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2월 25일 수요일[(백) 주님 성탄 대축일 - 낮 미사]/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라 불리리라.
<대영광송>
본기도
저희를 하느님의 모습으로 오묘히 창조하시고 더욱 오묘히 구원하셨으니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2,7-10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8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
9 예루살렘의 폐허들아, 다 함께 기뻐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제2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네. 민족들아, 어서 와 주님을 경배하여라. 오늘 큰 빛이 땅 위에 내린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또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5.9-14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리의 샘이신 주님, 구세주를 보내시어 저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시니, 교회가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며 세상 모든 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공직을 맡은 이들을 굽어보시어, 그들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먼저 생각하며, 주어진 일에서 공동선을 실현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3. 새 영세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주님, 세례성사로 주님 안에서 새로 난 이들을 돌보아 주시어, 그들이 굳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본받고, 그 믿음을 삶에서 실천하게 하소서.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도움이신 주님, 세상 속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저희를 굽어살피시어, 혼돈 속에서 방황할 때 주님의 굳센 팔로 잡아 주시고,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예물기도
거룩한 예배로 바치는 이 예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시어
주님 마음에 드는 완전한 화해의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 태어나신 구세주께서 저희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주셨으니
저희가 불사불멸의 은혜도 받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성탄 대축일
“기쁘다 구세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달라스 성당에 와서 첫 번째 맞이하는 성탄입니다. 오늘 ‘예수 성탄’으로 사행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예: 예수님 사랑이 가득한 밤,/ 수: 수줍게 웃는 얼굴들 가득하네./ 성: 성탄의 종소리가 마음을 울리고,/ 탄: 탄생의 기쁨이 온 세상을 채우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겨울, 유럽의 참호 전선은 추위와 공포로 가득했습니다. 병사들은 끊임없는 전투로 지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12월 24일 밤, 서부전선의 한 구역에서 독일 병사들이 조용히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들은 영국 병사들이 화답하듯 자신의 언어로 같은 노래를 부르며, 참호 사이에 따뜻한 연대의 기운이 피어올랐습니다. 다음 날, 양측 병사들은 조심스럽게 참호에서 나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성탄을 축하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담배, 초콜릿, 심지어 작은 선물을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들판에서 축구 경기를 하며 잠시나마 전쟁을 잊었습니다. 그날만큼은 총성이 멈추고, 적대감 대신 형제애가 넘쳤습니다.
오늘만큼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선에도 평화가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오늘만큼은 평화도 도시 예루살렘에도 평화가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오늘만큼은 대한민국의 정치에도 평화가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온 인류를 위한 가장 기쁜 날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참된 빛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분은 위엄 있는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죄로 인해 어두웠던 세상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이 빛은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자녀로 사랑받고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이 빛은 또한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럽더라도,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과 구원을 약속합니다.
오늘은 예수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예수님 탄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오십니다. 병들고, 지치고, 외로운 이들이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는 오십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모습으로, 굶주린 이들을 배를 불리시는 곳으로, 교만한 이들을 내치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일깨우시는 곳으로 오십니다. 흠이 있고, 주름이 가득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 공동체에도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진정한 이유입니다. 화려한 궁전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은 자신들이 지닌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목동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고, 그 기쁨을 찬미했습니다.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가짜별을 본 것이 아닙니다. ‘믿음, 사랑, 희망’이라는 진실의 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인생이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의 기쁨은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슬픔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을 찾는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인생의 전부도 아닙니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축복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이 참된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가난한 목동들,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기 위해서 먼 길을 왔던 동방박사들, 오늘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성탄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이라면 우리 모두도 기뻐할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기뻐합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탄 낮 미사
복음: 요한 1,1-18: 사람이 되신 말씀과 볼 수 있는 영광
생명의 말씀이 인간이 되셨다.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찾아주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은 바로 이분을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알아듣게 되었으며 참 주님으로 고백했다.
그분이야말로 생명을 가지신 분이며, 생명을 주시며,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으로 고백했다.
