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2월 20일 금요일[(자) 12월 20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 차리니,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본기도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성전이 되셨으니
저희도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이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복음 환호송
○ 다윗의 열쇠, 영원한 나라의 문을 여시는 분, 어서 오소서. 어두운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이끌어 내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지극히 거룩한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이 신비에 참여하여
믿고 기다려 온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가리켜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천상 선물로 저희에게 생기를 북돋아 주시니
이 신비에 참여한 저희를 보호하시어
참된 평화를 누리며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12월20일
달라스 교구 시노드에 참석했습니다. 3박 4일 동안, 3년 동안 준비한 시노드 결의 사항에 대한 투표가 있었습니다. 투표는 아주 중요한 것, 중요한 것,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누어서 투표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본당 행사에서 간식을 주는 것에 대한 투표가 있었습니다. 아주 중요하다는 의견, 중요하다는 의견, 덜 중요하다는 의견으로 투표했습니다. 교리 교육에 시대의 상황에 관한 것들을 반영하는 것에 대한 투표도 있었습니다. 낙태, 인종차별, 이민자, 환경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필요한가에 대한 투표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시노드의 투표를 참조해서 달라스 교구의 사목에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 미사가 있었고, 미사 중에 주교님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희망은 절망 중에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했던 희망입니다. 메시아는 3번에 걸쳐 우리에게 오신다고 했습니다. 2,000년 전에 오셨고, 지금 우리의 마음에 오시고, 마지막 때에 오실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희망을 품고, 깨어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성서 말씀은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하즈 왕은 유다 왕국의 위기에 직면했으나, 하느님께서 주신 징조를 거부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라는 표징(임마누엘)을 주셨지만, 아하즈는 이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정치적 계산과 외교적 전략(앗시리아와 동맹)에 의존했습니다. 아하즈의 의심은 하느님보다 세상의 힘을 더 신뢰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하느님의 약속 대신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계획을 듣고 놀라움을 표현하지만(“어떻게 그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곧바로 순명하며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상황(혼인 전 임신으로 인한 사회적 위험)과 이해를 넘어,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내어드렸습니다. 마리아의 순명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계획을 신뢰할 때 어떤 열매가 맺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야구 경기는 투수와 포수가 공을 던지고 받는 경기입니다. 그러기에 투수와 포수는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합니다. 포수는 투수가 던지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투수는 포수가 잘 받을 수 있도록 미리 던질 곳을 약속합니다. 던지는 공의 유형도 직구인지, 변화구인지 사전에 약속합니다. 이것이 투수와 포수가 함께 공유하는 사인입니다. 사인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유능한 포수도 공을 잘 받을 수 없습니다. 사인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투수도 정확한 곳으로 공을 던질 수 없습니다. 야구 선수들은 훈련을 통해서 서로 사인을 숙지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상식과 양식이라는 사인을 공유해야 합니다. 관용과 인내라는 사인을 나누어야 합니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사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징표를 보여주시는 하느님과 그 징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하느님께서는 내 가족들을 통해서, 내가 만나는 이웃을 통해서, 흘러가는 구름과 부는 바람을 통해서 표징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내 믿음의 눈에 이물질이 묻어 있으면 성탄의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사랑의 눈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으면 주님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내 희망의 눈에 고통의 비가 내리면 주님의 성탄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해마다 계절이 오고 가듯이,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내 마음에 욕망의 먼지가 묻어 있다면, 내 마음에 분노의 이물질이 쌓여 있다면, 내 마음에 열등감의 비가 내린다면 우리는 늘 새롭게 다가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대림 시기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하즈처럼 의심의 눈으로 하느님의 표징을 보지 말고, 성모 마리아처럼 순명의 눈으로 하느님의 표징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
2024년 다해 12월 20일 금요일
루카 1,26-38
믿음의 사람은 속세 사람들과 이렇게 구분된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주님 탄생 예고의 깊은 순간을 듣게 됩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시리라는 놀라운 메시지를 전합니다.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도 인간적으로 “이게 가능할까?”라고 의문을 품으셨을 것입니다.
천사는 그녀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그녀의 친척 엘리사벳의 기적적인 이야기를 전하며,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나이가 많아 아들을 배었으니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 불리던 이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6-37)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벳의 믿음과 하느님의 능력의 증거는 마리아가 구원의 역사 속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힘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여신 마리아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진리의 살아 있는 증인이 되십니다. 이 순간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과 세상의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세상은 “이게 과연 가능할까?”라고 묻지만,
믿음의 사람은 “아멘,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점을 보여주는 예로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의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1967년, 젊은 시절 조니는 다이빙 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생을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는
선교사의 권고를 통해 조니는 고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깊은 기도의 순간, 그녀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고,
그분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니는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약할수록 더 많이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며, 그분께 의지할수록 그분의 강함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이 경험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그녀는 원망 대신 감사로 고통을 받아들이며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을 통해 조니는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이루었습니다.
깊은 고통을 기쁨과 용기의 원천으로 바꾼 것입니다.
또 다른 놀라운 예는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의 이야기입니다.
1997년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말랄라는 마이완드의 말랄라(Malalai of Maiwand)처럼
용감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믿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여자로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삶을 살았습니다.
