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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10일 금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10일 금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12(111),4 참조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로우시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별의 인도로 구세주의 탄생을 알려 주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세주를 믿고
구원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7(146─147),12-13.14-15.19-20ㄱㄴ(◎ 12ㄱ)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복음 환호송

마태 4,23 참조
◎ 알렐루야.
○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저희가 경건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천상 성사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공현 감사송 :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그분을 인류의 빛으로 드러내 주셨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나게 하시어
그분께서 지니신 불사불멸의 힘으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1요한 4,9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네. 하느님이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오셨으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저희가 모신 성체에 더욱 맞갖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며칠 전부터 스마트폰의 액정이 화면이 꺼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액정의 화면이 아예 안 나오면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습니다. 대리점엘 갔더니 삼성전자에서 지정해 준 수리 업체로 가라고 했습니다. 지정 업체로 갔더니 3주일은 걸린다고 했습니다. 스마트폰 없이 3주일 지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대리점에서 중고 휴대전화를 빌려주어서 심 카드를 바꿔서 임시로 사용했습니다. 이번에도 깜짝 놀라서 삼성전자에 다니는 형제에게 연락했습니다. 형제님은 저의 스마트폰을 가져가서 1시간 만에 수리해 주었습니다. 접히는 스마트폰은 접히는 부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도 문제가 생기면 연락 달라는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지난 대림 특강에서 신부님은 새로운 병을 이야기했습니다. ‘핸떨병이라고 합니다. 핸드폰이 손에서 떨어지면 깨질 것 같아 걱정이고, 핸드폰을 잃어버릴까, 생각하면 또 걱정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핸드폰이 손에 떨어지는 건 걱정하면서 하느님과 멀어지는 건 별로 걱정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고 했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면서 떠오르는 상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주님의 탄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본 별은 어떤 별일까요? 그것은 희망의 별, 믿음의 별, 사랑의 별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본 별은 어떤 별일까요? 그것은 겸손의 별, 나눔의 별, 희생의 별입니다. 그런 별을 충실히 따르면 주님의 성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별은 어떤 별일까요? 그것은 권력의 별, 재물의 별, 명예의 별입니다.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별은 어떤 별일까요? 그것은 욕망의 별, 분노의 별, 질투의 별입니다. 그런 별을 따르면 바로 옆에서 주님의 성탄이 있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구유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구유에 누워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구유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그것은 누추한 곳입니다. 그곳은 가난한 이가 머무는 곳입니다. 그곳은 굶주린 이가 머무는 곳입니다. 그곳은 병든 이가 머무는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 굶주린 이, 병든 이들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찾는 구유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성공한 이, 권력을 잡은 이, 재물이 많이 이와 함께 하려 합니다. 그런 이와 함께 하려고 하면 우리는 예수님 탄생의 구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곳으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공현을 대하는 복음서의 시각은 조금씩 다릅니다.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 아들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하느님이셨다고 전합니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거슬러 가면 아담이 나오고, 아담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에 신학적인 의미를 담아서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14대라고 합니다. 다윗에서 바빌론 유배까지가 14대라고 합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예수님까지가 14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과 사건을 예수님의 족보에 넣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임금 다윗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바빌론의 유배를 견디고 예수님께서 태어났고 합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에서 5명의 여인을 넣었습니다. 타마르, 라합, , 우리아의 아내, 마리아입니다. 타마르는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 시아버지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도와 베들레헴에 정착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는 지혜로운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과정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당하고,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나병환자를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나병환자는 죄인 취급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고개를 들고 세상을 볼 수 있으며, 가족들과도 함께 지낼 수 있고,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모든 죄가 사해지고, 하느님 품 안에서 참된 행복을 느끼며, 단절된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약하기에 세상의 유혹 앞에 넘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참된 가치와 진실한 행복을 선택하기보다는, 순간의 기쁨을 주는 것들을 택하게 됩니다. 잠시의 기쁨과 쾌락을 위해서 양심과 영혼을 속이기도 합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복음루카 5,12-16

 

우리 인간이 살길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접촉입니다!

 

“온몸에 나병이 걸린”이라는 표현을 읽을 때마다, 왠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오랜 세월 익숙하게 사용되어온 병의 명칭들이 환자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나 차별적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기에, 최근 대대적인 변경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에 몽고증이라고 했었는데, 특정 인종을 비하한다는 지적에 WHO는 병의 발견자 이름을 따

다운증후군으로 바꾸었습니다.

간질이라는 질환은 어감부터가 좋지 않고, 사회적 낙인을 찍는 표현이기에 뇌전증으로 변경했습니다.

정신분열증은 마음의 조화가 깨어져 온다는 의미로 조현병으로 바꾸었습니다.