잠깐 밤 미사에서도 언급했지만, 부활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든 삶을 보기 시작했으며,
이 성탄도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그 참된 의미를 보기 때문에, 지금 탄생하신 그분은
힘없는 한 아기의 모습이 아니라, 진정 주님이시며,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하느님이신 그 말씀이, 그 아들이 우리 인간의 모습을 취하셔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신 것도
바로 당신의 생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어 당신의 생명에 함께 하려 하심이다.
우리를 당신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한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올바로 가져야 한다.
그분은 바로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나를 구원해 주시는 그리스도 즉 하느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큰 축일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미사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며, 이제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어 가야 한다.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마리아,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믿은 목동들의 모습을 본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다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나시길 원하신다.
그래서 제1독서에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이사 52,7)하는 말씀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며, 그 말씀이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 우리를 통해 계속해서 태어나시게 해야 한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가진 우리의 모습이 그분의 모습과 같이 될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으며, 우리를 보는 이들이 그 안에 생명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때가 다 되었을 때, 당신 외아들을 통하여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당신 아들의 모습을 닮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말씀하고 계시다.
그 말씀이 구체적으로 태어나게 하시는 사업을 즉 구원사업을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해서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잉태하며, 낳아주기 위해서는 고통의 신비인 십자가의 신비를 체험하지 못하면 어렵다.
자신의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체험이 바로 말씀을 낳아주는 마리아의 모습, 그리스도의 모습이 될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을 이겨보려는 끝없는 노력이다.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께 진정한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우심을 청하자.
이 용기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 되도록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삶이 이 성탄의 신비를
언제나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하자.
레오 교황님의 말씀을 듣자. “그리스도인들이여, 여러분의 품위를 인식하고, 이제 하느님의 본성을
함께 나누어 받게 된 자들로서 부패한 행실로 말미암아 이전의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머리와 어떤 몸의 지체인지 생각하고 어둠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나라와
광명으로 옮겨졌음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세성사를 통하여 성령의 궁전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마귀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여러분의 더러운 행실로써 그 성전에 거하시는 고귀한 손님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피의 비싼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이 미사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봉헌하며,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로 사는 삶을 살도록
우리의 결심을 봉헌하자.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제물은 번제물이 아니라 자선이라고 했다.
진정한 사랑의 삶이며, 사랑의 제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감사의 생활이며, 말씀을 낳아주는 삶이며 성탄의 삶이다.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에게 구세주로 오신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3. 이영근 신부님
성탄 밤 미사
<은총의 시간, 구원의 때>
축하드립니다.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드립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분명 오늘 우리가 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 ‘구세주의 탄생 이야기’는 너무도 아름다워, 매년 들어도 항상 새롭기만 합니다.
특히 오늘 성탄 전야부터 ‘희년’이 개막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지난 승천대축일에 <희망은 실망하지 않습니다>(로마 5,5)라는 제목으로 <희년선포 칙서>를 반포하시면서, 성탄 전야에 ‘희년’이 개막될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유다의 랍비 전승에 의하면, 세계 역사에는 네 개의 결정적인 밤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밤은 빛이 창조된 밤이고, 둘째 밤에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봉헌할 준비를 갖춘 밤이고, 셋째 밤은 이집트의 압제에서 탈출한 밤이며, 넷째 밤에는 메시아가 다시 오시는 밤이라고 합니다.
첫째 밤은 탄생과 창조의 밤이요, 둘째 밤은 순명과 봉헌의 밤이요, 셋째 밤은 해방과 구원의 밤이요, 넷째 밤은 재림과 완성의 밤입니다.
그들은 이 네 밤을 동일시한다고 합니다.
오늘 밤, 바로 이 밤이 이 네 개의 밤입니다.
바로 이 밤이 창조로 새 생명이 탄생한 밤이요, 봉헌으로 하느님과 연결되는 밤이요, 탈출로 이루어진 구원의 밤이요,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희망’이 이루어지는 밤입니다.
이토록 깊고 오묘한, 구원이 탄생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밤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 밤입니다.
기쁜 성탄입니다!
성탄!
