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2월 26일 목요일[(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대영광송>
본기도
첫 순교자인 복된 스테파노의 천상 탄일에 거행하는 신비를
저희가 삶으로 드러내게 하시고
숨을 거두면서도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성 스테파노를 본받아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6,8-10; 7,54-59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
○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당신은 가련한 저를 굽어보셨나이다. ◎
○ 원수와 박해자들 손에서 구원하소서.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복된 스테파노의 영광스러운 축일에 저희가 봉헌하는 예물을 받으시고
그가 순교로 증언한 믿음이 저희 안에서 굳건히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스테파노는 돌을 맞으며 부르짖었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소서.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자의 탄생으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오늘 복된 스테파노의 축일로 저희를 더욱 기쁘게 하시니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풍성한 자비에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첫눈, 첫발자국, 첫사랑, 처음 본당이 지니는 의미가 있습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도 합니다. 첫발자국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도 합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첫사랑이 주는 감미로움과 애잔함이 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은 순수하기도 하지만, 어설프기도 합니다. 33년 전 사제서품 받고 처음으로 부임한 본당은 ‘중곡동’ 성당입니다. 본당 신부님과 저를 포함해서 2명의 보좌신부가 있었습니다. 선임 보좌신부님은 청년, 중고등부를 담당했고, 저는 초등부 주일학교를 담당했습니다. 제가 했던 일은 교사들의 교안을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교사 회합을 들어가는 거였습니다. 토요일에는 어린이 미사를 하였고, 주일에는 12시 미사를 하였습니다. 선임 보좌신부님이 미사 순서를 정하면 평일 미사를 하였습니다. 사람 좋아하는 저는 어른들과도, 청년들과도 만나면서 처음 본당을 순조롭게 시작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자상하셨고, 선임 보좌신부님은 입학 동창이라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오면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의 직업을 많이 따라간다고 합니다. 야채가게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야채가게에서 일하게 되고, 세탁소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세탁소에서 일하게 되고, 마트를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마트에서 일하게 되고, 도넛 가게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도넛 가게에서 일하게 되고, 식당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식당에서 일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기술직이나, 전문직으로 왔으면 그 기술과 전문 분야를 찾아서 일할 수 있습니다. 사제 생활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처음 만난 본당 신부님의 사목 방침과 사목 스타일을 배우게 됩니다. 꼼꼼하게 챙기고, 사목을 이끌어가는 신부님을 만나면 그렇게 배우게 됩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여행 가는 걸 좋아하는 신부님을 만나면 그렇게 배우게 됩니다. 책을 가까이하고,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신부님을 만나면 그렇게 배우게 됩니다. 성령 기도회를 이끌고, 영성이 깊은 신부님을 만나면 그렇게 배우게 됩니다.
제가 처음 만난 본당 신부님도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교포 사목하고 오신 신부님은 무척 자유로웠습니다. 기존에 보았던 본당 신부님은 엄격하셨고, 권위가 있었고, 가까이 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신부님은 늘 먼저 제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스테이크를 구워주기도 하였고, 스키장을 가자고 하였고, 산책 가자고 하였습니다. 매주 화요일에는 성령 기도회 미사가 있는데, 같이 하자고 하였습니다. 단체들에도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거의 안 하였습니다. 보좌신부들이 하는 일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로운 신부님에게서 사제 생활의 기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늘 기도하였습니다. 성당에서 성체조배 하였고, 신부님 방에는 따로 기도 방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방의 기도 초는 늘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매일 복음 묵상 글을 만들었습니다. 신부님은 ‘2000년대 복음화’ 단체를 이끌었고, 저는 신부님을 따라서 몇 번 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신부님의 자유는 기도라는 뿌리가 있었기에 더욱 풍요로웠습니다. 사제 생활 길잡이가 되어준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성탄의 기쁨이 있는 바로 다음 날, 우리는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인 ‘스테파노 순교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늘 기억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모든 권력과 능력을 포기하시고 사람이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성탄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구세주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지 묵상할 과제를 부여받습니다. 마구간이라는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리에서 태어났음을 늘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가난하였고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라고 자신의 처지를 말한 적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너희들의 것이다.’ 제자들을 파견하면서도 지팡이조차 들고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철저한 무소유와 자발적 가난의 모습만이 가장 제자다운 삶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성탄입니다. 많은 성인과 성녀가 있지만 스테파노 성인이 예수님을 믿으며 처음으로 순교하였고,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스테파노 성인의 뒤를 이어서 수많은 성인과 성녀들이 예수님을 믿으며 신앙을 증거하였고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테파노를 통해서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이미 보여주신 길이기도 합니다.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스테파노는 죽음의 순간에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순교란 단순히 목숨을 바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순교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복음: 마태 10,17-22
환희와 기쁨은 언제나 고통이나 죽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아기 예수님의 성탄 바로 그 다음 날,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의 축일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대축제 바로 다음 날, 셀 수도 없이 날아오는 돌팔매에 맞아 죽임을 당한 스테파노의 축일이 있다는 것,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환희와 기쁨은 고통이나 죽음과 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충만한 은총은 고통과 죽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순교자들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분들의 얼굴을 찬란한 빛으로 가득했고,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들은 이 지상에서부터 천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내면 안에 그 누구도 침해하지 못할 주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의 박해가 점점 증폭될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갈 때 마다
스테파노는 즉시 자신의 내면에 마련된 나만의 감실, 나만의 성탄 구유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지극히 겸손하신 하느님의 육화 강생의 신비를 오래도록 관상했습니다.