이 이름은 탈레반의 억압 속에서도 교육과 정의에 대한 믿음은 말랄라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2012년, 그녀는 학교 버스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는 끔찍한 암살 시도를 겪었습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6세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그녀를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로 이끌었고, 높은 이상에 대한 믿음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제 일생의 목표는 전 세계의 모든 여자아이가 12년 동안 안전하고
질 높은 교육을 받도록 돕는 것입니다.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자아이들은
전 세계에 1억 3천만 명이나 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저런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해?” 믿음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이처럼 성녀 잔다르크(Joan of Arc)의 이야기도 믿음의
변혁적인 힘을 보여줍니다. 1425년, 어린 소녀였던 잔은 천사와 성인들의 환시를 경험하며
프랑스를 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단지 농부의 딸에 불과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믿고 따랐습니다.
1429년, 잔은 군대를 이끌며 그 시대 여성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믿음은 그녀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세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믿음이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초기 삶에서 부와 세속적인 즐거움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1205년, 그는 산 다미아노(San Damiano)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던 중
“내 교회를 다시 세워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미아노 성당을 물리적으로 재건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점차 예수님께서 가톨릭교회의
영적인 기반을 새롭게 하라는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필요한 일부터 시작하라. 그다음에 가능한 일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가난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철저히 실천하며 교회를 쇄신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을 이루게 했고, 세상에 가난과 사랑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심지어 개신교에서도 프란치스코 성인은 존경합니다.
놀랍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경배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세상의 기대를 초월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세상에 희망과 영감을 줍니다.
믿음의 사람은 결코 세상 속에 숨겨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사람들에게
“아!” 하는 탄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게 영감을 준 엘리사벳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아멘”으로 응답하며, 믿음의 힘을 세상에 놀라움으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3. 이영근 신부
2024년 다해 12월 20일 금요일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삼으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고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이사 7,14)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이사야의 예고대로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잉태하게 된 경위를 말해줍니다.
이를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와 비교해 보면, ‘주님의 탄생 예고’는 성전 안 ‘성소’에서 전해진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와는 달리,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던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5)에 있는 작은 동네 나자렛의 시골 처녀의 ‘집’에서 전해집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처를 성전 안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두시게 됩니다.
그런데 천사의 인사말은 마리아가 이미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였음을 말해줍니다.
곧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기 전에 믿음으로 충만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즈카르야는 ‘의심’하여 자신의 목소리까지 잃어버리고 벙어리가 되었지만, 마리아는 ‘믿음’으로 응답하여 구원의 말씀을 품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마리아는 몸으로 우리 주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잉태하셨다."
또 즈카르야에게는 아기가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루카 1,17)이라는 ‘사명’이 예고되지만, 마리아에게는 아기가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외아드님'(루카 1,35)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는 ‘신원’이 예고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루카 1,35)으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드러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오늘은 여기에서 드러나는 ‘마리아의 희망’에 대해서만 보고자 합니다.
이는 마리아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 그것을 저도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곧 ‘그분의 희망을 희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리아의 희망과 하느님의 희망이 같아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원하신 바를 이루시도록 그분의 뜻에 승복하는 일이요, 그분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품고 자신의 희망이 아니라 그분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요, 당신의 사랑을 이루시도록 자신을 그분께 허용하고 수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고, 그분의 은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이 하시는 일에 함께 일하는 협조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삼으십니다.
저희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고, 저희 안에서 사십니다.
바로 이것이 저희가 마리아와 함께 진정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희망이 있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우리를 희망하는 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기쁨인지요!
내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놀이터요 일터라니!
이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야곱의 탄성(Eureka!), 그 깨달음의 외침과 같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창세 28,17)
오늘 우리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바야흐로 성탄의 기쁨이 몰려옵니다.
희망이 이미 수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주님의 희망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희망이 진정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19. 12월19일 판관13,2-7.24-25 루카1,5-25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느님
“희망하라, 기뻐하라, 사랑하라”
“오 옛세의 뿌리여 만민의 표징이 되셨나이다.
주앞에 임금들이 잠잠하고
백성들은 간구하오리니
더디 마옵시고 어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대림 제2부, 세 번째 12월19일 저녁성무일도시 마리아의 노래 ‘오후렴’이자 오늘 복음 환호송입니다.
12월17일부터 12월23일까지 계속될 ‘오후렴’에 반드시 들어있는 ‘오시어’ 라는 말마디입니다.
주님께서 어서 빨리 오시어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참 애절한 기도입니다.
새삼 대림시기뿐 아니라 우리의 평생이 오시는 주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대림의 나날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만 있는게 아니라 사람을 찾는 하느님도 있습니다.
우리 사람을 찾아 오시는 겸손한 사랑의 하느님!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아주 예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애송하는 '하늘'이란 시입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
요즘 어지러운 현실을 보며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를 생각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배척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완전히 심리적 내전상태입니다.
나라나 사회나 개인이나 악을 상징하는 바오밥나무들이 너무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일부 내용입니다.
“어린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는데...바로 바오밥나무의 씨앗이었다.