이는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의 “예”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오늘이 바로 이렇게 “예” 하고 답하기만 하면, 우리 안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이 내려 온 날입니다.
하느님이 내 안에서 인간이 되는 날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느님이 되는 순례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참으로 복된 날이요, 참으로 거룩한 날입니다.
성탄!
이는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입니다.
나를 껴안은 당신의 포옹으로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 안에 있게 된 날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순례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참으로 은총의 날입니다.
이토록 놀랍고 경사로운,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기쁜 성탄입니다!
성탄!
이는 오늘 제1독서에서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된 것이요,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옴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한 대로,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남이요, 위대하신 하느님과 구세주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것을 희망하게 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우리의 구세주가 탄생하심입니다.
이토록 오늘 우리 안에 빛이 찾아들고, 영광된 은총이 스며들고, 구원자가 탄생하셨습니다.
이토록 빛나고 영광된, 그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기쁜 성탄입니다!
바야흐로 하느님의 자비는 온 땅을 적시고, 하느님의 생명은 온 누리에 돋아나는 밤입니다.
오늘 밤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고, 진리가 땅에서 움터납니다.
정의가 아기 예수에게서 돋아나고, 진리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늘에서는 영광이, 땅에서는 평화가 울려 퍼집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오니, 참으로 찬양하고 흠숭하올 기쁜 밤입니다.
이토록 넘치게 자비로운, 그 밤이 바로 지금입니다.
기쁜 성탄입니다!
오늘 우리는 죄와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입었으니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하고,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질병과 죽음에서 일어나 생명을 받았으니 생명을 꽃피워야 하고, 평화를 받았으니 평화를 이루어야 할 일입니다.
바로 오늘, 하느님께서 내려오시니 우리도 따라 내려가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비우시니 우리도 비워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가난해지셨으니, 우리도 가난해져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새 인간이 되어야 한다.
참 생명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낮아지고 비워짐이 아름다운 밤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 밤입니다.
기쁜 성탄입니다!
바로 지금이 은총의 시간, 구원의 때입니다.
오늘 이처럼 우리 가운데 구세주 살아계시오니, 우리는 천사들과 함께 찬양합시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루카 2,11)
오늘밤, 우리의 아기! 구세주 나셨습니다.
왕방울의 소의 눈이 기쁨에 경악하고, 어린양의 떨리는 탄성에 잠들었던 만물이 깨어납니다.
포대에 싸여 있듯, 뭇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다가 눕지도 않은 채 십자가에 못 박혀 세워질 연약한 아기,
내가 휘두른 채찍에 온몸이 부서질, 그러면서도 생명을 주시고자 저를 부르신 이여!
당신을 품에 안게 하소.
안은 당신 가슴에 머리를 묻고 새로 나게 하소서!
“목마르다”라고 외치는 당신 음성을 듣게 하소서.
제 생명을 주신 임이여!
당신은 남북이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우리의 마음 속 투박한 담 벽이 세워진 이 곳에 ‘평화의 왕’으로 오십니다.
여기, 다윗의 조그마한 고을 한반도, 가로막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우리의 아성을 부수소서!
오, 임마누엘, 저희와 함께 계신 아기 예수여!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24. 12월24일 2사무7,1-5.8ㄷ-12.14ㄱ.16 루카1,67-79
내 삶의 성경
“렉시오 디비나 하기”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시편89,1)
믿는 이들의 삶의 역사는 그대로 한 권의 성서요 하느님 자애와 진실의 발자취입니다.
삶의 중심이자 인도자이신 주님께 충실히 협조하여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성경을
하루하루 평생 정성껏 써가야할 거룩한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갔을때 유일하게 바쳐야 할 것이 내 삶의 성경책입니다.
예전 요셉 수도원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썼던 글이 생각납니다.
수차례 나눴지만 늘 새롭습니다. 요셉수도공동체 역시 하나의 성서로 보고 렉시오 디비나해본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삶과 더불어 공동체 역시 저는 또 하나의 성경으로 간주합니다.
제가 위인들의 자서전, 평전, 회고록을 주로 즐겨 읽는 것도 하나의 성경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진실하게 산 이들의 삶은 성경처럼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합니다.
