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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1월 30일 토요일[(홍)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1월 30일 토요일[(홍)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안드레아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베드로 사도의 동생이다. 갈릴래아의 벳사이다에서 태어난 그는 형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였다(마태 4,18 참조). 안드레아 사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고 그리스도를 따랐으며 자신의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이끌었다(요한 1,40-42 참조). 그는 그리스 북부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며,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입당송

마태 4,18-19 참조
주님이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를 보시고 부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대영광송>

본기도

주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간절히 비오니
일찍이 복된 안드레아 사도가 주님의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렸듯이
이제는 주님 곁에서 저희를 위하여 영원한 전구자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9(18),2-3.4-5ㄱㄴ(◎ 5ㄱ)
◎ 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
○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고, 그 말은 땅끝까지 번져 나가네. ◎

복음 환호송

마태 4,19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 알렐루야.

복음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안드레아 축일에 바치는 이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어
저희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도 감사송 1 : 하느님 백성의 목자인 사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원한 목자이신 아버지께서는 양 떼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보호하며 지켜 주시려고
복된 사도들을 목자로 세우시어
성자를 대리하여 양 떼를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사도 감사송 2 : 교회의 기초이며 증거자인 사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도들을 기초로 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어
지상에서 주님의 거룩하고 영원한 표지가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와 영원히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41-42 참조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에게 “우리는 그리스도라 불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그를 예수님께 데려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성사로 저희에게 힘을 주시어
저희가 복된 안드레아 사도를 본받아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살다가
그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성 안드레아 사도.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동창 신부와 공항엘 가는 길이었습니다.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려고 트렁크 문을 열었는데 안 열렸습니다. 열쇠로 트렁크 문을 열어 보려 해도 안 열렸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원인을 알았습니다. 자동차의 기어가 주행 상태에서는 트렁크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의 기어를 주차로 해야만 트렁크는 열렸습니다. 자동차의 안전을 위해서 주행 중에는 트렁크가 열리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은행의 계좌도 그렇습니다. 본인이 입금했어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찾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가야 할 하느님 나라도 그럴 겁니다. 나의 경험, 나의 능력, 나의 직책, 나의 외모로는 하느님 나라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나누었는지, 얼마나 희생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늘은 11 30일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으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너희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걸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걸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함께 해 주었다. 너희 중에 가장 굶주리고, 헐벗고, 병든 이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오늘은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베드로 사도의 동생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름이 반석이라면 안드레아 사도의 이름은 남자다움, 용기입니다. 안드레아 사도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들 또한 용기를 가지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안드레아 축일을 지내면서 제가 아는 안드레아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 분은 평신도로서 복음화 학교를 통해 많은 사람을 신앙의 뜨거움으로 인도하였던 정 치우 안드레아 선생님입니다. 저는 1991년에 복음화 학교와 인연을 맺었으니 33년이 되었습니다. 2002년에서 2005년 그리고 2011년에서 2018년까지 10년 동안 담당 신부로 함께 하였습니다. 복음화 학교는 1단계부터 5단계의 과정이 있습니다. 매월 기도회 미사와 후원회 미사가 있습니다. 단계를 마치면 피정과 미사가 있습니다. 저는 미사에 함께 하였고, 성지순례를 같이 다녀왔습니다. 복음화 학교의 각 단계는 모두 평신도 강사들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졸업생 중에서 특별히 선발된 사람은 강사로서의 교육을 다시 받습니다. 자신이 들었던 복음의 기쁨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강사가 됩니다.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강사들은 세상을 향해 던졌던 그물을 버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됩니다. 평생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정 치우 안드레아 선생님께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다른 한 분은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입니다. 저는 2002년부터 2005년 그리고 2013년부터 2018년까지 8년 동안 교구청에 근무하면서 추기경님을 모셨습니다. 안드레아 추기경님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리면서 제가 곁에서 본 추기경님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추기경님은 소탈하십니다. 격식과 절차를 굳이 따지지 않으십니다. 마치 동네에 사시는 인자하신 어르신 같습니다. 소탈하신 만큼 함께 있는 신부들에게도 많은 걸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사제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지지해 주십니다. 추기경님은 조금 느리신 것 같지만 꾸준히 일을 하십니다. 산행을 하실 때도 천천히 오르시지만 한 번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느린 거북이가 빠른 토끼를 앞설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함 때문이었듯이, 한국교회의 어르신이 되신 것도 추기경님의 꾸준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은 기록의 달인이십니다. 저는 잊고 있었던 일들도 추기경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십니다. 저와 면담하셨을 때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적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앞선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잘 알고 계십니다.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께서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주셨고, 나는 어떻게 응답하였는가?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를 묵상한다면 11월의 마지막을 피정하는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가해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마태오 4,18-22