치매 역시 다분히 부정적 이미지가 크므로 인지저하증으로 바꾸기 위해 논의 중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 역시 발병의 원인이 되는 균을 찾아낸 사람의 이름을 따 한센병이

공식 용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성경 말씀 안에 차별적 언어,

낙인을 찍는 언어가 남아있지는 않은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볼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환자의 증세는 꽤 심각했습니다. 균이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마땅한 치료제도 없던 시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깊어져 가는 상처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일,

조금씩 사라져가고 떨어져 나가는 자신의 신체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는 일 뿐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가 즉시 하는 일은, 혹시나 밤사이에 기적이 일어나서 내 몸이 나은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자신의 피부를 만져 보았습니다.

즉시 역시나 하며 좌절하며 들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은혜롭게도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그는 치유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계신 고을로 찾아갔습니다.

율법 규정상 그는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뵙자마자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청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율법 규정을 어기십니다. 그와 접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환자의 절박한 처지, 경탄할만한 적극성, 예수님을 향한 굳센 믿음,

그 결과는 즉각적인 치유와 구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 몸이 종기로 뒤덮인 한 가련한 인간과 측은지심으로 가득 찬

하느님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환자가 지니고 있었던 수많은 죄와 상처, 종기, 고름은 뜨거운 하느님 사랑의 불꽃에

모두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태초의 보송보송한 애기 피부로 아름답게 재생되었습니다.

 

결국 죄인인 우리, 결핍과 상처투성이뿐인 우리 인간이 살길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접촉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예수님의 '손'은 구원의 힘을 드러냅니다>

 

오늘도 ‘주님 공현’은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치유를 통해 예언자 ‘엘리사의 활동’을 완성함으로써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곧 <2열왕기>(5,1-27)에는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을 요르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씻게 하여 나병을 낫게 함으로써 야훼 하느님이 주님이심을 드러내셨듯이,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병을 직접 치유하심으로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나병환자는 <민수기>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고(민수 5,2-4),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이된 일인지,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피해간 것이 아니라, 엎드려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면서 깨끗하게 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루카 5,12)

여기에서 우리는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의 복음’의 차이를 극렬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곧 구약의 율법은 나병환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규정을 제시할 뿐,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고 불결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께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병들었고 죄인이기에, 감싸주시고 치료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루카 5,13)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레위 13,45-46), 나병환자가 집 안에 들어서면 그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부정함을 입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물며 부정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십니다.

예수님의 '손'은 구원의 힘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분의 신체적 접촉은 우정과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만져서 부정을 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병환자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부정을 피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져 깨끗하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불결함에 더럽혀지지 않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드러내줍니다.

곧 당신의 신성을 드러냅니다.

 

마치 호렙산의 불꽃 속에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처럼(탈출 3,2), 성모님께 아기를 낳으면서도 동정성을 잃지 않게 하신 것처럼, 불결한 이를 만지면서도 자신은 불결해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결한 이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당신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요, 사랑이신 구원자이십니다. 

오늘,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뜻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루카 5,13)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루카 5,13)

 

주님!

불순함으로 제 온 몸이 부스럼투성입니다.

죄와 상처로 속이 문드러지고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결하기에 저는 망설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불결하기에 다가오라 하십니다.

죄인이기에 저는 숨지만, 당신은 오히려 용서받을 대상이라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가 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한 바를 이루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제게서 이루소서.

당신이 원하니까 제가 원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9.주님 공현후 목요일                                                           1요한4,19-5,4 루카4,14-22ㄱ

 

                                                 주님의 전사, 영적승리의 삶

                                                     “주님과 일치의 여정”

 

주님과 일치의 여정중에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한결같은 분들을 보면 힘이 납니다.

그대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제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이런 분들이 평범한 듯 하나 비범한 성인입니다.

 

오늘 역시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역시 일기쓰듯 하는 강론입니다.

27년째 치과 치료를 해주는 형제에게 어제 진료를 받았습니다.

 

바로 이 분이 세상 속에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분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과 편안히 기다리는 환자들, 흡사 가정 같은 따뜻한 병원 분위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분위기 자체가 세상 속의 오아시스처럼 힐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치과 형제로부터 작년 나눔에 큰 기여를 했던 “다산 어른의 하루”라는

2025년 365일 어록을 선물받았다는 것니다.

 

“위학일익(爲學日益;배움이란 매일 채워도 끝이 없다)이란 1월 말씀이 너무 멋집니다.

이 말씀은 제가 평소 절감하는 진리입니다.

이래서 진정 구도자들은 배움의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배움을 사랑하는 배움의 여정에 항구한 분들입니다. 

 

“도리를 지키고 사명을 충실히 했을 때, 하늘의 도움을 구할 자격이 생긴다.”<다산>

“군자는 평이한 곳에 머물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요행을 바라고 위험한 짓을 한다.”<중용>

 

옛 어른들의 이런 지혜도 영적승리의 삶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영적승리의 삶의 원조이자 불멸의 모범은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이런 주님과 일치의 여정에 항구할 때 천하무적에 백전백승 영적 승리의 삶입니다.

