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2월 12일 목요일[(자) 대림 제2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2월 12일 목요일[(자) 대림 제2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119(118),151-152 참조
주님, 당신은 가까이 계시나이다. 당신 계명은 모두 진리이옵니다. 당신이 영원하시기에, 일찍이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깨달았나이다.

본기도

주님,
저희 마음을 일깨우시어
성자께서 오시는 길을 닦게 하시고
성자를 맞이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나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너의 구원자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1,13-20
13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14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15 보라, 내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16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 바람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그러나 너는 주님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
17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18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
19 나는 광야에 향백나무와 아카시아, 도금양나무와 소나무를 갖다 놓고
사막에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를 함께 심으리라.
20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5(144),1과 9.10-11.12-13ㄱㄴ(◎ 8)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복음 환호송

이사 45,8
◎ 알렐루야.
○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에게 온갖 선물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 가운데에서 저희가 모아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고
현세에서 저희 믿음을 북돋아 주시어
후세에서 영원한 구원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티토 2,12-13 참조
우리는 현세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사제관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은 배터리가 부풀어 올라서 고장났습니다. 컴퓨터를 잘 아는 형제님이 노트북을 가져가서 업그레이드를 시켜 주었습니다. 배터리도 새로 바꾸었고, 메모리 용량도 늘렸습니다. 한글 프로그램도 최신 걸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10년 된 노트북이 새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여행 갈 때 사용하던 노트북은 인터넷이 안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컴퓨터를 잘 아는 형제님이 노트북을 가져가서 인터넷이 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를 시켜 주었습니다. 다만 인터넷이 될 수 있도록 커넥터를 끼워야 했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있던 노트북들이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할 일입니다. 저의 사정을 아는 형제님이 새로운 노트북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2024년 신형 노트북입니다. 아무리 업그레이드를 시켰어도 2024년 신형 노트북의 기능과 성능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노트북을 강론 쓰고, 인터넷 검색하는 용도로 쓰기에 새로운 노트북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합니다. 서울에서 온 동창 신부님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벤츠 타고 마트만 다니면 벤츠가 아까운 거 아닌가!’ 이참에 새로운 노트북의 기능과 성능도 배워보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미리 준비한 예언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본 예언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가십니다. 나는 저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걸 기꺼이 허락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는 아주 작은 이라도 세례자 요한보다 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구리에게는 우물이 세상의 전부였지만, 사실 우물밖에는 엄청난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구가 세상의 전부이지만 지구는 태양계의 부분입니다.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습니다. 저도 예수님의 말씀을 실감한 적이 있습니다. 중학생 때 제법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오니 상황이 달랐습니다. 저보다 잘하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공부는 외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부는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거였습니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손을 내미는 따뜻함이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인정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한문으로 宗敎라는 말은 으뜸가는 가르침을 뜻합니다. 영어로 'Religion' 엉켜 있는 실타래를 풀어서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엉켜 있다면 다시 풀어서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엉켜 있다면 이 또한 풀어서 평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의 핵심은 비움입니다. 내가 집착에서 벗어날 때, 참된 평화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엉킨 실타래는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요? 이 또한 비움입니다. 내려놓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인간의 비움은 회개 회심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하늘나라는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적을 정하고, 순위를 정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절대평가입니다. 얼마나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있느냐를 생각합니다. 얼마나 양심을 따라서 살았느냐를 생각합니다. 얼마나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였느냐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는 정원 제한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가는 곳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순위를 정해서 시험을 치르듯이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경쟁과 업적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협력과 나눔을 실천한다면, 사람과 봉사할 수 있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마태오 11장 11-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너무나 쉬운 하늘나라 입국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 두고 하신 말씀은 꽤나 아리송합니다.

우선은 먼저 세례자 요한을 확 띄웁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극구 칭찬하십니다.

인류 역사상 세례자 요한은 가장 크고 위대한 인물임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 말에 이어 바로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내던지십니다.

그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들었을 때 엄청 기분 상하는 말씀입니다. 완전히 깔아뭉개는 듯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오늘 예수님의 이 상반된 말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위 말씀은 절대로 세례자 요한을 격하시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례자 요한을 무시하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늘나라의 절대적 우위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세례자 요한은 한 밤중에 등불을 켜든 시각 장애우와도 같았습니다.