 

고기보다 사람을 낚읍시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저를 불러주셨는데, 바닷가에 산다는 핑계로 너무 사람보다 고기를 더 많이 낚아

송구한 마음이 드는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원래 안드레아는 형 시몬과 함께 갈릴래아 호수를 배경으로 고기잡이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전문직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여느 여부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보통 어부들의 삶은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물때가 좋고 운이 좋아 고기가 많이 잡히면 그것을 팔아 한 며칠 신나게 놀기도 했겠지요.

안개라도 자욱이 끼여 조업이 불가능한 날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술로 하루를 지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지도자들 안주삼아 독주도 많이 마셨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내면은 영적생활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피 안에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 모세와 다윗의 전통과 신앙이 힘차게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은 임박한 메시아의 도래에 초점이 맞춰져있었습니다.

 

안드레아는 자신의 신앙을 좀 더 성숙시켜나가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영적생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안드레아 앞에 나타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입니다.

안드레아는 깊은 광야에서 자신의 내면을 열심히 갈고 닦던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서

참 구도자로서의 모델을 찾았습니다.

 

안드레아는 세상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그릇된 권력 앞에 혈혈단신으로 당당히 맞서던 세례자 요한을

자신의 정신적 지주, 멘토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때가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도래하자 세례자 요한은

안드레아를 예수님께로 안내합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본 세례자 요한은 지체 없이 안드레아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는 이제 나의 때가 지나가고 예수님의 때가 도래했으니 저분을 따라가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안드레아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고 지체 없이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지도에 힘입어 영적인 눈이 이미 많이 트여있었던 안드레아는

즉시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확신합니다.

한 걸음에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간 안드레아는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 안드레아의 의미는 ‘사내다움’ 혹은 ‘용기’입니다.

용기 있게 세례자 요한을 스승으로 모셨던 안드레아, 사내답게 예수님을 따라나선 안드레아는

형 시몬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단순하고, 과격하고, 급하고, 다혈질적이었던 형 시몬에 비해 안드레아는 성실하고 온건하며

신중한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그리스 북부 지방의 에피루스에서 선교하였습니다.

안드레아는 70년경 로마 황제 네로의 대대적인 박해 때 아카이아에서 체포되어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안드레아는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로 X자형 십자가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어로 X는

그리스도의 첫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안드레아에 관해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한 가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드레아는 십자가에 매달린 이후 꽤 오랫동안 죽지 않고 매달려있었습니다.

 

이틀간 매달려있었는데, 그 순간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그러나 안드레아는 십자가 위에서도 복음 선포 활동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십자가 주변에 둘러서있는 군중들을 향해 설교를 계속했답니다.

 

이를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적대자들은 안드레아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렸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한 줄기 강한 빛이 안드레아를 오랫동안 감쌌답니다.

그 강렬한 빛 한 가운데 안드레아는 숨을 거두었다는군요.

 

임종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사람 낚는 어부로 살고자 노력했던 안드레아,

그리스도의 향기였던 안드레아 사도의 삶과 신앙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신앙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가해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사람을 낚는 신령한 어부’는 성령의 그물을 칩니다>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안드레아는 공관복음에 따르면, '사람 낚는 어부'(마르 1,17;마태 4,19)가 되리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형인 베드로와 함께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특히 <마르코복음>에서는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는 장면에서 등장하며(마르 1,29-30), 예수님께서 성전 파괴를 예언하셨을 때에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느냐며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마르 13,3-4).

