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2월 13일 금요일[(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2월 13일 금요일[(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루치아 성녀는 로마 박해 시대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5세기의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순교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은 성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딸의 신변을 염려한 어머니의 주선으로 귀족 청년과 약혼하였다. 그러나 성녀는 동정을 결심하고 있었기에 한사코 혼인하기를 거절하였다. 이에 격분한 약혼자의 고발로 갇히게 되고 결국 300년 무렵에 순교하였다. 루치아(Lucia)라는 이름은 ‘빛’ 또는 ‘광명’을 뜻하는 라틴 말에서 유래하였다.

입당송

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또는>
복된 동정녀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짊어져, 동정녀들의 신랑이며 순교자들의 임금이신 주님을 본받았네.

본기도

주님, 거룩한 동정 순교자 루치아의 전구로
저희 안에 믿음의 불이 타오르게 하시어
오늘 그의 천상 탄일을 지내는 저희가 영원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요한 8,12 참조)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오시니 마중 나가자. 주님은 평화의 임금이시다.
◎ 알렐루야.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코린 10,17―11,2)와 복음(마태 25,1-13)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루치아의 생명을
제물로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를 기리며 드리는 이 예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성인 감사송 1 : 성인들의 영광>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저희는 이 위대한 증인에게서 힘을 얻고
악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갈 길을 끝까지 달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묵시 7,17 참조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루치아에게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성녀 루치아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죽음 교육에서 버킷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목표를 목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용어는 죽는다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했습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개인적으로 소중한 일을 기록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버킷 리스트라는 개념의 근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는 단순한 욕망의 목록이 아니라, 개인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성찰하는 도구로 볼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를 통해 스스로 열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 나중에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줄어듭니다. 신앙적 관점에서, 버킷 리스트는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실천하고 싶은 덕목이나 영적 목표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여행, 배움, 관계, 봉사, 영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리스트를 작성하도록 권유함으로써 더 풍성한 삶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도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 2007)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두 노인이 병원에서 만나 서로의 버킷 리스트를 공유하며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함께 스카이다이빙, 세계 여행 등 다양한 버킷 리스트 항목을 실천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고,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은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 월터가 자신만의 상상 속 모험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세계를 여행하며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1985)는 한 여성의 아프리카에서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녀가 꿈꾸었던 삶의 모험과 성취를 담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버킷 리스트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과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버킷 리스트의 철학적 측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우 이즈 굿(Now Is Good, 2012)은 암에 걸린 소녀가 죽음을 앞두고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녀의 여정을 통해 사랑과 가족,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대림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면서 버킷 리스트를 만들면 어떨까요? 동방박사들은 황금, 유향, 몰약을 준비해서 먼 길을 떠났습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동방박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별을 보며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 한나와 시메온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예수님께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당에서도 성탄을 기다리며 몇 가지 버킷 리스트를 마련했습니다. 하나는 고린토 전서를 필사하는 겁니다. 지난 사순시기에는 로마서를 필사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대림 특강입니다. 올해는 오클라호마 박락군 신부님이 구약과 신약에서 드러나는 성탄의 의미를 강의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버킷 리스트는 거창한 것일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는 큰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버킷 리스트는 일상의 삶에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류에게 큰 영감을 주는 고전을 읽는 것도,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도, 대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버킷 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신앙인이 지녀야 할 버킷 리스트를 이렇게 말합니다. “,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킨다면, 우리는 이미 버킷 리스트를 살고 있는 겁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마태 11,16-19

 

거룩하고 흠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신명나게 해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를 적극적으로 환대하고 공감해주고, 호응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분위기는 정말이지 사람 살맛나게 하고 기를 한껏 살려줍니다.

 

어딘가 강의를 갔는데, 다들 소 닭 보듯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는 분위기,

마치 민방위 교육장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강사로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이땅에 육화강생하신 예수님께서도 그런 냉랭한 대우를 참 많이 받으셨습니다.

특히 당대 나름 잘 나간다고 자부하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노골적으로 노골적으로 그분을 거부하고

무시했습니다.

