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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9일 목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9일 목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요한 1,1 참조
한처음 시간이 생기기 전, 말씀은 하느님이셨네. 그 말씀이 세상의 구원자로 태어나셨네.

본기도

하느님,
성자를 통하여 온 인류에게 영원한 빛을 보여 주셨으니
하느님 백성이 구세주의 찬란한 빛을 받아
영원한 영광의 빛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4,19―5,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을 19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21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14와 15ㄷㄹ.17(◎ 11 참조)
◎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그의 눈에는 그들의 피가 소중하기에, 그는 억압과 폭행에서 그들의 목숨을 구하리이다.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늘 기도하며, 날마다 축복하게 하소서. ◎
○ 그의 이름 영원히 이어지며, 그의 이름 해처럼 솟아오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그를 칭송하게 하소서. ◎

복음 환호송

루카 4,18
◎ 알렐루야.
○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 알렐루야.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4-22ㄱ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공현 감사송 :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그분을 인류의 빛으로 드러내 주셨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나게 하시어
그분께서 지니신 불사불멸의 힘으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3,16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하고 신비로운 이 성사의 힘으로
언제나 저희 생명을 보호하여 주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우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을 합니다. 결과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윤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이 되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 세속오계, 삼강오륜은 인과응보의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를 토대로 법칙을 만들고, 법칙을 찾아냅니다. 과거로부터 현재 상황을 유추하고, 현재로부터 미래를 예측합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을 벗어나는 곳이 있습니다.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기존 과학의 법칙과 방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과응보의 을 벗어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용서에 대해서 일곱 번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벗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내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사건,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사건은 인과응보의 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제 단순히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만이 형제가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 묶인 이, 감옥에 갇힌 이, 억울한 이, 절망 중인 이들이 바로 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에 구원의 빛으로 드러나신 사건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현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분의 빛을 세상에 비추며 살아갈 때,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공현은, 동방박사들이 별빛을 따라 예수님께 경배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의미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매일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빛을 받은 사람들로서, 이 빛을 세상 속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작은 마을에 살던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매년 겨울이면 마을의 빈곤층과 고아를 위해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옷을 준비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소년이 눈 속에서 헤매다 노부부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배고픔과 추위로 몸을 떨고 있었고, 노부부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들였습니다. 소년은 그들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마을의 작은 교회가 화재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놀랍게도 그 소년이 훌륭한 사업가로 변모하여 돌아왔습니다. 그는 노부부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교회와 마을을 돕기 위해 큰 기부를 했습니다. 노부부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켰고, 그를 통해 더 큰 빛이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가 빛을 비출 때,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공현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매일 일어납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때, 직장에서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일할 때, 이웃에게 친절과 나눔을 베풀 때, 우리는 그분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현은 단순히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웃과 세상에 비추기 위해 주어진 선물입니다. 오늘 하루, 작은 행동으로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기회를 찾아보십시오. 가정에서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이해로, 직장에서는 정직한 태도와 배려로, 이웃에게는 나눔과 친절로 주님의 공현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작은 빛이 모여 세상을 밝히듯, 우리의 작은 실천이 모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복음루카 4,14-22: 성경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

 

사탄을 힘차게 물리치신 뒤에 주님께서는 성령의 힘을 지니고 능력과 권위를 떨치며 갈릴래아로 가셨다

그분은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고 백성들은 놀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분은 성령의 힘을 당신 힘과 권능처럼 사용하심으로써 찬미를 받으신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시어 두루마리를 펼쳐 당신에 관한 예언 이사 61,1-2을 읽으셨다

이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18). 

여기서 가난한 이들은 다른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들에게는 하느님도율법도예언자도정의도나머지 다른 덕들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잡혀간 포로들이었다

오랫동안 사탄에게 묶인 채 사로잡힌 신세가 되어 그에게 복종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18하려고 오셨다.

