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1월 7일 화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본기도
외아드님께서 저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으니
겉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에서도
저희가 그분을 닮아 새로워지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산들은 백성에게 평화를, 언덕들은 정의를 가져오게 하소서. 그가 가련한 백성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에게 도움을 베풀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4-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34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저희가 경건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천상 성사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그분을 인류의 빛으로 드러내 주셨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나게 하시어
그분께서 지니신 불사불멸의 힘으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당신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으로 보내셨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오셨으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저희가 모신 성체에 더욱 맞갖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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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우리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나면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놀라운 사건을 기념했습니다. 주님 공현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를 통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세상에 빛과 희망을 전하는 여정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가 이 사명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독서에서 강조하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에 응답할 때, 우리는 주님의 공현을 실현하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빛날 때, 세상은 주님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공현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내적으로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도와 성사, 성경 묵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의 내면에 주님의 빛이 차오릅니다.
둘째, 외적으로는 우리가 이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말과 행동, 나눔과 봉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에 변화를 불러왔고, 오늘날 우리도 그 사랑을 이어받아 세상에 빛과 희망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여전히 사랑과 희망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나며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과 공현을 기념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주님의 공현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고기와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물고기와 빵을 나누어 주었고, 모두가 먹은 다음에 남은 것이 12 광주리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가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첫째는 측은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당한 사람에게 보여준 마음입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게 보여준 마음입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 기도하면 하느님께서는 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자녀들이 바라는 것을 들어주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십니다. 셋째는 나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세상은 가난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헐벗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신앙인은 오늘의 성서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주어야 하는 것, 사랑 받기보다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작은 사랑과 나눔이 주님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는 큰 기적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도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복음: 마르 6,34-44
도대체 왜? 이 큰 부끄러움은 항상 우리의 몫이어야 합니까?
오랜 세월 차곡차곡 공들여 쌓아 올린 국격이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주 항공기 참사로 인한 범국민적 트라우마, 거기에다 전 세계 사람들 앞에 볼썽사나운 광경을
끝도 없이 연출하고 있는 악의 무리들...
어찌 그들은 그리도 부끄러움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인 제공자는 그들인데,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이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입니다.
자비하신 주님께서 가련한 우리 민족을 굽어보시어, 이 혼란과 방황에서 조속히 해방시켜 주시기를
매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난감한 현실을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을 거듭해야 하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마르 6,34)
‘목자 없는 양들!’ 어쩌면 너무도 기막히고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울부짖고 있는 오늘 우리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엄동설한에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위해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길거리에서 꼬박 밤을 지새웁니다.
대체 누구를 바라보고 의지해야 하나,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목자가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는 거리의 양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성직자 수도자들, 그리스도인들은 양이면서, 동시에 목자입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착한 목자가 없다며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슬아슬하면서도 엄중한 이 시국에 우리는 목자로서 이 시대와 나라와 양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해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은 착한 목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금쪽같은 시간을 나눈다는 것이 아닐까요?
착한 목자는 너무나도 당연히 양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 사이에 머무는 것을 지상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그는 언제나 양들 사이에 현존하기에, 몸에서는 늘 양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착한 목자는 너무나도 당연히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양들 사이에,
나라를 위한 걱정이 태산인 거리의 백성들 사이에, 울부짖고 있는 민중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헨리 나웬 신부님은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착한 목자는 기도만 열심히 하고 성경만 열심히 읽는 사람이 아니라 양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입니다.
착한 목자는 상처 입은 양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와 눈동자를 마주침을 통해 그의 내면, 그의 영혼의 상태를 확인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결국 사목자는 맡겨진 양들을 위해 발로 뛰는 사람, 양들 사이로 내려가는 사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지고한 사랑에 참여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님 공현의 연장선상에서 참 빛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빛을 가장 가까이서 가슴에 기대어 체험했던 사도 요한이 오늘 제1독서에서 그 빛의 본질을 꿰찔러 선포해 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1요한 4,10)
그렇습니다.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참 빛은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빛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 영성체송에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당신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으로 보내셨네.”
(에페 2,4; 로마 8,3 참조)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늦은 시간이 되자,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마르 6,36)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마르 6,37)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분리되지 않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신 까닭입니다.
그들의 배고픔을 당신의 배고픔으로 여기신 까닭입니다.
그래서 먼저 굶주리는 이들의 먹을 것을 챙겨주십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광야에서 허기진 모세와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듯이 말입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당신 몸을 양식으로 내놓으셨듯이 말입니다.
그토록 당신 자리를 떠나와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셨습니다.(마르 6,41)
그리하여 이제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안으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참 빛이신 당신의 사랑을 공현으로 보여주시고 드러내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나아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실행하도록 맡겨졌습니다.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그 지고한 사랑에 참여시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떼어주시며, 이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 안으로 몸소 들어오십니다.
그토록 차고 넘쳐나는 사랑을 우리도 ‘하라’고 말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건너온 이 놀라운 사랑을 우리도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마르 6,37)
주님!
먹지 않고서는 못 살면서도 자신은 먹히지 않으려 하는 자애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하소서.
제 몸과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차지 하지 말게 하소서.
제 몸이 찢어지고 나누어지고 쪼개지고 부수어져, 타인 안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당신께서 늘 저를 향하여 계시듯, 제가 늘 타인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당신께서 그러하시듯, 제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6.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1요한3,22-4,6 마태4,12-17.23-25
회개의 여정
“하느님 중심의 삶”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새벽 인터넷을 여니 1.3일부터 1.6일 새벽 지금까지 한남동 공관 앞에서 고스란히 눈을 맞으며
추위에도 불구하고 20-30대 여성들 주도의 은빛 우산을 쓰고 은빛 우의를 입은 수많은 은박 탄핵시위대의
정의롭고 순수한, 간절하고 절실한 나라 사랑에 코끝이 찡하며 가슴 먹먹한 감동과 더불어
저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이 또한 시대정신의 표현이자 역사의식의 발로요, 이 연대의 힘이 국민을 일깨우고 나라를 살린다
생각이 듭니다.