 

아무리 목청을 높여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끝끝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을 길을 향해 걸어가는

유다인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서글프셨을까, 하는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대가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6-17)

 

또다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사건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극진히, 각별히 사랑하시는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냥 거기 계셔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우리 인간을 향한 극진한 사랑과 연민의 정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 세상으로 하향하셨습니다.

육화강생하신 것입니다.

 

이 대림 시기는 하향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우리 인간 측의 호응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그분을 기쁜 마음으로 환대하고 우리 내면 깊숙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에 앞서 필요한 노력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머무시기에 합당한 거처가 되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판공성사를 통해 내면을 잘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흥청대는 술잔치나 말 잔치, 불평불만, 과도한 욕심, 미워하는 감정 다 한번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작은 교회인 우리 각자가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은혜로운 시기 교회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자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성모님을 바라보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사랑이 거부당한 아픔>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태 11,16-17)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는 요한의 '회개의 세례의 선포'(마르 1,4;루카 3,3)에도 회개의 가슴을 치지 않고, 예수님의 '하늘 나라의 복음의 선포'(마태 4,23;9,35)에도 기뻐 춤추지 않는 세대를 말해줍니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폐쇄와 계시에 대한 배척의 뿌리에는 무관심과 영적 무지와 완고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완고함’이란 마치 엎어져 있는 항아리를 보고 입이 없다고 투덜거리거나 바닥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바로 세워놓고 보면 입도 있고 바닥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 뿌리에는 바로 보고자 하지 않는 ‘비뚤어진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완고함’이란 사실을 바로 보고자 하지 않는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목이 뻣뻣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외침을 듣고도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귀신 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의 선포를 듣고도 진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먹보요, 술꾼이요, 죄인들의 친구’라고 조롱합니다. 

사실 이쯤 되면, 예수님의 사랑은 안타까움과 비탄을 넘어 아픔입니다.

결국 당신의 사랑은 춤추지도 곡하지도 않는 냉대와 완고함이라는 가시에 찔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됩니다.

사랑이 거부당한 아픔입니다.

 

내가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냉대할 때, 바로 그러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사랑을 거부하고 완고할 때, 그렇게 당신의 눈에는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내가 내 형제를 거부하고 배척할 때, 당신은 그렇게 가시에 찔릴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하신 일은 십자가에 달리시어 자신을 ‘깨뜨려’ 찢고 나누어 건네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예수님의 그 피와 살을 먹고 자신도 ‘부서져’ 쪼개고 나누어져 다른 이에게 건네주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실 때 벌리시는 일은 우리를 ‘깨뜨리고 부수는’ 일이요, 진정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가 ‘찢기어지고 나누어지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살아 있으며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히브 4,12)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의 영께서 오시어 벌리시는 일은 우리와의 교제와 친교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새롭게 하여, 변화와 성화로 주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성령께 응답한다면, 다윗이 주님의 계약 궤 앞에서 춤추었던 것처럼 우리도 춤추게 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말씀과 영에 제가 꺾이고 부서져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태 11,17)

 

주님!

불의를 보고도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진리를 보고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무디어 진 제 마음이 빛보다 어둠에 치우친 까닭입니다.

제가 당신의 말씀을 냉대할 때, 당신의 가슴은 가시에 찔리실 것입니다.

형제들을 거부하고 배척할 때, 당신의 눈은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완고함의 벽을 헐고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곡을 하면 가슴을 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12.대림2주간 목요일                                                             이사41,13-20 마태11,11-15

                                                            두려워하지 마라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리어 구원을 피어나게 하라.”(이사45,8)

 

두려움과 불안중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인간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정서인지도 모릅니다.

성서에도 365회나 나오는 말마디가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여기 요셉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성심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말마디 또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입니다.

작금의 위기상황중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나다(I AM)”는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 이름입니다.

