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2월 21일 토요일[(자) 12월 21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이제 세상을 다스리러 주님이 오시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본기도
사람이 되어 오시는 외아드님의 탄생을 기뻐하오니
주님 백성이 드리는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그분께서 위엄을 갖추고 다시 오실 때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아가의 말씀입니다.2,8-14
8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9 나의 연인은 노루나 젊은 사슴 같답니다.
보셔요,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
10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1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12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13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4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이스라엘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18ㄱ
14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16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하리라.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17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18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라.
○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고운 가락을 내며 환성 올려라. ◎
○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그분 안에서 우리 마음 기뻐하고, 거룩하신 그 이름 우리가 신뢰하네. ◎
복음 환호송
○ 임마누엘, 저희 임금님, 어서 오소서. 주 하느님, 저희를 구원하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자비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교회가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가리켜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복되시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거룩한 신비에 참여한 저희를 언제나 돌보아 주시어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따르고
영혼과 육신의 충만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12월21일
2017년, 교구청에서 성소 국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신학생들의 연수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과테말라에 있는 사제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신부님이 신학생일 때, 30일 피정을 함께 했습니다. 30일 동안 피정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사제가 된 후, 신부님은 과테말라의 원주민을 위한 사목을 신청했고, 10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학생들이 어학을 배우고, 선교 체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습니다. 신부님은 과테말라 교구에 협조를 구하였고, 신학생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신학생들은 매년 선교 체험을 하였고, 사제가 된 후에는 선교 사제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만남이 인연이 되어 과테말라 교구의 사무처장 신부님이 서울의 신학교를 방문해서 신학생들을 위해 강의를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과테말라에서 사목을 잘 마치고, 지금은 콜롬비아에서 사목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해외 선교를 지원하는 사제들이 언어를 배우고, 현지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뉴욕에 있었습니다. 달라스에 있는 신부님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뉴욕에 오면 방문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타임스퀘어, 센트럴 파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브루클린 브리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 등이 있습니다. 손님이 오면 주로 가는 곳들이라, 신부님들을 위해서도 그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이 방문하고 싶은 곳은 제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제가 주일미사를 도와주고 있는 브루클린 한인 성당엘 가고 싶어 했습니다. 뉴저지에 있는 뉴튼 수도원엘 가고 싶어 했습니다. 뉴욕 맨해튼 관광보다는 제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고, 한국의 베네딕토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수도원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브루클린 성당을 도와주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뉴튼 수도원과 한국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인연이 되었는지, 저는 뉴욕 생활을 마치고 지난 2월 달라스 한인 성당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보았습니다. 두 여인의 만남은 구약과 신약,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마리아의 즉각적인 응답은 신앙의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행동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요한 세례자와 예수님의 첫 만남이자, 구세주의 도래를 세상에 알리는 순간입니다. 마리아의 여정은 하느님 뜻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순종을 상징하며, 신앙인이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제시합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이는 성령께서 하느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심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벳의 모태에 있던, 요한 세례자의 기쁨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신분을 첫 번째로 증언하는 행위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믿음 안에서 연대와 나눔의 본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는 오늘날 신앙 공동체가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기뻐할 것을 요청합니다.
사제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일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몇몇 친구에게 전화하거나 만나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언제나 따뜻하게 저를 대해주고, 제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런 친구가 있기에 저는 힘을 내서 사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까운 이웃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대하면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과 갈등을 들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나의 모습을 따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나의 길을 따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성탄이 다가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사랑으로 오시니 감사합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어둠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그 사랑은 가난한 이, 외로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사랑은 절망하고 있는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행복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주님,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도록 용기와 힘을 주소서. 주님의 그 사랑을 저 또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2. 전삼용 요셉 신부
다해 12월 21일
루카 1,39-45
은총은 그 본성상 자신을 흘려보낼 사람에게만 흐른다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시는 내용입니다.
어제 은총을 받는 첫 번째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에 대해 생각해볼까 합니다. 일단 작은 은총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큰 은총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성모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은 당신이 받은 은총을 당신만 지니지 않고
나누려고 하신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도 자녀가 있으면 형제와 나눌 줄 아는 아이에게 더 주고 싶습니다.
