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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5일 주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5일 주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입니다.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사랑의 실천으로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립시다.

입당송

말라 3,1; 1역대 29,12 참조
보라, 만군의 주님이 오신다. 그분께 나라와 권능과 권세가 있다.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오늘, 별의 인도로 성자를 이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으니
믿음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 저희도 자비로이 이끄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7-8.10-11.12-13(◎ 11 참조)
◎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제2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3,2.3ㄴ.5-6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2,2 참조
◎ 알렐루야.
○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 알렐루야.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의 주님, 다양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함께 겪는 교회를 굽어보시어, 더욱더 열린 모습으로 참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희망을 전하게 하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혜이신 주님, 세계 지도자들을 이끌어 주시어, 인류와 피조물이 주님께서 지으신 모습을 지키며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찾는 데 지혜와 힘을 모으게 하소서.?

3. 난임과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이신 주님, 난임과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자녀 출산의 은총을 주시고, 비윤리적인 보조 생식술의 유혹 앞에서 생명 존중의 길을 먼저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저희 본당 공동체를 이끌어 주시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동방 박사들처럼, 저희도 언제나 가난한 이웃들 안에서 주님을 알아 뵙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이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니라
그 예물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봉헌하고 받아 모시오니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받아들이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감사송

<주님 공현 감사송 :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그분을 인류의 빛으로 드러내 주셨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나게 하시어
그분께서 지니신 불사불멸의 힘으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2,2 참조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영성체 후 묵상

동방 박사들은 별을 보고 먼 길을 떠나 마침내 베들레헴에 이르러,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만민의 빛이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 교회도 이 땅에서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언제나 어디서나 저희를 천상 빛으로 이끄시니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의 신비를 올바로 깨닫고
성자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사진설명: 주님 공현.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2019 8월에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려면 쇼셜넘버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기억에 없는데, 사무실 직원이 도와주어서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은 신분증과 같기에 운전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비행기를 탈 때도 필요하기에 면허증을 취득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이민 변호사의 도움으로 영주권을 신청했고, 신문사에 있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영주권이 나왔다고 주교님께 보고드렸고, 주교님께서는 이왕 영주권이 나왔으니, 미국에 더 있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작년 2월 교구 인사이동으로 저는 뉴욕의 가톨릭 평화신문에서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왔습니다. 저는 교우들에게 준비된 본당 신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뉴욕에서 5년 살다가 왔기에 미국 생활에 필요한 쇼셜넘버, 운전면허증, 은행 계좌가 이미 있었습니다. 3 6개월 동안 브루클린 한인 성당 주일미사를 함께 했습니다. 영주권이 있기에 비자를 얻기 위해서 한국에 다녀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돌아보면 외적인 준비는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내적인 준비는 부족했습니다. 사제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도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성지순례를 간다는 이유로, 신문 홍보 다닌다는 이유로 꼭 해야 할 기도를 소홀히 한 적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도로 자라는데, 기도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사제에게 필요한 건 말씀입니다. 매일 미사를 위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만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 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말씀이 제 안에 머물지 않고, 세상의 것들이 제 안을 채웠습니다. 사제에게 필요한 건 시대의 징표를 보는 안목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책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 외로운 이, 고통 중에 있는 이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뉴욕에 5년 동안 있으면서 이런 내적인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린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나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한 번 공적으로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입니다. 그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께서 공적으로 드러난 것은 주님의 성탄, 동방박사의 경배, 세례 때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정의는 창과 칼, 권위와 권력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공정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성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그리고 오늘 제2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빛은 정의롭게 비추지 않습니다. 빛은 공정하게 모든 곳을 비추기 마련입니다. 주님의 영광도 정의롭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모든 곳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성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고,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갈릴래아의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것은 공정을 위해서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에페소인들에게 보내 편지에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혈연이나, 능력, 학벌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고, 신앙의 빛으로 비추어야 참된 상속자가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당과 교회는 성탄을 맞으면서 트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예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에 많은 십자가가 붉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불을 밝히고, 트리의 전구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의 신앙의 불을 밝히는 것, 희망의 빛을 비추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주님을 드러내는 주님께 경배하는 참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다해

복음마태 2,1-12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갈 순간입니다!

