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6일 월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6일 월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네. 민족들아, 어서 와 주님을 경배하여라. 큰 빛이 땅 위에 내린다.

본기도

하느님,
하늘을 꾸미신 영원한 말씀이
동정 마리아의 몸에서 나약한 인간이 되셨으니
저희에게 나타난 이 진리의 빛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힘찬 권능을 펼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22―4,6
사랑하는 여러분, 22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4,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7-8.10-11(◎ 8ㄴ)
◎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주리라.
○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 ◎
○ 임금들아, 이제는 깨달아라. 세상 통치자들아, 경고를 받아들여라. 경외하며 주님을 섬기고, 떨며 그분 발에 입 맞추어라. ◎

복음 환호송

마태 4,23 참조
◎ 알렐루야.
○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2-17.23-25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공현 감사송 :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그분을 인류의 빛으로 드러내 주셨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나게 하시어
그분께서 지니신 불사불멸의 힘으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14 참조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보았네. 아버지의 외아드님,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분의 영광을 보았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하고 신비로운 이 성사의 힘으로
언제나 저희 생명을 보호하여 주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자선 음악회를 마치고, 수익금은 장애인 학교에 전달하였습니다. 장애인 학교는 18세 이상인 학생과 18세 이하인 학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18세 이하의 학생들은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일반 학교에는 장애인 학생을 위한 학급이 따로 있어서 선생님들이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토요일에 장애인 학교에 와서 지낸다고 합니다. 18세 이상인 학생들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장애인 학교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수익금 전달하는 날은 학생들의 성탄 파티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이사진이 선임되었습니다. 저는 장애인을 위해서 헌신하는 봉사자를 보았습니다. 장애인 학교를 운영하는 목사님, 영어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님, 그림과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 음식을 준비하는 봉사자,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시는 미용 봉사자, 학생들의 건강을 챙겨주시는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장애인 학교에는 다운 증후군 학생과 자폐 학생이 있었습니다. 일반 학생과 조금 다른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작은 정성이지만 장애인 학교를 도울 수 있어서 제게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내년에도 자선 음악회를 한다면 그 수익금을 기꺼이 장애인 학교를 위해서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2000년 교회의 역사에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위기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교리 논쟁이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비인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교리는 신앙인이 따라야 할 길과 같습니다. 교회와 다른 교리를 이야기한 사람은 이단이 되어야 했고, 교회는 처음으로 이단을 단죄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외부에서 오는 공격입니다. 중동에서 시작된 새로운 종교는 막강한 힘으로 교회의 턱밑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선포하는 종교는 십자가의 이름으로 싸워야 했습니다. 자비와 용서의 종교는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를 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원주민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인류와 역사 앞에 용서를 청했습니다.

 

세 번째 위기는 내부의 분열과 갈등입니다. 프로테스탄트가 생겼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새로운 교회를 세웠습니다. 같은 배를 탔던 교권과 왕권은 각자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인간 중심의 새로운 사상과 문화가 도래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풍요와 편리함을 주었지만, 인류의 영성과 지성을 물질의 에 가두려고 하였습니다. 네 번째 위기는 신앙과 삶이 다른 겁니다. 교회의 전통과 유산이 사라지고, 세속화의 바람이 들어온 겁니다. 성소의 감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자의 수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기도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삶의 중심에 신앙이 있지 않고, 세속의 가치와 판단이 우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고령화되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가진 걸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주님 안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로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나쁜 것들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하여야 한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빛이 있어야 어둠이 밝아지듯이, 빛이신 예수님 곁에 머물러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25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열망으로 내 마음 안에 있는 거짓된 것들을 버리고, 하느님의 계명과 주님의 사랑을 담아 빛이신 주님께로 가까이 가야 하겠습니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변화시키듯이, 신앙 안에서 작은 실천은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

 

2025년 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마태오 4,12-17.23-25

 

꽉 막힌 마음 여는 법: 작은 틈새 찾기

 

어떤 분이 요즘 믿음에 불타 그 깨달음을 타인에게 전하려 하는데 거기에서 반작용이 너무 커서

조금은 힘이 빠지는 상황입니다. 그분에게 저는 ‘너만 잘났냐?’라는 반발의 마음이 들지 않게

살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자세하게 이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가끔 고해성사를 주다 보면 부모에게 떠밀리다시피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한 청년이 들어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고해본 지 얼마 되었는지,

죄는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꽤 오래 냉담하던 입이 반쯤 나와 있던 그 청년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진짜 죄 없어요.”

