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2월 14일 토요일[(백)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으리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게서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에서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
본기도
복된 요한 사제에게
온전히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열렬히 사랑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를 본받아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느님을 뵈옵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48,1-4.9-11
그 무렵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당신 권능을 떨치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
○ 만군의 하느님, 어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당신 오른손이 심으신 나뭇가지를, 당신 위해 키우신 아들을 찾아오소서. ◎
○ 당신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 위해 키우신 인간의 아들에게 손을 얹으소서. 저희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오리다. 저희를 살려 주소서. 당신 이름을 부르오리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0-13
산에서 내려올 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2,1-10ㄱ)와 복음(루카 14,25-33)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복된 요한을 기억하며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고
저희가 거행하는 주님 수난의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성인 감사송 1 : 성인들의 영광>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저희는 이 위대한 증인에게서 힘을 얻고
악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갈 길을 끝까지 달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복된 요한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오묘하게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이 제사로 힘을 얻고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교회 안에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한국의 유력 정치인이며,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가장 높은 야당 대표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고 기소되어서 재판받고 있습니다. 2024년 6월 12일 기준으로, 총 7개의 사건에서 11개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주요 혐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증교사 혐의가 있습니다. 2018년 자신의 재판에서 증인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02년이니 22년 전의 사건입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습니다. 2024년 11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전직 대통령 후보였고, 현직 대통령과 근사한 표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낙선한 후보에 대해서 공직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미 패했기 때문입니다.
제삼자 뇌물 혐의가 있습니다. 쌍방울 그룹의 대북 송금 과정에서 제삼자 뇌물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배임 혐의가 있습니다.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약 4,895억 원의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여러 사건으로 기소 되어 재판받고 있습니다. 대부분 혐의는 10년 가까이 된 일들입니다. 야당에서는 유력 정치인에 대한 무리한 기소와 탄압이라고 합니다. 여당에서는 그런 사람은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검찰이 무능하거나, 유력 정치인에 대한 탄압이라고 여당의 정치인이 이야기했습니다. 300번 넘게 압수수색 했으면 결과를 가지고 빨리 결론 내려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재판을 끌어오니 탄압이란 명분을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2019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와 예술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한강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정치도 민생과 국가를 위해 여당과 야당이 협치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이번 비상 계엄 파동도 잘 마무리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독서는 참된 신앙의 길을 걸었던 ‘엘리야’를 칭송합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놓고 대결하였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그 수가 많았지만 패하였습니다. 그들은 거짓된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었을 때 하느님께 청하여 비가 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가난한 과부의 정성 어린 봉헌을 칭찬하며 하느님께 청하여 가뭄이 끝날 때까지 기름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보는 중에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삶은, 엘리야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엘리야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돌아온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하였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자신은 점점 작아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알렐루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우리는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헤로데는 많은 정보와 권력을 가졌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몰랐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았지만,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몰랐습니다. 율법과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데,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위선과 교만으로 눈이 멀어 예수님의 탄생을 볼 수 없었습니다. 멀리 동방에서 왔던 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고 경배하였습니다. 가난한 목동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들판을 달려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 평생 성전에서 기도하던 시메온과 한나도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고,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꿈꾸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면 하였을 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지 돌아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17,10-13: 엘리야는 이미 왔으나 알아보지 못하였다
오늘 복음에서는 엘리야의 재림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수께서는 방금 제자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변모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영광스러운 변모가 그분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왜 선구자인 엘리야가 나타나지 않는지 물었다.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10절)
예수님은 요한 세례자를 엘리야로 소개하시지만,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의 화해와 재건을 이룩하지 못하고
참수당했기 때문에 재림한 엘리야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엘리야가 아직 재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음에 오실 메시아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예수님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자 요한을 재림한 엘리야로 생각하였다(11,14 참조).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했다(14,3-12).
이렇게 메시아의 선구자가 배척을 당한 것처럼, 메시아이신 예수께서도 배척을 당하셨다(11,16-19 참조).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12절) 그를 감옥에 가두고 처형한 헤로데와 그들이 공범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12절)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그들이 엘리야에게 한 것과 같은 일을 당신도 당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엘리야가 이미 왔다.”(12절)는 말과 그에 대한 구원자의 설명을 듣고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임을 깨달았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 오신다고 말한다.
첫 번째 오심은 지금 오심이다.
바오로 사도는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줍니다.”(티토 2,11-12)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우리에게 오시는 그분을 잘 맞을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두 번째 오심에 대해 바오로는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티토 2,13)라 한다.
엘리야나 메시아의 참모습은 희생적인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 드러난다.
우리 자신이 엘리야가 되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은총의 선물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3. 이영근 신부님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우리는 먼저 우리 가운데 와 계신 분을 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타볼산에서의 거룩한 변모 후 산에서 내려올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마태 17,10)
엘리야의 재림에 대해서는 이미 <말라키서>(3,1,23)에서는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모세에게 내린 율법과 규정을 기억하라는 말(3,22)과 함께 언급됩니다.
그러니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물음입니다.
