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2월 27일 금요일[(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대영광송>
본기도
저희에게 슬기를 주시어 생명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요한 1서의 시작입니다.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 주님은 임금이시다. 땅은 즐거워하고, 수많은 섬들도 기뻐하여라. 흰 구름 먹구름 그분을 둘러싸고, 정의와 공정은 그분 어좌의 바탕이라네. ◎
○ 주님 앞에서 산들이 밀초처럼 녹아내리네. 주님 앞에서 온 땅이 녹아내리네. 하늘은 그분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 만백성 그분 영광을 우러러보네. ◎
○ 의인에게는 빛이 내리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쏟아진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
복음 환호송
○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주님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나이다.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모임이 주님을 기리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거룩한 만찬에서 복된 요한 사도에게 계시하신 영원한 말씀의 신비를
저희가 이 성찬의 잔치에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복된 요한 사도가 선포한 분, 사람이 되신 말씀께서
언제나 저희 안에 머무르시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지난 12월 1일부터 4일까지 달라스 교구 시노드 회의가 있었습니다. 시노드는 3년 동안 준비했고, 이번 모임으로 폐막하였습니다. 3년 동안 4,000개가 넘는 안건이 논의 되었습니다. 준비위원회는 그중에서 307개의 안건을 선별하였습니다. 307개의 안건은 다시 17개의 주제로 나누었습니다. 교리교육, 학교와 교육, 성사, 혼인, 이민, 성소수자, 교구 행정, 본당 행정, 자선, 사회복지, 성사, 미사, 전례음악, 사제 생활, 사제 양성, 사제 교육, 환경과 같은 주제로 나누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307개의 안건 중에서 먼저 실시해야 할 50개를 선별하였습니다. 17개의 주제 중에서 먼저 실시해야 할 5개를 선별하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시노드의 투표 결과를 참조해서 2031년까지 교구의 사목 지침에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시노드 폐막 미사에서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았던 자매가 있었습니다. 자매는 시노드의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였습니다. 교구장님이 그녀를 소개하고, 꽃다발을 선물했고, 모든 준비위원이 기립하여 박수쳤습니다. 그녀는 8살 때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파티를 준비했고, 이웃들을 초대해서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묵시록을 통해서 박해와 고난을 이겨내고,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다른 차원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이 사실과 현장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면 요한복음은 표징과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도 새로운 관점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로고스 찬가’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땅을 기어다니는 것이 숙명입니다. 그러나 애벌레가 죽은 것처럼 보이는 ‘고치’의 과정을 거치면 하얀 날개가 날린 나비가 됩니다. 이제 나비는 더 이상 땅 위를 기어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나비는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 찬가를 읽으면 하늘을 힘차게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웅장한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전승은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성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며, 교회의 귀중한 보물인 요한복음, 요한 서간, 요한 묵시록의 저자라고 합니다. 복음에서 요한은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께서 늘 가까이 데리고 다녔던 제자 중에 한 분이셨음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셨을 때도 요한 사도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죽은 소녀를 살려 주셨을 때도 요한 사도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을 때도 요한 사도는 함께 있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세상을 떠나실 때도 요한은 예수님 곁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께는 요한 사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 사랑을 받은 만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사도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요한 사도가 있어서 십자가 위에서도 눈을 감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한 사도가 있어서 행복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또한 요한 사도처럼 주님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때문에 주님께서 행복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요한 사도의 겸손함을 보았습니다. 그토록 사랑을 받았던 요한 사도는 베드로 사도보다 앞서서 빈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주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 사도는 그 중요한 일은 베드로 사도에게 양보하였습니다.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많은 일이 다른 이들이 해도 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것 때문에 실수하고 잘못하는 때도 있겠지만 자리를 포기하고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실수와 잘못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여준 요한 사도의 겸손함을 배운다면 우리는 주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을 지내면서 요한복음의 세계로 잠시 들어가면 어떨까요? 저는 요한복음 13장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 요한 20,2-8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기쁨을 주고 한시름 잊게 하는...
가끔씩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명대사를 접하면 대본 작가님들의 민중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에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 같은 서민들 하루하루의 삶은 위에 앉아있는 분들이 상상못할 정도로 힘겹답니다.
그래서 감동적인 한 편의 연극이나 드라마를 보며 박수를 치고, 대리 만족합니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백성들에게 잠시나마 기쁨을 주고 한시름 잊게 하는 것이
예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니 저희 같은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사명도 막중한 것 같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영혼을 돌보는 존재로서 전례나 성무를 더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잘 연습된 아름다운 성가로 교우들이 마음을 활짝 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상처입은 마음들을 부드럽게 위로하고 고통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갈 에너지를 제공하는 멋진 강론도
필요하겠습니다.
한명 한명 교우들과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환대하고 경청해야 하겠습니다.
더 많은 사랑을 관대히 나눠야 하겠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요한 복음 사가가 그랬습니다.