단순하지만 이 두 가지만 알면 우리는 은총 충만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나중에 돌 맞아 죽더라도
당신이 가진 것을 당신만 가지고 있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미국 아이오와주의 작은 농촌 시골마을 웨스트 브로우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형제가 교회에 가던 중에 주먹질하며 싸우는 소년 네 명을 보았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킨 후에 음식을 먹였습니다.
이 아이들은 학습지진아, 문제아, 저능아, 무의미한 인간 등의 별명을 갖고 있었고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버림받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아이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서 목사님께 부탁해 주일학교에 이 아이들을 위한
반을 만들어주면 자신이 교사가 되어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주일마다 그 선생님은 네 소년에게 하느님 말씀을 가르쳤고 소년들은 자라서 도시로 나갔습니다.
1932년 이 나이 든 주일학교 교사의 은퇴 겸 생일 축하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네 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편지 네 통이 낭독되었습니다.
하나는 중국 선교사로부터, 두 번째 편지는 연방 은행 총재로부터,
그리고 세 번째 편지는 후버 대통령의 비서실장에게서 온 것이고,
네 번째는 후버 대통령의 편지였습니다.
후버는 미국 제31대 대통령으로 가장 어려웠던 대공황 시기(1929-1933)에 미국을 이끌었고
“하느님의 말씀은 역경을 이기는 힘“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어제 은총을 담을 그릇이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은총을 빨아들이는 힘은 나누려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제 성모님은 은총이 가득하시기 위해 가진 것이 감사하는 삶을 사셨음을 말했다면,
오늘은 성모님께서 당신이 받은 은총을 엘리사벳에게 흘려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감사와 사랑이 은총을 충만히 받는 길입니다.
미국의 경영대학원 와튼 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사람을 3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남에게 주려고만 하는 이타적인 사람, ‘기버’(Giver), 남에게 받으려고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
‘테이커’(Taker), 그리고 남이 나에게 무언가 해주면 그제야 나도 주는 ‘매처’(Matcher)입니다.
이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실패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안타깝게도 무조건 주는 기버들입니다.
이들은 경쟁에서 뒤처집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큰 성공을 하는 사람들도 기버들입니다.
캘리포니아주의 기술자 16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남을 도와주느라 정작 자신은 가장 낮은
생산성을 보이는 기버 부류를 조사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기버들은
경쟁에서 뒤처졌습니다.
하지만 기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지속한 시간 속에서 쌓이는 사회의 ‘인정’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은 일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을 선호합니다.
자신보다는 타인과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는 기버들이 그래서 장기적으로 승승장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이기적인 테이커와 매처보다는 믿음과 신뢰,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기버들이 세상에서 성공합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자라야 했던 배정철 대표가 있습니다.
그는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도 포기한 채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많이 벌어 자기처럼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견뎠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사회에 내놓은 돈은 무려 50억 원입니다.
한국 초밥왕으로 군림한 그는 자기의 성공의 원인을 자신의 끝없는 나눔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눔이라는 것은 아주 크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작은 일에서부터 나누다 보면
나중에 자신도 많은 것을 얻게 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 저도 나눔이라는 것을 시작할 때 작은 것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학생들 장학금을 댄다든지 병원에 기부금을 내면서 나눔에 관련된 소문이 나다 보니까
이왕이면 우리 가게에서 먹자 하는 분들이 많으시고 그렇게 되다 보니까
더 많은 것을 제가 얻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우선 가진 것에 감사합시다. 가장 좋은 것은 매일 저녁 감사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누워서 주모송을 바치고 오늘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다음 날 일어나서 할 일들을 자세하게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계약의 궤 위로 내린 하느님의 현존이 움직인다면 바로 그 구름을 따라
움직이겠다는 준비된 자세를 말합니다.
계약의 궤는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은총의 본성은 흐름입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흘려보낼 사람에게만 흐르십니다.
제가 사제가 되었으면서도 유학 가라는 주교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것은
그만큼 큰 은총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항상 전날 밤에 다음 날 일어나서 뭐 해야 할지 주님의 뜻을 물어보면
다음 날 아침부터 당황하지 않고 하루를 알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하는 일들이란 사제이기 때문에 말씀을 전해주는 일입니다.
