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2월 17일 화요일[(자) 12월 17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2월 17일 화요일[(자) 12월 17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이사 49,13 참조
하늘아, 즐거워하여라. 땅아, 기뻐하여라. 우리 주님이 오시어, 가련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본기도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느님,
평생 동정녀의 태중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인성을 받아들이신 외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도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왕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49.1-2.8-10
그 무렵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2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8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10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3-4ㄱㄴ.7-8.17(◎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산들은 백성에게 평화를, 언덕들은 정의를 가져오게 하소서. 그가 가련한 백성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에게 도움을 베풀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그의 이름 영원히 이어지며, 그의 이름 해처럼 솟아오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그를 칭송하게 하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혜 만물을 힘차고 아름답게 가꾸시는 분, 어서 오소서. 저희에게 슬기의 길을 가르치소서.
◎ 알렐루야.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7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저희가 이 신비로운 제사에서 받는 천상 양식으로 다시 힘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2 :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두 가지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가리켜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하까 2,7 참조
보라, 모든 민족들의 보화가 들어오리니, 주님의 집은 영광으로 가득 차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천상 양식을 받고 비오니
저희가 늘 이 양식을 바라며 성령의 빛을 충만히 받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등불을 밝혀 들고 마중 나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12월17일

 

오늘은 12 17일입니다. 주님의 성탄까지 7일 남았습니다. 지난 3주 동안의 대림 시기는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바라보았습니다. 지난 3주 동안의 대림 시기 감사송은 구원의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지니는 의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구약에 마련된 임무는 무엇일까요? 대림 제1 주일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그날과 그때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그렇습니다. 공정과 정의를 세우는 것이 구약에 마련된 임무였습니다. 대림 제2 주일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 영광 안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도록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그렇습니다. 구약에 마련된 임무는 참된 평화와 참된 자유입니다. 하느님 앞에 우리는 모두 한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림 제2주일은 인권 주일이라고 합니다. 대림 제3 주일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렇습니다. 구약에 마련된 임무는 가난한 이, 외로운 이, 굶주린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림 제3주일은 자선 주일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1주일은 구원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탄생보다는 예수님의 탄생 과정에 집중합니다. 나자렛의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그래서 감사송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알려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는 여정을 함께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오신 곳은 화려한 궁궐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금수저로 오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오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거처할 방이 없어서 말구유로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목동들이 양을 돌보는 베들레헴의 들판으로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의 대사제가 아닌,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배경에는 권력, 명예, 성공, 능력, 업적이라는 병풍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곁에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했던 처녀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던 목수 요셉이 있었습니다. 밤을 새워 양들을 돌보던 목동들이 있었습니다. 고단한 여행을 마쳤던 동방의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곁에는 흙수저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의 곁에 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입니다.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죄를 지어서 돌에 맞을 뻔했던 여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이유입니다. 루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명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습니다. 마디가 없는 대나무는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삶의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상처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삶의 마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곧 성탄이 다가옵니다. 성탄은 그저, 즐겁고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성탄은 이제 하느님의 뜻대로 살도록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용기 있는 사람들을 자주 찾아온다고 합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12월 17

 

복음마태 1,1-17: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심을 믿도록 한 것이다

 

마태오는 주님께서 육신으로 태어나신 두 번째 탄생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다윗은 둘 다 육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에서 훌륭한 선조였다

주님께서는 할례로 유대 민족의 선조가 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고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가계에서 육신을 취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구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6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다윗은 손이 뛰어난 또는 사랑받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분이셨다다윗은 행동으로자비로온화함으로그리스도를 예시하였다.

 

14대라는 말을 3번 하는데 여기에도 마태오가 의도적으로 족보를 14대씩 나눈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 족보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으며하느님께서는 그 역사를 면밀히 이끌어 가시며

그 역사의 절정즉 때가 찼을 때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 가문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이 족보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대림시기의 후반기에 접어들고 있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며 주님의 오심을 잘 준비한다고 노력하지만우리의 삶은 이 족보에 나타나는 

의미에서와 같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히 따르는 삶으로

많은 은총 속에 사는 때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 어려움을 겪는 때도 있다

이 때문에 항상 주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의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항상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도록 하자.


