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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2월 31일 화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제7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2월 31일 화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제7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이사 9,5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라 불리리라.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탄생으로 참된 믿음을 일으키시고 완성하셨으니
저희를 인류 구원의 샘이신 성자의 지체가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18-21
18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6(95),1-2.11-12.13(◎ 11ㄱ)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
○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14.12 참조
◎ 알렐루야.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그분은 당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평화를 주셨으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온 마음으로 이 신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성탄 감사송 1 :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주님 성탄 감사송 2 : 강생으로 온 세상이 새로워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성탄을 경축하는 오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시고
영원하신 분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셨나이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만물을 당신 안에 일으키시어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버림받은 인류를 하늘 나라로 다시 불러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1요한 4,9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을 온갖 은혜로 다스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덧없는 현세에서도 위안을 받고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더욱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손님들이 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늦게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운동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9명이라서 한 명이 남았습니다. 제가 양보하려고 했는데 손님을 초대해 놓고 빠질 수 없었습니다. 한 분이 양보하겠다고 해서 8명이 운동하려고 출발했습니다. 날씨도 제법 쌀쌀했지만 즐겁게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본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르신 한 분이 위독하신데 병자성사를 청한다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가겠다고 했고, 양보하기로 한 분에게 저 대신 운동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날씨도 춥고, 피곤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제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어르신도, 어르신을 모시는 따님도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저는 이번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저를 보살펴 주시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잘 거절하지 못하는 저의 성격을 아시는지, 하느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제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곤 합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신앙인들이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독서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적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적은 칠죄종이라고 합니다. ‘교만, 인색, 음욕, 분노, 탐욕, 질투, 나태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많이 배운 사람들을 쓰러뜨리기도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영적인 스승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끊임없이 공격하였습니다. 복음은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입니다.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름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슬기, 통달, 의견, 지식, 굳셈, 효경, 두려워함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줍니다. 성령의 은사는 죄지은 이들이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용기를 줍니다. 성령의 은사는 겸손한 이들이 열매를 맺도록 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함께하는 2024년의 마지막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님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말씀이셨고, 말씀은 하느님이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셨던 분, 말씀이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칫 예수님에 대한 기록으로 머물 뻔했던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영적인 세계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심오한 철학적인 주제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 8장에서 우리는 지혜로운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과 15장에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는 목자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우리를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 주는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사도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요한 사도가 있어서 십자가 위에서도 눈을 감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들 또한 요한 사도처럼 주님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 때문에 주님께서 행복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복음요한 1,1-18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충만하신 하느님 앞에 우리는 얼마나 옹색한 존재인지요?

 

우리 모두 또다시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니 즉시 떠오르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이 정도 선에서 올해가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설상가상이라고 제주 항공 여객기 참사가

우리 모두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는 탄식이 절로 입에서 터져 나옵니다.

 

순식간에 수많은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초대형 참사를 바라보며 너무나 안타깝고 안쓰러워 할 말을 잊습니다.

그 많은 꿈과 희망, 애틋한 사연들, 못다한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이번 참사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 한분 한분을 당신의 크고 따뜻한 품에

꼭 안아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저리 황망히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 한분 한분을

따뜻이 어루만져주시기를 청합니다.

 

대형 참사를 접할 때마다 온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난다긴다할지라도,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 실감합니다.

우리네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것, 그래서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매일 매일을 마지막으로 여기며,

충만한 하루를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갖은 우여곡절 속에 살아온 한해였지만, 돌아보니 지나온 한해, 비록 실패와 상처투성이,

죄와 십자가의 연속인 우리네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좋으신 주님으로부터

은총에 은총을 폭포수처럼 받았습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16)

 

‘충만(充滿)함’이란 표현이 제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본성 중에 우세한 측면이 충만함입니다.

충만함이란? 풍성함, 넉넉함, 완전함, 너그러움...참 다양한 함의(含意)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옹색한 존재인지요?

얼마나 빈약하고 비천한지요?

얼마나 약하고 불완전한지요?