아주 충실히 살지는 못해도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그만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고 또 내가 가진 것을 나누려는 마음을 가집시다.
‘감사합니다’와 ‘사랑합니다’.
이것이 은총을 받는 유일하고 완벽한 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3. 이영근 신부
다해 12월 21일
<‘말씀의 방문’>
오늘 말씀전례는 ‘오시는 분’에 대한 고대와 기다림과 간절함으로 마음 설레어 있고, ‘오신 분’에 대한 기쁨과 반가움으로 벅차올라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아가는 노래합니다.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아가 2,8)
또 복음 환호송에서는 “어서 오소서. 주 하느님”하고 환호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루카 1,44) 하고, ‘이미 오신 그분’을 맞이하여 뱃속에서 즐거워 뛰는 아기와 함께 기쁨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큰 소리로 마리아의 '행복'을 선언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45)
이는 '말씀' 안에 행복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 안에 행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말씀'이 ‘이룰 수 있는 능력’임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말씀을 믿는 것’ 안에 행복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말씀”이 ‘행복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그런데 ‘말씀이 왜 행복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말씀이 구원을 이루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이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곧 행복을 가져다주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복된 일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복됨을 노래합니다.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루카 1,42)
왜냐하면 아기가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복된 것은 그녀의 태중의 아기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 아기가 구세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 모두를 믿으셨으니 ‘행복’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 안에서 이미 ‘행복’이 충만했습니다.
이를 두고 성 암브오시오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엘리사벳은 잉태한 후에 성령으로 충만했고, 마리아는 잉태하기 전에 충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을 믿고 품으면, 진정 ‘복’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어머니'(루카 1,43)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얼마나 벅찬 일인지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먼저 찾아오신 ‘말씀의 방문’으로부터 말미암은 일입니다.
마리아 태중의 ‘아기의 방문’으로부터 발생한 일입니다.
‘먼저 건너오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잉태되면 뱃속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오히려 품고 있는 우리를 양육할 것입니다.
우리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산골을 찾아가는 ‘노고’가 되고, ‘섬김’이 되고, ‘사랑’이 되어 피어오를 것입니다.
우리의 노래가 되고, 기도가 되고, 삶이 되어 탄생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행복하십니다, ~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루카 1,45)
행복하십니다, 어머니!
경청만 하신 것이 아니라, 믿고 영접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믿고 영접한 것만이 아니라, 순명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순명한 것만이 아니라,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오늘 제가 당신의 희망을 품고, 행복의 찬미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20. 12월20일 이사7,10-14 루카1,26-38
정주의 모범: 마리아 성모님
“관상, 환대, 순종”
요즘 날마다 계속되는 ‘오 후렴’이 참 장엄하고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오늘 대림 제2부 12월20일 네 번째 ‘오 후렴’ 역시 참 좋습니다.
“오 다윗의 열쇠여,
이스라엘 집안의 홀이시여,
주께서 여시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닫으시면 아무도 열지 못하오니,
오시어 죽음의 땅과 어둠속에 앉아 있는 우리를,
결박에서 풀어 주소서.”
매후렴 마다 반드시 들어있는 “오시어”입니다.
인류가 존속하는한 계속될 대림시기입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도 오시어 죽음의 땅과 어둠속에 앉아 있는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애절한 탄원의 기도는 계속될 것입니다.
한결같이,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 오시는 겸손한 사랑의 주님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동정 성모 마리아입니다.
참으로 눈밝으시고 겸손하신 주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나자렛 시골의 마리아 처녀를 찾아 나섭니다.
마리아 성모님이야 말로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따라야 할 정주의 모범입니다.
오래전 써놨던 ‘정주’란 글이 생각납니다.
“마음의 중심
늘 고요히 깨어 있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곧 집중 몰두하되 휘말리지 않는다
언제나 새벽의 고요와 평온을 산다.”(2000.9.11)
그대로 정주영성을 사셨던 마리아 성모님처럼 생각됩니다.
역사의 획기점 전환점이 된, 역사의 중심이 된 오늘 하느님의 나자렛 방문 사건입니다.
깨어 침묵중에 환대하는 마리아에 대한 주님 천사의 찬사의 축복입니다.