삶은 평생 죽을 때 까지 배워야 하는 배움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수도공동체라는 성서를 나름대로 렉시오디비나한 결과 넷으로 요약됨을 발견했습니다.
1.모든 것은 때가 있다.
2.모든 것은 필요했다.
3.모든 것은 지나간다.
4.그러니 현재를 살라(carpe diem).
넷의 요약 결론에 만족했고 많은 이들이 공감했습니다.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모든 것이 감사했다"가 될 것입니다.
제 지론은 성경의 렉시오디비나도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신구약성서의 렉시오디비나가 기본이고, 다음에 자연성서, 다음엔 내 삶은 물론 공동체라는 성서입니다.
내 삶의 성서 렉시오 디비나 역시 얼마나 풍요로운지요!
이렇게 살 때, 결코 하루하루 충실히 살게 됩니다.
결코 함부로, 되는대로 막 살지는 못합니다.
하루하루가 써가는 살아있는 성서의 한쪽으로 아직은 미와의 내 삶의 성서, 내 공동체의 성서라는 것입니다.
결코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리가 협력하여 써내려 가야 할 의미 충만한 내 삶,
내 공동체의 성서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면담고백성사를 할 때는 성서를 렉시오디비나하는 마음으로 그들 삶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옛 현자의 고백도 삶이 하나의 성서임을 입증합니다.
“진실한 삶으로 들어가본 사람만이 인생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한다.”<다산>
“죽을 때가 되었을 때, 한 상자의 글도 전할 것이 없다면 헛되게 산 것이다.”<다산의 여유당전서>
생애 마지막 한 권의 내 삶의 성서가 없다면 헛산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평생 오래 살았어도 쓸 이야기가 없는 텅빈 공허와 허무, 무의미한 삶이었다면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할까요?
그 허기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하여 삶의 여정을, 삶의 성서를, 일일일생, 일년사계로 압축하여 어느 시점에 있는지 살펴보며
거품이나 허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짧은 세월, 기도하고 공부할 시간을 생각하면 때로 먹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오늘 12월24일, 주님 오심의 성탄이 임박했음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과 독서가 내 삶의 성서, 내 공동체의 성서, 내 나라 공동체라는 성서를
잘 렉시오디비나하도록 우리를 일깨웁니다.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성찰하기에 참 절호의 오늘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나탄의 신탁이요 복음은 즈카르야의 찬가입니다.
두 독서의 특징은 동사들의 주어가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살아 움직이는 동사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공동체를 통해 이루신 업적을 노래하는 것이요, 그대로 일종의 렉시오디비나입니다.
내가, 공동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해 주신 것이라는 것이요, 이런 깨달음이 더욱 회개를 촉진하고
겸손과 순종,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도록 마음을 움직입니다.
오늘 제1독서 나탄의 신탁도, 복음의 즈카르야의 찬가도 주어가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위업을 나열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었다.”
많이 생략했지만, 모두가 하느님이 주어가 되어 다윗을 위해 해주신 일의 나열임을 깨닫습니다.
다윗의 무지를 일깨우며 회개에로 인도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주님이 하셨다는 자각이 겸손이자 믿음입니다.
일례로 내가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수도원에 보내 주셨다는 자각입니다.
새삼 우리 요셉수도원 수도자들 하나하나가 하느님이 보내주신 하느님의 선물이자
"신의 한수"임을 깨닫게 되니 저절로 회개와 겸손이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됩니다.
즈카르야의 찬가 역시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한 렉시오디비나요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찬미의 노래가 됩니다.
가톨릭 교회가 수천년간 아침기도때 마다 즈카르야와 함께 이스라엘공동체는 물론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공동체를 렉시오디비나 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찬가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노래하는 즈카르야의 노래가 참 은혜롭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신 위업을 렉시오디비나하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즈카르야와 우리들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모두가 바칠 찬가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에게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이어지는 모든 내용이 하느님이 주어가 되어 주도권을 잡고 이루신 위업에 대한 감사와 찬미로 가득한
즈카르야의 찬가입니다.