 

피정이 들어올 때, 제 하루 마지막 일과는 보일러실에 들러 난방 상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수도원으로 올라오면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세상에! 별이란 별들이 총집합해있습니다.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며 인생무상함을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크고 위대하심 앞에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아무리 난다 긴다, 잘난체하지만, 티끌이요 먼지인 것을...

동방 박사 세 사람도 밤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박사들은 탄생하실 구세주의 별을 목격한 후, 즉시 그 멀고도 오랜 여행길을 시작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세 명의 이름은 멜키오르, 가스파르, 발타사르입니다.

 

당시 동방이라는 지역은 페르시아나 아라비아로 추정됩니다.

그들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과거 박사란 칭호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넓게 적용되었는데, 아마도 별자리 연구를 통해

미래의 일을 예언하던 천문학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박사들의 시선은 온통 주님의 별을 향했습니다.

낮에는 휴식을, 밤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기약 없는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유다 지방에 이르러서는 구세주의 별빛이 사라지는 난감한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박사들은 예루살렘 성읍으로 들어와서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본인 말고 또 다른 임금이 유다 땅에 태어났다는 말에 헤로데 임금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겠지요.

겉으로는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경쟁자를 신속히 해치울 계략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박사들은 진리의 빛이자 생명의 빛이신 메시아를 뵙고 경배드리기 위해 오랜 나날의 수고와 갖은 위험을

감수했던 참된 순례자였습니다.

탄생하신 예수님을 경배하고 난 후 박사들이 봉헌한 선물도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진정한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는 유향과 구세주의 희생을 상징하는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바친 봉헌의 결과로 되돌려받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토록 뵙고 싶어 했던 아기 예수님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경배했습니다.

멀리서부터 가져온 선물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제 성탄의 기쁨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하고, 또다시 골고타 언덕이란 신앙의 정점을 향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란 우리 인생의 최종의미를 향해 먼 길을 떠날 순간입니다.

언제까지나 구유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앙증맞은 작은 두 손을 벌리고 우리의 선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세주 하느님께 드릴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황금)을 바칩시다.

매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외치며 내 의지를 접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유향)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매일 직면하고 견뎌내야 하는 고통(몰약)을 기쁘게 견뎌냅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다해

 

<우리는 어떤 왕을 만나려고 길을 떠나 여행을 하고 있나요?>

 

찬미 성탄! 

오늘은 '제2의 성탄절'이라고도 불리는 '주님 공현 대축일' 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목동들에게만 알려져 있고 감추어져 있었던 메시아의 탄생이 비로소 오늘 동방박사들을 통해 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를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 계시되었습니다.”

(에페 2,5)
그래서 동방교회에서는 오늘을 '거룩한 빛의 축제일'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이사 60,5)

오늘 우리는 바로 이 벅찬 기쁨을 찾아 동방박사와 함께 임을 찾아나서는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길’은 성경의 핵심 단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길”이라고 말씀하셨고(요한 14,6), 프란치스코 교종은 친구인 ‘한 랍비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할 때, 그는 길을 떠나야 합니다. 
사람은 걸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하느님을 찾으면서,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기를 찾아 나서도록 허락하면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길을 떠난 이들’이요, 또 한 부류는 ‘길을 떠나지 않는 이들’입니다.

 

‘길을 떠난 이들’은 빛을 따라나선 동방박사들과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나온 마리아와 요셉이 있고, 멀리 하늘에서 길을 떠나온 아기 예수님이 있습니다.

한편 ‘길을 떠나지 않은 이들’에는 왕궁에 머물러 있는 이들, 수석 사제들, 율법학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둘 중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요?

빛과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나 여행하는 사람일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안전과 편리에 머물러 안주하고 있는 사람인가요?

또 오늘 복음에는 두 명의 ‘왕’이 있습니다.

한 ‘왕’은 황포를 걸치고 화려한 왕궁에 사는 지상의 예루살렘을 통치하는 ‘헤로데 왕’이요, 또 한 ‘왕’은 포대기로 둘러싸여 무력하게 누추한 마구간에 누워있는 ‘새 이스라엘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어떤 왕을 만나려고 길을 떠나 여행을 하고 있나요? 
지상이 화려한 왕인가요? 

아니면 가난하고 힘없는 아기 예수 왕인가요?