이런 우리의 불완전함을 메꿔주기 위해서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언제나 부족해서 허덕이는 우리이기에 너무나도 당연히, 완전하고 충만하신 그분께로 나아가야하겠습니다.

 

충만하신 그분께로 나아가서 풍요로우신 그분으로부터 에너지를 충전시켜야겠습니다.

백만 볼트 에너지로 가득 충전시킨 후에, 세상과 가난한 이웃들을 향해 나아가야겠습니다.

 

가끔씩 완전 방전된 밧데리 상태의 제 영혼을 확인하곤 합니다.

내 한 몸 서 있기에도 벅찬 순간에는 영적 생활이고 이웃사랑의 실천이고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틈만 나면 충만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방전된 우리의 플러그를 초강력 에너지원이신 하느님이란 전원에 꼽아야겠습니다.

그것이 기도 생활이요 영적 생활입니다.

 

우리가 매일 스마트폰 충전 상태를 확인하듯이, 매일 우리의 영적 충전 상태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충전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매일 스마트폰 바라보듯이, 매일 영적 충전을 위해 그분께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충만 그 자체이신 하느님, 부유하고 풍성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충만함을 빈약한 우리를 위해 무모할 정도로 헤프게 사용하시는,

아니 남김없이 모두 써 버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복음요한 1,1-18

 

<우리가 '하느님이 되는' 길>

 

오늘은 성탄 8부 내 7일이며, 2024년을 마감하는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다보며, 오늘을 가져다 준 지난날들에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보낼 수 없었던 한해를 보냈습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는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을, 복음을 통해서는 ‘한 처음의 날’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한 처음’의 놀라운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 1,14)

여기서 '사람'은 직역하면 ‘살을 취하였다’는 것으로 약함 안으로 들어온 것을 말하고, '사셨다'는 것은 ‘천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 거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느님이 오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시어 오셨고, 사람이 되시어 오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사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믿음과 ‘그분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고 함께 거주하고 사신다’는 믿음은 초기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이자 핵심 교리가 되었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가 인용한 초대교회의 찬미가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필리 2,7)

이는 단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하느님 되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하신 일인 것입니다. 

 

이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엄청난 사랑’을 말해줍니다. 

교부들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까닭은 인간이 하느님 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변모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변모’와 ‘인간이 하느님이 되는 변모’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자신을 ‘비우는’ 일이 있고, 그와 ‘같아지는’ 일이 있고, ‘하나 되는’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본받는’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심도 깊은 신비적 차원의 일이 벌어집니다.

 

곧 베드로가 표현한 대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2,4) 되는 일이 있고, 바오로가 표현한 대로 “그분의 형상을 지니고”(1코린 15,49), “그리스도를 입고”(로마 13,14; 갈라 3,27; 콜로 3,10), “같은 모습이 되는”(로마 8,29)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타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고 내어주어, 그로 하여금 당신께서 누리는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함께 누리게 해 주는 것입니다. 

곧 ‘사랑’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타자가 자신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그에게 내어주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그의 자리로 들어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어주는 것은 곧 들어가는 일이 됩니다.

곧 자신을 내어주고, 나아가 상대에게 들어가기에, 동시에 자신의 그 빈자리에 그를 받아들이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상대를 취하고 상대를 받아들여 상대와 같아지고, 비로소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 전통에서 전해져 오는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직 같아지는 것만이 구원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비우는’ 행위의 종착지는 ‘같아지는’ 것이요, ‘하나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것은 또 다시 당신에게로의 변형을 가져옵니다. 

곧 이러한 변화는 변화 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 다른 차원의 변화로 끌고 갑니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같아짐’을 통해 우리와 자리를 바꾸는 지점까지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곧 인간을 하느님이 되게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본질 자체로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은총으로 하느님이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이를 '놀라운 교환'(admirabile commercium)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이 되는' 길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바로 그 길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이와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곧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그저 자기 자신의 ‘아무 것도 아님’ 안에 머물면, 하느님께서 그 안에 들어와 ‘전부’가 되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 1,4)

 

주님!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제 발길이 당신을 향하여 있는지, 제 마음에는 당신의 평화가 들어와 있는지를 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제 안에 생명의 빛을 불어넣으셨으니,