 

여기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십계명을 읊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사람은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있습니다. 용서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예수님은 빛 자체이십니다. 빛이 의미 있는 곳은 어둠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둠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죄가 없다고 굳게 믿게 하는 무언가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 임언기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주려고 간암 말기 환자를 찾아갔을 때도 그는 고해성사를

거부하며 “나 죄 없어!”라고 외쳤습니다. 임 신부님은 속으로 “그래, 너 잘났다!”라고 하며

돌아섰습니다. 꽉 막혀 말해봐야 소용이 없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리옷 유다처럼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자신이 어둠임을 알지 못하여 스스로 빛을

거부해 목을 매 자살하게 된 상황이 아니라면 항상 희망이 있습니다. 완전히 빛을 차단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항상 빈틈을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사탄만이 빈틈을 주지 않습니다. 

 

저도 나름 잘 산다고 교만해질 때가 많습니다. 이때 저의 빈틈을 공략하는 말들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자비가 필요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고해성사를 조금 늦게 들어가는 것,

강론 때 조금 합당하지 않은 농담을 하는 것, 아주 가끔이지만,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새벽 미사를

했던 것, 감기 걸리고 마스크 안 쓰고 미사 하는 것 등입니다.

 

만약 신자들이 “신부님은 회개하셔야 해요!”라고 말하면 저도 “본인이나 잘하세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어린 관심으로 그러한 것들을 말해줄 때는

‘아, 바꿔야겠구나!’라고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가가야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비극은 잘못된 ‘믿음’ 때문에 시작되고

그 믿음을 파괴할 작은 틈을 찾아 누구도 빛을 넣어주지 못한 데서 비극으로 끝납니다.

예를 들어 ‘멕베스’를 생각해봅시다. 

 

맥베스의 비극은 세 마녀의 예언을 맥베스가 맹목적으로 믿고, 주변의 누구도 그 믿음을 깨뜨리지

못하면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전개됩니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글래미스의 영주, 코더의 영주,

그리고 미래의 스코틀랜드 왕이라는 칭호로 인사를 건넵니다.

이들의 애매모호한 말은 맥베스의 마음에 야망의 씨앗을 심어줍니다. 마녀들의 말은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맥베스는 이 예언을 불가피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그가 코더의 영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이 신빙성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를 들은 레이디 맥베스는 그의 야망에 불을 지피며, 맥베스가 직접 행동해

던컨 왕을 살해함으로써 예언을 이루라고 부추깁니다. 만약 레이디 맥베스가 던컨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점이나, 던컨이 친척이자 집에 초대받은 손님임을 상기시켰더라면,

맥베스의 결심은 약화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의 조언은 맥베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운명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맥베스는 예언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행동합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그는 마녀들의 반쿠오 후손에 대한 예언 때문에 불안에 시달립니다. 그는 반쿠오와 그의 아들

플리언스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암살하려 하지만, 반쿠오는 살해되었지만 플리언스는

도망칩니다. 누군가 마녀들의 말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나

예언이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더라면, 맥베스는 자신의 행동을 재고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언의 확실성을 믿는 그의 집착은 그를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맥베스의 불안감이 더욱 깊어지자, 그는 마녀들을 다시 찾아갑니다. 마녀들은 새로운 애매한

확신을 제공합니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그를 해칠 수 없다.”라는 말과 “

"버넘 숲이 던시넌 언덕으로 움직일 때까지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러한 말은 맥베스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며, 그를 파멸로 이끄는 자만심을 심어줍니다.