전번의 남태령대첩에 이은 한남동대첩이라 명명하네요.
언젠가 어느 신자의 신부님은 "좌파입니까, 우파입니까?"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다시 확인합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의 전사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기상하자 마자, 또 취침전 십자가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만세칠창 기도입니다.
요즘 하얼빈 영화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안중근 토마 의사가 남긴 삶의 가르침입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세월을 낭비하지 마라.”
요즘 세계적 정치지도자였던 독일 최초의 전임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자유”라는
회고록을 읽고 있습니다. 그의 감동적 신앙 고백 일부를 나눕니다.
“‘주여, 저를 굽어 살피소서.’ 나는 선서문 말미에 이 구절을 집어넣었다.
종교적 차원의 맹세없이도 선서할 수 있었지만 내게 이건 아주 중요했다.
나는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주여, 저를 굽어살피소서’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선포함으로써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도
하느님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쓰게 된 지금 돌아보니, 나의 총리 재임 시절, 그러니까 임기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제외한
지난 16년 5860일 동안 매일의 혼란스런 사건들 너머에서 나를 붙들어준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참으로 기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탈리아 교육자들을 알현할 때 하신 말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희망을 잃는 것을 피하고 날마다 그 희망을 키울수 있을까?
‘날마다의 투쟁중에, 시선을 그리스도께 두는 것이다(Amid daily struggles, keep eyes on Christ).”
마음 깊이 각인하고 싶은 대목은 괄호안에 영어를 집어넣습니다.
위 모든 내용들이 우리의 회개를 북돋웁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하루하루 날마다 새롭게 노력하며 산 삶인지 깨닫습니다.
결론은 날마다 “하느님 중심의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자는 것이요, 오늘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쏜살같이 흐르는,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이요 언젠가는 어김없는 죽음입니다.
이래서 늘 반복하여 강조하는 내 인생 일일일생(一日一生), 일년사계(一年四季)로 압축했을 때의 시점(時點)을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성탄시기가 끝나가니 오늘 복음은 바야흐로 갈릴래아 전도가 시작됨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펼쳐집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말씀이 그대로 통쾌하게 실현됩니다.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예나 이제나 무지한 인간의 어둠의 현실은 똑같습니다.
문명의 야만시대의 역설처럼 여전히 어둠은 짙습니다.
어둠속의 큰빛이 바로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공생애 첫 일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오늘에도 호소력을 지닙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바로 큰 빛이신 예수님 자체가 하늘 나라 꿈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회개하여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삶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실현되는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후,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시니
예수님의 눈부신 활약상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합니다.
온통 가르치시고 고치시는 일에 전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일이 회개입니다.
주님께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며 주님 중심의 회개의 여정에 충실할 때 저절로 치유되는
영육의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한두번의 회개가 아니라 날마다 평생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궁극의 문제는 내 안에 있고 답은 하느님안에 있기에 회개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주님의 빛입니다.
회개를 통해 빛이자 생명이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저절로 치유요, 회개의 여정은
그대로 치유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궁극의 답도 하느님께 돌아가 제자리에서 제본분을 다하며
제대로 사는 회개의 길뿐임을 깨닫습니다.
참된 제자리의 정주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끊임없는 회개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끊임없는 기도와 함께 가는 끊임없는 회개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요한1서 1독서에 대한 답도 하느님 중심의 회개의 삶에 있음을 봅니다.
회개를 통한 계명에 충실한 삶이요 영의 올바른 식별이니 이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속한 삶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이 아닌 하느님께 속한,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회개의 삶입니다.
요한 사도의 말씀이 참으로 적절합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안에 머무르십니다.”
회개의 삶은 믿음과 사랑의 계명 실천의 삶으로 입증되고, 계명의 실천과 더불어
주님과 상호내주(相互內住) 일치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회개의 열매가 바로 믿음과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앞서 요한 사도의 사랑의 권고가 생각납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이래야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습니다.”
바로 참된 회개 은총이 제멋대로의 감정적 사랑이 아닌 진리 이신 주님 안에서 행동으로 사랑하게 합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정화되어야 할 이기적 불순한 우리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평생 배우고 공부해야 할 “진리 안에서의 행동으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회개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1/7(화)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조재형 신부)
2. 헨리 나웬 신부님은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착한 목자는 기도만 열심히 하고 성경만 열심히 읽는 사람이 아니라 양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입니다.
착한 목자는 상처 입은 양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와 눈동자를 마주침을 통해 그의 내면, 그의 영혼의 상태를 확인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결국 사목자는 맡겨진 양들을 위해 발로 뛰는 사람, 양들 사이로 내려가는 사람입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마르 6,37)
주님!
먹지 않고서는 못 살면서도 자신은 먹히지 않으려 하는 자애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하소서.
제 몸과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차지 하지 말게 하소서.
제 몸이 찢어지고 나누어지고 쪼개지고 부수어져, 타인 안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당신께서 늘 저를 향하여 계시듯, 제가 늘 타인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당신께서 그러하시듯, 제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이래야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습니다.”
(이수철 신부)
1/7(화)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7일차 기도
복음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마르 6,37)
주님!
먹지 않고서는 못 살면서도 자신은 먹히지 않으려 하는 자애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하소서.
제 몸과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차지 하지 말게 하소서.
제 몸이 찢어지고 나누어지고 쪼개지고 부수어져, 타인 안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당신께서 늘 저를 향하여 계시듯, 제가 늘 타인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당신께서 그러하시듯, 제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7일(화) 8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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