얼마나 역동적인 하느님이요 이스라엘 공동체요 교회공동체, 수도공동체인지요!
마지막 구절에서 구세주 탄생의 예고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하느님의 구원활동이요, 오늘도 그대로 이뤄지는 구원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날마다 대림이요 성탄입니다.
주님은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찾아 오시어,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시고,
오늘 하루도 당신 중심으로 당신께 최선을 다해 협조하며, 우리 삶의 성서 한쪽을 잘 쓰도록 도와주십니다.
“떠오르는 별, 영원한 빛,
정의의 태양이신 주님, 어서 오소서.
어둠속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소서.” 아멘.
12/25(수)[(백) 주님 성탄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성탄의 기쁨은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가난한 목동들,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기 위해서 먼 길을 왔던 동방박사들, 오늘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성탄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이라면 우리 모두도 기뻐할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기뻐합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조재형 신부)
2. 하느님이신 그 말씀이, 그 아들이 우리 인간의 모습을 취하셔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신 것도
바로 당신의 생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어 당신의 생명에 함께 하려 하심이다.
우리를 당신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한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조욱현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루카 2,11)
오늘밤, 우리의 아기! 구세주 나셨습니다.
왕방울의 소의 눈이 기쁨에 경악하고, 어린양의 떨리는 탄성에 잠들었던 만물이 깨어납니다.
포대에 싸여 있듯, 뭇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다가 눕지도 않은 채 십자가에 못 박혀 세워질 연약한 아기,
내가 휘두른 채찍에 온몸이 부서질, 그러면서도 생명을 주시고자 저를 부르신 이여!
당신을 품에 안게 하소.
안은 당신 가슴에 머리를 묻고 새로 나게 하소서!
“목마르다”라고 외치는 당신 음성을 듣게 하소서.
제 생명을 주신 임이여!
당신은 남북이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우리의 마음 속 투박한 담 벽이 세워진 이 곳에 ‘평화의 왕’으로 오십니다.
여기, 다윗의 조그마한 고을 한반도, 가로막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우리의 아성을 부수소서!
오, 임마누엘, 저희와 함께 계신 아기 예수여!
아멘.(이영근 신부)
4.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하느님의 구원활동이요, 오늘도 그대로 이뤄지는 구원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날마다 대림이요 성탄입니다.(이수철 신부)
12/25(수)[(백) 주님 성탄 대축일],제 186-56일 기도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오늘의 말·샘 기도>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루카 2,11)
오늘밤, 우리의 아기! 구세주 나셨습니다.
왕방울의 소의 눈이 기쁨에 경악하고, 어린양의 떨리는 탄성에 잠들었던 만물이 깨어납니다.
포대에 싸여 있듯, 뭇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다가 눕지도 않은 채 십자가에 못 박혀 세워질 연약한 아기,
내가 휘두른 채찍에 온몸이 부서질, 그러면서도 생명을 주시고자 저를 부르신 이여!
당신을 품에 안게 하소서.
안은 당신 가슴에 머리를 묻고 새로 나게 하소서!
“목마르다”라고 외치는 당신 음성을 듣게 하소서.
제 생명을 주신 임이여!
당신은 남북이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우리의 마음 속 투박한 담 벽이 세워진 이 곳에 ‘평화의 왕’으로 오십니다.
여기, 다윗의 조그마한 고을 한반도, 가로막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우리의 아성을 부수소서!
오, 임마누엘, 저희와 함께 계신 아기 예수여!
아멘.
- 2024년 12월25일(수) 5시50분-
'매일미사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묵]2024년 12월 27일 금요일[(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4.12.27 |
---|---|
[매묵]2024년 12월 26일 목요일[(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4.12.26 |
[매묵]2024년 12월 24일 화요일[(자) 12월 24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4.12.24 |
[매묵]2024년 12월 23일 월요일[(자) 12월 23일]/신부님 강론 4개 (6) | 2024.12.23 |
[매묵]2024년 12월 22일 주일[(자) 대림 제4주일]/신부님 강론 4개 (2) | 2024.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