여기에는 엘리야가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메시아일 수 있느냐는 율법학자들의 주장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마태 17,11)라고 엘리야의 사명을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마태 17,12)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로 알아보지 못했음을 말씀하시면서, 마찬가지로 이미 와 있는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한 그들은 이미 와 있는 메시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요한 1,26)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듯이, 이제 당신께서도 그렇게 제멋대로 다루어지고 고난 받게 될 것을 예고하십니다.
결국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함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함을 말해주는 동시에 엘리아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암시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도 메시아도 ‘이미’ 왔지만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우리 가운데 와 계신 분을 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분을 알아보는 영적인 눈을 떠야 할 일입니다.
특히 성탄을 준비하면서 ‘먼저’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바로잡는 엘리야의 인도를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분을 제멋대로 다루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완고함과 비뚤어진 마음과 악의로 형제들을 거부하고 배척한다면,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 제멋대로 다루어지고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은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그분을 버림받지 않고 박해받지 않도록 해 드려야 할 일입니다.
더 이상은 그분을 제멋대로 다루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겪으신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있기 마련인 고난에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음에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1베드 4,13)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마태 17,12)
주님!
제 눈이 가려져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함은 빛을 피하고 어둠을 좋아한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제 가슴이 굳어져 당신을 맞아들이지 못함은 진리보다 제 자신으로 꽉 채운 완고함과 오만이었습니다.
빛이요 진리이신 주님!
저를 밝히소서.
제 어리석음과 완고함을 걷어내소서.
오만불손함을 태우소서.
제가 밝아져 더 이상은 당신을 제멋대로 다루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13.금요일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딜리아(660-720) 동정 대축일
이사35,1-4ㄷ.5-6.10 1코린7,25-40 루카11,33-36
주님은 나의 빛
“루멘채치스(Lumen Caecis;맹인에게 빛을)”
<우리는 주님의 반사체(反射體)다>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며,
주님은 의로운 이를 사랑하시도다.”(시편146,8)
오늘 화답송 시편중 한구절이 깊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주님은 이런 분입니다.
오늘 옛 현자 다산의 두 말씀도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사유는 눈빛으로 담기고, 세월은 주름으로 새겨진다. 얼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이다.”<다산>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생각이 납니다.
내 눈빛은, 내 얼굴 주름은 어떤지요?
날로 깊어지는 눈빛이요 날로 뚜렷해 지는 세월의 얼굴 주름이요, 세월의 나이테인지요?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사람의 생김새가 그 사람의 성격, 생활상 등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대개 익힌 것이 오랠수록 성품도 이에 따라 변한다.
속으로 마음을 쏟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 얼굴도 변하는 것이다.”<다산의 여유당전서>
이래서 좋은 덕목의 선택, 훈련, 습관을 통해 주님을 닮아갈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부단한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삶이, 영성이 그의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성녀 루치아(283-304) 동정 순교자 기념일로 지내지만,
우리 “선교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에 속한 수도원들은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오딜리아(660-720)
동정 대축일”로 지냅니다.
늘 자명한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그 누구든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생몰生沒연대를 볼 때 마다 생각하게 되는 나의 죽음입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이 떠나지 않습니다.
성녀 루치아는 로마 박해 시대에 순교한 동정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납니다.
순교 연대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교 박해기간 도중입니다.
성녀는 신심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았고 후에 어머니의 주선으로 귀족청년과 약혼합니다만
어머니께 이미 자신이 동정서원을 한 사실을 고백했고 어머니의 승낙을 받아냅니다.
루치아는 약혼한 몸이었지만 결혼 준비로 장만한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결혼하지 않습니다.
이에 분개한 그녀의 약혼자는 루치아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집정관
파스카시우스에게 고발하였고 루치아는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으며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받았으나
끝내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성녀의 이름 루치아는 ‘광명’, 또는 ‘빛’이라는 뜻의 라틴어 룩스(Lux)에서 유래합니다.
이름 뜻대로 끝까지 주님의 빛으로서 살다가 순교한 동정녀 루치아입니다.
오늘 대축일은 지내는 오딜리아 동정녀는 7세기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의 귀족집안에서
맏딸로 태어납니다.
오딜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고, 잔인한 성격의 아버지는 앞도 못보는 딸로 태어난 오딜리아를
하인을 시켜 죽이려 합니다.
오딜리아는 유모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에 맡겨집니다.
오딜리아는 앞을 보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밝고 착하게 자랐고, 마침내 673년경 레겐스부르크의
성 에르하르두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중 바른 성유가 그녀의 눈에 닿자마자 눈이 열려
시력이 온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후에 아버지와의 화해도 이뤄지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을 세우고 원장이 됩니다.
수녀원에는 신자들을 위한 병원도 함께 지어졌고, 여기서 성녀 오딜리아는 아버지의 변화에 기뻐하며
남은 생은 기도와 봉사로 지내다가 720년 선종해 몽생트오딜 수녀원에 묻힙니다.
