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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2월 30일 월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제6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2월 30일 월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제6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지혜 18,14-15 참조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주님,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내려왔나이다.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셨으니
옛 종살이를 하며 죄악의 멍에에 짓눌려 신음하는 저희를 구원하여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12-17
12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13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4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6(95),7-8ㄱ.8ㄴ-9.10(◎ 11ㄱ)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 주님께 드려라, 뭇 민족의 가문들아. 주님께 드려라,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을. ◎
○ 제물 들고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온 세상아, 그분 앞에서 무서워 떨어라. ◎
○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네. 민족들아, 어서 와 주님을 경배하여라. 오늘 큰 빛이 땅 위에 내린다.
◎ 알렐루야.

복음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36-40
그때에 36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저희가 경건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천상 성사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성탄 감사송 1 :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주님 성탄 감사송 2 : 강생으로 온 세상이 새로워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성탄을 경축하는 오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시고
영원하신 분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셨나이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만물을 당신 안에 일으키시어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버림받은 인류를 하늘 나라로 다시 불러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16 참조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오셨으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저희가 모신 성체에 더욱 맞갖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예언자 한나.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지난봄에 뉴욕에서 달라스로 왔습니다. 오니까, 교우들이 창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전임 신부님이 창고 공사에 필요한 비용을 후원하고 떠나셨습니다. 매주 토요일 형제님들이 창고 공사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기초를 놓았고, 바닥, , 지붕, 창문, , 전기 공사를 했습니다. 창고가 완성된 다음에는 청년들이 멋진 벽화로 마무리했습니다. 2월에 시작한 창고 공사는 7월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도 매주 토요일 현장에서 형제님들과 함께했습니다. 전임 신부님이 선물한 것은 창고가 아니라, 창고 공사를 통해서 형제님들과 청년들을 선물했습니다. 지난 8일에 사도회와 이냐시오회의 송년 모임이 있었습니다. 사도회는 40대 형제님 모임이고, 이냐시오회는 50대 형제님 모임입니다. 모임 자리가 하나도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미 창고 공사를 통해서 얼굴과 이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형제님들이 제게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사람들 이름을 잘 외우세요?’ 제가 사람들 이름을 잘 외우는 이유는 가능하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자녀와 아버지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는 글을 쓰는 이유 3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겁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알았다는 겁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악을 이겼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탄 팔일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은 친절하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성탄을 지내면서 카드를 보내는 것도, 구유 경배를 하는 것도, 선물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성탄을 지내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묵상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 독서는 신앙인들이 삶을 살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올해도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363일을 욕심과 욕망 때문에 채우려고만 했어도, 오늘과 내일 마음을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산다면, 베푸는 삶을 산다면, 기도의 삶을 산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한 해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헤로데가 살았던 궁전에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율법과 규율에 얽매여서 살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한나는 예수님을 보았고, 축복의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복음루가 2,36-40

 

어둠이 깊다면, 그것은 새벽이 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아기 예수님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다들 세상사나 자기 생각에 깊이 빠져 그분을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두 사람, 육화 강생하신 하느님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품에 안아보는 특전을 누린

예언자들이 있었으니, 시메온과 한나였습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세상 의롭고 독실했습니다.

언제나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성령께서 항상 그들 위에 머물러계셨으며, 성령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여 예언자 한나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루카 2, 36-37)

 

보십시오. 한나 예언자가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지복직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짧은 문장 안에 정확히 들어 있습니다.

이른 나이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큰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항상 하느님만 바라보며

신앙생활에 충실했습니다.

 

요즘 우리 가톨릭교회를 지탱하고 있는 7-80대 자매님들처럼 단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에 참석하며,

교회 일에 협조적이었습니다. 항상 묵주를 손에 놓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는데, 신명기에 따르면 아세르 지파는 모세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받은

모범적인 지파였습니다.

“아들 가운데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아세르. 그는 형제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가 되어 발을 기름에 담그리라.

너의 빗장은 쇠와 구리 너는 한평생 평안하리라.”(신명 33, 24-25)

 

한나의 좋았던 시절 7년과 현재 나이 84세에 대한 주석가들의 해설이 흥미롭습니다.

한나가 남편과 함께 산 7년 세월은 주님께서 육신으로 사셨던 시간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84세에 대해서는, 일곱에 열둘을 곱하면 84가 됩니다. 일곱은 또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전 과정을 나타낸답니다. 열둘은 열두 사도의 완전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한나 예언자가 84세란 표현은 그녀가 삶의 전 과정을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충실히 살아온 신앙인이었음을 강조합니다.

결국 한나는 갖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84년 동안, 아니 평생토록 충만한 은총 속에

주님을 섬겨온 신앙인의 모델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한나 예언자처럼 불행한 여인이 다시 또 없었습니다.

결혼 7년 만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참으로 많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가장 불행한 인생의 대표 격인 ‘청상과부’로 60년 이상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삶을 보십시오.