이제는 죽음의 어둠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제가 당신 생명으로 새로워지고,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온 세상이 생명의 빛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30.월요일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1요한2,12-17 루카2,36-40

                                                                   마음의 창, 영혼의 창

                                                           “하느님 중심의 내적자유의 삶”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제주항공 참사...탑승객 181명 중 179명 사망, 세밑 한파 속에 모처럼 따뜻한 남국으로 여행했던 사람들,

타이 방콕발 제주항공 비행기의 무안공항에 착륙하던중 충돌, 폭발로 일어난 대 참사입니다.

179개 별이, 세상이, 우주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분들을 위해 오늘 아침 연미사봉헌합니다.

부활축제내 어제 29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상상할 수 없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새벽 강론 쓰는 시간도 참담하고 무거운 마음에 주님의 자비를 청할 뿐입니다. 

 

조속히 사고가 수습된다해도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의 유가족의 슬픔과 상처는 얼마나 깊을지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합니다.

참으로 한치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참 허약한, 두렵고 불안한 삶입니다.

하루하루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것이 제일이겠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수록 초연한 무욕의 삶에 내적자유와 부요하고 행복한 삶이겠습니다. 

 

불가의 사고四苦와 사성제四聖諦의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진리에 공감합니다.

생노병사, 인생사고의 삶 자체가 고통이요, 이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집멸도의 진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집착의 탐욕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기적 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삶만이 탐욕의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고해가 아닌 인생축제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하느님 중심의 날, 성탄축제입니다.

예전에 써놨던 “좋은 창 지닌 방 하나만 있어도”란 시가 생각납니다.

 

“방에 있는 

 TV, 그림, 사진...

 대부분이 군더더기 

 

 쓸 데 없는 짐

 이보다 임 만드신 창문밖 하늘 풍경

 살아 있는 그림

 

 늘 봐도 새롭고 좋네

 좋은 창 지닌 방 하나만 있어도

 부러울 것 없겠네”<2005.12. >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세상 떠난 그리운 셋째 형님입니다.

이 시를 강론에 올렸던 다음날 셋째 형댁에 들렸을 때 형님 방의 활짝 열린 커텐에

창이 참 맑고 깨끗하여 물었더니 계면쩍게 웃으며 어제 제 강론에서 이 시를 읽었다하는 것입니다. 

 

예전 피정집에 안내할 때 방에 안내 받으면 피정자들이 본능적으로 확인하며 만족하며 반색하는 것이

하늘 향해 활짝 열린 창에 밝고 따뜻한 방입니다.

마음의 창도, 마음의 방도 이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정말 하늘 향해 활짝 열린 창을 지닌 밝고 따뜻한 방이라면 하루종일 방에 있어도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방의 창이 상징하는 바, 바로 하느님 향한 마음의 창, 영혼의 창입니다.

하느님 향해 활짝 열린 영혼의 창, 마음의 창을 지닌 이들이 바로 탐욕의 집착에서 벗어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이들입니다.

무소유의 삶에도 내적자유와 부요를 누리며 사는 무욕의 지혜로운 참 행복한 삶입니다. 

 

정주의 관상수도자들이 늘 거기 그 자리에서 답답해 하지 않고 내적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비결도

이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강론 쓰는 시간은 이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맑게 씻어내는 시간입니다.

이런 활짝 열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통해 은총의 햇살, 성령의 바람이 들어오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자취도 관상, 관조할 수 있으니 참으로 내적부요에 내적자유의 참 행복한 삶이겠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런 하느님 향한 넓은 영혼의 창, 마음의 창을 지니고 있는지요?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오늘 복음의 한나라는 여예언자입니다. 앞서의 시메온에 이어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한나입니다. 나이가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해를 살고서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면서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오로지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니 한나의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은 정말 한없이 넓고 깊고 맑고 깨끗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구세주 탄생을 목격한 한나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예수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중 하느님 향해 활짝 열렸던 영혼의 창을 지녔던 한나만이 예수 아기의 구원자 탄생을

체험한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의 한나가 영혼의 창을 지니고 내적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바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투철함으로 세상을,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초연히 바라보며

탐욕이 말끔히 사라진 무욕의 삶을 살았던 한나같습니다.

