비전과 신뢰는 필수적 덕목임을 깨닫습니다.

옛 어른이 지혜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바탕에 무엇을 쌓는지에 따라 사람의 격이 결정된다.

이러한 바탕과 단계를 아울러 성품이라고 한다.”<다산>

 

“군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은 아래로 통달한다.”<논어>

 

절망, 원망, 실망의 삼망의 사람들은 부정적 비관적 성품에 아래로 통달한 소인이될 가능성이 다분하나,

반면 감사, 감동, 감탄의 삼감에 희망의 사람들은 긍정적 낙관적 성품에 위로 통달한 군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희망이 답입니다.

이제 곧 희망과 기쁨의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진선미(眞善美)의 성품 형성에 가톨릭의 깊고 아름다운 전례영성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지향도 ‘희망의 순례자들’로 오늘 강론 제목, "희망의 순례 여정"과 일치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다가올 이번 희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일상의 삶 안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하며, 우리를 희망의 순례자인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주도록 기도합시다.”

 

희망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호는 <희망의 원리>라는 책에서 넷을 말합니다.

1.인간은 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희망을 먹고 산다.

2.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미 삶자체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3.희망이 힘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삶을 쉽게 포기하지만 희망이 있는 사람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버텨 이겨낸다.

4.희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5.희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행복을 약속한다.

 

베네딕도 규칙서 <4장 착한 일의 도구들에 대하여> 중 두 대목이 생생합니다.

1.자신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성규4,41)

2.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절대로 실망하지 마라.

 

희망은 힘이자 빛입니다.

희망을 잃어 실망하거나 절망하거나 원망하기 시작할 때 마음도 정신도 영혼도 병들기 마련입니다.

정신건강, 마음건강, 영혼건강에 희망보다 더 좋은 명약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희망을 둠이 최고의 처방입니다.

 

피정지도시 참 많이 다룬 주제가 “희망의 여정”이고, 아침 산책때 마다 부르는

“바다”라는 동요를 부르곤 합니다.

얼마전 피정 자매들이 거의 못 부르기에 알아보니 40-50대 자매들이었습니다.

60대후반이후는 대부분 열창합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오늘 성서가 말하는 궁극의 결론도 희망입니다.

예언자들은 물론이요 종말을 이야기하는 묵시록도 하느님의 궁극의 승리를, 구원을,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두렵고 불안하게 하는 종말 이야기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구원의 희망을 북돋아 주기 위한 종말 이야기들입니다. 

 

역시 값싼 희망은, 값싼 영적승리는 없습니다.

희망과 영적승리만 아니라 모든 덕목이 즉 믿음이, 사랑이, 평화가 그러합니다.

하느님을 감동 시킬수 있는 부단한 수행의 노력과 훈련이 절대적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진인사대천명,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한다.”

말마디들에서 한결같이 강조되는 바 노력입니다.

천재들 역시 잘 들여다보면 노력하는 천재들입니다.

천재에다 끊임없이 노력을 더해가니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묵시록을 보십시오.

하느님의 궁극의 승리를 목격한 자들은, 구원의 희망의 실현을 목격한 자들은 온갖 시련과 박해를 견뎌

통과해온 주님의 전사, 희망의 전사, 승리의 전사들인 신자들입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

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

 

바로 오늘 묵시록 19장 하느님 승리의 찬가를 우리 가톨릭 교회는 매주일 제2저녁기도때 노래합니다.

바로 공동전례를 통해 끊임없이 승리의 찬가, 희망의 찬가를 노래하는 영적훈련이

승리의 믿음과 희망을 날로 강화해 줍니다.

 

오늘 복음의 종말 풍경은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밤이 깊으면 새벽도 동터오는 법입니다.

끝까지 버텨낸 이들이 동터오는 구원의 새벽을 맞이합니다.

복음의 마지막 장면이 하느님의 궁극의 승리와 더불어 실현되는 구원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그때에 사람이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런 하느님 승리의 영광을, 희망의 실현을 앞당겨 맛보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마다 한결같이 희망찬 삶을, 고해인생이 아닌 축제인생을,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루카21,28). 아멘,


11/29(금) [(녹)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테슬라 특허 공개와 같이, 머스크는 기술을 독점하기보다는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해 공유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는 개인적 성취보다 공동체의 발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실천한 사례로, 기술과 지식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머스크의 도전적인 꿈과 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특히 청년층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성공 사례는 개인의 꿈이 사회와 세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망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꿈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조재형 신부)

 

2. 세상 사람들에게는 종말이 공포심에 부들부들 떠는 날이겠지만, 하느님 말씀 안에 산 우리들,

그분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온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찬 기쁨의 날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 21,33)

 

주님!

제 영혼이 당신의 자리이오니, 말씀을 이루소서.

당신께 승복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활기차게 하소서.

저에게 뿌리신 말씀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이 저에게서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그때에 사람이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수철 신부)

 

11/29(금) [(녹)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제 161-31 기도

 

복음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오늘의 말·샘 기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 21,33)

 

주님!

제 영혼이 당신의 자리이오니, 말씀을 이루소서.

당신께 승복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활기차게 하소서.

저에게 뿌리신 말씀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이 저에게서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29일(금) 5시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