 

말씀과 그분의 가르침으로 눈먼 이들이 앞을 본다

그분이 가르치시는 것은 ‘잡혀간 이들’만 아니라 ‘눈먼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18예수님께서 치유하여 떠나보내신짓밟히고 부서진 사람들이

바로 이 억압받는 사람들이었다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19

그때는 우리가 눈을 더 보게 되고사슬에서 풀려나고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때이다

즉 주님의 때주님의 은혜의 때가 되게 하는 가르침이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회중 앞에서 읽으시자그들은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글을 읽나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분을 보고 있다

그때, 예수님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21하시며

예언자 이사야가 말하는 이가 바로 당신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경 말씀을 구체적으로 사심으로써 그 말씀을 현실화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가난하고 하느님도율법도예언자들도 없는 영적으로 가난한 이방인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잡혀있는 자들을 풀어주시고, 사탄의 통치를 무너뜨려 어둠에 사로잡힌 이들을 영적인 빛으로 비추셨다

그분은 죄 때문에 가슴이 부서진 사람들에게서 죄의 사슬을 끊어주셨다

또한차 생명을 주실 것이며 죄인들이라고 하는 그들이 의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의 해이다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구체적으로 이루심으로써 이사야서를 완성하셨다면그리고 이사야와 만나셨다면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아냄으로써, 2000년 전의 예수님과 참으로 만나야 한다

 

그분을 만나고 체험하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고 구원을 체험케 하는

그리고 그분을 만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말씀의 실천을 통하여!


3. 이영근 신부

 

2025년 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말씀을 이루시는 구원자로 당신을 선포하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주님 공현 후 주간 안에서 주님의 현현을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지난 월요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에서의 공생활의 시작은 그 '하늘 나라'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주는 이사야 예언의 성취가 선포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18-19)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루시는 하느님이심을 현현하십니다. 

마치 창조 때 하느님께서 “~(라고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다”(창세 1,9.11.15.24.30)라고 하시며 말씀을 이루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말씀을 이루시면서 하느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말씀을 이루시는 구원자로 당신을 선포하십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 말씀이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곧 ‘듣는 행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듣는 행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이 사실은 들을 때 듣는 자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곧 말씀을 영접하는 행위요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이루는 길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 

 

결코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서는 진리에 나아갈 수 없는 까닭입니다. 

곧 진리를 이루지 않고는 진리에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길은 사랑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랑을 실행하지 않고는 사랑의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가능한 까닭은 이미 그 사랑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그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사도 요한은 오늘 제1독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1요한 4,19-21)

그래서 우리는 예물기도를 이렇게 바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침으로써 저희가 주님을 합당하게 모시게 됩니다.

 

그러기에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 받은 것, 바로 그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이미 받은 말씀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이미 받은 사랑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바로 그 안에서 현현하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루카 4,21)

 

주님,

제가 들은 말씀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말씀이 저를 찌르고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말씀을 이루소서.

굳게 닫힌 제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굳은 심장을 녹이소서.

이기심과 자애심에 묶인 저를 해방하소서.

제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들은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8.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1요한4,11-18 마르6,45-52

 

                                                                그리스도 예수님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치네.”(이사9,1; 입당송)

 

어제에 이어 예수님의 애제자 사도 요한의 사랑에 대한 감동적인 설교가 계속됩니다.

사랑이란 말마디가 어제는 10회, 오늘은 12회 나옵니다. 바로 이 사랑이 가리키는 바,

영원한 참삶의 모범이자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마치 온 누리를 환히 밝히는 태양처럼 온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 사랑의 태양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한 주님의 말씀이 참 정답게 들립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정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은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 사랑의 통로이자 하느님의 사랑 자체입니다. 

 

어제 미사중 영성체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마디가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평화”로 들렸습니다.

놀랍고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주님의 성체를 영함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평화가 되어 살 수 있게 되었다니 그대로 존재론적 변화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전 삶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흡사 예수님이 ‘하느님 사랑의 동사(動詞)’처럼 생각됩니다.

 

어제의 5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사랑의 기적에 이어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이니

이 또한 사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모두가 사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대중의 인기에 야합하는 허영이나 환상을 지닌 어리석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참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흥분한 군중들은 광신적이 되었고 이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할지도 모르니

참 달콤한 악마의 유혹입니다.

 

정말 광신이나 맹신에는 처방이 없음은 현시국을 보면 압니다.