이 두 구절은 제가 참 많이 고백성사중 보속시 '말씀처방전'으로 써드리는 성구입니다.
마리아 대신 당사자의 이름을 넣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씀을 받았을 때, ‘보속이 아니라 보석입니다!’ 환호하던 수녀의 모습도 생각납니다.
어느 선배 노사제에게 “신부님은 보물입니다.” 했을 때 “아닙니다.
고물입니다.”라 대답하던 노사제의 겸손한 유머도 더불어 생각납니다.
새삼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의 보석이요 보물같은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거듭되는 말씀도 마리아에게 큰 격려와 힘이 됐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제자리의 정주의 침묵과 관상에 충실할 때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제자리, 제정신을 잃고 제대로 살지 못하는 극단으로 치닫는 이들을 보면 정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많은 학식에도 불구하고 이념에, 종교에 중독되어 맹신이, 광신이 될 때 백약이 무효임을 깨닫습니다.
이에 대한 최고의 처방이 바로 정주의 관상과 환대입니다.
주님 천사의 축복의 전갈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지만 침착을 회복하여,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했으니 관상가로서의 마리아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엊그제 주님의 천사를 맞이하던 요셉과 흡사한 마리아의 응답입니다.
요셉의 태몽에 이은 오늘 마리아의 태몽처럼 생각됩니다.
마리아를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했는지 주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속내를 다 밝히시며 대화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불릴 것이다...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 아들을 잉태하였다...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놀라운 사명의 축복들이 줄줄이 주어집니다.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참으로 마리아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벅찬 사명의 축복들입니다.
마리아를 설득하기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하느님의 겸손과 인내의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파트너인 마리아의 자발적 협조없이는 절대로 일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삼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경청하고 순종하는 환대의 관상이 얼마나 본질적이자 절대적인지 바로,
마리아가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주님의 천사의 말에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은 늘 들어도 새로운 감동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서 떠나니 말그대로 해피엔딩입니다.
역사의 전환점이 된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입니다.
이 응답이 나오기전 산천초목이 조마조마한 모습으로 적막에 잠겨 있었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의 주석말씀도 생각납니다.
마리아의 순종으로 하느님의 구원여정도 계속되고 이사야의 예언도 실현될 수 있었으니,
정말 한없이 기뻐하셨을 하느님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신탁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적용시켰습니다.
놀랍고 감사한 것은 우리 마리아 성모님께서는 시종여일, 아드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까지도
“예스맨(Yes-man)”으로 “순종의 비움(케노시스)의 삶”에 충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마리아 성모님의 순종의 믿음을 닮게 하시며
다음 말씀대로 또 하나의 임마누엘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아멘.
12/21(토)[(자) 12월 21일],되새김 구절
1. 이제 곧 성탄이 다가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사랑으로 오시니 감사합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어둠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그 사랑은 가난한 이, 외로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사랑은 절망하고 있는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행복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주님,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도록 용기와 힘을 주소서. 주님의 그 사랑을 저 또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조재형 신부)
2. 세상은 일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을 선호합니다.
자신보다는 타인과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는 기버들이 그래서 장기적으로 승승장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이기적인 테이커와 매처보다는 믿음과 신뢰,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기버들이 세상에서 성공합니다. (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행복하십니다, ~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루카 1,45)
행복하십니다, 어머니!
경청만 하신 것이 아니라, 믿고 영접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믿고 영접한 것만이 아니라, 순명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순명한 것만이 아니라,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오늘 제가 당신의 희망을 품고, 행복의 찬미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신탁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적용시켰습니다.
놀랍고 감사한 것은 우리 마리아 성모님께서는 시종여일, 아드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까지도
“예스맨(Yes-man)”으로 “순종의 비움(케노시스)의 삶”에 충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2/21(토)[(자) 12월 21일],제 182-52일 기도
복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오늘의 말 · 샘 기도>
“행복하십니다, ~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루카 1,45)
행복하십니다, 어머니!
경청만 하신 것이 아니라, 믿고 영접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믿고 영접한 것만이 아니라, 순명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순명한 것만이 아니라,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오늘 제가 당신의 희망을 품고, 행복의 찬미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21일(토)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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