<요한복음>에서는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께서 부르신 첫 번째의 제자가 되었으며(요한 1,35-40), 형인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소개하면서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첫 번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요한 1,40-42). 

 

또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에는 한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드렸고(요한 6,8-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는 예수님을 만나 뵈러 온 그리스인들을 예수님께 소개하기도 합니다(요한 12,20-22). 

초기의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 사도는 '맨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프로포클레토스)으로 불립니다.

 

그는 흑해 주변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그리스의 아카이아 지역인 ‘파트라이’에서 순교하였고,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의 성화나 성상에는 X자 형의 십자가와 함께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의 국기에 새겨진 X자는 그 나라의 수호성인인 안드레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베드로 대성전에 모셔져 오다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서 그리스 정교와의 화해의 표시로 그의 순교지인 ‘파트라이’에 모셔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8)라고 말씀하시자, 안드레아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 4,20).

그런데 ‘고기를 낚는 어부’와 ‘사람을 낚는 어부’는 어떻게 다를까? 

그것은 ‘고기를 낚는 어부’는 살아있는 고기를 죽이기 위해 잡아들인다면, ‘사람을 낚는 신령한 어부’는 죄로 죽은 영혼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잡아들입니다. 

 

또 ‘고기를 낚는 어부’는 고기를 골라서 낚아 올리지만, ‘사람을 낚는 신령한 어부’는 고기가 좋든 나쁘든, 곧 전교 대상이 선하든 악하든 간에 낚아 올립니다.

 

또 ‘고기를 낚는 어부’는 자신의 그물을 치지만, ‘사람을 낚는 신령한 어부’는 성령의 그물을 칩니다.

곧 자신의 방식으로 그물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가라는 데로 가고, 그물을 던지라는 쪽으로 던지며, 그분이 명령하는 방식으로 그물을 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해타산의 머뭇거림이 전혀 없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온전한 응답이 요구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먼저, 안드레아 사도가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밤을 묵어가며 양성을 받았듯이, 그분과 함께 머물며 ‘그분 안에서 양성을 받는 제자’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태 4,18)

 

주님!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소서

내가 만든 그물이 아니라 성령의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위험하더라도, 깊은 곳, 당신이 원하신 곳에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 자신의 먹이로가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모두를 거두어 들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29.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묵시20,1-4.11-21,2 루카21,29-33

 

                                                            하느님 나라의 꿈

                                                     “살아 있는 자들만 꿈꾼다!”

 

“보라,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묵시21,3ㄴ)

 

오늘 미사중 화답송 후렴이 큰 위로가 됩니다.

2012년 수도원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수도공동체의 역사를 회고하며 쓴 글의 주요 내용 넷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릅니다.

 

1.모든 것은 때가 있다.

2.모든 것은 필요했다.

3.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결론하여,

4.지금을 살아라(carpe diem)

 

이런 깨달음을 사는 이들이 진정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들입니다.

이런 이들은 과거를 인정하고 긍정하나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삽니다.

“만약?”이란 질문은 부질없는 공허한 질문입니다.

하느님은 나름대로 최선, 최상의 길로 인도해주셨을 믿고 하루하루 선물로 주어지는 오늘,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입니다. 참으로 꿈꾸는 사람이 삽니다.

부단히 현실화되는 꿈입니다.

성서의 사람들, 한결같이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꿈중의 꿈이 하느님 나라의 꿈입니다.

정말 사람은 꿈이, 비전이, 희망이 있어야 삽니다.

 

오래전 두 시가 생각납니다. 

 

“창문밖

 가난한 언덕

 

 보랏빛 은은했던

 제비꽃

 그 자리에

 

 샛노한

 민들레꽃

 감동의 그 자리에

 

 하얀 눈

 덮여 있다

 흰 눈 덮인 하얀 땅 

 

 보랏빛 

 샛노란 빛 

 봄꿈을 꾸고 있겠지”<1998.1.22.>

 

그해 겨울은 이 ‘봄꿈’이란 시로 마음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엊그제 뜻밖에 내린 많은 눈으로 온누리가 눈부신 눈꽃들로 가득합니다.