잘못된 이념이나 종교에 경도되어 광신적이 되어 눈이 멀때는 상식도 양심도 이성도 마비됨을 봅니다.

참사랑과 함께 가는 분별의 지혜로 위기를 탈출해, 참으로 신속히, 기민하게 군중을 돌려 보내시고

제자들은 재촉하여 기적의 현장을 떠나게 하십니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공을 이루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노자의 지혜와 일맥상통하는

예수님의 처신입니다.

모두를 떠나 보내신후 즉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홀로 산에 오르십니다.

예수님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와 친교의 관상기도입니다.

그냥 아버지 안에 머물러 아버지의 사랑으로 충전시키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오늘날 믿는 이들에게 정말 절박한 것이 이런 주님 안에 머무르는 관상기도시간입니다. 

 

현대 믿는 이들에게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는 토마스 머튼의 말도 생각납니다.

고독과 연대는 함께 갑니다. 예전 사막교부의 생래적 특징인 침묵과 고독에 대한 사랑도 하느님 사랑 안에,

공동체 중심 안에 깊이 머물려는 관상적 원의 때문이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처럼 믿는 이들의 앞문은 세상에,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이어지는 장면도 참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은 뭍에서의 깊은 관상 기도중에 열린 사랑의 눈으로 호수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런 맞바람으로

위기에 처한 배안의 제자들을 보신 것입니다.

말그대로 세상 속에서 인생항해중 갖가지 사유로 위기에 처한 교회공동체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영적 시야는 멀리까지 활짝 열려 있었고 즉시 개입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처럼 새벽녘 호수위를 걸으시어 제자들 쪽으로 가셨고 그냥 그들 곁을 지나가려 하십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현존인 예수님이었고 제자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오늘 복음의 핵심이자, 우리가 인생항해 여정중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Take courage, it is I. do not be afraid)

 

바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마디는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성심상 바위판에 쓰여져 있습니다.

“나다(I AM)”은 바로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 이름입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I AM with you)”, “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I AM for you)”로 정의되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어 선장으로 자리잡자 바람은 멎었고, 제자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

모두 넋을 잃었으니 얼마전의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까닭입니다.

망각의 무지가 얼마나 영성생활에 치명적인지 깨닫습니다.

이들의 두려움은 믿음 부족은 물론 사랑 부족에서 연유함을 사도 요한이 잘 밝혀줍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하튼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적 신원을 새삼 깊이 깨달았을 것이고, 이 충격적 체험의 기억은

남은 인생 여정중 제자들을 하느님 사랑에 늘 깨어 살게 했을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인생 항해 여정중 여러분의 공동체라는 배를 잘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 요셉수도 공동체라는 배가 여러 차례 파선의 위기중에도, 1987년3월19일, 개원후 만38년 동안

무사히 세상 바다를 항해할 수 있었음도 순전히 하느님 사랑의 은총임을 깨달으니 바로 제가 그 증인입니다.

 

“생명(사랑)이 나타나셨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네.”(1요한1,2; 영성체송). 아멘.


1/9(목)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가 빛을 비출 때,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공현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매일 일어납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때, 직장에서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일할 때, 이웃에게 친절과 나눔을 베풀 때, 우리는 그분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이것이 주님의 은혜의 해이다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구체적으로 이루심으로써 이사야서를 완성하셨다면그리고 이사야와 만나셨다면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아냄으로써, 2000년 전의 예수님과 참으로 만나야 한다

 

그분을 만나고 체험하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고 구원을 체험케 하는

그리고 그분을 만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말씀의 실천을 통하여!(조욱현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루카 4,21)

 

주님,

제가 들은 말씀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말씀이 저를 찌르고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말씀을 이루소서.

굳게 닫힌 제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굳은 심장을 녹이소서.

이기심과 자애심에 묶인 저를 해방하소서.

제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들은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수철 신부)

 

1/9(목)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9일차 기도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루카 4,21)

 

주님,

제가 들은 말씀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말씀이 저를 찌르고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말씀을 이루소서.

굳게 닫힌 제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굳은 심장을 녹이소서.

이기심과 자애심에 묶인 저를 해방하소서.

제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들은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9일(목) 5시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