 

누군가 숲이 인간의 위장으로 인해 움직일 수도 있다는 점이나, 제왕절개로 태어난 사람이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로 간주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리적 가능성을 지적했더라면,

그의 자만심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맥베스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맥더프 가족을 몰살시키는 등 더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한편 레이디 맥베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미쳐가며,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했지만,

그들의 행위가 가져온 결과를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콤과 맥더프가 이끄는 군대가 버넘 숲에서 나뭇가지를 잘라 위장하며 던시넌 성으로 진격하자,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는 마녀들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고,

맥베스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믿음을 굳게 유지합니다. 맥더프가 자신이 제왕절개로 태어났음을 밝히자, 맥베스는 마침내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습니다. 마녀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은 그의 행동과 의미를 성찰하지 못한 태도는

결국 맥베스가 맥더프에게 죽임을 당하게 만듭니다.

 

맥베스의 비극은 마녀들의 예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도덕적 논리를 제시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결과입니다. 그러나 제어되지 않은 야망과 운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맥베스를 파멸로 몰아넣었고, 그의 길에는 파괴와 비극만이 남았습니다.

 

꽉 막힌 사람을 설득하려면 그가 믿는 믿음의 빈틈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해봐야 이미 세 마녀를 믿고 있는데 어떻게 그 생각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방법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녀는 하느님은커녕 사람에 대한

신뢰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인들도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청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녀의 믿음을 조금씩

허뭅니다. 그리고 여섯 명의 남편과 살아도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참 생명의 물을 주는 분이 당신임을 알리십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그녀는 귀를 더 막아버렸을 것입니다. 항상 꽉 막힌 사람은 그 사람의 믿음을 깰 아주 작은 것부터

찾아서 그 안으로 빛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어둠의 믿음을 깰 작은 빈틈으로 들어오는 믿음의 빛으로 자신이 어둠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차차 빛을 받아들이게 되어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3. 이영근 신부

 

2025년 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건설되는 것>

 

빛의 축제일인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입니다.

오늘도 어제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빛의 공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빛을 받으며, 빛 속에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빛을 증언하러 왔던 요한은 물러가고, 참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요한 1,6-9)  

오늘 복음은 이사야가 예언한 빛이 이미 도래했음을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마태 4,16)
그 빛은 '즈불룬 땅과 납달리 땅,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부터 비추어왔습니다.

 

질곡의 땅 갈릴래아, 이곳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당신 ‘사명’의 내용을 밝혀줍니다.

 

곧 하늘나라는 먼저 이방인의 압박, 곧 죽음의 그늘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먼저 선포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당신은 어두움 속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으로 오시는 분임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빛 안에서 걸어야 하는 첫걸음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밝혀줍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슈브,שב)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돌이키다’, ‘돌아오다’라는 뜻인데, 원래의 그림문자의 뜻은 ‘집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합니다.

곧 자신이 ‘이전에 살던 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집에 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전에 살던 집’이란 우리가 거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더 넓은 의미로 우리가 이전에 행하던 행위나 지식까지도 포함합니다.

곧 우리의 행위와 앎으로부터 벗어나 새집으로 돌아와 하늘의 양식을 먹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옛사람의 행위와 지식(옛집)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새로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콜로 3,9-10)이라고 말합니다.

곧 ‘우상의 집’을 무너뜨리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양식인 말씀을 먹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는 죄악을 버리는 것보다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덴의 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에덴동산’은 하느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만든 하느님의 처소(집)임과 동시에, 마지막 때에 다시 회복될 ‘새 예루살렘’(묵시 21,2)입니다. 

‘회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호세 14,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켜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있게 하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요한 14,23 참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거처를 함께 하시면 우리 안에 ‘하느님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 안으로의 전환이 곧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건설되도록 수락하는 일입니다.

곧 우리의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하늘나라를 받아들이는 일, 곧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거처가 되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마태 4,15)

 

주님!

당신께서는 어둠이 덮인 곳에 큰 빛을 비추셨습니다.

질곡의 땅, 핍박받는 이들에게 의로움의 빛줄기를 뿌리셨습니다.

오늘, 저희의 오류와 완고함을 뚫으소서.

어둠의 갇혀 있는 저희의 속박을 풀고, 묶인 이들을 해방하소서.

무지와 어리석음을 밝혀 주시어, 진리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5.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60,1-6 에페3,2.3ㄴ.5-6 마태2,1-12

 

                                               더불어(Together), 희망의 여정

                                                      “희망의 순례자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대축일 미사중 해마다 반복되는 방금 부른 대축일 화답송 후렴은 늘 불러도 흥겹습니다.