성녀에 대한 공경은 프랑스를 넘어 독일까지 퍼져나갔고, 9세기부터 여러 지역의 교회의 성인 호칭기도에
성녀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성녀가 묻힌 무덤은 신자들, 특히 앞을 못 보는 이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가 됩니다.
16세기 이전부터 성녀 오딜리아는 알자스 지방과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과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져 왔고, 1807년 교황 비오 7세는 공식적으로 성녀 오딜리아를 알자스 지방과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합니다.
세례은총을 통해 눈이 열려 시력을 회복한 오딜리아, 말 그대로 “주님은 나의 빛”이라는
말씀이 이뤄진 것입니다.
루멘채치스, 맹인에게 빛을 이란 오딜리아 연합회의 모토도 여기 근거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예나 이제나 영적으로, 무지에 눈먼이들로, 역설적으로 온통 눈뜬 맹인들로
온 세상은 차고 넘칩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녀 루치아,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성녀 오딜리아는 물론 교회의 모든 성인들이
주님의 빛으로, 열린 눈으로 살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빛입니다.
맹인에게 빛을, 루멘채치스! 눈먼이들에게 빛을 주시는, 제대로 보게 하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빛이니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개안의 여정입니다.
빛이신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밝아지는 우리의 눈입니다.
주님이 발광체라면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주님의 반사체입니다.
어떻게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주님의 반사체로 참삶을 살 수 있을런지요?
첫째, 사랑하는 삶입니다.
사랑의 빛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날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깨끗한 마음이요 하느님을 만납니다.
분명한 사실은 발광체는 주님이요 우리는 반사체라는 엄중한 사실이요 이를 깨달을 때 저절로 겸손입니다.
주님의 빛을 그대로 반사하는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할수록 주님의 영광을 잘 반사합니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않을 때에는 몸도 어둡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해질 것이다.”
참으로 사랑으로 밝고 맑은 눈을 지님으로 주님의 반사체가 될 때 마음은 물론 온몸도 환한 빛이 됩니다.
저절로 심신의 치유요 구원입니다.
사랑뿐이 답이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찬미하는 삶입니다.
찬미의 빛, 찬미의 기쁨, 찬미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찬미와 더불어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사야 말씀이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성탄의 기쁨을 앞당겨 대림의 기쁨, 찬미의 기쁨, 찬미의 사랑을 사는 것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 맥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마라. 보라, 너희 하느님을!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라,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이런 찬미의 기쁨으로, 찬미의 사랑으로, 찬미의 빛으로 살 때 참으로 날로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초연한 삶입니다.
초연의 빛입니다. 무욕의, 무집착의 텅빈 충만의 초연한 삶이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날로 겸손과 비움의 여정에 충실한 자아초월의 삶과 더불어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바로 초연한 삶의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지납니다.
모두가 떠납니다.
세상 것들의 무시가 아니라 세상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초연하라는 것입니다.
집착의 늪에, 탐욕의 수렁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날로 이런 초연한 사랑이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게 합니다.
억지로의 이탈이나 초연이 아니라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수록 저절로 이탈의 초연한 삶에,
주님 반사체로서의 빛나는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빛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요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루멘채치스!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때 눈먼 이들에게 주님의 빛을 줄 수 있습니다.
답은 셋입니다.
“사랑하라, 찬미하라, 초연하라”입니다.
한결같이 이렇게 살 때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12/14(토) [(백)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고,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꿈꾸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면 하였을 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지 돌아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 오신다고 말한다.
첫 번째 오심은 지금 오심이다.
바오로 사도는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줍니다.”(티토 2,11-12)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우리에게 오시는 그분을 잘 맞을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두 번째 오심에 대해 바오로는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티토 2,13)라 한다. (조욱현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마태 17,12)
주님!
제 눈이 가려져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함은 빛을 피하고 어둠을 좋아한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제 가슴이 굳어져 당신을 맞아들이지 못함은 진리보다 제 자신으로 꽉 채운 완고함과 오만이었습니다.
빛이요 진리이신 주님!
저를 밝히소서.
제 어리석음과 완고함을 걷어내소서.
오만불손함을 태우소서.
제가 밝아져 더 이상은 당신을 제멋대로 다루지 않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은 우리의 빛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요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루멘채치스!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때 눈먼 이들에게 주님의 빛을 줄 수 있습니다.
답은 셋입니다.
“사랑하라, 찬미하라, 초연하라”입니다.
한결같이 이렇게 살 때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이수철 신부)
12/14(토) [(백)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제 176-46일 기도
복음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오늘의 말·샘 기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마태 17,12)
주님!
제 눈이 가려져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함은 빛을 피하고 어둠을 좋아한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제 가슴이 굳어져 당신을 맞아들이지 못함은 진리보다 제 자신으로 꽉 채운 완고함과 오만이었습니다.
빛이요 진리이신 주님!
저를 밝히소서.
제 어리석음과 완고함을 걷어내소서.
오만불손함을 태우소서.
제가 밝아져 더 이상은 당신을 제멋대로 다루지 않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14일(토) 6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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