하느님과 같은 위상의 파스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나다”에는 예수님은 “너희와 함께 있는 하느님(I AM with you), ”너희를 위해 있는 하느님(I AM for you)”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나다’에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마디가 꼭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제 여섯째 숙부가 오래전 선종시 임종전 꼭 잡고 산 성구가 바로 두려워하지 마라가 들어있는 성구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도와 준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41,10)

 

이 말씀은 제가 고백성사중 보속용 말씀 처방전으로 많이 써드리는 성구중 하나입니다.

어떤 분은 수십년을 보관하고 지내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성구로 시작하고, 오늘 복음은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는

성구로 끝맺음이 의미심장합니다.

 

이에 지체없이 “두려워하지 마라, 귀있는 사람은 들어라”로 강론 제목을 정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이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들어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리라.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살다 보면, 간혹 “하늘이 도왔다.”, "천운이다!"라는 감격에 벅찬 고백도 듣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믿는 누구나에게 이런 구원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웠던 상황이 하느님의 개입이란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 구원받았던 체험의 고백입니다. 

 

한쪽 문이 닫혀 있으면 한쪽 문은 열려 있는 법입니다.

아주 예전에 삼국지에서 읽은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제천在天!”이라,

즉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사마의 사마염 사마소’ 삼부자가 제갈량의 계책에 빠져 불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찰라에

갑자기 하늘서 내리는 비로 불이 꺼지고 살아나는 장면을 본 제갈량의 탄식의 말마디도 잊지 못합니다. 

 

모든 일이 이뤄짐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고백이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면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의

하느님께 맡기는 믿음의 자세뿐이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도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바로 당대의 당신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미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 나라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비록 가장 작은 이라 할지라도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파스카의 주님과 늘 함께 하는 우리의 하늘 나라 삶이요 세례자 요한은 이런 구원의 경지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요한은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하늘 나라는 계속 폭행을 당할 것이나 그런 와중에도 하늘 나라는

계속 성장 실현될 것입니다.

아무도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좌절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이 대림시기 우리에게는 좋은 모범이 됩니다.

재림의 엘리야 같은 세례자 요한과 함께 깨어 주님의 길을 닦는 회개의 삶에 충실함이

대림시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은총의 대림시기와 더불어 하늘 나라의 실현도 분명해집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음은 물론 마음의 귀를 열고 들어야, 경청해야 합니다.

“들어라!” 역시 성서에 참 많이 나오는 말마디입니다.

침묵과 경청, 겸손과 순종의 믿음을 통해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깊이 깨닫고 회개의 삶이

더욱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무지의 어둠,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내시어

오늘 지금 여기서 생명과 빛의 하늘 나라 꿈을 실현하며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네.”(티토2,12-13). 아멘.


12/13(금) [(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성서 말씀은 신앙인이 지녀야 할 버킷 리스트를 이렇게 말합니다. “,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킨다면, 우리는 이미 버킷 리스트를 살고 있는 겁니다.(조재형 신부)

 

2. “이 세대가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6-17)

 

또 하나의 작은 교회인 우리 각자가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기를 원하십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태 11,17)

 

주님!

불의를 보고도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진리를 보고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무디어 진 제 마음이 빛보다 어둠에 치우친 까닭입니다.

제가 당신의 말씀을 냉대할 때, 당신의 가슴은 가시에 찔리실 것입니다.

형제들을 거부하고 배척할 때, 당신의 눈은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완고함의 벽을 헐고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곡을 하면 가슴을 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하늘 나라는 계속 폭행을 당할 것이나 그런 와중에도 하늘 나라는

계속 성장 실현될 것입니다.

아무도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좌절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이수철 신부)

 

12/13(금) [(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제 175-45일 기도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오늘의 말·샘 기도>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태 11,17)

 

주님!

불의를 보고도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진리를 보고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무디어 진 제 마음이 빛보다 어둠에 치우친 까닭입니다.

제가 당신의 말씀을 냉대할 때, 당신의 가슴은 가시에 찔리실 것입니다.

형제들을 거부하고 배척할 때, 당신의 눈은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완고함의 벽을 헐고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곡을 하면 가슴을 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13일(금) 5시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