오늘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바치고 싶습니다. 

 

“하느님 만백성이 당신께 조배하리이다.”(시편72,11)

더불어 교황님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거룩함은 기쁘다. 사람을 끌어 들인다. 그것은 발견하기 쉽지 않을 지라도 영적기쁨이다.

‘거룩함은 영적기쁨이다(Holiness is a spiritual joy)’.”

 

이런 화답송 후렴 노래가 영적기쁨을 더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며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듭니다.

결코 우울이나 슬픔은 영적 징표가 아닙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공현 대축일 해마다 반복되는 마태복음, “동방박사들의 방문” 일화를 대할 때 마다

11년전 2014년 안식년때 산티아고 순례 여정이 생각납니다.

오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을 방문한 동방박사들의 순례 여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해마다 강론도 비슷했고 오늘도 역시 같은 내용을 나눕니다.

2014년 순례 첫날, 8월21일자 파리에서 쓴 강론 서두 부분입니다.

 

“세분의 동방박사가 탄생한 주님을 방문했듯이 이냐시오, 프란치스코 형제와 저 셋이 희망의 순례자가 되어

산티아고의 주님을 찾아 동방의 한국을 떠났습니다.”

 

동방박사들의 베들레헴 방문 여정, 순례자들의 산티아고 방문 여정은 그대로 우리 인생 순례 여정을 압축,

상징합니다.

여정의 최종 목적지인 베들레헴이나 산티아고 대신 우리 인생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하느님의 집이요,

저는 이를 일컬어 주님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집"을 향한 순례 여정중에 있는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또 하나의 예루살렘인 우리의 용기를 북돋웁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발광체인 주님을 비추는 반사체 주님의 별로, 희망의 별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열려 있는 구원의 순례 여정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은 바로 탄생하신 주님이 세상 모두의 중심, 구원의 중심임을 상징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았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갈망하는 구원의 하느님이요, 모두가 당신을 찾는 구원의 순례 여정에 오르라는

주님의 촉구 말씀입니다.

산티아고 희망의 순례 여정중 발견한 “인생 순례 여정”중 네 요소입니다.

 

첫째, 최종 목적지는 희망의 하느님입니다.

동방박사들의 베들레헴이,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산티아고 대성전이 상징하는 바,

우리 인생의 최종목적지인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갈망이, 열망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베들레헴의 탄생하신 예수님을 찾아 떠난 동방박사들이야 말로 갈망의 사람, 열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주님을 찾는 갈망이 순례 여정의 원동력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과연 나는 동방박사들처럼 인생 궁극의 목표인 하느님을 찾는 갈망이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둘째, 희망의 이정표입니다. 

산티아고 800km 2000리 순례 여정 길에는 산티아고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그려진 이정표들이 즐비합니다.

오늘 복음의 동방박사들의 이정표는 “주님의 별”입니다. 주님의 별의 인도 따라 최정 목적지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탄생하신 주님을 만난 세 동방박사들입니다.

그 험난한 여정을 한결같이 인내하며 주님의 별을 바라보며 따라감으로 마침내 최종목적지 예수님이 탄생한

베들레헴에 도착한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별! 누구나 자명하게 드러나는 확고불변의 객관적 실재가 아닙니다.

참으로 주님을 찾는 갈망에 깨어있는, 눈이 열린이들에게만 계시되는 주님의 별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중 주님의 별을 발견하여 순례 여정에 오른 이들은 이방의 동방박사들뿐이었습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지척에 태어난 주님도 알아보지 못한 예루살렘 사람들이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의 평생 이정표와도 같은 주님의 별은 무엇인지요? 

 

믿음의 눈만 열리면 모두가 하느님의 성사(聖事)요, 주님의 별, 희망의 별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의 이 거룩한 성전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또 날마다 거행하는 이 거룩한 매일미사가

주님께 인도하는 주님의 별이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이웃도 주님의 별이, 희망의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깨어 있는 이들의 마음 하늘에는 무수한 주님의 별들의 이정표가 있어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셋째, 희망의 도반들과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오래 멀리 못갑니다. 너무 위험하고 위태합니다.