그 별의 땅은 바오밥나무 씨앗투성이였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손을 너무 늦게 쓰면 영영 없앨 수가 없게 된다. 바오밥나무가 별을 온통 차지하고는
뿌리를 내리면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래서 별은 작은데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서 별이 산산조각 나고 마는 것이다.”
흡사 바오밥나무들 천지같은 지구별 세상같습니다.
사람도 흡사 바오밥나무 같습니다.
나라도 사회도 가정도 내 마음도 바오밥나무들이 깊이 뿌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가라지보다 참 두렵고 무서운 것이 세상의, 내 안의 악의 바오밥나무들입니다.
영적전쟁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부단히 평생 바오밥나무를 뽑아내거나 크게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 바로 영적전쟁의 핵심입니다.
바로 대림시기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치열한 우리 삶의 준비와 덕의 실천으로
내적 악의 바오밥나무를 제어해야 합니다.
바로 그 모범이 복음의 즈카리야 엘리사벳 부부요 판관기의 마노아 부부입니다.
첫째, “희망하라!”입니다.
희망의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절망이 대죄입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문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그대, 희망을 버려라” 글자가 쓰여져 있다합니다.
희망이 없는 절망의 거기가 지옥입니다.
절망이 바로 나를 파괴하는 바오밥나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악은 우리를 소외시키고, 우리의 꿈을 소멸시키고, 우리를 외롭게 하고,
우리를 좌절케 한다.”
바로 절망이 악의 실체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아이를 갖지 못한 노년의 즈카리야, 엘리사벳 부부나, 마노아 부부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을 찾고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을 갈망하고 열망하며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내며,
기다리고 인내했음이 분명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때가 되니 하느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두 부부를 찾아 오셔서 아이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마노아 부부의 아들은 삼손이요, 자카리아 엘리사벳 부부의 아들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의 선물이요 각자 사명이 주어집니다.
우리 역시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신의 한수'같이 각자 고유의 사명이 주어진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기뻐하라!”입니다.
기쁨의 하느님입니다. 희망의 기쁨이요, 희망과 기쁨은 함께 갑니다.
희망의 주님에게서 샘솟는 기쁨이요,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기쁨이요, 이 기쁨이야 말로 참영성의 표지입니다.
이 희망의 기쁨이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거둬냅니다.
참으로 희망과 기쁨보다 더 좋은 명약도 없습니다.
절망이란 악의 바오밥나무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희망의 기쁨입니다.
제 분명한 추측은 마노아 부부, 자카리아 부부, 아이는 없었지만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기쁘게 살았을 것입니다.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여 우울하게 슬퍼하며 어둡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불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삼손은 태양을 뜻하는 히브리말에서 나온 이름이니 태양과 같은 아들을 두었으니 마노아 부부의 기쁨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자카리아의 아내 엘리사벳은 잉태후 다섯달 동안 숨어지내며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 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엘리사벳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마노아 부부나 자카리아 부부, 모두가 절망스런 환경중에도 한결같이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기쁘게 감사하며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셋째, “사랑하라!”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의 수행입니다.
마노아 부부의 행적에 사랑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통해 감지되는
믿음과 사랑의 삶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갈망했기에 주님의 천사도 친히 그 부부를 찾아 오셨습니다.
참으로 간절한 사랑으로 하느님을 찾을 때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입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이 없으면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시지도 않고, 주님이 찾아 오셔도 우리는 주님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즈카르야 엘리사벳 부부가 얼마나 하느님 믿음과 사랑에 충실하고 한결같았는지는 다음 대목이 입증합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제 나름대로 다짐하며 실행하기로 한 내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말하고, 적게 쓰고”에 이어, “많이 기도하고, 많이 공부하고, 많이 나누고”,
셋의 ‘적게’에 셋의 ‘많이’ 또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희망하라!
기뻐하라!
사랑하라!”
대림시기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삶도 없고,
악의 바오밥나무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이보다 더 좋은 처방의 삶도 없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12/20(금)[(자) 12월 20일], 되새김 구절
1.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내 마음에 욕망의 먼지가 묻어 있다면, 내 마음에 분노의 이물질이 쌓여 있다면, 내 마음에 열등감의 비가 내린다면 우리는 늘 새롭게 다가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대림 시기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하즈처럼 의심의 눈으로 하느님의 표징을 보지 말고, 성모 마리아처럼 순명의 눈으로 하느님의 표징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천사는 그녀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그녀의 친척 엘리사벳의 기적적인 이야기를 전하며,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나이가 많아 아들을 배었으니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 불리던 이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6-37)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벳의 믿음과 하느님의 능력의 증거는 마리아가 구원의 역사 속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힘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여신 마리아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진리의 살아 있는 증인이 되십니다. 이 순간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과 세상의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세상은 “이게 과연 가능할까?”라고 묻지만,
믿음의 사람은 “아멘,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우리의 평생이 오시는 주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대림의 나날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만 있는게 아니라 사람을 찾는 하느님도 있습니다.
우리 사람을 찾아 오시는 겸손한 사랑의 하느님!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이수철 신부)
12/20(금)[(자) 12월 20일],제 181-51일 기도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20일(금)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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