그 오랜 세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한평생에 걸친 기도의 결과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큰 상급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바로 ‘지복직관’

하느님의 얼굴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뵙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의 품에 안겨 계신 만왕의 왕,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품에 안아 본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기,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희망도 없던

좌절의 시대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유다 백성들에게 보내셨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노력은 기다리는 일이군요. 비록 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나날이라 할지라도 그저 기다리는 일입니다.

꼬이고 꼬인 인생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풀 방법이 없어 보이는 실타래를 손에 들고 있다 할지라도

기다릴 일입니다.

 

어둠이 깊다면, 그것은 어쩌면 새벽이 멀지 않았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고통의 정도가 극심하다면 그것은 어쩌면 고통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정말 너무 너무 지루하다면 기다림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기다리다보면 선하신 하느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우리 앞에 좋은 날을 펼쳐놓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내에 백배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한나 예언자에게 하신 그대로 말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태어난 지 40일 만에 아기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헌됩니다. 

이 봉헌은 예언자 시메온에 의해 거행되는데, 오늘 복음은 그때 성전에 있던 여 예언자 한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봉헌은 구약의 사무엘의 봉헌을 떠올려줍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남편 엘카나와 함께 실로의 성소에서 노사제 엘리를 통해, 아기를 주님께 봉헌했습니다(1사무 1,24-28). 그때에 엘리가 한나를 축복했듯이(1사무 2,20)했듯이,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 시메온도 마리아를 축복합니다(루카 2,34). 

또 사무엘의 경우, 성소의 문에서 봉사하는 여자들이 언급된 것처럼(1사무 2,22), 예수님의 경우에서도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긴'(루카 2,37) 여 예언자 ‘한나’가 등장합니다.

 

‘한나’는 7년 동안을 남편과 함께 살고, 84세가 되도록 과부로 살았습니다.

마치 밤낮으로 하느님을 예배하고 지냈던 과부 유딧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이 봉헌될 때, 예언자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루카 2,39).

그녀는 ‘은혜’, ‘호의’라는 그의 이름의 의미대로, 하느님의 은혜와 호의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마치 시메온이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루카 2,25)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녀는 '예루살렘의 속량'(루카 2,38)을 기다려 온 까닭입니다. 

‘한나’는 시메온처럼 아기가 ‘예루살렘을 속량’할 메시아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사가는 그 감사 찬양의 노래를 전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를 ‘한나’의 자리로 불러들이는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기 예수님께 직접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지어 부르도록 말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대체 참된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묻게 합니다. 

코헬렛은 말합니다. 

“지혜의 시작은 하느님을 경외함에 있다.”

(3,14)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

(9,10)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대체 나는 ‘존경받기 위해 공부하는가? 존경하기 위해 공부하는가?’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영광을 드리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주님께 찬미의 노래를 불러드려야 할 일입니다. 

‘한나’처럼 밤낮으로 기도하고 성전에 머물며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루카 2,37)

 

주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과부의 마음속 말을 들으시듯, 미처 말이 되지 않는 제 마음 헤아려 들어 주소서.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당신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언제나 당신 면전에서 기도하게 하소서.

밤낮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에 감싸여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29.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성화주간)

        집회3,2-6.12-14 마태2,13-15.19-23

 

                              “최고의 예술작품, 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

                                                <실현시켜야 할 꿈>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

해마다 성가정 축일 미사때 부르는 화답송 후렴은 늘 들어도 흥겹습니다.

이런 성가정교회공동체인 주님의 집에 사는 자들은 참 행복합니다.

 

“희망과 친절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어제 BBC방송을 통한 교황님의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의미와 희망을 준다!”

교황님이 제47차 유럽 테제 젊은이들 모임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꿈은 마냥 기다려야 할 신기루가 아니라, 나의 실천으로 이루어질 현실이다.”

다산 정약용이 주는 말씀입니다. 실현시켜야할 꿈이 바로 성가정 교회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주일은 늘 연말 성탄축제중 맞이하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오늘부터 한주간은 성탄축제와 동시에 겹쳐지는 ‘가정성화주간’이기도 합니다.

성가정 교회 공동체는 가정에서 사회로 국가로 세계로 계속 확장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궁극에는 온 인류가 하느님의 성가정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며 하느님께서도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의 시야는 가정을 넘어 온 세계로 향해야 함을 봅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둔 모두가 한가족, 한식구의 성가정 인류 교회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개인이든 교회 공동체이든 하느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여정”중에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바라는 성가정 교회 공동체의 원형이 바로 오늘 축일은 지내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입니다.

어떻게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겠는지요?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입니다.

함께 있다하여 공동체가 아닙니다.

같은 피의 혈연만의 공동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명실공히 작든 크든 하느님 중심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여야 합니다.

 

바로 그 원형이 오늘 축일을 지내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해마다 파스카 축제때마다 예루살렘에 갔던 참 하느님 중심에 충실했던 성가정 공동체였습니다.