더불어의 도반이, 더불어의 공동체가 필수입니다.

 

때로 혼자일 수 있어도 더불어의 공동체 안에서의 순례 여정입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순례 여정이 이를 입증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웃들이 때때로 함께 해 주었는지요!

 

정말 하느님의 선물같은 상호보완의 공동체 도반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동방박사들은 셋입니다.

전설같이 들려오는 가스팔, 멜키올, 발타살 셋입니다.

혼자였다면 분명 도중하차 했을 것입니다. 

 

도반들과 더불어의 여정, 더불어의 믿음, 더불어의 희망, 더불어의 사랑, 더불어의 기쁨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도반들은 있습니까?

여기 수도형제들은 모두가 순례 여정중의 도반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믿는 이들의 자랑은 영원한 도반, 파스카의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형제 도반들과 함께 하는 희망의 순례여정!

바로 우리의 자랑이자 기쁨입니다. 저절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넷째,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기도와 함께 성장하는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동방박사들 제 추측에는 기도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는 인간, 바로 인간의 정의입니다. 마음 깊이에서는 누구나 하느님을 찾는 수도자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한결같은,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활력의 원천이 됩니다.

기도할 때 깨어있게 되고 주님을 만납니다. 

기도할 때 눈이 열려 희망의 목적지도, 희망의 이정표도, 희망의 도반들도 새롭게 확인합니다.

기도없이 희망의 순례 여정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공동체의 미사전례은총보다 순례 여정에 더 큰 도움은 없습니다.

 

제가 참 많이 강조하는 것이 삶의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또 일년사계로 압축하여

어느 시점에 있는지 압축해 보자는 것입니다.

아침6시 해가 뜨면서 태어났다가 오후 6시 해가 지며 세상을 떠난다 했을 때,

또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마치는 인생 여정이라 할 때, 과연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는가

자주 점검 확인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래야 하느님 주신 선물 인생, 낭비함이 없이, 하루하루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동방박사들은 주님의 별의 인도 따라 무사히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물 상자를 열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칩니다.

우리도 이 거룩한 미사중 아기 예수님께 우리의 모두를 봉헌하도록 합시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남은 순례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1/6(월)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2025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열망으로 내 마음 안에 있는 거짓된 것들을 버리고, 하느님의 계명과 주님의 사랑을 담아 빛이신 주님께로 가까이 가야 하겠습니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변화시키듯이, 신앙 안에서 작은 실천은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예수님은 유다인들도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청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녀의 믿음을 조금씩

허뭅니다. 그리고 여섯 명의 남편과 살아도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참 생명의 물을 주는 분이 당신임을 알리십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그녀는 귀를 더 막아버렸을 것입니다. 항상 꽉 막힌 사람은 그 사람의 믿음을 깰 아주 작은 것부터

찾아서 그 안으로 빛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어둠의 믿음을 깰 작은 빈틈으로 들어오는 믿음의 빛으로 자신이 어둠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차차 빛을 받아들이게 되어있습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마태 4,15)

 

주님!

당신께서는 어둠이 덮인 곳에 큰 빛을 비추셨습니다.

질곡의 땅, 핍박받는 이들에게 의로움의 빛줄기를 뿌리셨습니다.

오늘, 저희의 오류와 완고함을 뚫으소서.

어둠의 갇혀 있는 저희의 속박을 풀고, 묶인 이들을 해방하소서.

무지와 어리석음을 밝혀 주시어, 진리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오늘 동방박사들은 주님의 별의 인도 따라 무사히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물 상자를 열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칩니다.

우리도 이 거룩한 미사중 아기 예수님께 우리의 모두를 봉헌하도록 합시다.(이수철 신부)

 

1/6(월)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6일차 기도

 

복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마태 4,15)

 

주님!

당신께서는 어둠이 덮인 곳에 큰 빛을 비추셨습니다.

질곡의 땅, 핍박받는 이들에게 의로움의 빛줄기를 뿌리셨습니다.

오늘, 저희의 오류와 완고함을 뚫으소서.

어둠의 갇혀 있는 저희의 속박을 풀고, 묶인 이들을 해방하소서.

무지와 어리석음을 밝혀 주시어, 진리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6일(월) 6시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