 

또 오늘 복음에는 세 번의 ‘길 떠남’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의 터전에서 예루살렘으로의 길 떠남이요, 두 번째는 헤로데 왕궁에서 마구간으로의 길 떠남이요, 세 번째는 마구간에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길 떠남입니다.

‘길 떠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빛’이 비추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별이 나타나 우리를 비추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그 별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자만이 그 빛을 볼 수 있으며, 그 별을 보는 자만이 그 별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을 애타게 갈망하고 고대하는 자만이 '그분의 별'(마태 2,2)을 따라 그분을 만나 경배하러 길을 떠납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떠나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비추고 계시는 그분을 향한 갈망과 목마름으로 ‘떠나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첫 번째 길 떠남을 위해 우리는 온갖 편리와 안주를 포기해야 했고, 위험과 위기의 십자가도 져야 했습니다.

이 길을 오면서 때로는 사막처럼 무미건조하고 쓸쓸할 때도 있었고, 빛을 놓치고 어둠에 쌓여 길을 분별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길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반항할 때도 있었습니다.

더러는 좌절하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했고, 그분이 계실만한 화려한 하려한 왕궁을 찾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마치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을 기웃거렸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처럼 별의 안내를 받아서 이스라엘까지는 왔지만, 메시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를 찾아 만나는 데에는 '꼭 필요한 한 가지'(루가 10,41)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참된 빛이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마태 2,3)를 이미 '말씀' 속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예언자 미카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미카 5,1) 

그리하여 마침내 동방박사들이 '말씀'을 따라 다시 두 번째 길을 떠났듯이, 우리도 ‘말씀을 따라’ 여행 중입니다.

잠시 착각하고 머문 허황한 왕궁인 자기를 떠나 작은 고을 베들레헴을 향하여 갑니다.

이제 오로지 '참 빛이신 말씀'의 비추임을 따라 걷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빛'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비추는 곳을 따라 걷습니다.

그리고'말씀의 빛'이 비추는 낮은 곳, 누추한 마구간에서 '말씀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낮은 곳, 마구간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비로소 ‘참된 빛’이 낮게 엎드린 우리를 비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경배 드리는 일, 자신을 땅에 내려놓는 일, 낮아져 예물이 되면, 우리 안에 참 빛이 들고, 우리 안에 말씀이신 예수님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세 번째 길을 떠납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한 빛이신 말씀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 번째 길을 떠남이 바로 오늘 주님의 공현이 우리에게 이끄는 '길'입니다. 

이제는 빛이 되어 걸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은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은 자신을 채우기 위해 온갖 화려함으로 꾸미고 있는 왕궁을 향해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찬란히 빛나는 예수님과 동행하여 빛을 비추며 가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맞이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분의 별'

(마태 2,2)

 

주님!

당신은 먼저 저를 찾아와 비추셨습니다.

제 마음에 열망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사랑을 심으셨습니다.

그 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빛이 되어 당신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4.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1요한3,7-10 요한1,35-42

 

                                                          이웃 사랑의 최고의 길

                                      “그것은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산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사랑하는 대한민국입니다.

분명 이 위기를 주님의 보호아래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욱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우뚝 설 것을 믿습니다.

다시 한번, 아니 살아 있는 그날까지 외칠, 만세칠창 중 하나,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입니다.

 

어둠속에 빛을 찾는 사람들이요 참으로 강인한 민초(民草)들입니다.

국난때 마다 나라를 살린 무수한 민초들입니다.

거짓이 진리를,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궁극엔 진리의 승리요 빛의 승리입니다.

진리의 빛앞에 사라지는 거짓의 어둠임을 믿습니다.

진리이자 빛이신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뤄지는 당연하고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교황님의 홈페이지 기사가 어둠 속의 빛처럼 우리 마음을 밝힙니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희망의 순례자들’인 너희들은 언제나 움직임중에 있어야 한다.

결코 가만히 서있지 말고, 결코 앞을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마라.

사랑하는 희망의 순례자들인 친구들이여! 우리의 희망이신 주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함께 걸어온 친구들이여!

우리 모두 만나는 이들에게 희망의 작은 표지들이 되도록 하자!”

 

어제 교황청을 방문한 이탈리아 청소년 일행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순례 여정중인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어 말타 기사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섬기고 있다. 그리스도는 섬기러 세상에 오셨다. 주님은 언제나 여러분과 동행하실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성령이 그 사람안에 있기 때문입니다...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있다는 것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형제자매를 사랑함이 바로 하느님께 가까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요 하느님께 속한 사랑인지요?