사도 성 요한 복음 사가는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주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또한 그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타이틀을 하나 붙인다면 사랑의 사도입니다.
나이든 그는 만년에 말하기 조차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틈만 나면 외친 단어가 사랑이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넘치는 사랑을 듬뿍듬뿍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 어떤 시련과 고통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사랑 체험을 바탕으로 죽음조차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으며, 그 사랑의 체험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건장한 남성이었던 그가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이런 표현까지 썼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이 세상 안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사랑은 언제나 한계가 있고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연인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영원할 것 같던 불같은 사랑도 세월과 더불어 식어갑니다.
마치 산같이 든든했던 아버지의 사랑도 초라하고 구차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 있으니 바로 주님 사랑입니다.
결국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랑, 최종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랑은 주님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한계가 없는 사랑, 마지막 날까지 변하지 않을 사랑, 오직 주님 사랑 뿐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구세주의 ‘강생의 표시’와 ‘부활의 표시’>
우리는 성탄 8부 안에서 요한 사도의 축일을 맞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구약성경의 ‘새로운 벤야민’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곧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벤야민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이'(신명 33,12)였듯이, 열두 제자 가운데 요한도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요한 13,23; 19,26; 21,7; 21,20)라 칭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베드로보다 빨리 무덤이 도착하였지만, 먼저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베드로보다 더 젊은 요한이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더 많이 사랑하는 이가 더 먼저 도착한다’는, 또 ‘더 많이 사랑하는 이가 더 깊이 깨닫는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기만 하지만, 요한은 들어가 '보고 믿었다'(요한 20,8)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실 ‘빈 무덤’과 ‘구유’는 예수님께서 몸을 눕혔던 ‘같은 한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작’과 ‘마침’, 곧 오실 때와 가실 때에 머무른 땅의 자리입니다.
그분은 ‘구유’로 우리의 출생을 성화시키시고, ‘빈 무덤’으로 우리의 죽음을 성화시키십니다.
그래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의 탄생이 당신 어머니의 동정성이라는 봉인을 뜯지 않으셨듯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때도 무덤의 봉인을 부서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막은 돌을 통과해서 지나가신 것과 같습니다.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주간 첫날 아침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예수님의 무덤은 봉인된 상태였습니다.
그 때문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마태 28,2)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무덤의 봉인을 부서뜨리지 않고 통과하셨습니다.
곧 '당신 어머니의 동정성이라는 봉인을 뜯지 않으셨듯이, 무덤의 봉인을 부서뜨리지 않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아기의 몸을 감싸고 있던 ‘포대기’가 구세주 ‘탄생의 표시’가 되듯이, 예수님의 시신을 감싸고 있던 ‘아마포 수의’와 머리를 쌌던 ‘수건’은 ‘부활의 표시’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아마포’는 놓여있었고, ‘수건’은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이 두 개의 수동태는 ‘하느님의 개입’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구세주의 ‘강생의 표시’와 ‘부활의 표시’를 동시에 봅니다.
이제 우리도 베드로와 요한처럼, ‘무덤’으로 ‘들어가고’, ‘마구간’으로 ‘들어가서’ 보아야 할 일입니다.
자세를 낮추어 더러운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들어가’야 할 일입니다.
‘무덤의 돌문’을 열 듯 우리 마음의 빗장을 열고서, 울고 있고 지친 이들이 있는 곳, 춥고 베고픈 이들이 있는 곳, ‘세상 속의 마구간’과 자신의 악취에 찌든 ‘우리 자신의 마음 속 마구간’으로 들어가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을 가져다 준 ‘구유’의 아기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빈 무덤’을 동시에 봅니다.
우리 안에 더없는 사랑으로 들어오시는 생명과 영원한 생명을 봅니다.
하오니, 주님!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듯, 목동들이 구유로 달려가듯, 고귀한 경쟁에서 질세라 빨리 달리게 하소서!
무덤을 들여다보지만 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비워져 나오게 하소서!
비어진 맑은 눈으로 보게 하시고, 본 바를 믿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요한 20,8)
주님!
제 안에 드소서.
제 안에 마련해 두신 텅 빈 자리에 드소서.
제 안에 숨겨진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소서.
죽음의 무덤을 비우시고 당신 생명과 사랑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26.목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사도6,8-10;7,54-59 마태10.17-22
주님의 전사
“영적승리의 삶과 죽음(순교)”
오늘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입니다.
어제의 주님 성탄의 탄일에 이어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의 천상 탄일입니다.
거룩하게 살았던 이들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천상에서 주님과 함께 새 생명의 시작이라는 천상 탄일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에 의해 지명됐던 로마의 일곱부제중 한분이었던 성 스테파노입니다.
성 스테파노의 활약상은 사도행전 6장과 7장에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서 보다시피 자기를 순교에 이르게 한
박해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제자답게 예수님을 닮은 순교의 죽음이요 임종어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삶은 영적전쟁의 여정입니다.