다시금 힘과 용기를 얻은 스테파노는 거리로 나가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느님이심을
용감하게 선포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행전 7장 56절)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굳건한 하느님의 지성소, 자신만의 감실을 마련했던
스테파노였기에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 안에 충만히 현존하면서 활동하신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스테파노는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를 눈앞에 뵙는 듯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스테파노는 살기등등한 거짓증인들, 극악무도한 원수들 앞에서도 예수는 곧 그리스도임을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적대자들이 던지는 무수한 돌팔매에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스테파노는 조금도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외칩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행전 7장 59절)
스테파노는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청춘과 생명을 바쳐 교회의 첫새벽을 밝힌 등불이었습니다.
자신의 존재 전체를 봉헌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한 스테파노의 생애는 교회의 발전을 위한 마중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언제라도 죽을 각오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하루살이'
스테파노의 삶은 이 성탄 시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롤모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어려움’과 ‘인내’를 통하여 구세주와 협력하게 된다는 사실>
어제와 오늘, 우리는 ‘두 탄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제는 하느님의 지상 탄생일이었고, 오늘은 인간의 천상 탄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지상 탄생과 스테파노의 천상 탄생, 이 ‘두 탄생 이야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탄생이 ‘자기 비움’이라는 일종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곧 구세주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셨으며, 스테파노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신 분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있는 하느님의 지상 탄생 없이는 뒤에 있는 천상 탄생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스테파노는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살았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처럼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한 사랑의 순교’로 죽으셨듯이, 스테파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순교’로 죽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
(사도 6,59)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26)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하고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사도 7,60)
이처럼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서도 불타는 사랑으로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 죽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랑에 '하늘이 열리고'(사도 7,56), 하늘은 그를 받아들여 사랑의 순교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록 목숨 바쳐 순교할 기회는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 바로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는 믿고 있는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짜증내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 오히려 자신 안에 품은 하느님의 사랑을 퍼 올리면, 우리 안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2)
이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미움이나 배척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미움과 배척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미움과 박해를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려움’과 ‘인내’를 통하여, 구세주와 협력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려움’과 ‘인내’에는 고통을 변화시켜 하느님과의 만남이 되게 하는 묘한 이법이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이름 때문에~”
(마태 10,22)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25.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이사52,7-10 히브1,1-6 요한1,1-18
축, 주님 성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땅끝마다 우리 주의 구원을 모두가 우러 보았도다.”(시편98,3)
방금 부른 오늘 성탄 대축일 화답송 후렴이 참 흥겹습니다.
성탄시기 계속되는 매번 축일 계속될 화답송 후렴들 모두가 흥겹습니다.
이제 주님 성탄은 그리스도교 신자들만 아니라 온 인류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주님 성탄과 동시에 우리도 새롭게 태어났고, 존엄한 품위를 회복하여 다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궁극의 답도 온 세상의 빛이자 생명으로, 희망으로 탄생하신
그리스도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생하신 주님 계시기에 살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탄생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무슨 맛, 무슨 재미, 무슨 희망, 무슨 기쁨으로
무슨 힘으로 이 어둡고 험난한 광야인생을 살 수 있을런지요?
주님 성탄날이 되면 늘 생각나는 감동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어제 성탄 밤미사 루카복음을 소재로 아이들이 성탄절에 많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연극을 하던중
발생한 일입니다.
여관집 주인의 아들 역할을 한 아이는 약간 부족한 장애아였습니다.
연극중 문제는 바로 이때 발생했습니다.
젊은 마리아, 요셉 부부가 여관집을 들어섰을 때, 마리아는 만삭의 몹시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연극중 여관집 주인은 부부의 초라한 행색에 여관집 방이 없다고 매몰차게 거절했고,
쓸쓸히 떠나는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약간 부족한 주인집 아들 역할을 하던 아이가
난데 없이 부부를 향해 뛰쳐나가며 외쳤다는 것입니다.