3. 이영근 신부님

 

12월 17

 

<인간의 역사 안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역사>

 

성탄이 임박해 옵니다. 

대림 두 번째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때가 차면 그분은 분명 오시겠지만, 그분이 오신다고 해서 모두가 그분을 영접하는 기쁨을 차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우리 마음 안에 구유를 준비해두고,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채비를 차려야 할 때입니다. 

마음의 간절함으로 “하늘은 이슬비처럼 의인을 내려다오.” 라고 마음을 모아 노래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본기도에서 그 의미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인성을 받아들이신 외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도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이는 미사 중 예물준비기도를 바칠 때 사제가 성작에 포도주와 물을 부으며 혼자 드리는 기도문과 같습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가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오늘 제1독>에서는 인성을 받아들이신 외아드님의 강생을 예고하고,<복>에서는 예고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사실 그분은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보여주듯이 시간보다 앞서시며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지만, 동시에 육에 따라 본다면 이 족보가 알려주듯이 인간의 가계에 속한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족보’는 그분 인성의 계보를 밝혀주는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이셨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인간의 방식으로 태어나셨음을 밝혀줌과 동시에 본기도에서 밝히듯이, 그분을 통하여 우리도 신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밝혀줍니다.


우리는 이 족보를 통하여 보이는 인간의 역사 안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역사를 봅니다. 

 

곧 그들 모두가 자비의 사슬로 엮어졌음을 봅니다. 

그리고 그 자비의 사슬 안에서 하느님의 감실을 봅니다. 

곧 그들 모두는 예수님이 담겨 있는 성합들임을 봅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당신 자비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 족보를 들을 때면 ‘성모님의 찬가’가 떠오릅니다. 

"주님께서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루카 1,50)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약속하신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루카 1,54-55)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대대로 이어지고 영원합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역사 안에 살아계시고 또한 제 안에 자비로 살아계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 1,1)

 

주님!

보이는 인간의 역사 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

세세대대로 베풀어진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그 자비의 사슬 안에서 당신의 감실을 보게 하소서.

그들 모두가 당신이 담겨 있는 성합임을 보게 하소서.

오늘, 제 심장의 고동소리와 말과 발걸음과 손짓 모두가 당신의 자비를 엮어내는 사슬이 되게 하소서.

오늘, 제 안에 새겨진 당신 자비의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16.대림 제3주간 월요일                                                  민수24,2-7 필리4,4-7 루카3,10-18

 

                                         예수님의 권한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분별의 지혜”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시편25,4)

 

교황님 홈페이지 뉴스에 감동했습니다.

영원한 청춘의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제47차 해외 사목 방문 여정에 오른 것입니다.

프랑스와 이태리 사이에 있는 지중해에 있는 프랑스의 섬인 인구 35만의 “코르시카”섬입니다.

교황님의 생년월일은 1936년12월17일이니 내일이면 만88세가 됩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 12월17일은 교황님의 생신입니다. 

 

고령의 연세에 여전히 지혜의 절정을 누리시는 교황님을 통해 새삼 하느님의 은총을 깨닫게 됩니다.

교황님의 존재자체가 노령의 신자들에게 용기를 붇돋아 줍니다.

코르시카에서 한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라, 언제나 용서하라.”

(Forgive everything, forgive always)

 

괄호안에 영어를 삽입하니 더욱 분명히 마음에 각인됩니다.

코르시카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하신 강론의 요지입니다.

역시 현자의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교황님을 통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다산 정약용의 지혜도 우리의 무지를 일깨워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삶을 돌아보면 기뻐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굶지는 않으니 애써 다시 근심하지 마라.”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는 아울러 그가 먹을 양식도 함께 주신다.

그런데 어찌 근심 때문에 방황하며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논쟁입니다.

제가 볼 때 지혜와 무지의 대결같습니다.

정말 눈밝은 현자라면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인데

편견의 무지에 눈먼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의 권한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신학적 지식이 반드시 지혜와 함께 가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 직후입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소?”

 

무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무엇으로 답변해도 무지한 이들은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교황님의 악마와 대화하지 말라는 충고도 생각납니다.

이에 대해 질문으로 역공하는 예수님의 지혜와 용기가 빛납니다.