제가 평범한 일상에서 체험하는 진리입니다. 주님의 다음 두 말씀이 우리에게 무한한 격려가 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6,50)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주님의 사도들이, 교회 안의 무수한 성인들이 영적승리의 증인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영적승리의 원조,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에 앞선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와도 같고 불교 선사(禪師)들의 오도송(悟道頌)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은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기전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말그대로 구원의 기쁜소식이자 영적승리의 삶의 예견되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서

자신의 사명을 확인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도대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알게 모르게 세상 죄악에 노예되어 살아가는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명이자 동시의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이 말씀이 우리를 무지와 허무로부터 해방시켜 예수님처럼 우리의 사명을 수행하며

참 자유인이 되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가 되어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는

참 통쾌한 예수님의 출사표입니다.

참으로 세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롭게 할 분은 주님의 진짜 종,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또 하나의 예수로 세상에 파견하시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현재인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요 오늘 살아내야할 말씀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한 당시의 사람들의 심정에

저절로 공감이 갑니다.

참으로 우리 역시 주님과 일치의 여정에 항구하며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입에서도

은총의 말씀들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좌고우면할 것 없이 직진하면 됩니다.

예수님께 이겨놓은 싸움을 싸우는 우리들입니다.

이미 영적승리를 내다보며 하루하루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다시 한 번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영적승리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사랑의 승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요, 제가 늘 강조하는 바, 죽어야 제대인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

사랑의 전사, 믿음의 전사인 우리들입니다.

산책 때 마다 일부 가사를 바꿔 부르는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는 늘 불러도 늘 좋은 제 애창곡입니다.

 

“나 태어나 수도원에 수도자되어 

 꽃피고 눈내리길 어언 43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수도원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검은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꽃다운 이 내 청춘”

 

34세 늦깍기로 입회하여 이제 77세, 그래도 ‘영원한 현역’의 빛나는 청춘입니다.

‘바다’와 ‘아침이슬’과 더불어 세 애창곡을 부르며 주님의 전사, 사랑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로서 영적전의를 새롭게 합니다. 

주님의 전사에 그대로 적용되는 다음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장군의 매력적인 말씀에

더욱 공감합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주님의 애제자 주님의 전사, 사랑의 전사의 빛나는 모범 사도 요한이 우리 모두를 격려 고무합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요, 모두 세상을 이기는 영적승리의

주님의 사랑의 전사들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이기며, 세상의 이긴 그 승리는 믿음의 승리입니다.

사랑의 승리는 그대로 믿음의 승리로 직결됩니다.

하루하루가 영적전투의 현장입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영적전투는 계속될 것입니다.

얼마전 교황님의 조언이 다시 생각납니다.

 

“날마다의 싸움들중에, 시선을 그리스도께 둡시다.”

(Amid daily struggles, keep eyes on Christ)

 

이래야 영적승리의 원조이자 빛나는 모범인 주님과 일치의 여정중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1/10(금)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과정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당하고,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나병환자를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나병환자는 죄인 취급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고개를 들고 세상을 볼 수 있으며, 가족들과도 함께 지낼 수 있고,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모든 죄가 사해지고, 하느님 품 안에서 참된 행복을 느끼며, 단절된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 몸이 종기로 뒤덮인 한 가련한 인간과 측은지심으로 가득 찬

하느님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환자가 지니고 있었던 수많은 죄와 상처, 종기, 고름은 뜨거운 하느님 사랑의 불꽃에

모두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태초의 보송보송한 애기 피부로 아름답게 재생되었습니다.

 

결국 죄인인 우리, 결핍과 상처투성이뿐인 우리 인간이 살길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접촉입니다.

(양승국 신부)

 

3. 여기에서 우리는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의 복음’의 차이를 극렬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곧 구약의 율법은 나병환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규정을 제시할 뿐,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고 불결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께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루카 5,13)

 

주님!

불순함으로 제 온 몸이 부스럼투성입니다.

죄와 상처로 속이 문드러지고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결하기에 저는 망설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불결하기에 다가오라 하십니다.

죄인이기에 저는 숨지만, 당신은 오히려 용서받을 대상이라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가 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한 바를 이루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제게서 이루소서.

당신이 원하니까 제가 원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은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기전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말그대로 구원의 기쁜소식이자 영적승리의 삶의 예견되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서

자신의 사명을 확인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수철 신부)

 

1/10(금)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10일차 기도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루카 5,13)

 

주님!

불순함으로 제 온 몸이 부스럼투성입니다.

죄와 상처로 속이 문드러지고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결하기에 저는 망설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불결하기에 다가오라 하십니다.

죄인이기에 저는 숨지만, 당신은 오히려 용서받을 대상이라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가 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한 바를 이루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제게서 이루소서.

당신이 원하니까 제가 원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10일(금) 8시-