“방 있어요! 떠나지 마세요. 여기 묵을 방이 있어요!”
부족하나 착하기 그지없는 이 아이는 연극 대본에도 없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외쳤고,
연극은 그 즉시 완전 실패로 끝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중들은 깊은 감동을 받음으로 역설적으로 연극은 실패가 아닌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일화입니다.
바로 이런 착한 아이들 같은 마음의 구유 안에 탄생하는 아기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어제 성탄 밤미사 루카복음(2,1-14)과 오늘 성탄 낮미사 요한복음(1,1-18)은 극명한 대조와 동시에
참 좋은 보완을 이룹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어제 밤미사중 루카복음과 같은 들판, 목자, 양떼, 구유등 제대앞 장면과 같은
구체적 사물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이 장면 배후의 깊은 의미를, 진리를 찾아냅니다.
그래서 앞서 루가복음의 이야기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라 부르고 요한복음과
제2독서 히브리서 말씀은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라 부릅니다.
둘을 합쳐야 완전한 성탄이야기가 됩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을 내다본 듯 이사야서의 말씀이
그대로 우리의 기쁨을 대변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 구나!”
우리가 선포해야 할 구원의 기쁜 소식은 뭡니까?
주님의 성탄입니다.
우리의 희망, 우리의 생명, 우리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절망의 세상에 희망으로, 죽음의 세상에 생명으로,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태어 나셨다는 복음입니다.
이를 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주님 성탄의 깊은 의미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자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탄생하신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요한복음 로고스 찬가 서두가 이를 입증합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밀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자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비스런 신원입니다.
평생 묵상해야 할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요한과 쌍벽을 이루는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말하는 히브리서의 고백도 참 멋지고 깊고 아름답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구유에서 탄생하신 가난하고 겸손한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둘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활동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명사라기 보다는 동사입니다. 만들고, 생산하고, 창조합니다.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러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셋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십니다.
사랑의 빛, 믿음의 빛, 희망의 빛, 평화의 빛등 모든 빛의 원천은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어제 빛의 신비, 어둠의 신비에 관한 강론을 기억할 것입니다.
둘은 하나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빛의 신비이자 어둠의 신비가 됩니다.
요한사가의 빛의 신비를 밝히는 내용이 참 깊고 아름답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바로 이런 무지가 인간의 불행이자 비극임을 깨닫습니다. 빛이라 다 빛이 아닙니다.
가짜 희망, 가짜 생명, 가짜 희망, 가짜 평화도 무수하듯 가짜 빛도 많습니다.
참빛은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될 때 분별의 지혜요 참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넷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육화의 신비는 복음의 절정이자 하느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니 바로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삶의 영원한 중심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탐욕도, 허무도, 무지도, 가난도 아닌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없이는 참사람이 되는 길도 없습니다.
이래서 공부중의 평생공부가 말씀공부입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다음 말씀에 요약 압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보고 배워 닮아야 할 분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바로 이런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되는 일이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전 삶의 목표가 됩니다.
참으로 말씀과 하나될수록 주님처럼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이자 인간의 신비이고 만물의 신비가 됩니다.
모든 신비의 열쇠는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탄생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은총과 진리로, 생명과 빛으로,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한 존엄한 품위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탄생하신 주님의 축복을 가득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12/26(목)[(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되새김 구절
1. 순교란 단순히 목숨을 바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순교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조재형 신부)
2.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행전 7장 56절)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굳건한 하느님의 지성소, 자신만의 감실을 마련했던
스테파노였기에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 안에 충만히 현존하면서 활동하신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스테파노는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를 눈앞에 뵙는 듯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스테파노는 살기등등한 거짓증인들, 극악무도한 원수들 앞에서도 예수는 곧 그리스도임을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적대자들이 던지는 무수한 돌팔매에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스테파노는 조금도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외칩니다.(양승국 신부)
3. 아기 예수님의 지상 탄생과 스테파노의 천상 탄생, 이 ‘두 탄생 이야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탄생이 ‘자기 비움’이라는 일종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곧 구세주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셨으며, 스테파노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신 분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이름 때문에~”
(마태 10,22)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바로 이런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되는 일이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전 삶의 목표가 됩니다.
참으로 말씀과 하나될수록 주님처럼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이자 인간의 신비이고 만물의 신비가 됩니다.
(이수철 신부)
12/26(목)[(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제 187-57일 기도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이름 때문에~”
(마태 10,22)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26일(목) 7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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