세례자 요한의 경우를 들면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의 근거를 묻습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예수님의 적대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물음입니다.

하늘에서 왔다하면 왜 믿지 않느냐는 물음에 직면할 것이고, 인간에게서 왔다하면 하늘에서 왔음을 믿는

군중이 두려워 도저히 답변할 수 없으니 궁지에 몰린 적대자들의 답변에 더 이상의 질문을 봉쇄해 버립니다.

 

“모르겠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무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정말 볼 줄 하는 지혜를 지닌 자라면 교황님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오듯,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의 권한도

하늘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선사되는 분별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민심이 천심입니다. 민심을 이기는 위정자들은 없습니다.

민심이 바다라면 위정자들은 바다위에 떠있는 배같습니다.

엊그제 국회의 탄핵 결정에 200백만 시민이 감격의 환호로 응답한 사실은

이 결정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거대한 사건 말고도 가짜뉴스와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는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분별의 지혜가,

지혜로운 삶이 참으로 절박한 시대입니다. 

 

무엇보다 지혜의 눈이 열리는 개안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현실입니다.

바로 개안의 모범이 예수님은 물론 오늘 제1독서 민수기의 발라암입니다.

두 환시가 그대로 대림과 성탄에 있을 이상향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무지의 눈이, 무지의 귀가 활짝 열린 참 멋진 발라암은 두 환시가 대림을 지내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위로와 힘을 줍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골짜기처럼 뻗어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아름답기가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현실을, 주님과 함께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꽃자리 환경을

묘사하는 듯 합니다.

신비롭고 황홀한 발라암이 전하는 선물같은 비전이자 환시입니다.

발라암의 두 환시는 그대로 인간이 아닌 하늘로부터 오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두 번째 멋진 환시도 그대로 메시아 탄생을 예시하는 환시입니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야곱에게서 솟는 별 하나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는 왕홀이 상징하는 바 탄생하실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무지의 눈을 열어주시어 하느님의 지혜인 주님과 하나되어

온유하고 겸손한 삶을, 지혜롭고 자비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시편25,5ㄱㄴ). 아멘.


12/17(화)[(자) 12월 17일], 되새김 구절

 

1. 루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명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습니다. 마디가 없는 대나무는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삶의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상처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삶의 마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곧 성탄이 다가옵니다. 성탄은 그저, 즐겁고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성탄은 이제 하느님의 뜻대로 살도록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용기 있는 사람들을 자주 찾아온다고 합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는 대림시기의 후반기에 접어들고 있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며 주님의 오심을 잘 준비한다고 노력하지만우리의 삶은 이 족보에 나타나는 

의미에서와 같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히 따르는 삶으로

많은 은총 속에 사는 때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 어려움을 겪는 때도 있다

이 때문에 항상 주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의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항상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도록 하자.(조욱현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 1,1)

 

주님!

보이는 인간의 역사 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

세세대대로 베풀어진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그 자비의 사슬 안에서 당신의 감실을 보게 하소서.

그들 모두가 당신이 담겨 있는 성합임을 보게 하소서.

오늘, 제 심장의 고동소리와 말과 발걸음과 손짓 모두가 당신의 자비를 엮어내는 사슬이 되게 하소서.

오늘, 제 안에 새겨진 당신 자비의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예수님의 적대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물음입니다.

하늘에서 왔다하면 왜 믿지 않느냐는 물음에 직면할 것이고, 인간에게서 왔다하면 하늘에서 왔음을 믿는

군중이 두려워 도저히 답변할 수 없으니 궁지에 몰린 적대자들의 답변에 더 이상의 질문을 봉쇄해 버립니다.

 

“모르겠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이수철 신부)

 

12/17(화)[(자) 12월 17일],제 178-48일 기도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오늘의 말·샘 기도>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 1,1)

 

주님!

보이는 인간의 역사 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

세세대대로 베풀어진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그 자비의 사슬 안에서 당신의 감실을 보게 하소서.

그들 모두가 당신이 담겨 있는 성합임을 보게 하소서.

오늘, 제 심장의 고동소리와 말과 발걸음과 손짓 모두가 당신의 자비를 엮어내는 사슬이 되게 하소서.

오늘, 제 안에 새겨진 당신 자비의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17일(화) 6시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