흰눈을 볼 때마다 요셉수도원을 각별히 사랑했던, 지금은 고인인 된 테제 마르코 수사의

“화이트 사일런스(white silence)” 하얀 침묵이란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저절로 하얀 침묵에 젖게 하는 흰눈이요, 여기서 피어난 “봄꿈”이란 시입니다.

 

초봄의 부활시기에 쓴 또 하나의 “살아 있는 것들만 꿈꾼다" 란 시도 생각납니다.

 

“살아 있는 것들만 꿈꾼다

 죽어 있는 것들은 꿈꾸지 않는다

 연초록 새싹으로

 화사한 꽃들로 피어나는

 봄꿈의 나무들!

 살아 있는 것들만 꿈꾼다”<2009.4. >

 

살아 있다 하나 꿈꾸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살아 있는 자들은 꿈꾸는 자들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시간, 하느님을, 하느님의 나라를 꿈꾸는 시간이요

파견되면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나라 꿈을 실현하며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묵시록의 주인공 요한 사도야 말로 꿈꾸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모든 것은 다 지난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오늘 묵시록입니다.

마침내 이런저런 과정을 통과한후 요한의 꿈이 꽃처럼 활짝 피어났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짜 하느님 나라의 꿈입니다.

눈만 열리면 오늘 지금 여기가 새 하늘과 새 땅이요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인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의 꿈을 앞당겨 살게 하는 이 고마운 미사은총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기도 하지만 미래의 하느님 나라의 꿈이, 비전이, 희망이 현재를 만듭니다.

부단히 하느님 나라의 꿈을 현실화하면서 주님을 닮아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야하는 우리들입니다. 

 

타고난 것들이 모두라면 절망이겠습니다만, 하느님께 희망을 둔 우리에게 날마다 새롭게 선택할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의 꿈을, 희망을, 기쁨을, 평화를, 감사를, 행복을 선택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두 말씀이 우리에게 무한한 격려가 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님과 함께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꿈을 실현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의 평생 꿈이 하느님 나라 꿈이요 예수님 자체가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오늘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한 가르침이 참 고맙습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인 이런 일들입니다.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하느님의 나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지금 연중 마지막 34주간은 성서주간입니다.

주제 성구 “지혜의 시작은 가르침을 받으려는 진실한 소망이다.”(지혜6,17)라는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을 갈망하고 배울 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새삼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일이 하느님 나라의 꿈과 실현에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오늘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꿈을 실현하며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당신 집에 사는 우리들!

 우리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여라, 당신께 힘을 얻은 우리들!

 우리들은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리이다.”(시편84;6,8ㄱ). 아멘.


11/30(토) [(홍)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주셨고, 나는 어떻게 응답하였는가?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를 묵상한다면 11월의 마지막을 피정하는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조재형 신부)

 

2.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 안드레아의 의미는 ‘사내다움’ 혹은 ‘용기’입니다.

용기 있게 세례자 요한을 스승으로 모셨던 안드레아, 사내답게 예수님을 따라나선 안드레아는

형 시몬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단순하고, 과격하고, 급하고, 다혈질적이었던 형 시몬에 비해 안드레아는 성실하고 온건하며

신중한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그리스 북부 지방의 에피루스에서 선교하였습니다.

안드레아는 70년경 로마 황제 네로의 대대적인 박해 때 아카이아에서 체포되어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안드레아는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로 X자형 십자가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어로 X는

그리스도의 첫 글자이기 때문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태 4,18)

 

주님!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소서

내가 만든 그물이 아니라 성령의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위험하더라도, 깊은 곳, 당신이 원하신 곳에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 자신의 먹이로가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모두를 거두어 들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오늘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한 가르침이 참 고맙습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인 이런 일들입니다.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수철 신부)

 

11/30(토) [(홍)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제 162-32 기도 

 

복음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태 4,18)

 

주님!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소서

내가 만든 그물이 아니라 성령의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위험하더라도, 깊은 곳, 당신이 원하신 곳에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 자신의 먹이로가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모두를 거두어 들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30일(토) 2시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