자신이 든 등불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앞길을 밝혀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빛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 시대를 정리하는 구약의 마지막 대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쉽게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나라의 실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명확히 볼 수 있었던 신약의 백성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파스카의 신비를 체험하는 오늘의 우리 역시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 한 가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하느님 나라는 그야말로 멀고도 먼 곳이었습니다. 도저히 다가서기가 힘든 곳이었습니다.

입국하기가 너무나 어렵고 까마득한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도래 이후 하늘나라는 얼마나 우리와 가까워졌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쉬운 하늘나라 입국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늘나라 입국이 얼마나 쉬워졌는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건 아니다’며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백성들과 하늘나라 사이를 가로막는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입국을 위한 방법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수천가지 율법에 대한 철저한 준수가 아닙니다.

엄청난 요구를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단 두 가지입니다.

 

이 땅의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분께서 제시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

 

이 간단한 방법을 통해 이 지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하느님 나라를 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3. 이영근 신부님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우리 가운데 와 있는 ‘하늘 나라’를 폭행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마태 11,11)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세례자 요한의 전과 후에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총’, 곧 ‘하늘나라’는 구약의 시대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은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을 선포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와 계심을 알렸습니다. 

그러니 하늘나라는 이미 그분과 함께 온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도래와 더불어 시작되는 ‘새로운 질서’, ‘하늘나라의 질서’를 선포하십니다. 

그러니 누가 더 큰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다스리는 ‘새 시대’, 곧 ‘하늘나라’에 속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고,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한 1,9-11)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마태 11,12)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하늘 나라’는 거부되고 배척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의와 거짓과 미움으로 폭행당하고 박해당하고, 또한 물질의 나라가 권세를 부리며 ‘하늘나라’를 침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귀’를 지닌 우리는 이를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있는 엘리야다.”(마태 11,14)라는 말씀은 곧 당신의 나라가 오심을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미리 오기로 된 엘리야라면(말라 3,23; 집회 4-10 참조), 당신이 바로 ‘오시기로 된 구세주’심을 선포해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가운데 와 있는 ‘하늘 나라’를 폭행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또한 방치하거나 빼앗겨서도 안 될 일입니다.

그 나라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나라입니다.

한갓 ‘계엄’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겨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끄십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 11,15).

“들어라”는 말씀은 ‘쉐마 이스라엘’을 떠올려 줍니다. 

곧 ‘들어라’는 히브리 단어 ‘쉐마’는 단순히 청각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아듣는 것보다, ‘마음의 귀에 담아 행동에 옮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하신 분을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마음의 귀에 담아’, 그분의 말씀을 삶에 옮길 수 있도록 은총을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마태 11,12)

 

주님!

기쁨과 정의와 평화의 당신의 나라가 불의와 거짓과 미움으로 폭행당하지 않게 하소서.

우상과 물질의 나라가 권세를 부리며 당신의 나라를 침략하지 못하게 하소서.

더 이상은 당신의 다스림을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게 하소서.

저희 안에 와 계신 당신을 거부하지도 배척하지도 않게 하소서.

세상이 당신의 다스림과 뜻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12.11.대림 제2주간 수요일                                                       

 이사40,25-31 마태11,28-30

 

늘 살아계신 사랑의 참 하느님

<경천애인敬天愛人>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2)

 

늘 살아계신 사랑의 참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사람이 누구인지, 또 내가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하느님이 없으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도 하느님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자 생명이요, 진리이자 길이요, 지혜이자 빛입니다. 세상 것 다 알아도 하느님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요, 하느님을 모르면 허무와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면 살아있어도 살아있다 할 수 없습니다. 참나의 탐구와 하느님 탐구는 함께 갑니다.  

 

그러니 평생공부가, 평생사랑이 하느님을 대상으로 합니다 ‘인생은 속도를 겨루는 시합이 아닙니다.

세월을 견디고 비바람을 버텨야 나이테가 쌓이니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다산). 

하느님을 찾는 일도 그러합니다. 