탐욕의 어리석음이요 무욕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도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세상의 무시나 멸시가 아닌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이탈과 초연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한나는 물론 예수님을 추종했던 모든 성인들의 삶이 이러했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어리석게도 하느님 향한 영혼의 창을, 마음의 창을 지니지 못했기에,

참 보물 주님을 모시지 못했기에 세상 것들의 집착에서, 탐욕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세상 것들을 추구하지만 결과는 중독에 폐인이요, 여전히 계속되는 영혼의 목마름에 굶주림입니다. 

눈들면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있는, 마음의 창 가득히 들어오는 자나깨나 늘 앞에 있는

정주의 불암산을 볼 때 마다 되뇌이는 자작 고백시입니다.

 

“늘 앞에 있는

 

 

 늘 앞에 있는

 주님

 

 이 행복에 삽니다

 나는”<2024.10.25>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집착의 탐욕에서 벗어나,

‘영혼의 창’ 활짝 열린 내적자유와 내적풍요의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요한1,16). 아멘.


12/31(화) [(백)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되새김 구절

 

1.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적은 칠죄종이라고 합니다. ‘교만, 인색, 음욕, 분노, 탐욕, 질투, 나태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많이 배운 사람들을 쓰러뜨리기도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영적인 스승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끊임없이 공격하였습니다. 복음은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입니다.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름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슬기, 통달, 의견, 지식, 굳셈, 효경, 두려워함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줍니다. 성령의 은사는 죄지은 이들이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용기를 줍니다. 성령의 은사는 겸손한 이들이 열매를 맺도록 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함께하는 2024년의 마지막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16)

 

‘충만(充滿)함’이란 표현이 제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본성 중에 우세한 측면이 충만함입니다.

충만함이란? 풍성함, 넉넉함, 완전함, 너그러움...참 다양한 함의(含意)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충만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방전된 우리의 플러그를 초강력 에너지원이신 하느님이란 전원에 꼽아야겠습니다.

그것이 기도 생활이요 영적 생활입니다.

우리가 매일 스마트폰 충전 상태를 확인하듯이, 매일 우리의 영적 충전 상태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신부)

 

3.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믿음과 ‘그분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고 함께 거주하고 사신다’는 믿음은 초기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이자 핵심 교리가 되었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가 인용한 초대교회의 찬미가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필리 2,7)
이는 단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하느님 되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 1,4)

 

주님!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제 발길이 당신을 향하여 있는지, 제 마음에는 당신의 평화가 들어와 있는지를 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제 안에 생명의 빛을 불어넣으셨으니,

이제는 죽음의 어둠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제가 당신 생명으로 새로워지고,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온 세상이 생명의 빛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 향해 활짝 열린 영혼의 창, 마음의 창을 지닌 이들이 바로 탐욕의 집착에서 벗어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이들입니다.

무소유의 삶에도 내적자유와 부요를 누리며 사는 무욕의 지혜로운 참 행복한 삶입니다. 

 

정주의 관상수도자들이 늘 거기 그 자리에서 답답해 하지 않고 내적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비결도

이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강론 쓰는 시간은 이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맑게 씻어내는 시간입니다.

이런 활짝 열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통해 은총의 햇살, 성령의 바람이 들어오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자취도 관상, 관조할 수 있으니 참으로 내적부요에 내적자유의 참 행복한 삶이겠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런 하느님 향한 넓은 영혼의 창, 마음의 창을 지니고 있는지요?

(이수철 신부)

 

12/31(화) [(백) 성탄 팔일 축제 제7일],제 192-62일 기도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 1,4)

 

주님!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제 발길이 당신을 향하여 있는지, 제 마음에는 당신의 평화가 들어와 있는지를 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제 안에 생명의 빛을 불어넣으셨으니,

이제는 죽음의 어둠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제가 당신 생명으로 새로워지고,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온 세상이 생명의 빛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31일(화) 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