참으로 다양성의 평화공존의 관대한 공동체도 하느님 중심에서만 가능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의 부모가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아냈을 때 한 말씀이 얼마나 하느님 중심에 투철한 소년

예수님의 삶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마리아 성모님의 마음도 그대로 하느님의 깊고 넓은 마음을 닮았습니다.

거대한 침묵의 산 배경처럼 느껴지는 요셉 역시 하느님 아버지를 닮은 분임을 깨닫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할 즈음엔 이미 타계한 요셉 양부같으나

그의 하느님 중심의 충실한 삶은 남은 예수, 마리아 성가정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봅니다.

자비로운 하느님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요셉 양부같습니다.

이런 성가정교회공동체에서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랑의 총애도 더하여 갔음을 봅니다.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는 그대로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말씀을 특히 강조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그리스도의 한몸 성가정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냥 저절로 이뤄지는 하느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성가정 공동체가 아니라

부단히 치열한 사랑의 수행을 통해, 즉 기도와 공부, 찬미와 감사, 평화의 훈련을 통해 이뤄지는

성가정 교회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완성을 향해 가는 순례 여정중 공동체입니다.

완성된 성가정 공동체는 없습니다.

시련없는 온실속의 평탄한 공동체도 아닙니다.

바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가 그러했습니다.

얼마나 산전수전 다 겪어낸 수난의 공동체였는지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내면 깊이에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감사와 평화, 희망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의 소년시절도 부모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에 앞서 이집트 피난시절의 고통과 시련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한결같이 희망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며 각자의 책임에 한결같이 충실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이 사랑입니다.

평생 순례여정과 함께가는 사랑공부에 사랑실천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충고가 참 적절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서로 더불어의 순례여정입니다.

더불어의 구원이지 혼자서는 구원도 없습니다.

 

여기서 언제나 빛나는 모범은 주 예수님입니다.

다음 평생 공부할 과제가 부여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1.동정과 2.호의와 3.겸손과 4.온유와 5.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이런 사랑은 주님을 그대로 닮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공부만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인생인데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지요!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이런 사랑을 입으십시오.

역시 부단한 훈련에 습관화해야 하는 동정, 호의, 겸손, 온유, 인내, 용서, 사랑의 수행이자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결코 값싼 성가정 교회 공동체는 없습니다.

우리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가는 은총의 선물이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성가정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부단한 노력의 합작품이자

최고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각자의 자리와 몫, 책임에 충실한 공동체입니다.

서로의 영역, 차이, 거리를 존중하는 예의와 존중, 섬김과 배려의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적절한 충고를 그대로 나눕니다.

비단 가정공동체에서만 아니라 순종과 사랑, 관대한 마음은 분별의 지혜이자 가정밖 어디서나

필수적 덕목임을 깨닫습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가정교육의 전통이 단절된 무례와 불손, 무질서와 혼란의 적자생존,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야만의 시대에

성가정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든 덕목들을 전통에 자리에 대체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작금의 난세입니다.

집회서의 말씀 역시 성가정 교회 공동체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이런 예의와 배려의 사랑은 언제어디서나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것과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 기쁨을 얻고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그대로 모두를 보고 배우는 젊은 자녀들입니다.

부모에게 극진히 잘한이들 치고 자녀들이 잘못되는 적,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날로 고령화되는 현세에 적절한 조언입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준다.”

 

죄에 자책할 것이 아니라 죄를 상쇄할 배려와 섬김의 실천적 사랑에 더욱 박차를 가함이

구원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성가정 축일! 참 많은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 몸담아 살아가고 있는 성가정 공동체를 위한 사랑의 수행에

결코 지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멘.


12/30(월) [(백)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되새김 구절

 

1. 제가 사람들 이름을 잘 외우는 이유는 가능하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조재형 신부)

 

2. 어둠이 깊다면, 그것은 어쩌면 새벽이 멀지 않았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고통의 정도가 극심하다면 그것은 어쩌면 고통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정말 너무 너무 지루하다면 기다림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기다리다보면 선하신 하느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우리 앞에 좋은 날을 펼쳐놓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내에 백배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한나 예언자에게 하신 그대로 말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루카 2,37)

 

주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과부의 마음속 말을 들으시듯, 미처 말이 되지 않는 제 마음 헤아려 들어 주소서.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당신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언제나 당신 면전에서 기도하게 하소서.

밤낮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에 감싸여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1.동정과 2.호의와 3.겸손과 4.온유와 5.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이런 사랑은 주님을 그대로 닮은 아가페 사랑입니다.(이수철 신부)

 

12/30(월) [(백) 성탄 팔일 축제 제6일],제 191-61일 기도

 

복음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루카 2,37)

 

주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과부의 마음속 말을 들으시듯, 미처 말이 되지 않는 제 마음 헤아려 들어 주소서.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당신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언제나 당신 면전에서 기도하게 하소서.

밤낮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에 감싸여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30일(월) 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