이의 빛나는 모범이 복음의 세례자 요한이요, 그의 제자들이었다가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된 이들입니다.

영적지도자의 일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안내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일 둘이라 합니다. 

 

2025년 1월 교황님의 기도지향은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입니다.

“더욱 인간적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필수적인 것은 교육받을 그들의 권리가 언제나 존중받아져야 한다.”는

것이며, 특히 소외된 이들의 교육을 강조한 교황입니다.

 

교육의 핵심은 구원자 예수님께 인도하여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겠습니다.

무지에 대한 최고의 유일한 처방은 우리의 희망이신 주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최고의 길은 그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반사체가 되어 발광체인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은 제자들을 참 스승이자 주님인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참 멋진, 겸손하고 지혜로운 스승 세례자 요한입니다.

제자들을 지체없이 참 스승이신 예수님께 인도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 대한 최고의 순수한 사랑이

참 감동적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집착이나 예수님께 대한 질투심 전혀없이 때가 되자 자기 제자들을 참 스승이신 예수님께 

고스란히 인계합니다. 

 

“무엇을 찾느냐?”

 

예수님이 당신을 뒤따라 오는 요한의 제자들에 대한 이 물음이 참 심오합니다.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물음입니다. “진리이신 주님을 찾습니다.” 대신 이 현명하고 절박한 요한의 두 제자는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이 물음 또한 한없이 심오합니다. 묵다(stay)를 뜻하는 희랍어 menein(메네인)은

‘살다(abide)’, ‘머물다(remain)’를 뜻하는 말로 복음에서 ‘항구한 관계’를 뜻합니다.

이 물음의 의도안에는 주님이신 당신의 제자가 되어 당신과 함께 머물러 살면서

구원의 진리를 보고 배우고 싶다는 깊은 원의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와서 보아라.”

 

이 말씀 또한 심오합니다.

“와서 보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신학을 교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머물며 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님의 섬김의 삶전체를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찾아 멀리 갈 것 없습니다.

바로 눈만 열리면 어디나 주님이 머무르시는 곳이요, 참 좋은 주님의 제자들을 통해 섬기는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두제자는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합니다.

둘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야 였고, 그는 지체없이 형 시몬을 예수님께 안내하니

이 또한 형에 대한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새삼 나를 예수님께, 수도원에 인도한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루 내내 예수님을 만나 함께 묵으며 보고 배운 안드레아가 감격에 벅차 구원의 기쁜 소식을

형 시몬에게 전합니다.

동생 안드레아에 의해 메시아 예수님께 인도된 형 시몬을 반기는 예수님이요

이름도 ‘베드로’로 번역되는 ‘케파’입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 불릴 것이다.”

 

참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참 자기를 살게 된, 장차 수제자가 될 시몬 베드로입니다.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예수님을 찾아 만나 주님 사랑 안에 머물면서 섬김의 사랑을 보고 배우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가 사랑하는 이웃 형제자매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발광체(發光體) 예수님의 사랑을 잘 반사하는 주님의 참 좋은 반사체(反射體)로 사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되도록 합시다. 아멘.


1/5(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성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고,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갈릴래아의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것은 공정을 위해서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에페소인들에게 보내 편지에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혈연이나, 능력, 학벌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고, 신앙의 빛으로 비추어야 참된 상속자가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앙증맞은 작은 두 손을 벌리고 우리의 선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세주 하느님께 드릴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황금)을 바칩시다.

매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외치며 내 의지를 접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유향)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매일 직면하고 견뎌내야 하는 고통(몰약)을 기쁘게 견뎌냅시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분의 별'

(마태 2,2)

 

주님!

당신은 먼저 저를 찾아와 비추셨습니다.

제 마음에 열망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사랑을 심으셨습니다.

그 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빛이 되어 당신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와서 보아라.”

 

이 말씀 또한 심오합니다.

“와서 보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신학을 교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머물며 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님의 섬김의 삶전체를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1/5(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5일차 기도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분의 별'

(마태 2,2)

 

주님!

당신은 먼저 저를 찾아와 비추셨습니다.

제 마음에 열망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사랑을 심으셨습니다.

그 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빛이 되어 당신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월5일(일) 1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