역시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여정이요 누구나 주님의 전사라는 신원을 지닙니다.
죽는 그날까지 싸워야 하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수도생활 초기부터 42년동안 한결같았던 제 소신이자 확신입니다.
지금도 아침 산책때 마다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부르며 영적전의를 새로이 합니다.
일부 가사를 제 처지에 맞게 바꾸어 부릅니다.
“나 태어나 수도원에 수도자되어,
꽃피고 눈내리길 어언 42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수도원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청춘,
검은옷에 실려간 꽃다운 내청춘, 꽃다운 내청춘”
늘 불러도 늘 새로운 노래입니다.
늦깍기 34세에 시작한 수도생활이 42년이 흘러 지금은 76세이나 제대가 없는,
죽어야 제대인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끝까지 영적전투에 충실하다가 전사함이 소원이겠습니다.
사고사나 병사, 객사가 아닌 전사戰死해야 전사戰士라는 제 소신은 여전합니다.
공부하다 죽던지 기도하다 죽던지 일하다 죽던지 셋중 하나인 순교적 죽음의 전사였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전사의 모범이, 영적전투의 모범이 성 스테파노입니다.
그대로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예수님만 아니라 사도들과 교회의 무수한 성인들이 영적전투의 빛나는 모범들이 되었고
오늘도 면면히 신자들을 통해 계승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은 영적전투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는데 오늘날도 양상만 달리 할뿐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적전투의 현장입니다.
“박해를 각오하라”는 제하의 오늘 복음중 각별한 대목을 나눕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바로 평생 영적전투에 성령이 최고의 조력자가 됨을 깨닫습니다.
성령으로 무장한 주님의 전사를 이길 자는 없습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불후의 명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끝까지 견디어내는, 버티어내는 인내가 얼마나 영적승리의 삶과 죽음의 순교에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주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끝까지 견디어 인내하는 자가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영적승리자가 됩니다.
베네딕도 규칙 역시 수도공동생활에서 이런 인내를 강조합니다.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상호존경과 인내, 순종으로 이뤄진 얼마나 아름다운 주님의 전사들인 수도자들의 공동체 삶인지요!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영적전투인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성 스테파노를 보십시오, 악을 악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선으로 대하며 싸웁니다.
성령과 지혜로 무장하여 싸우는,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성 스테파노를 그 누구도 당해내지 못합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자 온갖 중상모략과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집중 공격합니다.
늘 지상에서는 영적전투의 삶이지만 성 스테파노의 영적시선은 늘 천상의 주님을 향하고 있음을
다음 대목이 입증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신 것이 보입니다.”
천상의 예수님과 하느님이 성령 안에서 늘 성 스테파노의 보이지 않는 배경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어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 스테파노의 유명한 임종어의 기도요 그대로 예수님의 임종어를 닮았습니다.
영적승리의 순교의 죽음을 의미하는 임종어입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기도한 후 무릎을 꿇고 큰 소리를 또 기도합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대로 주님이자 스승 예수님을 닮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 버리는 용서를 위한 기도입니다.
바로 놀랍게도 순교의 죽음 그 자리에는 미래의 바오로 사도가 될 사울이 그 현장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놀랍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이라는 순교자 성 테르툴리아노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유명한 말이 생각납니다.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우리 믿는 이들은
“그렇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별들처럼 무수한 성인들을 보유한 가톨릭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의 과거가 현재를 구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 죽은 순교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어 오늘도 앞으로도 역사가 계속되는 한
부단히 산자들을 구하여 주님의 전사들이 되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빛나는 가톨릭교회 전통의 역사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를 주님의 성령과 지혜로 무장한 주님의 전사가,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 희망의 전사가 되어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과 죽음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12/27(금)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보여준 요한 사도의 겸손함을 배운다면 우리는 주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을 지내면서 요한복음의 세계로 잠시 들어가면 어떨까요? 저는 요한복음 13장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주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 있으니 바로 주님 사랑입니다.
결국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랑, 최종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랑은 주님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한계가 없는 사랑, 마지막 날까지 변하지 않을 사랑, 오직 주님 사랑 뿐입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요한 20,8)
주님!
제 안에 드소서.
제 안에 마련해 두신 텅 빈 자리에 드소서.
제 안에 숨겨진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소서.
죽음의 무덤을 비우시고 당신 생명과 사랑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바로 평생 영적전투에 성령이 최고의 조력자가 됨을 깨닫습니다.
성령으로 무장한 주님의 전사를 이길 자는 없습니다.(이수철 신부)
12/27(금)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 188-58일 기도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오늘의 말·샘 기도>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요한 20,8)
주님!
제 안에 드소서.
제 안에 마련해 두신 텅 빈 자리에 드소서.
제 안에 숨겨진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소서.
죽음의 무덤을 비우시고 당신 생명과 사랑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27일(금) 6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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