지금도 늘 거기 그 자리 정주의 불암산을 볼 때 마다 여전히 되뇌는 고백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하느님 중심의 삶에 대해 나눴고, 얼마나 많이 하느님과의 삶의 여정과 만남에 대해

말했고, 얼마나 많이 하느님 사랑을 고백했고, 얼마나 많이 하느님 자랑을 해왔는지 모릅니다.

인생광야여정중 “성인이냐 괴물이냐 폐인이냐” 셋중 하나라고,

또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요 잘못 미치면 폐인”이라 참 많이도 강조했습니다.

하여튼 하느님은, 예수님은 저의 전부였습니다. 다음 시편 역시 그대로 저의 고백이었고

참 많이도 제 고백으로 참 많이도 나눴습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시편18,2)

 

이밖에도 제가 사랑하는 시편은 끝이없습니다.

세상에 성서의 시편보다 더 아름답고 깊은 시들을 본적이 없습니다.

시편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다보니 세상 시들에 대한 맛을 잃었습니다.

수도공동생활 42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쳤던 성무일도시 토요일 끝기도시 독서는

제 영혼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너 이스라엘아 듣거라. 우리 주 하느님은 오직 한 분 뿐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너의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 주어라. 집에 있을 때에도 길을 갈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일어날 때에도 항상 말해 주어라.”(신명6,4-7)

 

작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부터는 기상하자마자 바친 만세칠창은 살아있는 동안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절박한 위기의 시대를 맞이한 작금의 국내상황에 네번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는 더욱 각별하고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받는 전국토가 순교성지로 가득한 순교자의 나라 대한민국이 아닙니까?

아마도 이 기도덕분에 현재의 위기도 전화위복, 잘 수습되리라 믿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드높아지리라 믿습니다.

이어지는 자작 행복기도 역시 2018년 10월 이후 참 많이 나눈 기도문이요 그 일부만 나눕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느님 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입니까? 바로 오늘 이사야가 또 예수님이 당대 무겁고 어둔 고난과 시련의 상황에서

희망을 잃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은 오늘의 고난과 시련중인 우리들에게도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끝없는 위로와 격려, 치유가 되는 말씀입니다.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길이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40,28-31)

 

우리의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 하느님 말고 이런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하느님 더하기(+) 나는 전부임을,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반대로 이런 나에서 하느님을 빼버리면(-) 제로의 죽음과 어둠의 허무와 무지의 인생자체일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이어 은총의 대림시기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가 고맙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종파를 초월하여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인류에게 활짝 열려 있는 구원의 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 정주처, 피난처, 쉼터, 배움터, 샘터는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가면서 우리의 불편한 멍에, 무거운 짐은 점차 주님의 편한 멍에로,

가벼운 짐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시편103,8). 아멘.


12/12(목) [(자)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순위를 정해서 시험을 치르듯이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경쟁과 업적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협력과 나눔을 실천한다면, 사람과 봉사할 수 있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입국을 위한 방법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수천가지 율법에 대한 철저한 준수가 아닙니다.

엄청난 요구를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단 두 가지입니다.

 

이 땅의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분께서 제시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

 

이 간단한 방법을 통해 이 지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하느님 나라를 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마태 11,12)

 

주님!

기쁨과 정의와 평화의 당신의 나라가 불의와 거짓과 미움으로 폭행당하지 않게 하소서.

우상과 물질의 나라가 권세를 부리며 당신의 나라를 침략하지 못하게 하소서.

더 이상은 당신의 다스림을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게 하소서.

저희 안에 와 계신 당신을 거부하지도 배척하지도 않게 하소서.

세상이 당신의 다스림과 뜻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길이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40,28-31)

 

우리의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 하느님 말고 이런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수철 신부(

 

12/12(목) [(자)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제 174-44일 기도

 

복음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마태 11,12)

 

주님!

기쁨과 정의와 평화의 당신의 나라가 불의와 거짓과 미움으로 폭행당하지 않게 하소서.

우상과 물질의 나라가 권세를 부리며 당신의 나라를 침략하지 못하게 하소서.

더 이상은 당신의 다스림을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게 하소서.

저희 안에 와 계신 당신을 거부하지도 배척하지도 않게 하소서.

세상이 당신의 다스림과 뜻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12일(목) 7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